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22

금요기도회 :1/22/2016

대표기도:<선교부>

찬송가:복음송<날 만나라 날 만나라 그룹 날개 사이에서 날 만나라>

 

1. 고정관념/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유전(전통)을 목숨 걸고 지켰습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이 말입니다. 그들을 율법주의자들이라고 불렀지요. 모법인 오경을 기준으로 삼아서 시행세칙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장로들의 유전, 전통, 혹은 계명이라고 불렀지요. 모두 613조항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39개가 안식일 규정이었습니다. 39개 가운데는 벼라별 규정이 다 있습니다. 그야말로 silly하게 보이는 규정들이지요.  안식일날 여성들은 거울을 보면 안된다. 안식일날 불을 피워서 음식을 조리해 먹으면 안된다. 안식일날 여성들은 바늘을 들고 다니면 안된다. 이런 등등의 조항이 39개나 있습니다. /2:23-28:안식일날 제자들이 밀밭 귀퉁이에서 밀 이삭을 손으로 잘라서 비벼서 밀을 먹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안식일날 해서는 안되는 일을 했다는 말입니다. 남의 밭의 밀을 주인의 허락 없이 따 먹었기 때문에 도둘질 했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날 밀이삭을 따서 비벼서 입으로 쭉정이를 날린 후에 밀을 먹은 것은 노동하지 말라는 안식 규정을 어겼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은 이런 안식일 규정을 몰랐을까요?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제자들에게 안식일날 밀이삭을 잘라서 먹어도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담대하게 밀 밭에서 귀퉁이에 있는 밀이삭을 끊어서 비벼 먹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행동은 바리새인들에게는 분노를 자아내는 행동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비난에 대하여 우리 주님은 제자들의 그 행동이 안식일에 해도 되는 정당한 행위였다고 변호하고 있지요.  구약시대, 특히 다윗에게 있었던 고사를 예로 들어서 변호했었습니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사울에게 좇기고 있었을 때에 놉 땅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 갔지요. 몇일을 굶었기에 시장하던 차에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히멜렉이 다윗과 그의 부하들에게 하나님의 전에서 진설병을 물려 내와서 먹도록 허락했습니다. 진설병은 매 안식일마다 성소에 들여 놓았다가 1주간이 지난 다음에 새 떡으로 교체할 때에 물려 내 옵니다. 그리고는 제사장이 성전 안에서 먹도록 되어 있는 떡입니다. 제사장 외에는 먹을 수가 없는데  아히멜렉은 그 떡을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성전 안에서 먹도록 허락했습니다. 왜 아히멜렉이 율법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그렇게 했을까요? 다윗이 불쌍히 보였기 때문에? 아닙니다. 그것은  진설병을 하나님이 제사장들만이 성전에서 먹도록 율법을 규정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진설병 규정을 그렇게 정한 이유는 진설병이 다른 먹거리처럼 사사로이 세속적으로 남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진설병을 제사장이 아닌 평신도가 부정하지만 아니하면 성전 안에서 먹어도 된다는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히멜렉은 율법을 자구대로 지킨 꽉 막힌 제사장이 아니라 율법을 하나님이 주신 의도가 무엇인지를 근원적으로 살핀 후에 행동에 적용하는 그런 진보적인 제사장이었습니다.  아히멜렉은 당시의 고정관념을 뛰어 넘어서 있는 사색할 줄 아는 그런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제사장이 아닌 다윗과 그의 부하들에게도 진설병을 주어서 먹게 했습니다.

