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62     

금요기도회 :10/24/2014

대표기도:

찬송가:151( 162), 545( 493)

 

1.             당신은 행복한가? 무엇 때문에? 예수 때문에! 예수 때문에 웃을 수가 있고 또한  예수 때문에 울기도 한다. 예수는 나의 모든 것! 예수가 나의 전부가 될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쟁이가 되었을 때에 비로소 인생의 참된 기쁨과 만족을 누릴 수 있다. 예수 쟁이! 기술을 가진 사람을 장이라고 부르고 어떤 속성을 가진 사람을 쟁이라고 부르지요. 겁쟁이, 고집쟁이,멋쟁이 etc. 반면에 양복장이,옹기장이,미장이etc.  대장장이 아저씨네 아들이 정말 개구쟁이야! 우리는 예수쟁이! 사람들이 나를 보고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나 행동에서 단번에 알아 볼 수 있어야 예수쟁이다. 조화에는 향기가 없습니다. 생화만이 향기를 날립니다. 예수쟁이들은 예수 향기 날리는 사람입니다.

 

2.             종교개혁가들의 4 slogan중의 하나Sola Fide! 오직 믿음만으로! 4:4-5<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일한 것이 없이도=일을 아니할지라도!-하나님께 내 놓을 만한 업적과 공로가 없어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길이 제시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해 주십니다. 이것을 신하적 용어로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칭의라고 부르지요. 4자 성어로 말한다면 이신칭의 또는 이신득구라는 말로 표현하지요-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말이지요./ 4절의 일하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구원 얻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열심히 공로나 업적을 쌓아 가는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회사에 입사하여서 열심히 일합니다. 일하면 일하는 대가가 월급, salary입니다. 그것은 내가 노동력을 판 댓가이지요. 그것은 사장이 나를 예뻐하기 때문에 공짜로 나에게 주는 은혜가 아니지요. 보수라고 부르는 댓가이지요. 열심히 일하면 더 많이 월급을 받고 적게 일하면 월급을 적게 받지요. 5절의 일을 아니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업적이라든지, 선행이라든지, 공로라든지 이런 것이 없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 구절의 핵심은 업적이 없다고 할지라도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를 의로 여기신다는 말이지요. /왜 우리에게는 이 말이 그렇게 마음에 와닿지 않을까? 너무나 공로주의에 중독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공로라는 안경을 끼고서 세상을 바라보고 공로라는 안경을 끼고서 영적 세계를 바라 보기 때문입니다. 공로라는 안경을 끼고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공로라는 틀을 가지고 돌아 가는 것을 보지요. 그러니 영적인 세계도 그런 안경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길은 선행을 쌓아야하고 구원 얻는 길은 교회 봉사 열심히 하여서 종교적인 업적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지요만약 이 사실이 진리라면 우리는 신앙 생활하면서 참된 자유나 기쁨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매 순간마다 긴장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얻은 구원을 한 순간의 불찰로 놓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 18장의 우리 주님 예수의 비유-바리새인과 세리의 비교 대조-누가 의롭다함을 얻었습니까? 세리가 아니던가요? 세리는 종교적인 업적이 없습니다. /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상은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말씀이다. 종교 개혁가들이 만들어 낸 사상이 아니고 성경에 있는 것을 발견했을 뿐이다. 우리도 눈 밝은 자가 되면 성경 이곳 저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들을 찾아 내어서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면 얼마나 우리의 영적인 삶이 풍성해 질 것인가? 현대의 물리학, 화학, 생명 공학등등의 학문이 현대의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것을 만들어 놓지 않았던가? 이 모든 물리.화학 법칙은 하나님이 자연 세계 안에 감추어 놓았던 것인데 인지의 발달로 발견했을 뿐이다.15:6<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아브라함은 무엇을 믿었나? 아직 후손이 없는데, 하늘의 별처럼 후손의 번성을 약속하셨다. 4:23-25<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우리도 믿었기에 의롭게 되었다. 예수를 믿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에 대한 믿음인가? 우리의 죄값을 치루기 위하여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예수의 공로와 업적을 믿을 때에 우리의 죄가 변제된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않는 자를 하나님은 의롭다고 선포하십니다.’-이것은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3.             지난 시간에는 죄를 지으면 죽는다고 말했는데, 오늘은 죄를 지으면 영혼이 더러워진다는 영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15:17-20<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당시 유대인들의 생각? 장로들의 유전에 의하여 씻지 않는 손으로 음식을 먹으면 사람이 더러워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일종의 결벽증 비슷하다. 오늘 우리들은 손을 씻고 음식을 먹는데 이것은 위생상 그러합니다. 당시는 의례적으로(의식적으로) 손을 씻지 않고 먹으면 더럽혀 진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우리의 영혼을 더럽히는가? 씻지 않는 손이 아니라, 내가 짓는 죄악이 나를(내 영혼을) 더럽힌다. 이것은 영적인 사고의 전환이라고 말할 수가 있지요. 우리들이 죄를 짓고 나면 마음이 찝찝해 지는데 찝찝해 진다는 것은 마음이 더럽혀졌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들이 짓는 모든 죄가 우리의 영혼을 더럽힌다. 무엇이 우리의 영혼의 스테인을 씻어서 깨끗하게 하는가? 예수의 피가 우리의 영혼의 더러움을 씻어 준다.  찬송가 190(258)-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예수의 피는 샘물과 같다. 그 샘에 씻는 자는 정결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의 5번째 기도 제목? 죄 짓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정결한 교회 되게 하소서!

