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82     

금요기도회 :3/27/2015

대표기도:  대표기도+<선교부>

찬송가:  186(254)

 

1.             삼하12:7-8/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것이 무엇일까? /3:20<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 모든 좋은 것에 더 넘치게 하실 분. 하나님은 치사하고 쫀쫀 하신 분이 아니다. 부모도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을 더욱 넘치도록 주고 싶은 마음이 있지요34:9-10<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4:19<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가웆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의 나라 확장과 나의 구원 완성을 위하여 필요하다면, 우리 하나님이 모든 것을 넘치도록 부어주신다. 하나님 나라에 내 마음 전부가 가 있으면 그 나라가 뻗어 가는 것이 기쁘게 된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기에 내게 더하신다./우리 주님께서도 이렇게 그의 제자들에게 물으신 적이 있었지요. :너희에게 부족함이 있었더냐? 22:35<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로되 없었나이다>  

            8:37/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2.    4:14-16

14절에는 예수는 어떤 분입니까? 예수의 정체? 우리의 신앙고백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성천하신 자, 큰 대제사장!

/ 하나님의아들-너도 하나님의 아들, 나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때에는 그것은 그냥 속성이 그렇다는 말이지요. 마귀의 자녀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예수에 대하여 이 구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은 그런 의미가 아니고 이것은 고유한 타이틀입니다. 그의 신성이 나타나 있는 타이틀이지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또 무엇? 승천하신 자! 하늘에 올라가신 분이라는 말이지요. 승천의 의미는 무엇인가? 옛 문헌에 보면 죽음을 승천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죽음을 문학적으로 승천이라는 말로 표현을 하지요. 예수님의 승천은 그것이 아니지요. 예수께서는 살아 있는 몸으로 하늘 세계에 들어가셨습니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시어, 변화된 몸으로 하늘 세계에 올라가셨지요. 제자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하늘로 가셨지요. 역사적 사실이지, 문학적인 한 표현 양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신경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2천년 전에 하늘을 통과하여서 하나님이 계시는 지고한 곳으로 가셨고, 지금 거기 계십니다. 동화? 신화?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이야기인가? 아니다. 역사적 사건이며 역사적 실재입니다. 구약 남북왕조시대, 북 이스라엘 아합 왕 시대에 엘리야가 그의 제자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하늘로 회리바람을 타고 올라가지요. 예수는 지금 어디 계시는가? 하늘 보좌에 앉아서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또 예수는 무엇? 큰 대제사장! 히브리서의 주제이지요. 예수님이 구약 시대에 면면히 이어져 오던 대 제사장들이 있었는데, 그 대제사장은 유형론적으로 예수님의 그림자였다는 말이지요. 예수의 대제사장 됨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하여 구약의 대제사장들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구약의 대 제사장은 무엇 하는 사람?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서서 중보하는 사람이지요. 인간의 죄를 하나님께 고하고, 하나님의 사죄의 선언을 인간에게 전할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대제사장이지요.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가정법, 권유형이지요. 잡읍시다. 무엇을 말입니까? 우리가 믿는 도리를? 믿는 도리란? 신앙고백을 가리킵니다. 조금 전에 말한 역사적 예수를 무엇이라고 고백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승천하신 자, 큰 대제사장! 사도 신경은 교회의 공식적인 신앙고백이지요. 신앙고백과 간증을 구별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신앙 고백을 쓰라고 그랬더니 신앙 간증을 써 내는 분이 많다는 말입니다. 신앙 간증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내게 하신 일을 소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간증이지요. 예수 믿어 보니 이런 일이 일어나더라. 삶 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 간증입니다. 그 반면에 신앙고백은 예수가 내게는 무엇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나의 전부다! 예수는 나의 구원자다. 예수는 내 죄를 속해 주신 속죄자다. 이렇게 예수에 대하여 규정해 주는 것이 신앙고백입니다.    당신은 예수에 대하여 어떤 신앙 고백을 하겠습니까? 초대 교회는 예수에 대하여 어떤 신앙고백을 했는가? 익두스!익두스가 무엇인가? 익두스는 물고기라는 헬라어이지요. 이 단어는 두문자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구원자라는 단어의 맨처음 그릭 문자를 조합하여서 만든 두문자가 익두스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구원자라는 고백을 담고 있는 글자입니다사도 바울은 예수에 대하여 어떤 신앙고백을 했던가요? 그가 예수에 대하여 사용하던 문구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사도 바울의 애용문구입니다. 예수는 주님이고, 예수는 그리스도(메시야)라는 말입니다. 그의 신앙 고백이 나타나 있는 문구이지요. 우리도 예수를 부를 때에 사도 바울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름으로써 그 말 속에 우리의 신앙 고백을 담을 수가 있습니다.

