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75     

금요기도회 :2/6/2015

대표기도:<선교부>

찬송가:

 

1.             몇일 전에 어떤 담을넘은가지가 보내준 퍼온글을 읽었습니다그 퍼온 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요즈음은 정규 대학이외에도 대학이 많은가 봅니다. 노인 대학, 교사대학, 등등의 대학이 많지요. 퍼온 글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인생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인생 대학은 종합대학이었는가 봅니다. 인생 대학 가운데서 광야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전공은 고생과, 즉 고난과입니다. 벌써 몇해째 낙제를 하여서 유급했고 졸업을 못했고 학위를 못받았지요. 그 인생 대학의 총장님은 우리 주님이신데, 대충 안 넘어가 주십니다. 컨닝도 불가능하고 누군가가 대리 시험 봐주는 것도 불가능합니다수업료는 대단히 비싸다고 하더군요. 자신의 인생 전부를 내 놓아야 입학이 가능합니다. 교과목을 보면 아주 다양합니다. 모두 field work를 삶의 현장에서 해야 하는 훈련입니다. 기다리는 훈련, 포기하는 훈련, 내려 놓는 훈련, 깨어지는 훈련, 자아 죽이는 훈련, 순종하는 훈련,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만을 의지해서 살아 가는 훈련하나 같이 지옥 같은 힘든 훈련입니다. 수업료는 인생 전부를 걸어야 하지요. 낙제를 하면서 안 떠나는 이유? 학위를 마치면 엄청난 복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8:18<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8:17절 후반절에는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광야 대학 고난과에 입학하여서 수료하고 있는 분들 힘내시길 바랍니다!  


