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72     

금요기도회 :1/9/2015

대표기도:

찬송가: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1.     Good-God=0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것을 얻었다 해도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억만 금을 벌었다 할지라도 하나님 없으면 꽝이다. 죽을 때에는 모두 땅에 나두고 한다. 인생의 마지막에 남기는 것은 무덤 쓸 자리, 땅 한 평이다그러나 0+God=Good아무것도 아닌 삶을 살고 있지만 하나님만 계시면 그 삶은 좋은 것이고 의미 있는 삶이 된다. 비록 세상 것 풍족하게 가지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소유했다면 그는 가장 복된 사람이다

2.     교만에 대하여! 왜 교만을 피해야 하는가? 잠언16:18<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패망이나 넘어짐의 원인이 교만이라는 말이지요. 멸망은 교만한 마음 때문에 생긴다는 말이지요. 이런 멸망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떤 삶의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 고전10:12<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신앙생활하시는 분들은 늘 마음이 교만해 질까를 경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교만이란 무엇일까?

      *.학벌.가문.힘과권세 있다고 우쭐대고 으시대고, 잘난체 하고 남을 무시하고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것을 교만이라고 부르지요이런 교만한 마음과 행동은 어디서 올까? 남과 비교해 보면서 생기게 되지요. 자신의 실제보다 더 자신을 부풀리면서부터 교만은 시작되지요:개구리 비유,낙타눈의 비유, 딱다구리의 비유.

      *교만은 어리석음입니다. 어리석은 자가 교만한 자입니다. 14:1<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여기서 어리석음은 나발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나발이라는 단어는 어리석음으로 번역을 하는데  영어로 foolish, stupid라는 의미가 아니라 무신론이나 불신앙인, 즉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곧 교만한 사람을 가리키지요. 하나님을 그 마음 가운데 두기를 거부할 때에 교만이 시작됩니다. 1:28<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 버려 두사~> 하나님이 없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실종되면 무엇이 자리를 잡습니까? 우리 인간이 자리를 잡게 되겠지요.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대신에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내자고 하면서 성과 대를 하늘로 인간이 쌓아 올려 갔지요.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의 마음에서 사라지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1:28-31<~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마음에 하나님이 사라지면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의식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소련의 문호 솔제니친은 스탈린 시절의 피비린내 나는 숙청 사건을 눈으로 목도한 사람입니다. 스탈린은 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사람들을 가차 없이 죽이기도 하고 시베리아로 유배 보내기도 했습니다. 죽은 사람이 수백만에 이르렀지요. 솔제니친은 소련이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한탄하면서 스스로 이렇게 대답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소련이 제정 러시아에서 공산 혁명을 하면서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도 바로 이런 시각으로 교만을 정의했습니다. 확신과 신뢰를 하나님께 두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둡니까? 인간에 두는 것을 교만이라고 그럽니다.

2장과 3장은 유다와 예루살렘을 이사야가 책망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요. 그 책망의 중심은 예루살렘의 교만입니다. 2:22<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하나님께 궁국적인 신뢰와 확신을 두고 살아야 하는 신의 백성이 인간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유다의 어리석음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일뿐이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어리석은 백성들-영적인 어리석음이지요. 세상적으로는 영리하고 계산이 빠른 사람들이지요. 강대국 틈에 끼여서 나라를 유지하기 위하여 취해야 하는 것이 바로 경제나 군사력에 있어서 막강한 이방 나라 사람들과 언약을 맺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요. 자신의 안전 보장이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이웃의 강한 나라로부터 오는 것으로 생각했지요. 하나님은 눈에 안 보이고 이웃 나라의 군사력과 경제력은 눈에 보이지요. 내세울 만한 것, 자랑할 만한 것, 뽐낼 만한 것들 이런 것들이 모두 안전을 보장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이것들은 모두 인간적인 안전 장치입니다. 이런 인간적인 안전 장치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여기에다가 신뢰를 둔다면 하나님이 그런 안전 장치가 아니다하면 그냥 우리의 안전은 날아 가는 겁니다. 이런 인간적인 안전장치를 다른 말로 하면 무엇이라고 할까요? 우상숭배라고 부르지요. 영적으로부면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지요. 이것을 현대적인 용어로 바꾸면 우리는 금과 은을 믿습니다. 우리는 총과 미사일을 믿습니다. 한 나라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그 나라를 세상에 보이는 지표입니까? 교회는 예수 한 분 만을 신뢰하는데, 그 신뢰의 축을 세상으로 옮겨서는 안됩니다. 교회가 땅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한 분 주님만 든든하게 의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교회가 주님 한 분만 신뢰하고 의지하고 있을 때에는 세상이 교회를 어찌 할 수 없습니다.

