::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80     

금요기도회 :3/13/2015

대표기도:  기도인도+<선교부>

찬송가: 335( 277),202(268)   

 

                   

1. 씨 뿌리는 비유/13:2-9,18-23

*13:3-9,18-23/13장의 7개의 천국 비유 가운데 첫 번째의 비유/네 종류의 밭, 밭은 사람의 마음의 밭을 가리킨다./길가밭,돌짝밭,가시떨기밭,옥토밭! /각각의 밭의 성질은? 그리고 그 밭에 씨가 떨어지면 어떤 결과를 맺는가? /그 밭은 어떤 성질의 마음의 밭인가?

*해석/온 인류의 마음을 네 종류의 마음의 밭으로 분류하기 보다는 한 사람의 마음 밭은 이런 네 종류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 옥토밭 같은 마음이라도 밭 귀퉁이에는 자갈이 섞여 있을 수가 있고, 가시떨기가 무성하게 자라는 곳도 있을 것이다. 거의 마음의 대부분이 옥토로 되어 있기에 옥토밭이라고 부른다옥토밭 같은 성질의 토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밭이 될 것이다. /내 마음에 있는 길가 밭,돌짝밭,가시떨기 밭 같은 성질은 어떻게 하면 모두 옥토밭 같은 그런 마음의 밭으로 모두 바뀌는가? 내 마음에 있는 길가밭은 쟁기로 갈아 엎고 땅을 고르게 해주면 옥토 밭이 된다. 돌짝밭은 돌을 제거하고 겉흙을 보충해 주면 옥토밭이 된다. 내 마음 가운데 자라고 있는 가시떨기는 불을 놓으면 가시떨기는 모두 타 버린다. 그리고 난 다음에 갈아 엎고 땅을 고르게 해주면 옥토밭이 된다. /현재 내 마음의 밭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누구나 이 네 가지 성질의 밭을 모두 가지고 있다. 잘 분별하시고 나의 마음의 밭은 모두 옥토밭 같은 그런 밭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시 떨기-세상 염려 근심으로 꽉 차 있다. 시험이 들었을 때에는 우리의 마음은 길가 밭 같은 마음이 된다. 돌짝 밭은 인내가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다. 말씀을 받기는 받았지만 말씀의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결실이 없다

 

2. 2의 탕자, 형님 탕자, 집안의 탕자/15:11-32

*둘째 아들=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1 탕자/2 탕자는 누구인가? 맏이! 맏이도 탕자다. /어떤 관점에서? 첫째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아버지의 마음에 고통을 준 아들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철이 안 났다. 영적으로 미성숙하다. 적어도 아버지가 걱정과 근심하고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을 안다면 집안의 종들을 보내서 동생을 수소문해서라도 데리고 와야 하지 않겠는가?

/둘째로 영안이 띄어져 있지 않다- 동생이 빈털터리로 돌아온 것에 대하여 분노했다. 동생을 자기의 동생이라고 말하지 않지요. 아버지의 이 아들, 그 자식, 그 놈, 그 치~ 아버지와 내가 뼈 빠지게 노동해서 번 돈인데,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모두 허랑방탕하게 날려 버렸느냐 말입니다. 형님 탕자는 동생의 빈손 만을 보았다그러나 아버지는 빈털터리이지만 그 빈 손에 아버지가 누군가 하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실려 있음을 보았다. 형님 탕자의 눈에는 영혼이 안 보이고, 오직 돈으로 세상과 사람을 평가한다. 맘모니즘적 가치관, 교회 안에서도 돈 있는 사람이 목소리가 크다. 믿음이 큰 자가 목소리 커야 하는데 말입니다

/셋째로 이 형님 탕자에게는 신앙생활의 기쁨이 없다. 아버지는 아들이 살아 돌아 왔기에 기뻐하나, 형님 탕자는 기쁨이 없다. ? 복음에 대한 깨달음이 없기 때문이다. 기쁨이 없는 신앙생활-29절 말씀-아버지를 섬겨서~ 아들이지만 종처럼 일만 했다. 기쁨이 없는 신앙생활하시는 분들은 모두 형님 탕자 그룹에 속하는 사람이다. 복음은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 그러나 복음을 율법으로 지킨다. 복음을 지키지 않으면 지옥에 들어가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맏이 탕자의 신앙관-기쁨보다는 두려움이 가득 찬 신앙생활을 한다. 당신은 어떤 탕자인가?

