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64     

금요기도회 :11/14/2014

대표기도: <선교부>

찬송가: 188(494), 194(260)

 

1. 예수의 십자가로 인한 속죄는 단번에 영원까지이다. 우리 주님은 단 한번으로 속죄의 효력은 영원까지 지속되는 속죄를 이루셨다.

*9: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0:14/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구약의 제사는 동물 제사를 드렸습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소나 양을 끌고 성소를 찾아가서 피를 흘리게 해서 죄를 속함 받았습니다. 이런 구약의 제사는 반복적으로 계속적으로 소와 양을 잡어서 드렸습니다. 소나 양이 많이 피흘리면서 반복해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로 인한 속제는 반복될 필요가 없습니다. 단 한번의 십자가로 영원한 속죄가 일어났습니다. 그 효력은 영원까지 이르게 됩니다. 예수는 반복해서 십자가에서 죽을 필요가 없다. 2천년 전에 흘렸던 그 피는 지금도 효험이 있습니다.

 

2.1:14<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 당신은 죄사함을 받았는가? 죄사함 / τὴν ἄφεσιν τῶν ἁμαρτιῶν /(1:7/  τὴν ἄφεσιν τῶν παραπτωμάτων) 아페시스는 죄사함, 용서,해방을 의미한다./어떤 죄를 의미하는가? 내가 일생 동안 지은 모든 죄로부터 용서를 받고, 그 죄로부터 해방 되는 것을 의미한다. 죄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 내가 지었던 죄가 더 이상 나를 주관하지 못하는 것을 죄로부터 해방, 혹은 죄사함이라고 부르지요. 죄사함을 다음 세상에 가서 누리는가? 아니다. 죄사함, 해방은 지금 이 땅 위에서 누리는 것이다. 죄사함을 얻었다로 되어 있어서 과거 시제로 번역이 되어 있지만 그릭은 현재 시제이다. 그릭에서 현재는 상태의 계속을 가리키지요. 내가 어떤 조치를 취할 때에 죄사함,즉 죄로부터 해방이 되는가? '그 아들 안에서얻는다는 오늘 본문에 주의를 기울이면 그 아들 안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 안에서이다.  그릭으로는 엔 크리스토’-이것은 바울의 중요한 사상이다. 내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예수 안으로 들어가면 죄사함이 일어난다. 죄의 억압이 풀리고, 죄의 권세가 사라진다. 어떤 죄를 사함 받는가? 죄에는 원죄와 자범죄가 있다. 원죄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우리는 하나님과 분리된 채로 태어 났다.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는 죄를 지었을 때에 우리도 아담의 옆구리에 붙어서 함께 죄를 지었다(이것을 대표 단수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분리 되었다. 바로 아담이 지었던 죄 때문에 말입니다. 이 죄를 원죄라고 부르지요.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영이 분리된 채로 태어 났기에 엡 2:1절에는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다라는 말로 표현했지요.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분리된 채로 태어 났기에 우리는 육신의 죽음, 생물학적 죽음을 맛보는 것이지요. 이런 원죄는 단 한번 고백하면 죄사함을 받습니다. 생명이신 우리 주님 예수를 우리의 마음에 모시기만 하면 그 원죄는 사함 받고 사라지게 되지요. 죽었던 우리의 영혼이 다시 살게 되지요. 그렇게 다시 우리의 영혼이 살아 났지만 매일 매일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지 못하고 죄악을 범하지요. 이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나요? 자범죄! 이렇게 생각으로 입술로 손과 발로 죄를 짓는데, 이런 죄는 어떻게 사하여 지나요? 예수 안에 있으면 그냥 없어지나요? 아니지요. 그런 자범죄는 내가 죄를 지었음을 인식하고 우리 주님께 자백할 때에 죄사함을 받습니다. 요일1:9절이 대표적 구절이다: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  내가 짓는 죄악 하나 하나를 통하여 어두움의 영들이 내 삶을 지배하게 되지요. 이것을 죄가 나를 주관한다(6:14-죄가 너희를 주장한다, 주관한다οὐ κυριεύσει,  주인 노릇을 한다는 의미)라는 표현을 사용하지요. 내가 과거에 지은 죄가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그런 상태에서 나의 잠재 의식 속에 남아 있어서 권세를 떨치지요. 내가 그 죄의 억압에서 벗어 나기 위하여서는 내 속에 아직 갈무리 되어 있는 죄가 무엇인지를 알고 다 토설해 놓으면 놓을수록 나는 죄로부터 해방되어서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되겠지요. 죽음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이고, 죽음이 있은 곳에 쇠파리가 꼬입니다. 내 속에 내가 인식하고 있지 못하지만 남아 있는 죄악을 어두움의 영이 사용해서 내 삶을 억압하고자 합니다. 자유하기를 원합니까? 이 시간 성령께서 내 안에 있는 아직 처리 되지 않는 죄악이 무엇인지를 보여 달라고 하시고, 그것을 인식하고 자백하므로 사탄의 교두보가 되는 죄악을 씻어 버립시다. 그러면 세상 가운데 살지만 어느 것에도 제약을 받지 않는 참 자유인으로 한 세상 살아 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내 죄를 사했다는 죄 용서가 있기 전에 나는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내가 회개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하신 일이 있다. 그게 무엇일까? 나님의 용납! 하나님의 나를 받으심이 먼저 있었다. 냄새나고 깨어지고 부서진 그 모습 그대로 나를 용납하시고 받으시는 일이 먼저 있었다. 모든 죄 용서 이전에 바로 이런 우리 하나님의 넓은 마음이 있었다. 지금도 죄에 빠져서 헤메고 있는 나를 향하여 두 팔을 펴고 나를 영접하실 준비를 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이런 용납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살 수 있게 되었다. 55:7<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사람들이 왜 지옥에 갈까?