/우리 주님도 아히멜렉처럼 안식일 규정 39가지에 대하여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밀밭 네 귀퉁이에 있는 밀 이삭을 손으로 잘라서 먹을 수 있게 율법에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장로들의 유전은 밀이삭을 잘라 먹는 것이 안식일에는 해서는 안된다고 금해 놓았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누가 금지해 놓았습니까? 사람들이 조항을 만들어서 그것을 어기면 율법을 범했다고 정죄했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밀이삭을 잘라서 먹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기에 인간이 만든 안식일 규정으로 금지할 수 없다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배가죽이 등뼈에 붙들 정도로 굶주려 있는데,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인하여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밭 네 귀퉁이에 있는 밀이삭을 잘라서 먹는 것은 금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굶어 죽어가는 데도 안식일이 하나님의 날이라고 하여서 안식일 위하여 죽어 가는 일은 옳은 일이 아니다라고 우리 주님이 말씀하고 있지요. 하나님이 안식일을 주신 것은 사람을 위하여,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사람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하여 주셨다는 것을 알라고 우리 주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27<인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서 안식일날 세속적인 일들, 돈벌기 위하여 장사하고, 직장의 일을 하는 것도 허용이 됩니까? 안되지요. 왜 안됩니까? 안식일은 내 날이 아니라 누구의 날입니까? 우리 하나님의 안식일입니다. 누구의 소유? 하나님의 소유!  구약 성경에도 안식일날 장사하는 사람들이 호된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지만, 동시에 그 날은 누구의 날입니까? 우리 주님의 날입니다. 그래서 28절에는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안식일이 주님의 날이기에 주님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해야 하는데, 주님을 기쁘게 하는 일을 주일날 할 때에 우리의 기쁨이 배가 된다는 말입니다. 안식일날, 즉 주일날, 내가 세상일을 열심히 하면서 돈버는 일을 하는 것이 나의 기쁨을 배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예배하고 이웃을 섬기는 일이 나의 기쁨을 배가한다는 말입니다.

 

/직후 컨텍스트인 마가복음 3장에는 안식일에 손마른 사람을 우리 주님이 고치셨습니다. 손 마른 사람을 회당 한 가운데 세우시고 그 사람에게 네 손을 내밀라고 명하심으로써 그 사람의 손을 고쳤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가재미 눈을 하고서 예수가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가 안 고치는 가를 주시했습니다. 예수께서 고침을 확인하자 안식일 규정을 어기는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를 생각하게 되었지요. 왜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화를 냈을까요? 안식일 39개의 규정 가운데는 안식일날 치료행위를 할 수가 있는데, 병자에 대하여 진통제는 줄 수 있지만, 약을 주어서 병에서 회복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긴급상황이라면… ! 심혈관계 질병이라면, cpr안하면 그 자리에서 죽지요. 또 뇌혈관이 막혀서 stroke를 맞았는데,  안식일날이라고 치료하지 않는다면 죽지요. 사건과 사고로 의사가 손을 안되면 죽는 그런 상태라면 안식 규정 때문에 손을 안되겠습니까?  그래도 되나? 안식 규정에는 의사가 환자를 진료해서 병을 낫게끔 한다면 안식 규정 위반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 손마른 환자를 안식일날 고쳤습니다. 왜 고쳤을까요? 안식일 규정을 어겨 가면서 말입니다.  우리 주님이 바리새인들과 논쟁과 싸움을 즐기는 타입이기 때문에 안식일날 환자를 고쳤나요? 아니지요. 우리 주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아주 깊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안식일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안식일을 통하여 영적으로 육신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는 인생들을 치유하여서 회복시킬려고 인생들에게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떠나 있는 이 고장난 우주를 치유하고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안식일 제도를 주셨지요. 이런 하나님의 의도를 바리새인들은 알지 못했기에 그저 율법적인 규정을 많이 만들어서 지키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인 줄 알았지요. 그래서 우리 주님이 이 손 마른 사람을 치유하면서 안식일날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옳으냐 하면서 책망하셨지요. 안식일날을 우리 인생에게 제정하신 우리 하나님의 의도가 그렇다면 안식일날 오히려 치유와 회복이 다른 엿새날 보다 더욱 활발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안식의 정신입니다. 글자 자구에 붙들려 있는 바리새인들! 그들의 신앙은 고정관념에 꽉 붙들려서 신앙생활하는 아주 답답한 인사들입니다.

