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91

금요기도회 :6/12/2015

대표기도:  <선교부>

찬송가: 360<예수 나를 오라 하네>

 

1.      훈련된 그리스도인/모세의 영도하에 애굽을 탈출한 출애굽 1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목전에  두고 그 땅에 들어가서 살아 보지 못한 채로 광야 생활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출애굽 1세대 가운데서 가나안 복지에 들어간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밖에는 없다. 심지어 모세도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고 요단강 동편에서 죽었지요.  안타까운 일이지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왜 그들이 그 땅을 소유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겠는가? 하나님의 능력이 딸려서 그랬는가? 하나님이 전능하지 않아서 인가? 14장의 기록에 따르면 출애굽 1세대가 하나님을 반역했기 때문에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출애굽 제 1세대는 모두 죽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출애굽 1세대가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고 맹세하시면서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광야 생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가나안으로 가라는 명령을 전면적으로 거부했다. 가나안을 거꾸로 읽으면 안나가! 인생을 살되, 하나님의 말씀과는 정 반대 되는 삶이 안나가인생길이다.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은 그야 말로 힘들고 어려운 삶이었다. 배고프고, 목마르고, 모든 것이 부족한 삶이 었다. 그런 어려움이 발생할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옛날 애굽에서의 생활을 동경했다. 그리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외쳤다.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탈애굽, 향가나안의 삶이 되었어야 하는데, 시련과 고난이 발생할 때마다 애굽에로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육신적으로는 애굽에서 해방이 되어 광야에 있지만, 아직 정신과 영은 여전히 애굽에 매여 있는 노예 상태였습니다. 그랬기에 이런 노예들이 가나안 복지를 얻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자손만대까지 지켜 낼 수 있을까요? 없지요. 그래서 출애굽 1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죽었고, 광야에서 태어나고 훈련 받은 출애굽 2세대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게 되었지요.

 

/이런 점은 오늘 우리들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될 수가 있지요. 우리들도 탈 세상, 향 천국의 삶을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세상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영원한 천국에는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세상, already, not yet라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무리들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이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하던 것과 같습니다. 우리들의 세상 살이를 광야 생활에 비견하지요. 이 세상 살이에서 우리의 목표는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기 위하여 훈련 받는 기간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천국 기업을 상속받기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광야 생활에서 survival하기 위해서는 잘 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어떤 훈련?  구약 시대의 경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훈련 시켰는가? 이것을 독수리 훈련이라고 부르지요. 32:11<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19:4<내가 애굽 사랑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그의 날개로 업었다는 표현.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독수리는 아시다시피 절벽 꼭대기나 혹은 큰 나무 위에 둥지를 틀지요. 그리고 알을 낳아서 품어서 새끼를 해치합니다. 새끼가 홀로 하늘을 날고 사냥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어미 독수리가 먹이를 물어다 주지요. 새끼가 자라서 둥지를 떠날 때가 되면 어미가 둥지에서 새끼를 몰아 냅니다. 어미가 날개 를 펄럭입니다. 빨리 둥지를 떠나라고 말입니다. 이런 행동이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힌다고 표현되어 있지요. 이렇게 어미 독수리가 새끼가 다 컸는데도 둥지 밖으로 내 보내서 창공을 날게 하지 않으면 새끼 독수리는 독수리의 위용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어미 독수리가 둥지에서 날개를 펄럭이면서 새끼에게 둥지를 떠나라는 사인을 보냅니다. 둥지에서 매몰차게 밀쳐 냅니다.  그러면 새끼가 할 수 없이 둥지를 떠나게 된 새끼가 날개짓을 합니다. 처녀 비행이라 비행에 대하여 기술이 부족한 관계로 점점 땅으로 떨어져 내려 가지요. 그러면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날개, 즉 등으로 받아 줍니다.  새끼를 둥지 밖으로 몰아낸 다음에 어미 독수리는 무엇을 할까요? 고단하게 날개짓을 배우고 있는 새끼 위에서 선회 비행을 하지요. 새끼가 땅으로 떨어져 가면 새끼를 날개로 받아 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둥지로 돌아 옵니까? 아닙니다. 하늘로 높이 올라간 다음에 다시 새끼를 떨어 뜨립니다. 스파프타식 훈련입니다. 또 새끼가 날개짓을 합니다. 또 땅으로 떨어지고요. 어미가 날개로 새끼를 받고요. 이런 과정을 반복하지요. 이런 피나는 훈련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독수리가 독수리 답게 되지요. 지난 번에 독수리에 대한 다큐먼트를 본적이 있었습니다. 독수리가 막 둥지를 떠나서 처녀 비행을 하게 되자 독수리와 적대 관계에 있는 새들이 새끼 독수리를 공격합디다. 물론 새끼 독수리가 성체가 되면 상대가 안 되는 새들입니단, 처녀 비행에 나선 서툰 새끼 독수리를 공격하지요. 그러자 어미 독수기가 새끼 독수리를 인솔하여서 멀리 떨어진 숲에서 한 달간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키던 모습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독수기가 독수리 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독수리도 알고 있지요.

