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89

금요기도회 :5/29/2015

대표기도:  중보기도+<선교부>

찬송가:507-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자~

 

1.    당신은 예수 안에 있는가? 나와 우리 주님 예수님과는 연합되어 있다. 연합이 무엇인가? 독립된 두개가 섞여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우리 주님과 내가 연합되었는데, 무엇이 연합되었는가? 영으로 연합되었다. 그러면 영적 연합이란 무엇인가? 바울의 설명에 의할 것 같으면 고린도 교회의 음란에 대하여 책망하는 컨택스트에서 영적 연합에 대하여 언급했습니다.   고전6:16-17<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ἓν σῶμά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σάρκα μίαν가 된다 하셨으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ἓν πνεῦμά이니라여기서는 성적 결합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육체적인 연합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와는 다른 연합이 있는데 그 연합을 이름하여서 영적연합이라고 부릅니다. 영적 연합은 우리의 영과 우리 주님의 영이 하나로 결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정상적인 육적 연합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결혼을 통하여 일어난다. 창기와 육적결합이 일어나는 것은 비정상적인 즉 죄된 육적 연합이라고 우리 하나님이 책망했습니다. 정상적인 육적 결합은 무엇을 통하여 일어난다고요? 결혼, 즉 혼인을 통하여 일어납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고, 여자도 그 부모를 떠나서 한 몸이 되는 것이 결혼입니다. 이런 육적 결혼과는 다른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이 영적 연합입니다. 내 몸 밖에 실존해 있는 우리 주님과 내 영혼이 결합하는 그런 연합이 영적 연합입니다. 이런 영적 연합은 어떻게 일어나나요? 내가 내 마음의 문을 열고서 우리 주님을 받아 들일 때에 일어납니다. 영접을 통하여 일어나지요요한계시록 3:20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요<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성경에는 예수는 우리의 영적인 신랑이고, 우리는 우리 주님 예수의 영적인 신부라고 부르지 않았던가요? 이런 영적 연합은 육체와 육체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영과 영의 만남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우리는 누구와 연합되어 있다고요? 우리 주님과 연합되어 있다! 문제가 무엇인가? 이런 영적 연합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 데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어떻게 우리 주님과의 이런 영적인 연합을 느끼면서 살아갈 것인가내가 주 예수와 영적으로 연합되었는가? 내가 정말로 예수 안에 있는 것을 느끼면서 살아가는가 말입니다.

 

2.    3:7-9<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ἡγέομαι( 헤게오마이) ἥγημαι동직설 완료,>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ἡγέομαι( 헤게오마이) ἡγοῦμαι동직설 현재  >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ζημιόω( 제미오오) ἐζημιώθην동직설 과거 수동 >     배설물( 폐물,)로 여김은  <ἡγέομαι(헤게오마이) ἡγοῦμαι동직설 현재 >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시제의 전환에 유의하라(현재완료, 현재), 바울이 과거에 자신이 내 세우고 자랑했던 모든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었다. 종교적인 열심,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다. 세상 학문이나 또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했던 점등이 모두 자랑거리였다. 예수 때문에 과거에 모든 자랑 거리들을 해로 여기고, 또 무엇으로 여겼는가? 배설물. 배설물? , 폐기물로 여겼다그가 과거의 자랑 거리를 이렇게 여기면서 현재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함이 의미하는 바는? 영적인 연합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하여 바울이 행하였던 일은율법적인 의를 모두 버렸다. 율법적인 의란?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는 선언을 듣는 것을 가리킨다. 신약 시대에 바울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가진 의는 무엇인가? 예수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는 선언을 받았다. 예수를 믿음으로써 얻은 의를 가리킨다. 율법적인 의를 버림과 동시에 바울은 이전에 좋던 모든 특권과 자랑거리들도 모두 버렸다바울은 다멕섹 도상에서 우리 주님을 만나던 그 날에 과거의 자랑 거리들을 모두 버렸다. 그리고 다멕섹 도상에 예수와 영적인 연합이 일어났다. 예수께서 성령으로 나타나서 에수와의 영적인 연합이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를 그의 주인으로 받아 들였지요. 그리고 나서 어떻게 살았습니까? 예수 안에서 예수와 함께 그리고 주 예수를 따라서 살았습니다. 30년 동안을 예수 안에서 살다가 순교했지요. 빌립보서는 바울이 거의 그의 생애의 말년에 이르러서 빌립보 교회 교인들에게 써 보낸 편지입니다.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받아 들여서 그를 따라 살아가면서 어느날 보니 자신이 주안에 들어 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고백의 말입니다: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하나니 그리스도안에서 살아가다가 어느날 자신이 그리스도와 연합 되어 있음을 깨달아 알게 된다는 말이지요. 그릭으로는 이것을 엔크리스토 라고 부르고 영어로는 In Christ, 우리 말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예수를 내 삶에 받아 들이는 그 순간 이미 나는 예수 안에 들어가 있는데, 그것이 느껴지지 않고 있다가 어느날 문득 자신이 그 안에 들어가 있음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자의식? 아 내가 살아 있구나, 아 내게 생명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는 자의식이 언제 일어나는가어린아이는 살아 있으면서도 그런 자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신이 살아 있구나라는 자의식을 비로소 느끼게 되는 때가 있다그 때가 언젠가자라나면 어느날 느끼게 되지요. 마찬 가지로 내가 예수 안에 있다는 깨달음도 그와같다. 예수를 영접하여서 예수를 얻은 다음에 그를 따라서 예수 안에서 살아가다가 문득 어 내가 예수안에 있구나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아 내가 예수 안에 있구나따라해 봅니다: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하나니