 

/우리들은 주일을 어떻게 보내십니까? 주일 성수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바리새인처럼 보내십니까? 아니면 아히멜렉처럼, 우리 주님 예수님처럼 진보적인 자세로 신앙생활하십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리새인들이 자기네들의 안식 규정을 글자 그대로 집착하여 지키내듯이 주일 성수 규정을 정해 놓고 그것을 글자 그대로 지키는 것이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주일 성수는 안식 개념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주일 성수는 주일날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예배드리고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는 일이 핵심입니다. 주일날 식당 가면 안되고, 주일날 마켓에 장보러 가면 안되고, 월요일날 시험이 있어도 주일날 공부하면 안되고 등등을 주장하시면서, 교회 오는데 택시 타도 되고, 주일날 회사일로 출장가는데 가도 되는가? 직업 자체가 서비업이기 때문에 주일날도 업무를 보아야 한다면 그 사람은 주일 성수를 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의사 선생님들이 주일날 예배 드린 후에 가난하고 헐 벗은 사람들을 오후에 무료 진료를 한다면 그것은 안식하라고 하신 주일 성수를 어긴 것인가? 아니지요. 우리 는 주일날 찬양대도 하고, 주일학교 교사로 수고하고, 또한 부엌에서 요리도 하면서 우리의 이웃을 섬깁니다. 이것도 안식을 어긴 것이지요. 그러나 주일성수는 이렇게 섬기는 활동을 주일날 하는 것이 거룩하게 보내는 일이지요. 여러분들은 주일날을 어떻게 지킵니까? 건강하게 지키십니까?  하나님께서 주일날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의도를 파악하여서 그 의도에 맞게 생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일날은 주일 예배를 드리는 일이 주일 성수의 핵심입니다. 그 외의 일들은 어느 정도 자유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주일 예배 후에 마켓 들러서 장보고 집에 가는 일,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예배를 드리고 있는 데~      

 

    

2. 아사 왕 시대의 부흥/역대하 14-16/아사왕은 누구인가?  솔로몬 이후에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누어졌다. 남쪽 유다는 솔로몬-르호보암-아비얌-아사로 왕통이 이어진다. 아사 왕은 분열 왕국에서 세번째 왕이다. 주전 911년부터 주전 870년까지 통치했다. 그가 왕으로 있는 기간 동안 북이스라엘과 내내 긴장 관계 속에 있었다. 대하 15:5-6<그 때에 온 땅의 모든 주민이 크게 요단하여 사람의 출입이 평안하지 못하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서로 치고 이 성읍이 저 성읍과 또한 그러하여 피차 상한 바 되었나니 이는 하나님이 여러 가지 고난으로 요란하게 하셨음이라>나라 안팎이 시끌적 버끌적 거리면서 소란했다는 말입니다.  긴장.전쟁 가운데서도 아사 왕 시대에 유다의 성읍들은 무엇을 누렸나? 전쟁으로 인한 참화가 없었고 전쟁 가운데서도 오히려 유다의 성읍들이 평안을 누렸다. 대하 14-16장에는 아사왕 시대를 이야기 하면서 평안했다고 여러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볼까요? 14:5-6절에는<~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 지라~> 대하14:7<~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하고~> 대하15:15<~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평강을 누린 비결이 무엇일까요? 평안, 평강은 샬롬인데, 무엇 때문에 이런 평강이 유다 왕국에 왔습니까? 하나님의 선물이기는 하지만, 그 선물을 받을 만한 조건을 아사왕은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대하 14-16장에는 핵심적인 구문이 반복적으로 출현합니다. 그것이 해답입니다.대하 14:4, 7, 152,4, 12, 13,15-여호와를 찾았다(두 동사:다라쉬, 바카쉬)는 말입니다.  이 두 단어는 열심을 가지고, 의지적으로 열정적으로 그들의 하나님을 찾는다는 말입니다. 또 다른 핵심적인 구문인 대하14:11<~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16:8<~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영어로 말한다면 rely on the Lord!의지한다. 기댄다는 의미입니다.  이 두개의 동사: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한다! 이 두개의 동사가 아사왕과 온 유다가 했던 일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20년간 유다에 평화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 육체 밖에 엄연히 살아 있기에 그 하나님을 찾고 그에게 우리의 삶의 전부를 의탁한다면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할렐루야-아멘!