 

4.             또 다른 영적인 법칙/9:27<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육신적인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다고요?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가 심판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자요 영원한 지옥에 들어갈 자를 갈라 놓습니다. 어제 장례 예배, Wake에 참석했었습니다. 변은석 안수집사, 변수옥 권사의 부친상입니다. 변기수 집사님, 향년 87세였지요. 90까지 채우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누가 토를 달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호상이었습니다. 돌아 가신 분의 얼굴이 그렇게 밝고 평안했습니다. 오래 전에 암 수술을 했는데 잘 극복하셨지요. 그리고 한번은 바이러스 감염으로 돌아가실 뻔 했던 적도 있었지요. 그 바이러스는 악종 바이러스였지요. 하루 이틀만 늦게 병원에 갔어도 생명이 위태했을 텐데 그 때에도 일찍 가족들이 발견하여서 항생제 투여로 바이러스를 정복하고 살아 났었지요. 그런 우여곡절을 다 겪으셨지만 관 속에 누워 있는 모습이 아주 평안했습니다. 병 때문에 돌아 가신 얼굴이 아니라 기운이 모두 빠져 나가서 기운이 진하여서 돌아 갔습니다. 호상이라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 관 속에 누이져 있는 변기수 집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죽음이후에 나는 어떻게 되는가? 나는 어떤 운명에 처하여 질까? 나라는 존재는 죽음 후에도 존속하게 될까? 시신을 보면 죽음 후에 세계가 그려지던가요? 안 그려지지요. 시신은 말이 없고 반응이 없기 때문에 죽음은 모든 것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되어 지지 않던가요. 내가 나의 죽음과 함께 나의 존재는 멸절하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던가요? 죽음으로 인하여 나라는 존재가 멸절하는 것 처럼 느껴질지라도 인간은 멸절되지 않습니다. 존재의 양식이 달라질 뿐 여전히 죽음 이후에도 나라는 존재는 존속합니다. 단지 육신이 없을 뿐 나는 실존으로 영적인 세계에서 존속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이 만드신 법입니다. 모든 이 땅에 태어난 인생들은 죽음을 경험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존재가 멸절하지 않습니다. 어떤 학자는 예수 믿는 사람은 영생하지만, 예수 믿지 않는 불신자는 죽음 후에는 멸절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받으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가 안 태어난 상태로 그냥 없어져 버린다고 주장하는데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주장을 폅니다. 한 번 태어난 인생은 결코 멸절하지 않습니다. 만약 악인들이 멸절된다면 그런 자비가 어디 있겠습니까? 악인이 그 지은 죄와 악 때문에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받는 것 보다는 그의 존재가 없던 상태로 돌아 가는 것이 훨씬 그 사람에게는 좋을 것이 아니겠어요. 오늘 본문 말씀은 죽음 후에 무엇이 있다고요. 영원한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죽음을 경험한 후에 들어갈 내세, 영적인 세계는 허상의 세계가 아니라 실상의 세계입니다. 허상과 실상이 잘 이해가 안되지요. 내가 비유로 이야기 하겠습니다. 날마다 우리가 보는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실상일까요 허상일까요. 그것은 허상입니다. 거울이 깨어지면 그 상도 날아가 버리고 없어집니다. 왜냐고요? 실상이 아니고 허상,즉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나무와 자동차와 집들은 무엇입니까? 실상입니다. 하늘과 바다가 보기 싫어서 유리창을 깨뜨린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왜요?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죽음 후에 들어가서 살게 될 세계도 허상이 아니라 실상의 세계입니다. 우리들이 들어가서 살게 될 그 천국과 지옥은 우리들의 상상력과 우리들의 지성이 만들어 내 놓은 세계가 아닙니다. 그 세계는 실상의 세계입니다. 내가 그 세계를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그 세계는 존재해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법입니다. 생자필멸! 살아 있는 것은 죽습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그러하지요. 자연 만물이 다 이 자연의 법칙 아래 놓여 있습니다. 하늘에 달려 있는 별들의 세계도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지요. 온 우주 안에는 생자필멸이라는 우주 법칙이 작용하고 있지요. 인간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모두 반드시 한번 죽습니다. 죽음 후에는 엄연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성서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천국에서 영원한 세월을 보낼지 아니면 지옥에서 고통스러운 영원을 보낼지 말입니다. 오직 두개의 운명 만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천국 지옥의 갈라짐은 오직 예수를 믿었느냐 아니면 안 믿었느냐에 의하여 일어납니다. 불신자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뒷 문의 닫히게 되고 그리고 앞 문이 열리면서 화마,불이 덮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불은 영원히 그와 함께 있을 것이고 영원한 고통을 느끼면서 살아 있게 될 것입니다