 

3.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일까? 10:10<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도둑? 삯군 목자일까삯군 목자는 양떼를 치기는 치는데, 치는 목적을 달리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주인으로부터 노동의 대가인  삯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양떼의 안녕과 복지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라 양떼의 안녕과 복지를 통하여 자신의 이득을 얻어낼려고 하지요. 목사의 직책이 소명이 아니라 무엇이라고 job으로 생각하지요. 목사의 직책은 job이 아니라 소명입니다. 삯군목자와 참 목자의 차이가 목적의식이 다르다는 것뿐 양떼를 돌본다는 것에 있어서는 같습니다. 삯군 목자들도 교회라는 조직을 이끌고 나가기 위하여 필요하기는 하지만 우리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오늘 본문의 도둑은 이단을 가리킨다. 이단들은 바른 길 가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지옥의 자식들로 만드는 무리들입니다. 이단들은 귀신의 가르침에 미혹된 자들입니다. 물론 본인들은 자신들만이 바른 길을 걸어가고 기존의 모든 교회들이 삐딱한 길로 가고 있다는 확신에 찬 무리들이지요. 사실은 자신들이 삐딱한 길, 즉 죽음의 길로 지옥 길로 가고 있는데 말입니다. 일인칭인 나는 누구인가? 선한 목자인 예수를 가리킵니다. 또한 선한 목자인 예수의 뒤를 따르는 신실한 영적인 지도자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예수 따라가는 우리들은 그가 돌보시고 기르시는 양들인데, 이 양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그 얻은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누리게 하려고 예수께서 오셨다. 우리도 한 때는 이방인들 속에 섞여 살면서 영적으로는 죽은 삶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 주님의 부르심으로 영적인 생명을 가지게 되었다.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실재로 임하였다. 하나의 씨앗처럼, 하나의 점처럼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잉태되었다. 이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서 자라나야 한다. 자라지 않는 분이 너무나 많다. 답보 상태로 머물러 있다. 내 안에 있는 생명이 자라나야 내가 풍성한 삶을 비로소 누리게 된다생명은 있으나 자라지 않은 채로 사는 성도가 거의 대부분이다. 여전히 기저귀차고, 젖병 빨면서 50 60년 신앙생활하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이것이 문제로다. 우리 안에 있는 영적 생명은 자라나야 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실재가 더욱 자라나야 한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또 표현하면 내가 처음 믿을 때보다는 나의 구원이 더욱 풍성해져야  한다는 말이지요. 2: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이루어 가야 하는 구원, 완성되어 가는 구원, 더욱 풍성해 지는 구원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예전에는 던킨 커피로 만족했는데, 요즈음은 무슨 커피를 마시는가? 별다방의 커피! 별다방의 커피를 마시다가 던킨 커피를 마시면 커피가 너무 멀것다는 것을 느낍니다. 별다방 커피가 훨씬 진하고 커피향이 훨씬 좋지요. 우리의 구원도 별다방 커피처럼 이런 진한 구원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구원을 더욱 풍성하게 누릴 수가 있는가? 내가 주님을 따라가면 된다. 그 반대가 되면 안되지요. 주님 나 따라 오슈하면서 신앙생활하면 영이 자라지 않습니다주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순종하고 복종해 가면 우리 속에 하나님의 나라의 실재를 더욱 크게 느낄 수가 있다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할 때에, 모방은 하지 말라! 모방은 의미와 깨달음없이 그냥 따라 하는 행동이다. 애들이 어른들의 행동을 따라하지만 그 행동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 채로 따라한다.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모방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닮아 가라는 말은 모방과는 다르지요. 그리스도를 닮아가라 그리고 그를 본받아 살아가라내 영혼이 자라나면 날수록 나는 그를 닮게 되어 있다. 그렇게 자라나면 그 결과로 내가 엄청난 믿음의 행동을 할 수가 있다. 자라나라! 벧후3:18<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은혜와 지식안에서 성장이다성경지식을 이해하고 손과 발로 행하였다고 성장하지 않는다. 일 중심의 신앙 생활하시는 분들은 자신이 그 일을 주를 위해 행하였다고 대단히 뿌듯해 하면서 자신이 무척 영적으로 만족해 하면서 대견해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무척 영적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착각일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착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을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한국 동해안에 가면 망상해수욕장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망상해수욕장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말씀을 이해하고 행하였다고 영혼이 그냥 성장하는 것 아니다. 말씀 듣고 이해하고 행하였다고 영혼이 기계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이해하고 행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알고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때에 비로소 영적인 성장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였다고 영성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행함 속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고 이해하고 느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영성이다. 여러분은 주를 위하서 행하는 봉사와 사역속에서 얼마나 주님의 마음을 느끼고 있는가? 내가 하는 여러가지 주를 위한 봉사의 일들, 교사일이나 찬양대의 일이나 아니면 부엌에서의 일들이나 아니면 스케일을 조금 넓혀서 문화의 오지인 아프리키나 아마존 밀림 지대에서 선교 사역을 행하는 모든 일들을 수행하면서 무슨 마음을 느끼는가? 주 예수의 마음을 느낄 때에 내가 느끼는 만큼 내 영혼이 그 만큼 자라난다. 일을 하면서 주 예수의 마음을 못느끼면서 할 때가 거의 대 부분이지 않는가사역을 하면서 주님의 마음을 느끼는 것, 이것이 관계 중심의 신앙생활이다. 우리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증진이 될 때에, 주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더욱 크게 느껴지고, 그 사랑을 힘입어서 나의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그런 신앙생활이 관계 중심의 신앙생활이다

 