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아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고집 스럽게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죄의 낙을 즐기면서 죄에서 빠져 나올 시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지옥 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은혜와 용서를 거절하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거절하지 말자! 마음이 죄로 인하여 굳어지면 질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게 된다. /탕자의 비유-15-탕자가 허랑방탕한 생활을 정리하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 갔을 때에 아버지의 행동은? 멀리서 아들이 거지 꼴로 돌아 오는 것을 보고서 무슨 일을 했는가? 괘씸한 놈 하면서 하인들을 시켜서 집문을 꼭꼭 닫아 걸었나요? 아니지요. 탕자가 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아버지는 무슨 일을 했나?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 이제나 저제나 돌아 오려나 하면서 눈빠지게 기다렸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다. 멀리서 동구 밖에 거지 꼴로 나타난 아들을 보자 아버지는 아들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어떤 행동을 했는가? 등짝을 한 대 갈겨주었나? ‘야 이놈아 너 어째 그 모양이야. 돈은 어디다 다 써 버렸나 야 꼴 좋다하면서 회개하라라고 그랬을까요? 아니지요. 거지 중에 상거지의 모습으로 나타난 아들의 몰골을 보고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측은히 여겼다/ ἐσπλαγχνίσθη스플랑크니조마이! 불쌍히 여겼다는 의미이다. 동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에게 주어져야 하는 모든 것을 내 주었을 때에, 즉 실제적인 구원을 이루어 주었을 때에 쓰는 동사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아들을 영접했고, 그 다음에 했던 일은? 제일 좋은 옷을 입혔고, 제일 좋은 옷는 겉옷을 가리킵니다. 신분을 나타내지요. 또 무엇을 했나요?손에 가락지를 끼우라. 신분 회복을 가리키지요. 또 무엇을 했나요? 발에 신을 신기라 모두 신분에 합당한 지위를 갖추게 했습니다이것이 어떤 신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더러운 몰골로 돌아 왔다면 무슨 일을 먼저해야 합니까? 목욕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돼지 우리에서 나왔다면 얼마나 냄새가 났겠습니까? 목욕이 무엇입니까? 죄 씻음 즉 죄사함이 아닙니까? 그러나 아버지에게는 아들에게서 나는 더러운 냄새에 개의치 않았다. 그저 죽었다고 생각하던 아들이 돌아 온 것이 나무나 기뻤다. 그래서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았지요이것을 무엇이라고 부르지요. 용납! 하나님의 용납이 회개와 죄씻음, 죄사함보다 선행합니다. 하나님의 용납이 없었다면 죄용서도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은 모두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받았습니까? 용납을 받았다. 할렐루야! / 누가복음 19장의 사개오 회심에서도 그런 하나님의 용납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뽕나무 위에 올라가 앉아 있는 삭개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나요? 이 놈아 회개하라. 니가 어떻게 세리장까지 되어서 나라와 민족의 반역자로 살아야 겠느냐 네 죄를 알렸다. 살고 싶으면 회개하라고 말했나요? 아니지요.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시지요.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삭개오야 너 정말 외롭지. 돈은 많이 모았지만 너와 함께 해 줄 사람이 없지. 내가 너의 친구가 되어주마! 이 소리 아닙니까? 이러자 삭개오의 마음이 열려서 회개하게 되지요. 어떤 회개?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 기금으로 내어 놓겠고,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았다면 4배나 갚겠다는 회개가 일어나게 되었지요. 무엇이 먼저입니까? 용납입니다. 죄인 중에 죄인인 삭개오, 그를 우리 주님이 용납하심으로써 삭개오의 회개를 일으켰습니다./ 우리 주님이 오늘 우리들은 어떻게 다루실까? 늘 죄 짓는데는 선수들인 우리들일지라도 우리 주님은 늘 우리를 용납하십니다.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우리 주님이 나를 받아 주신다는 확신 말입니다. 이런 확신 가지고 있나? 이것이 믿음이다. 용납하시기에 우리들은 힘써 회개하면 죄사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3:1<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아무리 큰 죄를 지었을지라도 우리 하나님이 용서하지 못할 죄가 없다. 왜 용납하시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기 때문이다./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들을 용납하시고 받았다면 우리는 우리의 이웃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3:13<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5:7<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나와 다른 모습으로 살아 가는 지체들을 서로 용납하여서 받아 주어야 한다.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싸움과 다툼이 일어난다. 교회는 용납하는 곳이다. 교회는 죄인들의 모임이다. 어떤 죄를 지었을지라도 교회는 그런 죄인들이 용납되는 곳이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을지라도 회개하면 용납이 되는 곳이 교회이고, 아무리 작은 죄를 지었을지라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용납되지 않는 곳이 교회다. 나와 다르다고 하여서 배척해서는 안된다. 나와 다른 기준으로 삶을 산다고 하여서 백안시 해서는 안되고 서로 용납하기를 바랍니다.  

