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10

금요기도회 :10/30/2015

대표기도:<선교부>

찬송가:461(519)

 

1. 할로웬 나이트 축제에 왜 우리 아이들을 trick or treat행렬에 가담시켜서는 안되는가? 무엇이 문제이길레 우리는 <할렐루야 나이트>로 맞불을 놓고 있는가? 시리어스하지 않고, 하나의 전통적인 축제가 아닌가하면서 아이들을 할로우윈축제에 참석시켜야 하는가? 귀신 복장을 아이들에게 입혀서 이 집 저 집을 다니면서 trick or treat을 해야 하는가? 명백하게 그것은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적어도 trick or treat라는 이벤트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안다면 아이들이 그 일을 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할로윈 축제에는 귀신의 가르침이 들어 있다.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영원세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1년 동안 이 세상에 머무는데, 1년 동안 망자(죽은 사람)의 영혼이 거하고 싶은 살아 있는 사람의 육체를 찾아서 들어가야 한다는 가르침이 할로윈 축제 속에 들어 있습니다.  주전 6세기에 켈트족에 의하여 할로윈 축제가 시작되었지요. 10/31일이 여름이 끝나는 날이고 새해가 11/1일인데 이날 죽은 자의 영혼이 자기가 1년 동안 거할 육체를 선택하는 날로 여긴다는 겁니다. 망자(죽은자)의 영이 산 자들을 괴롭히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런 할로윈 축제를 벌리지요.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망자의 영(죽은 자의 영)은 더 이상 살아 있는 인간들과 관계를 갖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땅 위에 있는 살아 있는 인간의 생사화복에 대하여 망자의 영은 더 이상 관계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은 이미 죽은 조상들이 후손에게 덕을 끼치게 하기 위하여 했지요(죽은 조상에 살아 있는 후손에게 덕을 끼치는 것을 음덕이라고 부르지요. 그래서 열심히 제사 드리는 것 아닙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제사 드리지 않는 이유가 죽은 조상들이 산 후손에게 생사화복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의 영은 더 이상 산자에게 나타나거나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설교 본문에 나오는 엔돌에 있는 무당(강신술사)이 사울 왕의 요청으로 죽은 사무엘의 영을 불러 올리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엔돌의 무당이 불러 올린 것은 실제적으로 사무엘의 영이 아니라 사무엘의 영을 가장한 악령(어둠의 영)입니다. 사울과 또한 엔돌의 접신녀가 가진 기억을 소재로 사용해서 사무엘의 목소리를 꼭 생시 그대로 흉내내면서 그리고 사무엘의 외적 모양을 만들어서 나타난 것이지요. 실제로 천국 올라가 있는 사무엘의 영이 나타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만드는 영적인 법이기 때문에 산자와 죽은자가 서로 교제할 수가 없지요. 만약 하나님이 산자와 죽은 자가 교류하도록 만들었다면 천국의 실상도 그리고 지옥의 실상도 하나님 허락 없이도 죽은자의 영이 땅 위에 살아 있는 자들에게 알릴 수도 있겠지요.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음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영혼이 육체를 떠나서 천국이든 지옥이든 들어갑니다. 1년간 방황하고 배회하지 않습니다. 죽은 자의 영은 살아 있는 자의 세계와는 단절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귀신은 이 땅에 살아 있는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망자의 영은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 들어 가지 못하지만, 귀신, 악령은 들어갑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두 번째로 귀신이나 망자의 영이 자신의 집을 방문 할 때에 그런 영적인 존재들을 어떻게 집 안에 들어 오지 못하게 하는가? 할로윈 축제에서는 귀신이 자신의 집에 들어 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두가지가 있다고 하지요. 그것이 trick or treat! 트릭을 써서 집 안에 들어 오지 못하게 하거나 혹은 귀신을 융성하게 접대함으로써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지요. 인생들이 아무리 영민하고 머리가 좋다고 하더라도 귀신을 따라 잡을 수 있습니까? 웃기는 노릇이지요. 우리보다 높은 차원에 있는 영물이 땅 위에서 육신을 가진 그런 인간만 못하겠습니까? 인간이 트릭을 쓰고 있다는 것을 영물들인 귀신들은 대번에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귀신에게 호의를 베풀고 환대한다고 하여서 원래부터가 나쁜 종자들인 귀신들이 땅위에 살고 있는 인생들에게 호의를 베풀겠어요? 아니지요. 그들은 본상상 그렇게 못합니다. 그러니 그 영들을 악령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온갖 귀신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이기고 정복하는 것이라고 씌여져 있습니다. 10:17-20---사탄과 귀신들!  원수-뱀과 전갈로 상징화되어 있다. 우리들의 영적 전투에서 실제적으로 상대하는 원수는 악령들인데, 귀신을 가리킨다. 예수는 누구인가? 악령들의 윗대가리인 사탄을 이기셨다. 그러니 주 예수의 이름으로 사탄의 부하들인 악령들이 항복할 수 밖에 없지요. 귀신들이 우리들보다 강하지만, 귀신들은 우리들 뒤에 계시는 주 예수를 보기 때문에 항복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는 좇겨간다! 빌립보 지방에서 사도바울이 점하는 귀신 들린 여자에게서 귀신을 어떻게 쫓아 내었나? 트릭을 썼나? 아니면 귀신을 환대했나? 어떻게? 16:18<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하니 귓니 즉시 나오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했고, 명하니 귀신이 즉시 순종했다. 우리에게도 이런 권세가 주어졌는데, 할로윈 나이트에 trick or treat를 해서는 안되지요. 재미 있다고 해서도 안되지요. 악은 모든 모양이라고 버려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좇겨난다.