/14:12-20<  >이 본문은 타락한 천사의 정체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본문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 본문에서 계명성을 타락한 천사, 루시퍼로 해석을 하지요. 새벽별, 즉 계명성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문맥을 보면 확연히 드러나지요14:4절에에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요. 새벽별, 계명성은 누구를 의인화 했습니까? 당연히 바벨론 왕이지요. 바벨론 왕의 교만을 책망하는 단락이지요. 바벨론 왕의 교만이 어떤 정도입니까? 14<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지극히 높은 이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자신을 놓으려는 바벨론 왕의 교만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만에 대한 정죄가 무엇입니까? 15<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스올=음부, 무덤이라고 번역이 되기도 하지요. 죽음이후의 지하 세계를 가리킵니다. 구약 시대에는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땅 밑 지하 세계로 들어간다고 생각을 하였지요바벨론 왕은 자신의 교만 때문에 어떤 파국을 맞습니까? 스올 가운데 들어가는데, 그 스올 가운데서도 가장 깊은 맨 밑바닥에 떨어지는 심판을 당한다는 말이지요. 교만이 무엇이라고요? 피조물 되는 인생이 창조주인 하나님처럼 되려는 것을 말한다. 자신을 창조주 하나님의 위치에 놓고 세상 역사의 주권자가 되는 것 처럼 행동하는 것이 교만이지요. 이런 교만은 우리의 뇌리에는 뿌리 깊히 박혀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도 그러했지요.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에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말을 하지요. 이 말을 하와가 수용했지요. 하나님에게 예속되지 말고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서 자율적인 존재로도 얼마든지 인간 답게 잘 살아 갈 수 있다는 말이 교만이지요. 인간의 참된 행복은 하나님 안에서 발견됩니다하나님을 떠나서 독립하는 순간부터 인간의 삶은 가시밭길 인생이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독립하여서 자율적인 존재로 사는 것이 쿨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우리 인생에게는 쥐약이나 다름 없습니다교만은 멸망에 이르는 병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교만은 육신적인 죽음과 그리고 그 후에 영원한 지옥 형벌에 이르는 병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신약 성경에서 비록 비유이기는 하지만 우리 주님이 가르치신 비유에서도 이런 사상을 볼 수가 있습니다 15장에 기록되어 있는 탕자의 비유에서 도 탕자의 교만을 볼 수 있습니다. 탕자가 유산을 미리 당겨 받아서 아버지의 품을 떠나지요. 아버지에게서 독립하여서 자율적인 존재가 되어서 아버지의 간섭을 배제한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내 삶에서 하나님을 밀어 내 버리는 것이 교만입니다. 탕자는 개인적인 교만이지만, 집단적인 교만도 있습니다. 사회 전체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경우가 그것입니다. 11장의 바벨탑 사건은 집단적 탕자 이야기 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교만이 아니라 집단 전체에 나타난 교만입니다. 하늘에 닿는 탑을 건설하면서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변하자 하였더니> 하나님의 이름을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름을 내겠다. 우리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고,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이름을 지우겠다는 뜻이지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두 번의 꿈을 꿉니다. 처음 꿈은 다니엘 2장에 기록이 되어 있지요처음 꿈은 하나의 큰 신상에 대한 꿈입니다. 그 큰 신상은 머리는 순금이고, 가슴과 팔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구리,청동)이고, 종아리는 쇠고, 발은 반토 반철로 된 신상이었지요. 그런데 사람의 손으로 되지 않은 큰 돌이 이 신 상의 발을 쳐서 부스러 뜨렸고, 그러자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서 사라져 버렸고, 그 신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고 온 세계에 가득차게 되었다는 꿈을 느부갓네살이 꾸지요두 번째 느부갓네살이 꾼 꿈은 다니엘 4장에 기록이 되어 있지요. 그 꿈은 하늘에까지 닿은 우주적 나무에 대한 꿈입니다. 4:10<내가 침상에서 나의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이 이러하니라 내가 본즉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높이가 높더라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으니 그 모양이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이 그 그늘에 있으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고 육체를 가진 모든 것이 거기에서 먹을 것을 얻더라> 큰 나무 환상인데, 큰 나무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가리킵니다. 느부갓네살은 이런 바벨론 제국을 건설한 것은 내 힘과 능력으로 만들었다 하면서 교만하게 말했습니다. 이 교만 때문에 느부갓네살 왕은 7년간 미치갱이가 되지요. 정신 이상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왕위에서 7년간 쫓겨 났고, 소처럼 풀을 먹었고,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았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은 형벌을 7년간 받았다고 성경은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7년간의 형벌을 지나는 동안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무엇을 깨닫습니까? 