2.             나는 누구 때문에 살아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 대답하시겠습니까? 우리 어머니들은 애들 때문에 살아간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삶의 동력이자 힘이 자식들이란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은 누구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 예수 때문에! 예수는 나의 전부라고 말할 수가 있는가? 예수는 my all. 오직 예수, 다만 예수, 항상 예수!  /하나님만! 62:5<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하나님 말고 다른 분 없소? 어떤 사람의 경험-꿈 속에서 경험<예수님 말고 다른 분 없소>!  하나님 한 분만! 모든 세상 줄이 끊어져 갈 때에? 끊어 지지 않는 줄은? 하나님에게 연결되어 있는 줄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영혼의 닻이라고 말했습니다! 닻은 풍랑이 일어날 때에 배가 바다 밑바닥에 내립니다. 풍랑에 견디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나라로 영적인 항해를 하는 사람들인데, 고난과 풍파가 일어날 때에 닻을 어디에 내리는가? 바다 밑에? 6:19<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휘장 안에 우리의 영혼의 닻이 쑥 들어가서 고정되었다. 휘장안? 소망이 무엇일까? 우리의 영혼의 닻! 소망이 있으면 아무리 큰 풍랑이라고 넉넉하게 견디어 낼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 닻이 어디에 들어가 있어요? 바다 밑? 아니지요?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 있지요. 휘장 안이라는 것은 지성소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하늘 지성소를 가리킵니다. 천국 소망을 확실하게 붙들고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환난과 풍파를 넉너하게 이겨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있는 손은 내가 하나님의 손을 뿌리치지 않은 한 하나님이 먼저 내 손을 놓지 않습니다. 6:37<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              / 지난 주의 설교 본문 막1:21-28절 중에서 24절을 보면 더러운 귀신의 외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더러운 영에 포제스 되어 있는 이 사람! 이 사람에게는 영들이 복수로 되어 있지요. 우리라고 한 것을 보니깐! 귀신에 포제스 된 사람이 예수를 알아 본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포제스되어 있는 악령들이 예수를 알아 보았다는 말입니다. 귀신들도 지성과 초자연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실존입니다. 이 더러운 귀신들이 예수가 누구인줄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 The holy one of God! 예수께서 자신들을 멸할 수 있는 권세가 있는 분임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귀신을 멸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귀신을 최종적으로 영원히 가두어 놓을 지옥에 처 넣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이 장소를 무저갱이라고 언급하고 있지요. 사탄도 귀신들도 모두  역사의 종말에 자신들의 운명이 무저갱에 영원히 갇히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 일을 예수께서 집행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신 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귀신들의 이런 외침에 대하여 우리 주님의 반응은 어땠나요? 싸늘합니다! 25<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입 다물라! 그리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책망했습니다. 예수에 대하여 바르게 증언했는데도 우리 주님은 아주 싸늘하게 대했습니다. ? 귀신들이 예수님과는 관계가 맺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들, 예수님과 관계가 맺어져 있는 우리들이 이런 말을 한다면, 우리 주님은 대단히 기뻐하시면서 칭찬하시면서 우리를 축복할 것입니다. 16:17-18절에는 빌립보 지방에서 사도 바울 일행이 만났던 점하는 귀신 들린 여자를 만나게 되지요. 그 여자는 수 일 동안을 바울 일행을 따라 다니면서 뭐라고 떠들고 외쳤나요? 욕설하고 비방하면서 따라 다녔나요? 아니지요. 일종의 전도하면서 바울 일행을 따라 다녔습니다. 17절에 의할 것 같으면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빌립보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도 알지 못하는 놀라운 새로운 소식을 이 악령들은 알고 있었지요. 여기에 대하여 바울은 심히 괴로워하였다. 전도가 방해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귀신들은 예수의 대적자들입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선하게 보일지라도 우리 주님이 탐탁치 않게 여기십니다.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비록 실수가 많더라도 허물이 많고 약점이 많은 우리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좋아 하십니다. ? 우리들은 우리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과 딸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면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십니다. 갓난 아이가 한 일년 정도 되면 옹아리를 하지요. 그러다가 어느날 아빠 엄마라는 말을 하면 부모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지요. 우리 하나님도 그렇거들랑요.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실수해도 부족해도 있는 그대로 받으시고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는 영원히 계속될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피로 맺어진 영원한 언약임을 잊지 마십시요. /          몇일전 슈퍼 차이나라는 다큐먼트를 보았습니다. 중국의 지도자인 시진핑 주석이 해군 부대를 시찰하면서 사열하는 장면입니다. 시 주석이 해군 수병들을 향하여 뭐라고 불렀는가 하면 동지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동지가 무엇입니까?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말이지요. 그들은 무슨 뜻을 가지고 있나요? 공산 혁명을 통하여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초 강대국이 되어서 세상을 중국의 발아래 두려는 그런 뜻이지요. 그들은 일을 위하여 뭉쳐진 사람들입니다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는가? 하나님 나라라는 거대한 일을 이루기 위하여 부름을 받았는가? 우리 주님도 오늘 지구 상에 있는 모든 교회를 사열하면서 도열해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동지들이라고 말할까? 아니면 전사들'이라고 말할까? 아니면 종들아라고 말할까? 이런 말들은 모두 일과 사역과 관련된 말들이지요. 동지니, 전사니, 종들이니 하는 말들 말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 교회 성도들을 보시면서 제일 처음 입을 벌려서 하실 말씀이 무엇일까? ‘형제들아’! 주 예수께서 우리를 보시면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면서 부르는 소리는 형제들아입니다형제, 자매라는 관계는 원초적인 관계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고 예수께서 맏형이고 우리는 성부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 그리고 우리 주님 예수의 동생들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형과 동생의 관계는 천륜입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변할 수가 있지요. 천생 연분이 무엇으로 평생 원수로! 그러나 천륜은 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주 예수 덕분에 그런 관계가 맺어 졌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오늘 우리 교회 성도들을 이곳에서 사열하신다면 동지들’ ‘십자가의 군병들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들과 형제 관계를 맺었습니다. 할렐루아! 내가 천국을 줄 터니이니 너희들은 땅에서 내가 시키는 일만을 잘해 주면 된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능동적인 역할을 못해도 좋다. 그럴지라도 너희는 내 형제이며 내 자매니라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형제들아!라고 부르시면서 우리 주님은 이런 관계 위에서 우리에게 전사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전사가 안 되어도 좋습니다. 그냥 우리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 주님 예수의 동생으로서 그런 관계를 누리면서 살면 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기쁨이며 행복입니다. 우리 주님이 나를 부르시면서 형제 영호야나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해 보지 않겠느냐라고 물으실 때에 왜 내가 거부하겠는가? 내 힘 내 정성 비록 작지만 내 능력 다하여 주의 부탁을 이루지 않겠는가

 

            4. 1:16-17/2003년도 표어-능력의 복음을 전하자

*복음이란 무엇인가?/Gospel 기쁜 소식 good news, 복음 gospel.

