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83     

금요기도회 :4/3/2015

대표기도:  <선교부>

찬송가:그 이름 비길 데가 어디 있나

 

1.    씨앗과 하수도관의 차이점/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땅 속에 있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땅에 묻히면 하수도관은 표시를 해 두어야 어디 있는 지 알 수 있는데, 씨앗은 표시를 해 두지 않아도 알 수가 있지요. 콜드는 덴마크의 교육계에 크게 기여한 분입니다. 그의 강의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콜드는 자기의 강의를 듣는 사람들에게 강의 내용을 필기하는 것을 금했고 또한 평생에 책을 한 권도 저술로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어느 날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그럴 때마다 그 내용을 써 두지 못하는 것이 내내 아쉽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스승인 콜드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지요. ‘걱정말게. 땅속에 묻혀 있는 하수도관은 땅 위에 표시를 해 두어야 찾아 낼 수 있지만, 살아 있는 씨앗은 별다른 표시를 해 두지 않아도 반드시 싻을 틔우는 법일세. 내 가르침이 살아 있다면 어느 때이고 자네의 삶 속에서 되살아 날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우리 주님 예수께서도 저술 한 책이 한 권도 없지요. 복음서는 그의 제자들이 듣고서 기록으로 남겨 놓았지요. 그러나 우리 주님의 말씀은 땅에 떨어져서 움트고 싻이 돋아 났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우리의 가르침은 모래알이 아니라 씨앗입니다. 이 말씀의 씨앗이 사람들의 마음 밭에 떨어져서 움트고 열매 맺게끔 힘쓰시길 바랍니다. /12: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 날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    작년 가을에 차를 점검하느라고 costo의 타이어 교체하는데 갔었지요. 다른 것을 점검하다가 차에 못이 박혀 있는 것이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못이 비스듬히 박혀 있어서 바람은 전혀 빠지지 않았습니다. 미케닉이 그것을 보더니만 나보고 복권을 오늘 빨리 사라는 것이  었습니다. 왜라고 물었더니 너무나 럭키하기 때문에 복권을 사면 당첨된다고 말입니다. 복권 사면 돈 드는데, 안 맞으면 손해잖아! 나는 더 나은 복권이 있는데, 그 복권은 예수다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요. Jesus is my rotary! 예수께서 우리의 복권이 되지 않나요? 예수 영접하면 예수께서 가지신 모든 것이 누구의 것이 되나? 내것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 예수께서 나의 복권입니다.

/2:3<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로새서 2:9-10<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28:18<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성부 하나님이 부활하신 우리 주님 예수께 주셨습니다. 영계의 모든 권세와 인간 세계를 포함한 온 우주의 권세가 우리 주님께 위탁되었습니다. 명실공히 예수는 왕중왕이십니다. 그런 왕의 권세가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도 위탁되었습니다. 예수 안에 들어가던 그 날 그 권세가 위탁되었기에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이 권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무엇하는데 이 권세를 쓰는가? 돈벌이 하는데, 아니다. 28:19-20절에 보면 온 땅에 흩어져서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저들을 제자로 삼아 가르치는 일에 사용하도록 허락된 권세이지. 내 육신적인 목적을 위하여 허락된 권세가 아님을 명심하기를 바랍니다.
 