하나는 단4:37절에 디록되어 있는데도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다른 하나는 반복되어 나타나는 구절입니다. <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느부갓네살은 바벨론 제국을 만든 것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되어진 것으로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내 뜻대로 누구에게 든지 줄 수 있는 일임을 알게 할려고 느부갓네살을 7년간 미치갱이가 되게 했습니다.  /교만하면 안되겠지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우리들이 교만하게 되면 하나님이 징계의 채찍을 대시지요. 교만한 마음을 꺽고 겸손한 마음이 자리할 때까지 혹독한 시련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시련이 있어야 비로소 교만한 마음이 꺽이게 되기 때문입니다느부갓네살에게는 그 기간이 7년간의 기간이었습니다. 그래도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을 죽이지는 않했지요.       /교만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징계로 죽인 사람도 있습니다. 구약 성경 다니엘 5장에는 느부갓네살 임금의 뒤를 이었던 벨사살 왕에 대한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5:22-23절에 의할 것 같으면 벨사살 임금에 대한 다니엘의 책망이 기록되어 있지요<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알고도 아직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자신을 하늘의 주재보다 높이며 그의 성전 그릇을 왕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은구리 쇠와 나무 돌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신지라> 벨사살 왕의 교만을 책망했습니다술파티를 벌리던 그 날 밤에 왕궁 맞은 편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자가 나타났고, 그 날 밤에 메데와 파사 연합군의 침입으로 벨사살 임금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30절에는 이렇게 보도해 주고 있습니다<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 이 죽임을 당하였고벨사살 왕의 징계는 죽음이었습니다.   / 우리는 신약 시대에도 교만 때문에 죽음을 맞았던 인물을 알고 있습니다. 12:20-23절에 기록되어 있지요. 누구입니까? 헤롯임금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핍박한 그 헤롯이 아니라 대 헤롯의 손자인 아그립바 1세입니다. 아그립바 왕이 백성들에게 연설했을 때에 백성들이 그를 칭송하면서 이것은 신의 소리이지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는 아첨의 소리를 내게 되지요. 그가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자 급사하게 되었음을 사도행전은 보도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두가지의 삶의 방식이 놓여 있습니다. 겸손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교만하게 살 것인가? 이 두 가지의 삶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내가 누구와 함께 인생 길을 걷는가에 달려 있습니다교만한 삶의 방식은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고 사는 삶의 방식입니다. 지혜를 찾고, 힘과 부를 추구하는 삶의 스타일이지요. 이런 삶의 스타일은 옛 시대의 사람들도 추구했었고, 21세기의 현대인들도 추구하고 있는 삶의 스타일이지요. 고대 사회에서는 지혜와 힘과 부를 숭상했습니다.이것들이 있어야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지요. 옛 시대만 그렇던가요. 오늘 우리들의 시대에도 마찬 가지입니다. 현대인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돈,,평판입니다. 예레마야는 이런 삼중적인 세력에 대하여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 삼중적인 세력에 사로잡히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차단됩니다. 9:23-24<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겸손한 자의 삶의 스타일은 미6:8절에 기록되어 있지요<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겸손하게 살면 무슨 결과가 삶에 찾아 오는가? / 4:6<~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벧전5:5-6<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한번 더 생각 봅시다/내가 없어도 하나님은 구원사를 이루신다. 우주.세상.직장.교회에서 내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는 생각을 버리자. 내가 일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때가 되면 재림 나팔을 부신다. 내가 일하지 않으면 재림 나팔이 지연되는 것 같은 착각 속에 살아서는 안된다. 내가 없으면 안된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결과는 있을 수 있으나 그 결과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 그 결과물에는 주님이 서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 자기 만족만이 있을 뿐 하나님 나라에 도움이 안된다. 교회 일 처리로 교회일은 돌아가게 할 수 있어도 하나님의 나라에는 전혀 도움이 안된다.이것이 교만이다. 주님이 내게 맡기신 일을 다 한 후에도 어떻게 말하라고 하셨는가? 17:10<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영적인 권위이신 우리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앞에 무릎을 꿇자 국가의 정치 지도자들과 교회의 연적 권위자들 앞에 순복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 주위에 있는 형제 자매로부터 우리의 귀를 열어 놓고 이웃으로부터 배워나가야 한다. 이것이 겸손이다그리스도인들이 겸손을 잃으면 가진 모든 것을 잃어 버린다해도 과언이 아니다구약 잠언 3:6<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 말씀과 맥을 같이 하는 신약의 말씀은 골 3:17절 말씀<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전의진목사

2015.01.12 13:25:37

01/09/15 금요 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5/01091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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