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98

금요기도회 :7/31/2015

대표기도:중보기도+ <선교부>

찬송가: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예수가 나의 전부라는 문구.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주께서 나의 전부가 되게 우리를 만드소서!  집에서는 아이들이 엄마에게 엄마는 나의 전부라고 말하면서 엄마의 뒤만을 졸졸 따라다닌다. 그러다가 집 밖을 나가면 어떻게 됩니까? 쇼핑몰에라도 나가면 엄마를 붙들고 따라가던 손을 놓고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가 버립니다. 세상을 모르고 집 안에서 갇혀 살 때에는 엄마가 전부였지만, 세상을 알고 나니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엄마 외에도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거지요. /지금 나의 전부가 무엇일까? 이것을 어떻게 알까? 내 마음이 끌려 가는 곳이 나의 전부가 있는 곳입니다.  내가 제일 많은 시간을 쓰는 곳이 나의 전부입니다. 내가 제일 많이 돈을 쓰는 곳이 나의 전부입니다. 당신이 돈이나 시간을 제일 많이 쓰는 곳이 당신의 전부입니다.  오늘 우리 이렇게 기도합시다:주께서 나의 전부가 되게 우리를 만드소서!

 

17장은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하신 공적인 중보기도이지요. 주님이 땅에 계실 때에 그의 제자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많이 했으리라 생각이 되는데, 그의 제자들을 위한 개인적인 중보기도는 성서에 실려 있지 않습니다. 단하나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중보기도의 내용이 아주 이상합니다.  22:31-32<  > 주께서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얼마 후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하는 그런 일을 벌리는데,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그런 시련의 현장에 빠지지 않도록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막는 기도를 했어야 하지 않은가?  우리 주님은 그럴 능력이 있는데도  그러나 우리 주님은 베드로가 그런 구덩이에 빠져야 함을 기정 사실로 하셨고, 그런 구덩이에 빠질 때에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구덩이에 빠지고 나락에 떨어져도 믿음만은 간직하고 있으면 올라 올 수 있다. 왜 그랬을까? 베드로가 그런 배교의 현장에서 회복되어 올 때에 받았던 은혜를 가지고 수 많은 배교자들을 위로하고 세우게 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셨다./ 병은 아팠다가 나은 자가 가장 큰 위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중보기도는 어떻게 하는가? 무조건 육신적인 눈으로 좋은 것만을 위하여 기도해서는 안된다. 눈 감고 기도하지 말고, 영의 눈을 뜨고 이웃의 가장 필요한 것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갓난 아이를 7 8살짜리 언니가 돌보는 것 보다는 어른이 돌보는 것이 훨씬 더 잘 돌보겠지요. 우리가 성장하면 할수록 그 사람을 위한 중보기도는 달라지게 됩니다. 우리 주님이 보시는 그런 눈으로 우리의 이웃을 위하여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자라나야겠지요. /중보기도 아닌 중보기도가 많다. 중보 기도 형식은 띄고 았는데 내용은 중보기도가 아닌 중보기도가 많다. 무늬만 닮았다.  어떤 자매가 늘 기도하면 멋있는 신랑감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한 번은 중보기도를 해야 한다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감동을 받아서 오늘부터는 중보기도해야 겠다고 결심을 하고 이전에 하던 남편 달라는 기도를 바꾸었습니다. 그녀가 기도하기를 우리 엄마에게 좋은 사위감을 주십시요라고 말입니다. 엎어치나 메어치나 땅에 나 뒹굴어지기는 마찬가지. 무뉘만 바뀌었지요.

 

중보 기도의 유익이 무엇일까? 42:10-17/욥의 상황?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자신의 회복이 더욱 급선무다. 그러나 그가 했던 간구는 그의 친구들을 위한 기도였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בְּהִֽתְפַּֽלְלֹ i.욥의 곤경을 돌이키게 했다=욥의 운명을 회복시켰다. 바꾸어 놓았다אֶת־כָּל־אֲ . ii. 소유의 갑절의 복을 주셨다.  /12-17절까지는 욥이 말년에 누린 복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져 있다./그리스도인들이 이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이유를 발견한다:복의 통로! 내가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했던 이웃이 내가 기도한 대로 복을 받아서 기쁘고, 그들이 받을 조건이 안되어서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 온다면 내 영혼과 삶에 하나님의 복이 넘쳐서 기쁘고~ / 중보기도는 손해 나지 않는 장사다.

 