3.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우발적인 사건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계획하신 사건인가? 십자가를 지시고 피흘리시면서 죽으시는 우리 주님의 마음에는 어떤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을까? 우리 주님은 자신이 왜 십자가 지셔야 하고, 왜 피흘리고 죽어야 하시는 지를 명백하게 아셨다. 2천년전 어제, 목요일 저녁에 우리 주님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무슨 일을 했을까요? 마지막 저녁 식사를 나누었습니다. 이 목요일날 요한 복음에는 식사 중에 우리 주님이 또한 황송하게도 제자들의 발을 물로 씻어 주고 수건으로 닦아 주기까지 했습니다다. 물론 이 식사는 유월절 식사가 아닙니다. 당시의 스승과 제자들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하여 먹고 마시는 키두시미일이었습니다. 그 마지막 식사를 하시는 자리에서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26:26-28<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우리 주님이 마지막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빵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 내 살이다라고 말씀하셨고, 그리고 포도주 잔을 건네 주면서 이것은 내 피다라고 말씀하시지요. 예수의 제자들은 우리 주님이 하시는 이 소리가 무슨 소리인줄 모르고 덮석 받아서 마셨지요.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자신이 내일이 되면 죽는데, 피흘 흘리면서 죽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요. 제자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이 죽음은 무슨 죽음입니까? 십자가에서의 죽음입니다. 죽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자신이 지은 죄 때문이 아니지요. 누구를 위한 죽음입니까? 많은 사람을 위하여! 온 인류가 아닙니다. 여러분과 나처럼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죽는 죽음입니다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떻게 하려고 말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은 죄를 사하기 위하여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서 피흘리면서 죽어 가야 함을 아셨다는 말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리는 피가 무슨 피라고요? 언약의 피라는 말입니다. 언약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을 의미하지요. 언약을 맺는 데 왜 피가 필요합니까?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언약이 시내산에서 맺어지게 되었지요. 그 시내산 언약을 맺을 때 어떻게 했던가요? 송아지를 죽여서 그 피를 냄비에 받아서 구약의 백성에게 뿌렸지요. 그리고 모세가 이렇게 말하지요:이 피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24:8). 구약 시대에도 언약을 비준하는데 송아지를 죽이고 그 송아지의 피를 뿌림이 필요했습니다. 신약 시대에 우리 주님이 영원한 하나님의 언약을 세우기 위하여 무슨 피를 뿌렸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피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렸고, 그 피를 우리 주님은 무엇이라고 불렀습니까? 언약의 피! 영원한 언약의 피라고 불렀습니다. 한 번 피흘림으로 효력은 영원히 계속되는 피를 흘렸다는 말이지요. 효력이 1년 지속된다면 매년마다 죽어야 할 텐데, 영원한 언약이기에 한 번만 죽으시면 되지요. 한 번으로 영원까지 효력이 지속되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런 깊은 속 뜻이 우리 주님이 그의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들면서 그의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건네 주는 것에 담긴 의미입니다. 주님은 내일이면 잡혀서 십자가에 달리심을 확실하게 아셨습니다.

 

/ 또 우리 주님은 지상 생애가 33년이지요. 그 중에서 마지막 3년을 공생애라고 부르지요. 12제자들을 사역이 시작될 때에 모두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제자로 받아서 훈련시켰습니다그런데 우리 주님이 언제부터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제 3일에 살아날 것을 가르쳤을까요? 사역의 초반부터? 아니지요. 그러면 언제때부터? 그 마지막 3년간의 공생애 중에서 마지막 1 6개월을 남겨놓은 시점부터  자기의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손에 잡혀서 죽임을 당하고 제 3일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가르쳤지요. 우리 주님이 십자가 부활에 대한 예언을 세 번이나 드러내 놓고 제자들에게 에언을 했지요. 주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종교 지도자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여야 함을 아셨지요. 우리 주님의 십자가 죽음이 결코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아무런 의미 없이 일어난 일이었는데, 제자들이 의미를 부과했던 그런 죽음도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은 인간이 계획한 죽음이 아니고 저 하늘 위에 계신 우리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 우리 주님은 이것을 명백하게 아셨습니다. 자신은 이 땅에 죽으러 오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목요일 밤부터 금요일 새벽까지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시면서 몸부림 치셨지요: 어떻게 기도했나요? 14:36<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 예수께서는 무엇하기 위하여 오셨나요? 죽기 위하여 오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이 많아서 죽는 죽음, 자연사나 혹은 갑자기 죽는 돌연사 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피흘리면서 죽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성경은 이 점에 대하여 여러 곳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이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벧전3:18<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예수의 십자가 고난 속에 담겨있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는 죄인된 나를 하나님 앞에 두려움 없이 세워주는 길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오직 한길! 우리의 구원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 길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입니다.

 

4.    이것을 깨달아 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3:12-13<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까성문 밖에서 예수께서 죽었는데, 어떤 성입니까? 예루살렘 성을 가리키지요. 예수께서 성 안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 밖에서 아마도 채석장으로 생각됩니다만, 거기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했습니다히브리서 기자도 예수의 죽으심의 목적을 기술하고 있지요. 예수께서 고난 당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거룩하게 하려고 예수께서 죽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죽었다고 보았지요. 같은 의미이지요. 주께서 나에게 이런 일을 행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밖에서 죽었으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13절에서 그런즉이라는 부사를 사용해서 말하고 있지요. 진리가 선포되면 그것을 어떻게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어떤 권면이 나옵니까? 우리는 예수께로 나갑시다. 무엇을 하면서 말입니까? 그의 치욕을 짊어 지고서! 나의 치욕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나를 위하여 당했던 모욕이나 비방이나 수모를 내가 이제는 지고서 나가자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딤후 1:8절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2:3<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전의진목사

2015.04.07 20:26:37

04/03/15 금요 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5/04031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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