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01

금요기도회 :8/28/2015

대표기도: 대표기도+<선교부>

찬송가: 내 인생 여정 끝내어

 

1.    교회의 배려로 1주간 산호세에서 휴가를 잘 보내고 오늘 새벽에 돌아왔습니다. 여기와 산호세는 3시간 정도 시차가 있지요.  별 것 아니겠지 했는데 3시간의 시차도 별 것입디다. 3시간의 시차는 은근한 시차이지만 여전히 적응하는데도 몇일이나 걸립디다./ 샌프란시스코를 상징하는 금문교를 차로 지나 보았고, 산 위에 올라가서 금문교를 보니 다리가 참 장엄하게 보입디다.  샌프란 시스코 시가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산에도 올라가 보았습니다. 그 산 위에는 바람이 얼마나 거세게 부는지 반팔을 입고 있었는데 추워서 5분도 못 있을 정도였습니다. 시가지를 내려 보니 시가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습디다. 이런 아름다운 도시에 동성애자들이 들끓고 있다니 말입니다.  차를 타고 레인보우, 무지개 깃발이 흩날리는 거리를 자동차로 지나 보았습니다. 그 거리의 이름은 모르겠는데, 여기저기에 무지개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습니다. 동성애를 서포트한다는 표시인데, 무척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깃발이 바람에 흩날렸습니다. 동성애는 결코 자랑스러움이 아니고 그것은 영적인 수치이고 영적인 더러움이고 도덕적인 죄악인데 말입니다. 오히려 그것을 자랑하고 있다니 말입니다. 다른 쪽 거리에는 홈리스 피이플들이 급식을 받기 위하여 긴 줄로 나란히 서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본 샌프란시스코의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은 사라져 없었고, 영적으로 추하고 비루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치 멀리서 숲을 바라 보니 아름다웠는데 숲 안으로 들어오니 아름다움은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샌프란시스코나 산호세를 돌아 다니는 동안 온 몸이 쑤시고 아프고 저려와서 힘이 들었는데, 보스톤 공항에 도착하니 모든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역시 집이 좋구나! 그 지역을 주름잡고 있는 지역의 영들의 영적인 공격 때문에 힘이 들었었습니다. /지역 관광은 그 정도로 했고 켐연장 교회의 담장 넘은 가지들이 싱글들을 포함하여서  8가정 정도 있었습니다. 모두 만나면서 참 좋은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약하고 지쳐 있는 지체들을 위로하고 권면하고 세우는 일을 했습니다. 지난 토요일날에는 최동명 집사 댁에서 산호세와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지체들이 함께 모여서 저녁을 나누고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모두다 교회를 떠나지 않고, 믿음 생활을 잘하고 있었습니다.

 

2.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누구일까를 한번 더 생각해 보았습니다. 산호세 지역은 컴퓨터회사가  많아서 그런지 모텔이 참 많았는데, 보스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비쌌습니다. 그래서 프라이스리인으로 적당한 모텔을 찾아서 오늘은 이 모텔 내일은 저 모텔로 옮겨 다니면서 기거했습니다. 모텔을 옮겨다니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나그네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간이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나그네다. 어떤 나그네? 하늘 본향을 찾아 가는 나그네 말입니다. 길을 떠나서 하늘 문 향하여 한 평생 걸어가는 여행객이라고 말입니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에 주 복음 전하면서 사는 영적인 나그네가 누구라고요?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1절에서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의 신분을 정의해 주었습니다: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그리스도인들이 누구라고요?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자들이다. 나그네 같은 자들이지 나그네는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나그네라는 의식을 가지고 그런 영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 11:13-16절에는 <더 나은 본향>이 하늘에 있었기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땅에 정착하여서 산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에서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늘 본향을 찾아가는 삶을 무슨 삶이라고 부릅니까? 순례자의 삶이라고 부르지요. 우리 모두는 하늘 본향을 찾아가는 나그네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영성이 있다면 오늘 우리는 이 현대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 나그네라는 깨달음이 있다면 그 깨달음으로부터 행동양식이 나와야 합니다.  자신을 영적인 나그네라는 의식을 가진 분들은 <땅의 것> 돈과 권세와 명예와 등등의 세상 것을 영원한 것으로 집안에 쌓아 놓고 살지 않습니다. 보다 영원한 것, 하늘의 것들을 찾아 나서는 삶을 삽니다. 우리도 여행을 떠날 때에 꾸역꾸역 배낭을 꾸리고 머리에 이고 양 손에 들고서 걸어 간다면 어떻게 되나요? 반나절을 못가서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배낭 여행을 갈 때에는 비교적 가벼운 차림으로 가야만 장거리 배낭 여행을 갈 수 있지요. 하늘로 순례의 길을 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세상 것들로 소유물을 가득 채운 삶을 살아간다면 하늘 향해 걸어가다가 얼마 가지 않아서 collapse될 것입니다.

 

3.    성령충만/재충만에 대하여

*성령의 충만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에게 주신 명령이다. 이것은 권면이 아니고 반드시 되어져야 할 명령이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명령은 불신자들에게는 관계 없는(일 없는)명령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아주 중요한 명령이다. 그리스도인이 성령 충만하지 않은 것은 죄다. 하나님이 성령 충만할 것을 명하셨기 때문에 성령충만을 힘쓰지 않는 것은 명령 불복종이다. 예수는 나의 왕, 예수는 나의 주이시기 때문에, Jesus is my king, Jesus is my Lord!