 

5.             20:11-15/두 종류의 책이 하늘에 있다:생명책과 행위를 기록한 책들! 생명책은 일종의 한국 상황에서는 호적부와 같지요. 우리 한국 상황에서는 신생아가 태어나면 출생 신고서를 동회에 제출하면 호적부에 등록이 되지요. 사람이 죽으면 사망 신고서를 동회에 제출하면 호적부에서 제거하지요. 호적부에 등록되면서 대한 민국의 국민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도 예수 믿게 되면 우리의 이름이 하늘나라에 있는 생명책에 등재 됨으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지요. 신구약 성경 여러 곳에 생명책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생명책이라는 개념은 모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 가지요. 32:32<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데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명백하게 생명책이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생명책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수 있지요. 또 다른 책이 있지요. 그 책은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책들! 어떤 책들입니까? 생명책에 녹명 되지 못한 이들이 행하였던 일들입니다. 거기에는 악한 일도 있고 선한 일들도 있습니다. 악한 일은 누가봐도 심판을 받아야 하지만, 선한 일들도 심판을 받아야 하는가? 예 선한 일들이라고 일컬어 지는 것들도 그 선한 일들이 하나님을 위한 일들이 아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땅 위에서의 인생들의 모든 행위는 행위록에 다 기록됩니다. 빠지거나 생략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 심판대 위에서 그 책들이 펴지고 그 행위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찍힌 동영상이 play back되겠지요. 나는 잊고 있었지만 그것들이 드러나게 되지요. 생명책에 등재되어 있는 이들도 죄와 악을 행하였지만, 그 모든 죄와 악은 십자가에 흘린 보혈로 씻기어졌기에 모두 지워져 있습니다. 예수 믿는 이들은 행위록을 따라서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미 옯겨져 있습니다5:24<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6.             10:51<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바디메오의 소원? 태어나면서 맹인이었기 때문에 보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습니다. 바디메오는 디메오의 아들입니다. 그는 맹인이었고 거지였지요. 남들의 재정적인 도움이 없이는 결코 살아갈 수가 없는 무능한 사람입니다. 아버지도 맹인이지요. 그가 예수 앞에서 가진 소원이 무엇인가? 눈이 열려서 보통 사람들처럼 세상 만물을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말입니다. 52절에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바디메오의 눈의 시력이 회복되어서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바디메오처럼 우리 주님께 우리도 보기를 원합니다라고 요청해야 겠지요. 우리는 어떤 맹인입니까? 영적인 세계를 볼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영적인 맹인. 영안이 뜨이기를 원한다. 죽음 저 너머의 세계를 우리의 영안으로 볼 수 있게 되면 좋겠지요. 우리의 눈이 띄어지면 보게 되는 것 그것이 무엇을까요? /이사야 6:1-8절에는 이사야의 소명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사야는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보게 되지요. 언제 강력한 유대의 임금인 웃시야 왕이 죽었을 때에 위기를 느끼고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보았던 환상인데 그 환상 속에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소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소명 기사는 세 가지의 환상이 겹쳐져 있습니다. 마치 백색으로 보이는 햇빛을 프리즘을 통과 시키면 7가지의 색깔이 나타나지요:빨주노초파남보빨노파 이 세 가지 색깔이 합쳐지면 백색이 되지요. 이사야의 소명 기사도 분석해 보면 세 가지의 환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환상이 무엇? 높은 이상입니다. 1<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높이 들린 보좌! 높은 이상입니다. 높이 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우리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의 이상이 무엇일까요?깊은 이상입니다. 하나님을 인생들이 보거나 만나게 되면 터져 나오는 소리 말입니다. 5<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뵈었음이로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터져 나오는 소리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베드로도 갈릴리 바다에서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서 고기를 엄청나게 많이 건져 올린 후에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높은 이상을 본 자는 자신의 깊고 깊은 내면 세계를 보게 되지요. 자신의 내면 세계가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 때문에 탄식하지요. 자신의 깊은 의식 세계 속에는 온갖 더러운 쓰러기 더미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서 놀라지요. 하나님 만나기 전에는 이만 하면 됐지 였는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죽어도 마땅하다라고 고백하게 되지요. 죄인임을 고백하자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시지요. 제단의 핀 숯을 집게로 집어서 이사야의 입술이 대고서 태워 버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죄와 악이 사하여졌음을 선언하시지요. 그리고 나서 우리 하나님이 무엇을 세 번째 보여 주십니까? 넓은 이상을 보여 주십니다. 드넓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죄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 세상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8<~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이사야의 유명한 결단이 나옵니다: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는 눈을 들어서 드넓은 세상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넓은 이상입니다. 온 세상은 나의 교구다 하면서 존 웨슬레는 외쳤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런 세계 선교의 이상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높은 이상을 먼저 보아야 하고 그리고 깊은 이상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드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아가서 죄사함의 길을 세상에 전하여야 합니다. 주여 보게 해 주소서!