 

2. 신앙의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 말씀에 두고 있는가? 아니면 감정에 두고 있는가? 의외로 자신의 신앙의 뿌리를 감정에 두고 있는 분들이 많다. 감정에 신앙의 뿌리를 두고 있는 분들은 상황 따라서 신앙의 기복이 생기게 되어 있다. 신앙 때문에 극단적으로 힘든 상황이 생기면 신앙을 떠난다. 베드로의 경우? 그리고 12명의 주의 제자들? 26:31-35<그 때에 예수께서 제잗르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베드로의 말---모두 주를 버릴 지라도 나는 결코 주를 버리지 않겠나이다.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실제적으로 결정적인 자리에서 베드로는 세 번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그것도 누구 앞에서 대제사장 앞에서? 아닙니다. 베드로의 체면이 말이 아니지만, 천한 계집 종 앞에서 자신은 예수의 제자가 아니다라고 부인했지요. 대제사장의 위엄에 눌려서 그랬더라면 체면이 덜 구겨지겠지만 계집 종 앞에서 그런 일을 벌려 놓았으니 베드로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나? 감정에 바탕을 둔 믿음 때문이었다. 가만 있었더라면 중간이나 가지 나서다가 그만 봉변을 당했습니다. 부흥회 때에도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지요. 감정이 뜨거워져서 내가 무엇 무엇을 하겠다고 기도한 후에 감정이 식고 나면 내가 언제 그랬는가하면서 못하게 되지요. 하나님께 이 한 목숨 드리겠다고 기도했지만 감정이 식어지면 목숨 바치기는 고사하고 조그마한 것 하나 주께 내 놓는 것도 아까와서 할 수 없게 되지요. 그러나 신앙의 뿌리를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감정이나 상황이 바뀌어도 신앙은 요지부동입니다.


주전 8세기 북왕국 이스라엘 땅 이스르엘이라는 평원에 살던 나봇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나봇이라는 사람은 이스르엘이라는 곳에 극히 기름진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포도원을 아합이라는 이스라엘 왕이 무척이나 탐을 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별장 곁에 있어서 그것을 자기가 소유하여서 나물 밭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봇에게 그것을 팔라고 요구했습니다. 돈을 후하게 주겠다고 말입니다. 만약에 돈 받기가 싫으면 다른 땅을, 아마도 더욱 크고 넓은 땅을, 주겠다고 제의했습니다. 권력 있는 왕이 이런 소리를 한다면 그 나라의 백성이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냥 빼앗아 가도 그냥 두 눈 뜨고 볼 수 밖에 없지요. 돈을 후하게 쳐서 주겠다는 데도 거부합니다. 나봇이라는 이 인물이 왕의 뜻을 거부합니다. 그랬더니 아합 왕이 사마리아 왕궁으로 돌아가서 밥을 먹지 않고 침상을 깔고 누웠습니다. 아이들이 투정하듯이 말입니다. 왕후인 이세벨이 왕에게 묻습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렇냐고? 그랬더니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왕후가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할 테니 왕은 일어나서 밥을 먹으라고 말하지요. 이세벨이 음모를 꾸며서 나봇을 죽이지요. 성경은 침묵을 지킵니다만, 나봇만 죽였겠어요. 나봇이 죽으면 포도원을 물려 받을 아들들도 모두 죽였겠지요. 그래야 포도원을 차지 할 수 있으니까요? 자 그러면 왜 나봇이 아합의 제의를 거절했을까요? 권력자인 아합의 제의를 거절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도 말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다고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지파를 따라서 그리고 각 지파는 각 가문에 땅을 분배했습니다. 그 땅은 그 지파와 가문에서 자손 만대까지 유업으로 물려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율법입니다. 그런 율법의 말씀을 지키려고 하니까 천만금을 준다고 해도 나봇이 포도원을 왕에게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을 영접했기 때문에 그 말씀을 지키다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말입니다. 나봇은 말씀을 파수하려다가 죽었습니다. 순교자입니다. 말씀 때문에, 신앙을 지키려다가 박해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순교자입니다. 말씀에 토대를 두고 있는 신앙인은 그 말씀을 지키려다가 박해가 일어나서 죽는다 할지라도 말씀을 지킵니다.