/영적으로 장성한 영혼은 나와 다른 사람을 용납하고 관용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백안시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자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나와 다른 형제와 자매를 보면서, 나보다 못하기에 대단히 민하게 굴면 깔보면서 경멸하게 되지요. ! 놀고 있네하면서 미워하기 까지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 주님께서 내 마음에 너는뭐가 그리 잘났느냐하면서 책망하고, 너보다 못한 이웃도 내가 사랑했고 받았다라는 말씀을 받게 되어서 나보다 못한 이웃도 우리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나보다 못한 이웃도 내가 귀하게 여기게끔 내 마음과 생각이 바뀌었다면,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영성입니다. 그런 이해와 용납이 어디서 나왔는가? 내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느끼고 알게 되었기에 그런 변화가 생긴 것이 아닌가? 이런 것은 지성적인 이해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깊고 깊은 영적인 체험 때문에 나온 변화입니다. 영적으로 자라나게 되면 이런 삶의 변화가 나의 삶의 전반에 걸쳐서 일어납니다. 이런 전환을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크낙한 변환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영, 성령의 내적 조명이 내 마음과 생각을 이렇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영적인 성장은 단계가 있다. 가장 어린 단계가 엄마 나 따라와!’ 하면서 지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엄마가 와서 지켜 보고 도와달라고 한다. 내가 이런 봉사를 하기 원하는데 우리 주님 나 따라와서 도와달라! 그러면서 어떻게 말하는가? 내가 이 일을 이루었다고 자랑하고 떠 벌린다. 엄마는 애기가 엄마를 위하여 무언가 큰 일을 해 줄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엄마가 기저기 차고 젓병을 빠는 애기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열심히 젓을 잘 빨고, 귀저기에 똥 오줌 잘 싸고 밤낮 먹고 마시고 자면서 엄마 풍에서 행복해 하는 것을 보면서 기뻐한다. 조금 크면 기저귀 떼고 젖병 안 빨고 돌아 다니면서 엄마 손을 잡아 끌면서 어디로 가던가? 게임 장에 혹은 떠 어디? 토이가게에 들어가지요. 지가 원하는 곳에 엄마 나 따라와하지요. 이런 단계에 있는 어린 신자층이 교회 안에 대부분이다내가 원하는 것을 주님이 이루어 내 놓으라고 주님을 욱박지르지요. 내가 원하는 곳에 갈 터이니 우리 주님 나 따라오셔!    두번째 영적 발달 단계가 어떻던가요? 사춘기 단계인데 이 때에는 따로 따로 놀아요. 부모가 간섭하는 것이 제일 싫은 단계이지요. 부모와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놀게 되지요. 영적으로 조금 더 성장했다는 착각 속에 빠져서 주님의 도움도 필요가 없대요. 나 스스로 해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든지 내 힘으로도 내 영혼이 성장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교회의 일도 그렇고 선교도 그렇게 무엇이든지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도 내 힘으로 독립적으로 할 수가 있대요. 머리가 굵어 졌을 뿐 도무지 영적으로는 성장하지 않는 그런 상태인데도 말입니다.                         장성한 어른이 되면 노년기에 있는 부모를 모시고 부모가 원하는 곳에 따라가서 노부모를 섬기지요. 부모가 원하는 데를 장성한 아들이 따라가지요.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영적으로 장성하게 되면 될수록 주님이 가시는 데를 내가 따라갑니다. 주님이 알려 주시면 알고, 주님이 행하시면 그대로 따라 행하지요. 주의 뒤를 따른다, 그릭으로는 아콜루데오라는 글자를 쓰는데, 이것은 주의 뒤를 따른다할 때 쓰는 전문 술어입니다. 주님이 말해 주시면 내가 말하고 주님이 침묵을 지키시면 나도 말하기를 중단하고, 주님이 가시는 데 나도 따라 가는 그런 영성이 됩니다자라나기를 바랍니다! 50 60년 신앙생활했는데도 여전히 기저귀차고 젖빨고 있다면  곤란하다.      