전의진목사

2014.10.27 19:32:51

10/24/14 금요 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4/102414.mp3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02 금요기도회(03/20/15) [1] 김영호목사 2015-03-23 1156
401 금요기도회(03/13/15) [1] 김영호목사 2015-03-16 1143
400 금요기도회(03/06/2015) [1] 김영호목사 2015-03-09 1162
399 금요기도회(2/27/2015) [1] 김영호목사 2015-03-02 1215
398 금요기도회(02/20/15) [1] 김영호목사 2015-02-23 1313
397 금요기도회(02/13/2015) [1] 김영호목사 2015-02-16 1287
396 금요기도회(02/06/2015) [1] 김영호목사 2015-02-10 1423
395 금요기도회(01/23/15) [1] 김영호목사 2015-01-27 1654
394 금요기도회(01/16/2015) [1] 김영호목사 2015-01-19 1583
393 금요기도회(01/09/2015) [1] 김영호목사 2015-01-12 1689
392 금요 기도회 (1/2/2015) [1] 김영호목사 2015-01-05 1682
391 금요기도회(12/26/2014) [1] 김영호목사 2014-12-29 1830
390 금요기도회(12/19/2014) [1] 김영호목사 2014-12-23 2053
389 금요기도회(12/12/2014) [1] 김영호목사 2014-12-15 1979
388 금요기도회(12/05/2014) [1] 김영호목사 2014-12-08 1952
387 금요기도회(11/28/2014) [1] 김영호목사 2014-12-01 1869
386 금요기도회(11/21/14) [1] 김영호목사 2014-11-24 1981
385 금요기도회(11/14/2014) [1] 김영호목사 2014-11-17 2069
384 금요기도회(10/31/2014) [1] 김영호목사 2014-11-03 2170
» 금요기도회(10/24/2014) [1] 김영호목사 2014-10-27 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