 

/그리스도인들-그리스도인 답게 살아 가기 위하여 우리들도 훈련이 필요하지요.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제자답게 살기 위하여는 훈련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태어 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님으로 영접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1:12<영접하는 자,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30 40년 신앙생활했는데도 여전히 응석받이 어린애로 남아 있어서는 안되지요.  부단히 훈련을 통하여 강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자는 스승인 예수에게서 배우는 자들입니다. 무엇을 배웁니까? 삶의 방법을 배웁니다. 우리가 가진 세상 가치관을 모두 내려 놓고, 우리 주님이 가지신 가치관을 받아 들여서 그 가치관을 따라서 살아 가는 자들이 예수의 제자입니다. 제자라는 글자가 배운다는 동사에서 나왔다는 사실 아십니까? 우리는 부단히 예수에게서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11:28-30<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히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오랜 세월 동안 예수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 왔지만, 그리스도의 제자 답게 살아 오지 못했습니다. 신앙 생활 연조가 깊어 지면 깊어 질수록 내 마음은 더욱 공허하고 내 신앙생활은 메말라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 속에서 예수 믿는 신앙인 답게 당당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갈 수는 없고요. 어떤 상태로 교회 생활하는가? 어정쩡한 신앙생활합니다. 큰 기쁨과 확신 가운데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겨우 신앙 명맥만 이어갈 정도이다.  잘 훈련된 그리스도인들은 기쁨이 넘쳐서 세상 가운데서 당당하게 그리스도의 제자 답게 살아갑니다.

 