/영적 성장이 한 순간에 일어난다고 착각하지 말라! 한순간에 말씀체험을 하고 성령 은사를다 체험하여서 삼층천에 들락날락한다고 하여서 하룻 밤사이에 영적인 유아가 영적인 거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우리들의 육신적인 자람이나 정신적인 자람도 시간의 흐름을 따라서 단계별로 일어나듯이 영적인 성장도 서서히 단계별로 일어난다. 물론 그 성장이 빠르고 느린 것은 개인적인 영적 자질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 영적인 자질은 영적이 토양의 문제다. 토양이 좋으면 식물이 잘 자라고, 토양이 나쁘면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하지요. 영적인 토양이 좋아야만 영적인 성장이 빨리 일어난다. 20년간 이곳 켐연장에서 목회 사역을 하면서 영적인 토양이 정말 좋은 분들을 많이 보았다. 보통 1년 정도 걸리는 영적 성장을 불과 한 두달 만에 이루어 내는 분들을 보았다. 10년 신앙 생활하여서 비로소 얻어지는 영적 성장을 1-2년 만에 이루어 내는 분들도 있었다. 당신의 영적인 토양은 어떤가? 영적 토양이 나쁘다는 자가 진단이 일어났다면 영적 토양이 좋아지도록 객토客土사업을 행하라! 땅이 나쁘면 기름진 흙을 퍼서 옮겨 놓는 일을 하는데, 겉흙, top soil을 두텁게 하는 일이 객토 사업입니다. 영적인 객토 사업도 그렇습니다. 그러면 영적 토양이 좋아져서 훨씬 빠르게 영적 성장이 일어난다. 영적 토양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영적 객토 사업은 내 생각과 내 뜻을 내 모든 삶의 전 영역에서 내려 놓는 일이다. 이것이 안되면 영적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내려 놓는 일이 참된 신앙생활의 시작이다. 내 생각과 내 뜻을 내려 놓는 일이 내 영혼의 토양을 근본적으로 좋게 만드는 영적 객토 사업이다.  내 생각 내 뜻을 꽉 움켜 잡고 있으면 말씀이 내 심령 속에 들어 올 수도없거니와 들어와서 싹이 나도 그 싹은 곧 시들어 말라 죽는다. 내 생각 내 뜻을 성령의 불로 태워 버리고 내 심령의 밭을 쟁기로 갈아 엎어 놓고 땅을 고르고 기름진 흙을 덧대어 놓고 말씀의 씨를 뿌리면 30, 60, 100배의 열매를 거두는 것 아닌가영적 객토 사업이 무엇이라고요? 내 생각 내 뜻을 내려 놓는 일이다기도할 때도 내 생각 내 뜻을 내려 놓지 않고 기도하면 할수록 내 생각과 내 뜻은 더욱 내 안에 들러 붙어서 옹고집 장이가 되어버린다. 기도할 때에 내 마음에 들어 있는 생각부터 내려 놓고 기도하라! 내 생각을 내려 놓기 위하여 씨름하라! 그것이 안 내려놓아 지면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것이 안 내려 놓아 지면 누가 역사하는가? 어둠의 영이 역사한다. 사탄마귀가 나의 생각을 사용하여서 나를 파괴하고 내 가정과 교회에 무엇을 일으키는가? 어지러움을 일으킨다영적으로 지혜로운 자들이 되고 영안이 띄어진 자들이 되라. 따라 해 봅시다:내 생각과 내 뜻을 내려 놓자!      

 