/10:11-13<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 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 중보기도는 절대 손해 나는 장사가 아니다.  구약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35:13<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그들이 누구인가? 직전 컨텍스트에 의할 것 같으면 원수들입니다. 내 생명을 해하려고 함정을 판 원수들입니다. 그 원수들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했더니, 그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그 원수들이 합당하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지난 주 설교에서 예언자 사무엘의 입에서 나온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더라라는 말씀이 사무엘 3장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사무엘의 입에서 나온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모두 그대로 이루어 졌다는 것은 영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모든 이들에게도 이런 영권이 주어졌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우리 하나님이 예수께 주셨지요. 그 권세를 복음 전파에 사용하기 위하여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 영적 권세외에도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또 다른 권세가 있는데 그것을 인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인권이라고 해서 human right라고 생각하면 안되고, 사람을 움직이는 권세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권세를 말합니다. 비록 내 원수라 할지라도 그 원수의 마음을 돌이키게 해서 나를 돕는 사람으로, 내 편으로 만들어 주는 권세입니다. 느헤미야 1-2장을 읽어 보면 느헤미야가 이 권세를 사용하여서 페르샤 임금인 아닥사스다 왕을 움직였지요. 느헤미야가 누구이지요. 페르샤 왕의 측근인 술관원장입니다. 느헤미야는 그의 조부가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 잡혀 왔었지요. 요즈음 말로 하면 이민 3세대입니다. 바벨론에 붙잡혀 온 제 3세대가 벌써 정계에 진출하여서 왕의 측근이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느혜미야에게 안 좋은 소식이 하나 들려 왔습니다. 예루살렘이 망한지 14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예루살렘 성벽은 재건 되지 않았고 폐허가 된 상태로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지요. 그래서 느헤미야가 기도했습니다. 4달 동안 그것을 마음에 품고 기도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페르샤 임금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페르샤 임금의 마음을 움직여서 예루살렘 성을 재건해도 좋다는 허락을 말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페르샤 임금에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 페르샤 임금 아닥사스다 왕이 즉위 초에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을 조서를 내려서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20년이 지난 지금에 다시 거론하는 일은 임금을 거슬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역린! 그래서 느헤미야가 무엇을 했습니까? 기도했지요.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을 움직여 달라고 말입니다. 왕이 마침 그 때에 수산 궁을 비우고 있었기 때문에 왕이 수산 궁에 돌아 올 때까지, 4개월 동안을 한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느헤미야가 기도하지요. 1:11<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조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등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마침내 왕이 수산 궁에 돌아 왔습니다. 왕궁에 잔치가 있던날 아닥사스다왕이 느헤미야에게 전격적으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허락하게 되었지요.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실로 다가 왔습니다. 2:5-6<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에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그 때에 왕후도 왕 곁에 앉아 있었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 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무엇이 이렇게 완고한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였습니까? 느헤미야인가요? 아니지요. 그러면 누가? 우리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이라고요? 인권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권세 말입니다. 느헤미야가 썻던 방법은 무엇입니까? 기도! 기도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라!

 

/내힘과 내 능력과 내 지혜와 내 설득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려고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던가요? 참담한 실패를 경험하지요.  우리 교회 자매들 남편이 맘에 안드는 버릇이 있어서 눈에 거슬리면 어떻게 하든가요? 내가 저 인간 안 바꾸어 놓으면 인간이 아니다라고 다짐하면서 옆에서 조르기를 시작하지요. 이것 바꾸라. 저것 고치라하면서 인간 개조를 시작하지요. 술 끊어라, 담배 끊어라, 아침에 늦잠 자지 말고 일찍 일어나라,교회는 빠지지 말고 솔선수범하여서 참석하라  등등을 주문하면서 내가 저 인간을 못 바꾸어 놓으면 인간이 아니다라고 다짐하면서 하지만 남편이 바뀌어 가던가요? 어긋장만 더 나지요.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좋은 방법은 오늘 느헤미야가 썻던 방법입니다:기도로 사람을 움직여라!  자매들, 내가 원하는 바를 남편에게 직접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남편에게 이야기하도록 만들어 주면 됩니다. 그 방법이 무엇이라고요? 하나님께 남편이 고쳐야 하는 점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움직이면 남편이 바뀌고 아내가 바뀝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우리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이것을 인권이라고 부르지요.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하여 중보기도를 요청했지요 딤전2:1-2<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물론 투표가 중요하기에 열심히 투표함으로 정치에 참여해야겠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투표보다 더욱 강력한 방법으로 정치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무엇으로요? 기도로 말입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정치가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최선입니다. 기도로 사람을 움직여라!

 

21:15-17/나락에 떨어졌던 베드로의 회복하여서 그에게 사명(목회적 소명)을 부과하심. 15절의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는 주님의 물음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ἀγαπᾷς με πλέον τούτων 투톤이라는 이 단어가 남성 복수 혹은 중성 복수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꼴이 같기 때문이다.

/우선 남성 복수라면 이 사람들보다로 번역된다. 그렇다면 베드로야, 너는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는 말이된다.

/중성복수라면 베드로야, 너는 (이 잡아 놓은) 물고기를 네가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는 의미가 된다. 예수 믿는 목적이 보다 안락한 삶을 주니깐 예수 믿는다는 기복신앙이 되어 버린다. 예수보다는 세상 행복에 더욱 사랑이 더욱 가지 않느냐?.

/당신에게 예수는 무엇입니까? 삶의 목적이요 삶의 전부입니까? 아니면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편입니까? 부자되고 인생의 성공을 이루기 위한 방법입니까? 베드로는 예수를 삶의 목적으로 선택했고, 가롯 유다는 민족 해방을 위한 방편으로 예수를 선택했다. 한 사람은 천국으로 갔고 한 사람은 지옥으로 갔다.. 기복 신앙이 되어서는 안되겠지요./예수께서 베드로를 회복 시키시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목양에 있었다. 양을 먹이라(치라)! 오늘날 나락에 떨어져 헤매고 있는 나를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일까? 회복의 목적은 나에게 사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은 어떤 사명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생각하는가?

*22:31-32/우리 주님의 예언의 말씀이 구체적으로 갈릴리 해변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고 있다


전의진목사

2015.08.03 12:53:20

07/31/15 금요 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5/07311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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