 

/굳게 붙들자-굳게 잡읍시다. 단단히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을 붙들고 일상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굳게 붙들다는 헬라어 동사는 크라테오라는 동사를 쓰는데 이 동사는 2격이나 혹은 4격을 지배합니다. 2격은 속격이라고 부르고, 4격은 대격이라고 부르지요. 2격 지배를 할 경우에는 한 손에 다 들어가지 않는 큰 물건을 집었을 때에 2격을 씁니다. 그 반면에 4격 지배를 할 경우에는 한 손에 쏙 들어가는 작은 물건일 경우에는 4격 지배를 합니다. 에를 들면 계2:1<에베소 교회의사자에게 편지 하라 오른 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일곱 별을 붙잡고, 크라테오라는 동사를 쓰는데,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담임 목사를 가리킵니다. 일곱 별이 대격 4격이 사용되었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오른 손 안에 꽉 틀어 쥐고 있습니다. 어떤 존재도 그 사자들을 죽이거나 해롭게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탄 마귀, 악령들이 그 사자들을 해롭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철저하게 주님이 보호하시고 있다는 말입니다. 목자들이 바르게 가던, 비딱한 길로 가던, 평신도들은 목자들을 비방하고 공격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이기 때문입니다. 종들의 넘어지고 일어서는 일은 주님의 소관입니다. 평신도들의 소관이 아닙니다. 평신도들은 그 종들을 위하여 기도할 뿐입니다. 비딱한 길로 가면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또한 바른 길로 가면 그 종을 따라서 섬길 뿐입니다. 민수기 12장에 보면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모세가 구스 여인을 첩으로 맞이 하지요. 그랬더니 누나인 미리암이 모세를 대놓고 비방했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어겼기 때문에 욕 먹어도 싸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누구를 책망합니까? 모세를 책망한 것이 아니라, 미리암을 책망했고, 미리암이 그 일로 인하여 나병에 걸리게 되지요. 그래서 모세가 누나 미리암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나님께 탄원하게 되었고, 하나님이 모세의 기도를 듣고 미리암을 고쳐 주셨지요. 모세가 도덕적으로 일탈을 했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미리암에게 종을 비방한 죄를 물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인 목사는 하나님의 종이라, 하나님이 그 종을 주관하십니다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굳게 붙들자에 나오는 신앙고백은 2격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세 개의 신앙고백이 예수에 대한 신앙 고백의 전부인가? 아니지요.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은 성경 뿐만 아니라 교회사 시대를 거치면서 수없이 많이 그리스도인들이 고백했습니다. 그 중에 달랑 세 개가 오늘 본문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 만가지의 신앙 고백 가운데 이 세가지만 확실하게 붙들고 있어도 천국 들어가는데는 지장없습니다. 3가지 가운데 하나만 확실하게 붙들어도 천국 들어 갑니다. 수 많은 신앙 고백 가운데 아주 극히 적은 일부분을 우리는 붙들고 있습니다. 신앙 고백들 중에 일부분을 붙들고 있기에 이렇게 2격을 썻지요. 몇 개 안되는 신앙 고백을 붙들고 있는데, 꽉 잡고 있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스내치 당하겠지요. 누군가가 확 채어서, 쓰리꾼들이, 낚아 채어서 가지고 가 버립니다. 그래서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깨어 있어서 지켜야 한다는 의미가 2격 속에는 들어 있습니다. 깨어 있어서 신앙 고백을 단단히 붙들고 있어서 구원을 놓치지 않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하고 있는 신앙고백을 단단히 지금도 붙들고 있는가

 

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는 죄 없으신 분, 예수는 우리를 동정하시는 분이시다.

 