/누구를 따라서 살아야 하나? 5:16<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은 우리에게 부단히 주님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준다. 내 생각을 꽉불들고 있으면 주님의 생각을 성령이 넣어 줄 수가 없다. 마음이 비워져야 내 안에 주님의 생각을 수용할 수 있다. 8:27<마음을 감찰 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어 간구하심이니라> 성령의 생각! 너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지 말고 내려 놓으면 다른 생각이 마음에 찾아 들어 온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생각이다. 성령의 내적 조명이 일어난다. 내 생각을 꽉 붙들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면서 어리석게 살지말고 내 생각을 내려 놓으라. 이것이 영적 지혜의 시작이고 풍성한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길이다.

 

4.    예수님과 교제하고 있는가? 신앙의 목적/기복신앙? 예수가 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입신 출세, ,명예,세상 행복을 예수를 통하여 이루려고 하는 것이 기복신앙이다. 이전에는 돌이나 부처의 힘을 빌어서 이루려고 했는데, 돌이나 부처의 자리에 예수를 앉혀 놓았을 뿐이다. 예수보다는 예수께서 주시는 선물에 우리의 마음을 집중해서, 그것을 신앙의 목적으로 삼고 신앙생활하는 분들이 많다. 신앙이 기복신앙화되어서 신앙생활하는데, 이런 신앙을 신학적으로 <번영의 신학>이라고 말합니다번영의 신학에 물들어 있는 분들은 하나님이 뭔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는다면 신앙에 있어서 실패한 것 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몸에 병이 생긴다거나 사업에 실패한다면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과연 그럽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인도해 가실 때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우리를 인도해 가실 때가 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우리가 병들어 고생할 때를 의미하기도 하고, 사업의 실패로 엄청나게 힘든 삶을 살게 하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이것은 내 신앙이 잘못 되어서가 확실하게 아닙니다. 내 영혼의 성장을 위하여 잠시 나를 눈물 나는 현장에 있게 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영혼의 성장이 무엇이라고요. 푸른 풀밭 맑은 시냇물가로 나를 인도하신다는 말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잠시 나를 눈물 나는 현장에 있게 하셨지요. 내 신앙이 잘못된 일은 결코 아닙니다.