/보스톤에서의 우리의 삶을 광야에 있는 것과 같은 삶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할 때에는 모든 것이 핍절했습니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입을 것도 그리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내랴 주시는 만나, 그리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서 마시게 했고, 메추라기 고기를 먹을 때도 있었고요. 그러나 이곳 우리 보스톤에서 삶은 어때요. 먹고 마시고 사는 것이 부족하던가요? 부족하지 않기에 내가 왜 광야에 있는가 하면서 반문하기도 합니다. 내가 보스톤의 우리의 삶을 광야의 삶이라고 한 이유는 우리는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다운 삶을 살기 위한 훈련을 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훈련을 위하여 우리는 오늘 이 자리, 기도하는 자리에 왔습니다. 여기 이 자리가 광야입니다. 기도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는 사람 소리도 안들리고, 사람의 모습도 안 보이지요. 이렇게 우리의 귀를 바깥 세상의 소리에 닫고, 우리의 눈을 화려한 세상으로부터 닫고, 마음을 오로지 하나님께로 향하는 이 자리가 영적인 광야라는 것을 아십니까? 바로 이런 광야에 있는 나에게 하나님이 그의 말씀을 들려 주십니다.  구약 히브리어에는 말씀이라는 단어와 광야라는 단어가 동일 어근에서 나온 동족어입니다. 우리나라 말에는 말씀과 광야는 영 근원이 서로 다른 단어이지요. 그러나 히브리어에는 말씀을 다발(드발 야훼)이라고 발음을 하고, 광야는 미드발이라고 발음을 하지요. 발음이 비슷하지요. 글자도 비슷합니다. 이 두단어는 모두 동일 어근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 의미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서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어디에서 들립니까? 광야에서 온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하면서 기도할 때에 들린다는 말입니다.  세례요한이 유다 광야 있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지요. 그가 예수의 전령으로 사역하기 전에 유다 광야에서 훈련하고 있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지요. 3:2<안나스와 가야바가 대 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빈들? 광야입니다.  오늘 우리도 세례 요한처럼 빈들, 광야에 나와 앉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금요일마다 광야 생활을 체험하는 가운데 훈련이 쌓이면 그리스도의 제자 답게 넉넉하게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광야 생활하는 동안 구약의 백성을 하나님이 어떻게 돌보아 주셨습니까? 13:21-22<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구름 기둥, 불기둥? 구름으로 낮의 더위를 식혀 주셨고, 밤에는 추은데, 구름 가운데 불이 있게 하여서 백성들을 세심하게 40년 광야 생활을 돌보아 주시고 인도하셨다. 물론 구름 기동와 불기둥은 별개의 다른 두 개가 아니고 하나입니다. 40:36-38<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 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불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구름 속에 있었지요. 구름 기둥과 불기둥은 하나이지요.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40년간 지켰지요.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에서 물을 내어서 자기 백성을 먹이고 마시게 하고 입혀 주셨다.  보스톤 광야 생활을 우리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십니다. 주를 의지하기를 바랍니다. 주를 신뢰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영적인 훈련을 계속할 수 있도록 의식주 전반에 필요한 것을 넉넉하게 채워주십니다.

 

/보스톤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내가 준비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두 가지 부문에서 준비가 되어져야 합니다. 첫 번째가 영적인 부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주시는 강력한 무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 무기가 무엇입니까? 영적인 전쟁을 해야 하는 영적 전사들입니다. 그러기에 무장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고후 10:3-4<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장되어야 한다. 그런 영적 무장을 하기 위하여 오늘 이 기도의 자리에 나왔습니다.    두 번째가 다윗의 물매돌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에 사용했던 무기가 무엇입니까? 물매와 물맷돌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에 시냇가에서 물매돌을 몇 개 골랐습니까? 다섯 개를 골랐습니다. 하나가 아니고? 왜 다섯 개를 골랐을까요? 적어도 다섯 개 가운데 하나는 골리앗의 얼굴을 마출 수 있다는 자신 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상17:40<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불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돌 몇 개? 다섯 개! 적어도 20% 확률을 가지고 골리앗을 눕힐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습니다. 이 물매 솜씨는 무술과 같습니다. 양떼를 돌보면서 그가 훈련하여서 가진 기술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보스톤 땅 광야 생활하는 동안에 우리가 각자의 분야에서 자기 전공 분야에서 실력을 갖추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쓰실 수가 있습니다. 자기 전공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되십시요. 이것이 다윗의 물매돌입니다. 이 물매돌이 준비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쓰실 수가 없습니다. 또한 물매돌이 준비되었다 하더라도 영적인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또한 하나님이 쓰실 수가 없지요. 금요기도회 이 시간 하나님께 기도하고 일어난 후에 각자의 삶의 자리로 나가서, 직장인이면 직장으로, 학생이면 학교나 실험실로 달려가서 물매돌을 준비하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쓰실 수 있게끔 물매돌을 힘써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물매돌 준비를 게을리 하면 하나님께서 쓰실 수 없습니다. 물매돌이 준비 되었다면 기도하십시요. 나의 물매돌 위에 기름 부어 달라고 말입니다. 내 직업과 내 학업 위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여 내 직업과 학문과 연마한 기술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귀하게 쓰임 받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것을 하기 위하여 이곳에 모였습니다. 목소리 높여서 주께 부르짖기를 바랍니다. 