*속량이 무엇일까? 영어 번역은 redemption! 개역 성경은 구속이라고 번역했다. 이 헬라어 단어는/ ἐξηγόρασεν /이다. 이 단어의 일차적인 의미는 속전을 받고 자유롭게 함을 뜻하는데, 곧 해방되는 것을 말한다. 속전이란 돈을 말한다. 돈을 받고 얽매어 있던 사람을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예 신분의 사람이 시장에 경매로 나왔습니다. 어떤 부호가 그를 불쌍히 여겨서 돈을 주고 사서 자유민으로 풀어 주었습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요? 그가 속량되었다! 그가 자유롭게 되었다! 그가 해방 되었다! 라고 이야기 하지요. 죄사함과 다른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죄사함에 대한 하나의 다른 이해일 뿐입니다. 어떤 이해? 시장 바닥이라는 삶의 자리에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하지요. 우리들이 죄의 종으로 묶여 있었는데, 우리 주님이 값을 치루시고 우리를 사셨지요. 그 값이 무엇이지요.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핏값입니다. 이 핏 값을 주시고 우리를 죄에서 풀어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을 속량했다. 구속했다라는 말을 쓰지요. 시장 상인의 눈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니 십자가가 속량이라고 이해 된다는 말이지요. 그 이상이 아닙니다. 죄사함 이상에 있는 어떤 이해가 아닙니다.  


전의진목사

2014.11.17 16:24:59

11/14/2014 금요 기되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4/111414.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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