5:16<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은 수동태 명령형입니다: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져라. 현재형이어서 계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되어져라는 말이지요. 술취하지 말라는 명령형도 현재형이어서 계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술을 마셔서 취해 있지 말라는 말이이죠.술 취해 있기 보다는 성령으로 가득 채워져 있으라는 명령이지요. 권면이 아니라 무엇이라고요? 명령입니다. 수동태이기 때문에 나의 의지로 나의 노력으로 성령충만을 얻는 것이 물론 아닙니다. 위에서부터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한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동태로 되어 있지요. 그리스도인이 생활 속에서 짓는 온갖 죄악의 시발점이 어디일까? 성령충만 하지 않음에 있습니다. 성령이 내 심령과 삶에 가득차 있으면 죄를 짓지 않습니다. 성령충만하지 않으니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성령 충만하지 않으니 이웃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온갖 영적인 죄악이든지 도덕적인 죄악이든지 그리스도인이 짓는 모든 죄악의 시발점은 성령충만하지 않음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성령충만을 늘 그리스도인은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한번 충만하면 죽을 때까지 충만한 상태가 지속되는가? 그랬더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부흥회 때나 기도회 때 기도하다가 성령의 충만을 한 번 경험하게 되었다면 그것이 단 몇일 간이라도 지속되던가요? 아니지요. 짧게는 충만한 은혜를 받고 잠을 자고 일어나면 성령충만의 레벨은 낮아져 있지요. 성령충만은 이렇게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그래서 한번 성령충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재충만을 간구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금요기도회에 나왔습니다. 무엇하려고요? 다시금 성령충만을 덧 입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차에는 밧데리가 있습니다. 밧데리를 실수로 켜 놓고 하룻밤을 자고 나오면 시동이 안 걸릴 때가 있지요. 밧데리가 방전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루나 이틀 정도지나면 밧데리는 방전이 되어서 못 쓰게 되지요. 그러나 이 밧데리가 쓸 데 마다 충전이 된다면 4-5년 동안 너끈하게 계속적으로 사용할 수가 있지요. 밧데리에 전기를 충전해 주는 것이 얼터네이트이지요. 올터네이터가 전기를 만들어서 밧데리에 전기를 보내 주어서 충전해 준다면 오랬동안 자동차는 전기 걱정을 안해도 되지요. 충전/재충전!

 

/성령 충만하게 되어서 주의일, 교회 일을 하다가 보면 성령 충만의 레벨이 낮아 지게 됩니다. 충만 레벨이 낮아지게 되면 초초, 불안, 마음이 텅 비어 가고 있다, 허전해 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다시 우리의 마음, 심령에 성령이 가득채워 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망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재 충만하게 되어지는 일이 우리 교회는 어디 입니까? 바로 이곳 금요기도회입니다. 금요 기도회가 우리 교회의 제너레이터입니다. 자동차에서 전기를 생산하여서 밧데리로 보내는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우리 교회는 금요기도회입니다. 금요기도회에서 성령의 재충만을 경험한 성도들이 주일 예배를 온전하게 드릴 수가 있고, 성도를 온전하게 섬길 수가 있고, 여러가지 힘들고 어려운 교회일들을 감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기도 제목 중에서 제일 첫번째 기도 제목이 무엇일까요? 성령으로 충만되게 하옵소서! 어떤 충만? 재 충만! 이전에 경험했던 충만보다 더 큰 재 충만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을 알아가기:체험하기! 언제? 21장 사건:7명의 제자들이 배를 타고 고기 잡이를 했지만 헛수고 였다. 해변 가에 있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는 메시지를 듣스니다. 그래서 그물을 던져써니 고기를 몇마리 잡았나요?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을 때에 해변에 서 계신 분이 주님인 것을 사도 요한이 제일 먼저 알았습니다. 그 제자들이 맨처음 갈릴리 바닷가에서 부름을 받았을 때와 같은 기적을 다시 하게 되었지요.  153마리의 고기 잡음을 통하여 해변가에 서 계시는 분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라는 것을 알았지요.  153마리의 고기 잡는 기적-사건입니다. 시건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배 안에 있던 7명의 제자들은 체험했습니다. 내 삶에도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사건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상식적으로일어날 수가 없는 사건이 일어 났을 때에 어 좋은 것, 어 수지 맞았네로 끝나지 말고, 그 이루어진 사건 속에서 하나님을 보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성도들 속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팔, 불신 세계 속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팔, 성격이 다르다. 우리의 눈이 열려서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불신자들의 삶 속에 역사하는 우리 하나님의 팔은 전후좌우, 좌충 우돌하면서 심판 사역을 행하시나, 예수 믿는 우리들 속에서는 우리 하나님의 팔은 구원의 역사를 행하십니다. 구덩이에 빠진 자를 건지시는 일을 하고, 돌에 걸려 넘어진 자를 일으키시는 사역을 우리 하나님은 펼치신다


전의진목사

2015.08.31 09:00:09

08/28/15 금요 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5/08281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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