 

2.     함성 구호!  70년대에 군대 갔다 오신 분들은 3년 동안 이런 구호를 외쳤습니다: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 무찌르자 북괴군! 이룩하자 유신과업! 그리스도인의 구호는 무엇일까? 때려잡자 마귀새끼! 이룩하자 하나님의 나라! 전투적이고 호전적인 구호입니다. 죄와 죽음과 영원한 심판,지옥으로 들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고 마귀를 대적하여서 사탄의 왕국을 와해시키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과업이다. 그래서 찬송가는 그리스도인이 불러야 하는 군가라고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일생은 영적 싸움이라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 영적 싸움을 너무 너무 강조한 나머지 우리의 신앙 생활의 목표가 마귀 때려잡는 것으로 이해해서 일생동안 마귀와 전쟁하는 것을 목표로 살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치우친 신앙생활입니다. 마귀와 늘 싸워야 하니깐 영적으로 긴장하고 살아야 하니, 삶의 여유나 안식이 없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하지요. 마귀와 대적하고 싸워서 제압하는 일이 그리스도인의 사역의 주된 목표가 아니다. 마귀 새끼 때려 잡아 죽이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작은 실천 강령이다. 예수님과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일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일이다. 마귀 새끼 때려 잡아 죽이는 일이 아니다. 예수께서 30년 동안 사적인 생애를 마치고 3년동안 공생애를 했지요. 공생애를 시작할 때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40일간 금식 기도하신 후에 갈릴리에서 제일 처음으로 선포하신 말씀이 마4:17절에 기록되어 있지요: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천국을 선포했지요. 마귀 새끼 때려잡자하는 전투적인 구호를 외치지 않았습니다.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선포하셨지요. 무엇을 건설하기 위해서 말입니까? 신국! 하나님의 나라 말입니다. 그리고 공생애 마지막, 지상 생애의 마지막, 모든 것을 땅에 나두고 하늘에 오르시기 직전에 그의 제자들을 만나서 당부하신 말씀이 사도행전 1:3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제자들을 간헐적으로 만나시면서 하신 말씀은 마귀새끼 때려 잡아라고 당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역사의 마지막 날,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제자들을 가르쳤고, 그 나라를 위하여 살 것을 명하셨지요. 우리 주님 예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시켰습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지상에 있는 교회들을 통하여 화장되고 뻗어 가고 있지요. 우리 주님이 역사의 마지막날에 다시 오시는 그날에 그  하나님의 나라는 홀연히 완성될 것입니다. 지상에 계셨던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을 행하시면서 자나깨나, 오매불망 가졌던 비젼이 무엇인가?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였다는 사실! 오늘 우리들도 신앙생활하면서 집중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그래서 주님 가르치신 기도에도 두번째 간구가 무엇입니까? 나라이 임하옵시며! 어떤 나라?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주기도,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기도에도 분명하게 우리의 신앙 생활의 목적이 드러나 있지요. 주기도는 예수 운동의 핵심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신앙생활의 목적과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하나님의 나라! 역사의 마지막 날에 예수의 재림으로 우리에게 오게 될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면서 우리는 현재 우리의 삶에 영적인 실재로서 와 있는 천국의 실재를 느끼면서 살아야 겠지요. 우리는 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선교하는 삶!

 

/사도 바울의 삶-28:30-31<비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사도 행적? 사도 행전은 28장으로 끝나지만, 사도행전은 열려 있는 장입니다. 탈무드처럼 말입니다. 탈무드도 뒷 장이 열려 있어서 덧 대어 지지요. 우리들도 사도행전 29장을 써나가야 합니다. 사도 행전 28장 마지막 두 구절은 무엇으로 끝나는가? 현재 분사형으로 끝납니다. 주동사가 셋집에 만 이년을 머물렀다. 무엇을 하면서 말입니까? 전파하면서κηρύσσων가르치면서διδάσκων 모두 현재 분사형입니다. 그릭에서 현재 분사는 계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되어져야하는 시상입니다.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일이나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일은 계속되어져야 합니다. 언제까지?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말입니다. 무슨 핍박이나 박해가 있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누구를 통하여 말입니다. 너와 나를 통하여 말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29장을 써야하는데, 성령께서 우리를 사용하여서 29장을 써 내려 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전의진목사

2015.06.15 22:15:41

06/12/15 금요 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5/06121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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