요즈음 보면 선교지에서 심심찮게 선교사들이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 사고로 죽거나, 전기 수리를 하다가 감전 사고로 죽는다더거나, 이런 각종 사고로 죽는데, 그것을 순교했다고 떠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순교가 아닙니다. 순교는 박해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지키다가 돌에 맞아 죽고, 말씀을 지키다고 옥에 갇혀서 죽고, 말씀을 지키다가 굶어서 죽고 하는 일들이 순교입니다. 말씀에 깊이 뿌리를 박는 신앙인이 되어야 말씀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환난과 풍파를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지금 평안한 이 시점에서는 앞으로 환난 풍파가 다가 와도 넉넉하게 내가 이길 수 있겠다고 장담하지 마십시요. 환난 풍파가 생기면 신앙을 잠재우고 도망 갈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러한 때가 온다면 신앙을 지켜 내기 위하여 지금부터 훈련하지 않으면 이겨 낼 수 없습니다. 비바람 찬서리를 견딘 나무가 거목이 되는 법임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거목이 되기 위하여 오늘 금요 기도회에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 가운데 영혼이 자라 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씀도 변함이 없는 영원한 말씀이시다. 주전 8세기 예언자 이사야의 입에서 나온 말씀: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3. 예수님의 족보/1:1-17-예수는 아브라함의 42대 자손으로 기록되어 있지요. 예수는 다윗왕의 28대 자손입니다. 예수는 왕손이지요. 예수는 뼈대 있는 가문의 후손입니다. 성경에는 구약 성경에는 족보가 참 많이도 실려 있습니다. 족보는 성경을 읽다가도 건너 뛰기가 일수입니다. 읽기에는 재미가 너무 없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이 재미 없는 족보을 읽다가 구원 받은 분도 있다지요. 예수께서 뼈대 있는 왕손이기에 예수를 믿어서 구원 받은 분도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이나 혹은 말들이나 혹은 조사 하나라도 그것을 읽을 때에 상황 따라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 같습니다. 보통 구약의 족보에는 남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자는 족보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마태복음 족보에는 여자가 무려 5명이나 기록되어 있어서 거론되고 있습니다. 어떤 여자들인가요? 믿음에 있어서 탁월한 여인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첫 번째로 마태복음 족보에 나오는 여성은? 3<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유다가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 다말이 누구입니까? 유다의 부인입니까? 아니지요. 유다와 다말은 어떤 관계?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시아버지인 유다와 며느리인 다말 사이에서 쌍둥이 아들 베레스와 세라가 태어났는데, 그 장자인 베레스가 메시야의 혈통을 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어찌 삼류 주간지에나 나올 만한 사건이 포장도 안된 채로 족보에 당당하게 올라져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창세기 38장을 읽으면 그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38장에는 유다는 세 아들을 두었습니다. 유다의 부인이 수아였는데, 수아는 아들 셋을 낳고 일찍이 죽었습니다. 홀아비인 유다는 맏아들 엘을 다말과 혼인 시켰습니다. 그런데 엘이 그만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수혼법이라는 법이 통용되던 시절입니다. 이 수혼법은 시동생이 형수와 결혼하는 법입니다. 엘이 죽었기에 그의 동생인 오난이 형수인 다말과 결혼하여서 자식을 낳아야 합니다. 그런데 태어난 자식은 누구의 소생이 됩니까? 오난의 자식이 아니라 누구? 형인 엘의 자식이 됩니다. 그런데 오난이 형수인 다말과 결혼한 다음에 자식을 낳기를 거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난이 마져도 죽였습니다. 오난이 자식을 낳기를 거부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돈 때문입니다. 자식을 낳지 않으면 아버지 유다가 죽으면 유산의 2/3를 자기가 차지 하는데, 자식이 태어나면 1/4밖에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자식을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런 소위가 하나님 보시기에 괘씸한 것이 되었지요.그래서 죽었습니다. 이제 유다의 입장에서 봅시다. 다말이라는 며느리가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살이 끼인 여인이라서 집안에 잘못 들여 놓았기에 두 아들이 비명횡사해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아들마저 죽자 이번에는 누구를 또 다말에게 남편으로 주어야 합니까? 