/예수는 우리를 동정할 수 있는 분이시다. 우리가 어떠하기에? 우리에게는 연약함이 있다. 연약함이란 무엇인가? 육신적이 연약함을 가르키는가? 자연이 우리를 죽이기 위하여 전체가 무장할 필요 없다. 빗방울을 내리지 않으면 죽는다. 햇빛을 안 비추면 모두 죽는다. 육신적인 연약함-병들어서 죽는다. 조그마한 바이러스에 의하여 조그마한 박테리아에 의하여 병들어서 죽는다. 아무리 우람해도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에 걸려서 죽는다. 또 우리 인생들이 어떤 연약함을 가지고 있는가? 영적인 무력함을 가지고 있다. 선을 행하는 데 있어서 무력하고, 기도하는데 있어서도 무력하고, 말씀을 듣고 실천할 수 없는 무력감이 있고, 유혹에 쉽게 무너지기 일수 이지요. 선이 무엇인지를 아는데, 선을 행할 능력은 없기 때문에 탄식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우리의 심령에는 악이 쌓여 있어서 상황만 조건만 만들어지면 악은 그냥 우리의 마음에서 튀어 나옵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나 우리들이 선을 행할 때에는 어떻던가요? 오랬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해야 겨우 남을 돕는 일 작은 것 하나  할 수 있지요. 영적으로 무능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이루어 가는데 우리는 전적으로 능력이 없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정신적으로도 연약합니다. 인간을 영과 육으로 나누어지는 이분법으로 보기도 하고, 삼분법, , 영과 혼과 육으로 보기도 하지요. 혼은 영과 육이 섞이면서 혼의 세계, 정신의 세계가 만들어졌다라고 볼 수도 있지요. 그 정신의 세계, 영적인 측면도 아니고 육적인 측면도 아닌 정신세계 말입니다. 이 정신 세계도 인간은 참 약합니다. 정신도 병이 들지요.우울증이나 강박증 조울증 정신분열증 등등의 수 많은 정신적인 질고들 말입니다. 이런 정신적인 연약은 곧바로 영적인 연약이나 육적인 연약과 연결되어 있지요. 정신적인 연약함이 해결되어야 영적으로 깊은 세계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런 우리들을 동정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33년간 육신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연약함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는 내가 연약함 때문에 울고 있는 나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동병상련! 40일 밤낮으로 금식해 보았기에 우리 주님은 배고픔이 무엇인지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고, 여행을 하면서 목마름이 무엇이고 피곤함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계시지요. 경험해 보셨으니까요. 또한 우리들이 자주 당하는 것 말입니다. 시험과 유혹이 무엇이고, 그 안에 빠져 있는 우리를 동정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도 시험을 당하였습니다. 시험에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시험을 받았습니다. 공생애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금식한 후에 시험하는 자가 와서 3가지를 시험했지요. 또한 적대적의 관계에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비방하면서 시험했지요. 우리 주님은 이런 시험과 유혹 속에 빠져서 헤매며 고생하는 분들을 능히 동정하시면서 도와 주실 수 있습니다. 시험과 유혹은 사탄의 전공분야 입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시험에 빠지고 유혹에 넘어가 버립니다. 그래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시험이 없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시험이 없는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꿈 깨시길 바랍니다. 시험을 없애 달라는 간구가 아니라 시험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승리하게 해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시험 속에 떨어져 있어도 믿음이 떨어지지 않게끔 기도해야 합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 있어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죽지 않고 살아 나옵니다. 주님의 손 밖으로 넘어지고 떨어지면 신앙이 박살 나지만, 주님의 손안에서 넘어지는 것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시험이나 유혹에 성도가 빠지는 것은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혹이나 시험에 들지 않게끔 인도해 달라 간구하고, 시험에 빠졌다면 혼신의 힘을 다해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고 그 시험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16/그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담대히 나아갑시다. 가정법=권유형!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을 무엇을 가리킵니까? 보좌는 하늘 보좌를 가리킵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승천하셔서 앉아 있는 하늘 보좌이지요. 그 보좌에서부터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 나옵니다. 우리는 그 보좌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를 의미합니다. 간구 제목을 가지고 보좌에 앉으신 우리 주님 예수께 도움을 구하기 위하여 나아갑니다. 어떤 자세로 나가는가? 거지 꼴로 동냥을 구하면서 나가는가? 아니다. 담대하게! 담대하게는 무슨 의미입니까? 당당하게 주눅들지 말고, 아들로서 나아가라는 의미이지요. 청구하면 우리 주님이 반드시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기도가 우리 하나님의 도움을 우리 속에 가져 올 수 있는 통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최선이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최선은 내 능력과 지식을 극대화 하여서 내 힘과 능력으로 내 문제를 해결 나가는 것이 최선이 아니다. 이것을 우리는 신념, 혹은 긍정의 힘이라고 말한다. 신념과 신념을 통하여 이룬 것은 우리 주님과 관계 없습니다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내 옆에 와 계시는 주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최선입니다. 주님을 요청하지 않기 때문에 주님의 도움을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을 간구할 것인가? 긍휼과 은혜! 긍휼-불쌍히 여김인데, 감정의 공유와 함께 실제적인 도움을 주었을 때에 긍휼히 여겼다는 말을 씁니다. 단순히 안됐다는 등의 감정 공유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추운날 배고파 떨고 있는 거지를 보면서 불쌍하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감정 공유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밥을 사 먹을 수 있게끔 돈을 줍니다. 이 일까지 해야 성경이 말하는 긍휼이 됩니다. 긍휼과 함께 실제적인 우리 하나님의 도움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주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의 돕는 손길! 어떤 아동이 그린 예수에 대한 그림? 오른 손이 매우 긴 사람을 그렸다. 마틴 루터가 1521 4 16일 보름스 국회 의사당에서 했던 선언? 내가 여기 서 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Hier stehe ich. Ich kann nicht anders. Gott helfe mir. Amen.)  이 말은 보름스에서의 단호한 루터의 선언과 기도를 종합하여 선언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니다. 오늘 이 밤에도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부르짖기를 바랍니다


전의진목사

2015.03.30 14:17:27

03/27/15 금요 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5/03271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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