 

3.   내 귀에 들리는 소리/내 영혼을 살리는 소리는?/30:21-22

그리스&로마 신화(문화 인류학)에 오르페우스=음악의 신에 대한 신화가 있다. 큰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요정의 노래입니다. 그 노래 소리만 들리면 선원들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바다에 뛰어 들게 됩니다(연가시 기생충처럼-물에 있던 기 기생충이 우리의 몸에 들어오면 뇌에 자리를 잡으면 갈증 때문에 물로 뛰어들게 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배에 오르페우스 신을 모시고 항해를 나선 후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되지요. 왜냐하면 요정이 노래를 부르면 오르페우스 신은 더욱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요정의 노래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주변에는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요정의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소리를 듣고 따르다가는 영혼을 잃어 버린다. 어떤 소리를 듣고 있는가? 성도와 교회가 어떤 소리를 경청하느냐에 따라서 교회의 생명력이 넘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해야 한다. 엄마가 놀이터에서 뛰어 놀고 있는 아이들 속에서 자신의 아이가 넘어져서 우는 소리를 다른 사람은 분별 못해도 엄마는 즉각적으로 알아 냅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그러합니다./하나님의 음성이 어디서 들리는가? 뒤에서 들린다. 상징적인 말이다. 왜 뒤에서 들리는가? 그것은 인생들이 주님을 뒤에 두고 불순종하여서 떠나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연히 뒤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요. 어떤 메시지 입니까?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인생의 바른 길을 가리켜 주고 있습니다. 생명의 길이 무엇인지를 말입니다사람이 바른 인생 길을 찾게 되면 하는 일은? 자신이 섬기던 우상들을 제거한다. 우상들에게 나가라고 한다. 우상과는 관계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14:8(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요일5:21(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바른 삶의 길은? 당신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1:6,12,14절에서 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데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바로 이것이다. 43:21(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4.    *법이냐 은혜냐?

12:1-8<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는 사건을 변호하는 우리 주님>/이 사건이 율법 어디에 저촉되었는가? 노동금지 조항이다. 도둑질이 아니고숨막히는 율법 적용! 법과 전통에 매여 있어서 그것을 고집하면 영혼을 잃어 버릴 수가 있을 때에는 법과 전통을 잠재우고 영혼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예외적인 허용! 아히멜렉 제사장 시절에 다윗이 진설병을 그의 종자들과 함께 먹었다. 제사장만이 매 안식일마다 성소에서 먹어야 하는 그 거룩한 떡을 다윗이 먹었다. 삼상21:6절에 의할 것 같으면아히멜렉은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제사장이다. 보수적인 제사장은 율법에 그렇게 규정되어 있기에 단순하게 율법대로 지켜야 한다는 입장일지 모르지만 진보적인 제사장은 진설병에 대한 율법적인 조항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떡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런 규정이 있다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진설병을 하나님의 거룩함이 저촉되지 않으면 누구나 성소 밖에서 먹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12:9-21-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일을 하신 주님! 소나 나귀가 구덩이에 빠졌을 경우에 안식날 소나 나귀를 구덩에서 건저 올리는 일은? 교회일을 할 때에 우리는 이렇게 열린 마음을 가지고 주의 마음을 헤아려 알아야 한다.

/ 누가복음 13 10-21

18년 동안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인을 예 수께서 고치십니다. 이때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고 분을  냅니다. 예수님은 18년 동안이나 고생한 여자가 치료를 받았으면 기뻐해야 지 안식일이고 아니고가 뭐가 중요하냐며 야단을 치십니다. 교회에서도 적용되어야 하는 원칙입니다. 말씀을 글자 그대로 지킬 것인가? 아니면 은혜를 따라 말씀을 지킬 것인가


전의진목사

2015.03.16 10:10:54

03/13/15 금요 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5/03131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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