하나님께서 예수의 성육신과 죽으심과 부활 속에서 행하신 일이 복음이다. .죽음.심판에서 인류를 건져 내는 것이 구원인데, 이 일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셨다. 딤전1:15-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려고 세상에 임하셨도다/ 61:1, 4:16-21-아름다운(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예수 자신을 복음으로 이해해도 된다. 복음이 능력이다. 어떤 능력? 하나님의 능력!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그 파멸(멸망, 지옥으로 들어감)에서 건져 내는 능력,power이다./ 구원은 누구에게만? 믿고 있는 자에게! 믿지 않는 자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구원의 순서? 복음에는 차별이 없다! 먼저는 유대인, 다음으로는 헬라인 etc. 수구디아인…/복음에서 능력이 제거된다면 윤리와 도덕이 되어 버린다. 우리는 세상에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전하는 사람인가? 구원의 능력을 전하는 사람들이다. 윤리와 도덕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은 복음 속에 내재 되어 있는 성령의 능력 밖에는 없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자랑스러워한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복음 때문에 고난과 핍박을 받아도 복음을 버리지 않는다. ? 복음이 자랑스럽기 때문에!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복음을 위하여 기꺼이 고난을 받았고, 나중에는 복음 때문에 순교했다. 복음을 알고 복음을 따라서 사는 삶이 가장 고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이전에 가졌던 학문적 성취나 업적들을 빵부스러기로 여길 수가 있었다./초등학교나 중학생시절의 나의 복음에 대한 부끄러움의 실례?-도시락 먹을 때에 식사기도?/사도 바울의 자랑? 주의 십자가! 6:1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십자가는 로마의 반역자나 극악 무도한 죄인을 사형 시키는 형틀인데 그것은 부끄러움인데도 그것을 자랑한다. 예수가 달려서 돌아가신 그 십자가를 사랑하고 자랑한다. 예수는 저주할 자(나무에 달려서 사형 받는 자에 대하여 그렇게 성경은 말한다, 아니데마)가 아니라 주님(큐리어스)이시다./복음 때문에 로마의 옥중에 갇혀 있기 까지 하지만 죄수가 되어서 옥에 갇힌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딤후1:8<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어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디모데에게 부탁하는 당부의 말이다. 집안의 어른이 일제 치하에서 신사참배 반대하다가 옥에 갇히고 그리고 순교자가 되었다면 부끄러워 해서는 안되고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 /오늘 만약 우리들이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여서 예수 믿는 것을 접어 버리고 세상으로 내려 간다면 무슨 일이 내세에서 일어날까? 8:38<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9:26)

*직전 컨텍스트인 15절 말씀에는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 하기 때문이다.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자가 복음 전도자가 된다. 바울은 체험자다. 어디서? 다멕섹으로 가는 길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서 구원을 체험했다. 복음의 능력을 체험했다. 당신은 복음의 능력을 체험했는가? 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바울이 가야 했던 제국의 수도는 로마였다. 내가 가서 복음 전해야 할 로마는 어디인가? 즉 나의 로마는 어디인가이곳 보스톤이 아니던가?

/수가성 여인의 전도, 4:28-30<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수가성 여인은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 만나고 구원 받았고, 삶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그것을 이웃에게 보여 주면서 어떻게 전했나? 나를 보라! 그리고 와보라 그리고 너도 나처럼 직접 체험해 보라!  

*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어 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어떤 의인가? 3:21에서 말하고 있는 <칭의의 의>를 가리킨다구약에서는 창15:6, 2:4에 이미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상이 기록되어 있다.하나님의 의는 구약에 나타나서 신약에서 완성되었다. 예수님 당시에는 율법 주의(유대교) 때문에 큰 오해가 발생했다:율법을 지켜야  의롭게 된다(행위.공로사상)!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믿음의 성장을 가리킨다. 작은 믿음에서 큰 믿음으로 성장해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능력의 복음을 전하자/그러기 위해서는 능력의 복음을 체험해야 한다./복음을 전하는 것은 두 종류다. 하나는 증인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변증가가 되는 것이다. 변증가가 되기 위해서는 신학교에 들어가서 신학을 공부해야 한다. 평신도는 변증가로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증인으로 부름 받았다. 예수의 증인-목격자. 체험자! 예수 믿어 보니 이것이 좋더라하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증언이다.

변증과 전도-변증은 헬라어로 apologia 인데 이 말의 의미는 변호(defense)를 의미하는데 법정에서 피고의 무죄를 주장하는 논리 정연한 주장을 가리킨다. 상대방을 논리로 제압하여서 기독교의 신앙이 옳다는 것을 강요하거나 상대방에게 굴욕감을 주는데 있지 않다. 불신자들에게 기독교 신앙의 실체와 신빙성을 제시하고 그들로 하여금 이성을 사용하여서 기독교 신앙의 이해에 이르도록 하는 일이 변증이다. 변증학은 전도가 아니지만 전도가 빠진 변증은 변증이 아니다. 변증의 목적은 이방 세계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이르게 하는 데 있다. 벧전3:15<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logos)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apologia)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전도는 막16:15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면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변호사와 증인-1:8-증인이 되라! 우리는 증인으로 부름을 받았다. 변증가는 신학교 교수들이다.

 


전의진목사

2015.02.10 04:43:37

02/06/15 금요 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5/02061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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