막내 아들 셀라를 그녀의 남편으로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두려웠지요. 셀라마저 죽는다면 대가 끊기는 참변을 당하게 되지요. 그래서 며느리 다말을 친정으로 보냅니다. 셀라가 자랄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하면서 친정으로 보냈지요. 그러나 셀라가 장성했지만 유다는 셀라를 다말에게 주고자 하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말이 어떻게 합니까? 다말이 창기의 복장을 하고서 시부인 유다를 유혹하여서 성관계를 맺었고, 자식을 낳았지요. 그 자식이 쌍둥이입니다. 베레스와 세라입니다. 며느리가 불륜으로 애를 가졌다는 소문이 유다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유다는 대노하여서 며느리를 불살라 죽이고자 했습니다. 며느리 다말이 창기의 복장으로 유다에게 들어 갔을 때에 약조물을 챙겼지요.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을 알고서 유다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담보물로 잡아 두었지요. 그것을 내 보였더니 유다가 자신의 것인줄을 알아 보았지요. 그래서 다말은 화를 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유다가 며느리에게 이렇게 말하지요:그는 나보다 옳도다! 며느리의 행동이 자기의 행동보다 옳았다라고 유다가 말하지요.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자신의 행동은 그저 막내 아들 셀라의 목숨을 구하려는데 집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하면 장자로 이어지는 가문의 대가 끊어 지게 됩니다. 그러나 다말의 행동은 자신이 불에 타서 죽을 지도 모르는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대를 이어야 겠다는 결심으로 그런 일을 저질렀음이 유다의 옹졸한 생각보다는 훨씬 의로웠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다말이 시부를 유혹해서 아이를 낳은 것은 명백한 죄악입니다. 그러나 죄악 그 뒷면에 있는 숭고한 생각-자신의 한 몸을 희생해서라도 가문의 뒤를 이을 후사를 남겨야 한다는 것, 공동체를 먼저 생각했다는 점은 찬양을 받아 마땅합니다. 다말송은  다말 애도송이 아니라 <다말 찬양송>!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은 욕을 먹고 불에 타 죽은 위험도 감수했다는 점에 있어서 그 여인은 위대한 여인이었습니다. 굉장한 믿음이 있는 여인입니다. 누가 다말, 이 여인에게 간음했다고 돌을 던지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다말에게서 태어난 베레스라는 아들을 메시야의 가계에 넣어 주셨습니다. 당신은 주의 일을 하면서 이렇게 맞아 죽을 각오가 되었는가? 죽음을 각오한 용기 있는 믿음! 주님이 내게 맡겨 주신 일에 대하여 누가 내게 싫은 소리 한 마디만 해도 움찔 거리면서 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가? 다말에게서 우리는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주의 일을 행하여야겠다는 각오를 배워야 합니다. 


마리아 송-1:16<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마리아는 마1:18절에는 요셉과 약혼한 사이인데, 동거하기 전에 태중에 아기를 가졌는데, 그 애기는 요셉의 애기가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장에 의할 것 같으면 천사가 마리아를 방문했습니다. 처녀인 마리아가 그의 남편과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수태하게 되리라는 소식을 천사가 전합니다. 1:38<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니라>죽음을 각오한 순종을 했다.마리아가 이것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자신의 행복 전체를 날려 버리는 사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남편인 요셉에게 버림을 당할 것이고, 조금 더 일이 나쁘게 진행된다면 돌에 맞아 죽을 수가 있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간부는 율법에 따라서 돌로 쳐서 죽이는 형벌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천사의 전하는 수태고지를 받아 들입니다. <마리아 송>-송덕! 마리아의 덕을 기리는 찬송-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은 아니다. 만약 마리아가 거부했다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여자를 찾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마리아는 그냥 요셉과 평범한 가정을 이루어 한평생 살다가 천국 들어갔을 것이다. 주의 일-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위하여 자신의 행복 전부를 걸었던 여인이었다. 당신은 주의 일을 어떻게 여기고 있나?


김영호목사

2015.11.02 18:48:30

2015년 10월 30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5/10301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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