 

/아사왕 시대에 부흥, 평강의 시대가 도래한 원인은 종교개혁을 강도높게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종교 개혁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것이고, 그 종교 개혁결과는 유다 사회의 개혁을 가져 옵니다. 아사왕의 종교개혁은 오뎃의 아들인 예언자인 아사랴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했기 때문입니다. 대하15:1-2<하나님의 영이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하시매 그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하나님의 영? 성령! 오늘 우리들이 예수 믿을 때에 우리 하나님이 주신 바로 그 성령님이 예언자인 아사랴에게 임하였고, 아사랴는 성령 계시를 전하였습니다:너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겠지만, 너희가 하나님을 버린다면 하나님도 너희를 버린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마음 가짐과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이와 비슷한 소리를 우리는 삼상2장에서 들은 적이 있지요. 삼상2:30! 제사장 엘리의 가문이 타락했을 때에 하나님이 어떤 무명의 예언자를 통하여 엘리 가문에 저주를 선포할 때에 하셨지요:나를 존종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이런 메시지를 우리 주님도 말씀하셨지요. 요한복음12:26<~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여기시리라>  예수의 형제인 야고보도 이렇게 말했지요. 3:8<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우리가 가까이 해야되고 우리가 찾아야 하고 우리가 섬겨야 할 분이 누구인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하여진 하나님을 찾아야지요. 마호메트를 통하여 전하여진 알라신을 찾는게 아니지요. 요즈음 이상한 학자가 알라나 여호와나 같다는 망발을 해 대고 있지요. 종교 다원론에 입각해서 하는 소리입니다. 그 소리는 무시해도 좋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하여진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다른 하나님은 가짜며 거짓이다. 창조주 그 하나님으로부터 존귀하게 여김을 받고 싶은가? 예수님을 온 맘을 다해서 섬겨보라 그러면 하나님이 그를 존귀하게 여기신다.  하나님으로부터 존귀하게 여김을 받으면 세인들로부터 높임과 찬사를 받게 될 것이다. 인생 승리의 비결이 예수 섬김에 있다. 시간과 정열을 예수께 투자해 보라! 주님이 그런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신다. 주님을 찾고 섬기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다. 17:7-8<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정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모든 일에 형통함이 있게 됩니다.

 

/아사왕이 예언자 아사랴의 예언에 고무되어서 종교개혁을 단행했지요. 대하 15:8-19절까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8절에는 무엇을 없앴습니까? 가증한 물건들, 즉 혐오스러운 물건들, 이것들은 유다의 성읍에 놓아 둔우상들을 가리킵니다. 얼마나 많았을까요? 300년 후이긴 하지만 선지자 예레미야에 따르면 유다 백성이 섬기는 우상이 유다의 고을 수 만큼이나 많았다고 하지요. 아사왕은 성소에 있는 제단을 보수했습니다. 온 유다 지역에 하나님 여호와를 믿고 섬기지 않는 자는 죽이기로 유대인들이 맹세했습니다. 700마리와 양 7천마리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습니다. 북쪽 이스라엘 지파인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와 남쪽에 있는 시므온 지파의 사람들이 경건한 아사왕에게로 넘어 왔습니다. 부흥이 일어난 것이지요. 아사왕은 자기의 모후인 태후가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섬기고 있기에 태후의 자리에서 좇아 내었고, 아세라 목상을 기드론 시냇가에서 태워 버렸습니다.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하나님을 향하여 온전하였더라고 평가되어 있습니다. 예언자 아사랴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아사왕이 마음에 담아 두면서 그 말씀을 따라서 종교 개혁을 하면서 온 유다 백성이 호응하면서 온 백성이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조상들의 하나님을 찾기로 언약하였지요. 그랬더니 20년간 전쟁이 없어지고 태평성대를 맞이 하게 되었습니다. 평화! 하나님이 유다 백성에게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 변화가 일어났지요.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운동, 회개의 운동이 일어났지요. 이것이 부흥운동입니다. 우리의 삶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개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온 사회 안에 평화가 깃듭니다. 하나님을 찾아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맺어지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바른 관계가 맺어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공의로운 사회로 바뀌어 가게 되지요. 기독교의 부흥은 교회 울타리 안에서만 머물러 있어서는 참된 부흥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복을 받아서 뜨거우지고 삶의 의욕을 느끼고 교회일 열심히 잘하는 것으로는 부분적인 부흥일 뿐입니다. 참된 부흥 운동은 교회 안에서 시작하여서 공의와 정의가 실현 되게끔 사회 속으로 파급되어 나가야 합니다.


김영호목사

2016.01.25 09:21:48

2016년 1월 22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6/01222016.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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