/영적으로 어린 아이였을 때에는 주님보다는 무엇이 우리 주님이 손에 들고 있는 선물에 더욱 관심이 있었지요. 주님이 내게 무엇을 주실지에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영적인 은사도 좋고, 말씀도 좋고, 돈도 차도 집도 자식도 건강도 세상 행복도 좋고, 무엇이나 좋은 것을 우리 주님이 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신앙생활했지요. 이런 신앙을 기복적 신앙이라고 부르고 번영신앙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이런 신앙을 가진 분들이 가장 영적으로 어린 신자층에 속합니다.  /내 어릴 때의 경험을 이야기 해야 겠네요. 아버지의 자전거 사건-삼천리호 자전거-무쇠 덩어리로 만들어졌다. 아버지가 촌에서 읍내에 5일마다 장이 서는데 그 때마다 들어 오셨는데, 그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오셨다. 그래서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버지 자전거로 자건거 타는 것을 익혔지요. 자전거 배울 때에 영주 읍네에 장날이 5일마다 돌아 오는데 얼마나 아버지를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자전거 때문에 말입니다. 아버지의 자전거가 내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집에 오시길 기다렸던 이유이지요. 고등학교 시절 대학시절에는 자전거가 필요하지 않았기에 별로 아버지의 필요를 못 느꼈습니다.  / 어떤 목사님의 이야기? 해외로 부흥회 강사로 자주 초빙을 받았던 유명한 목사님인데, 그 목사님이 해외 부흥회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갈 때면 의례껏 두 아들들이 부탁한 선물을 왼손 오른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지요. 집 현관에 들어서자 마자 두 아들들이 반갑게 맞이하는데, 아빠를 맞이 하는 것이 아니라 손에 든 선물을 맞이 했습니다. 선물을 낚아 채자 마자 자기들 방으로 쏜살같이 늘 달려 가버린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마음이 무척 상했다는 어떤 목사님 이야기! 아이 키우시는 분들 남의 이야기 같지 않지요. / 그런데 말입니다. 아버지가 주는 선물보다는 아버지 자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시점이 온다는  말입니다. 아이가 자라나면 그냥 아이들이 해외에서 피땀흘려 벌어서 보내 주는 선물보다는 아빠를 원한다고 말입니다. 선물 그만, 이제는 아빠를 원한다고 말입니다. 자라나아만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소리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 무엇이 문제인가? 자라나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수 한 분으로 만족하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하지요. 예수께서 주시는 세상적인 행복 때문에 신앙생활한다면 아직은 어린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12제자들을 수 많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께서 일이 너무 많으니깐 조수들로 쓰기 위해서인가? 아니다. 예수께서 자기 주위에 12제자를 선택하여 두신 이유는 삶을 같이 나누면서 함께 있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3:13-15<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 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서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부르심의 첫번째 목적이 무엇인가? 일시킬려고, 부려 먹을 려고 우리 주님이 12명의 조수들을 두신 것 아니다. 무엇하려고 자신과 함께 있게 하시려고. 12명은 우리 주님이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들이었다. 12명은 어떤 사람들? 주님이 원하시는 자들이었다. 나도 우리 모두도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자들이다. 교회일 시키고, 부려 먹을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우리 주님이 계시면서 행복해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다. 교회 봉사의 일은 우리가 영적으로 자라나면 그 결과로 일하게 된다. 일할 목적으로 우리 주님이 우리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자라나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니 자연히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고린도 전서 1:9<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신앙의 목적을 흐리게 하지 말라! 신앙의 목적은 우리 주님과 함께 남은 인생길 걷는 것이다. 지금부터 영원한 세월 동안 우리 주님 예수와 함께 영원히 있게 하시려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


전의진목사

2015.06.02 19:32:23

05/29/15 금요 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5/05291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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