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09

금요기도회 :10/23/2015

대표기도:대표기도+<선교부:+MK중보기도>

찬송가:214(349)

 

1. 지난 주에 예배에서 예배의 마침은 축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축복은 예배의식에 있어서 하나의 마침 순서가 아니다. 목사가 예수님을 대신해서 공동체에 축복하는 것이다. 성삼위가 거론되지요. 성삼위의 이름으로 공동체에 축복을 빕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복을 내려 주십니다. 구약 6장에는 아론식 축복이 기록되어 있지요. 신약식 축복은 고후13:13<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성부, 성자, 성령-성삼위의 이름이 거론되지요. 그러니 축복이 얼마나 장엄합니까? 구약식 축복은 6:24-26절에 기록되어 있지요. 여호와의 이름이 세번 거론되지요. 우리는 주일 예배에서 종류의 축복을 모두 사용합니다. 보통 예배에서는 신약식 축복, 바울식 축복을 사용하고, 성만찬 예배에서는 아론식 축복을 사용하지요. 이것을 이상하다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 제사장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하라고 말씀하셨고, 내용도 24-26절까지 주었지요. 이렇게 제사장들이 축복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제사장이 빌었던 복을 내려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27<그들은 이같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우리들의 예배에 있어서 예배의 마지막 순서에 들어 있는 축복을 받지 않고 설교 끝난 다음에 튀는 분은 온전하게 예배를 드렸다고 말할 있습니다. 목사가 손을 들어서 예배의 마지막에 축복하는 것은 예수를 대신하여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교회 사무가 바빠서 설교만 듣고 예배의 자리를 뜨면 안되겠지요. 이렇게 바쁜 분들을 위하여는 예배 순서에서 맨처음에 축복을 넣는 것이 좋겠지요. 먼저 넣으면 문제가 있어요. 지각하는 분들에게는 문제가 되지요. 축복은 역시 나중에 있는 것이 맞습니다.

/축복이 마친 다음에 후주가 나올 때에는 모든 예배가 종결되었기에 영적인 만족이 마음에 가득차 있게 됩니다. 그러면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집니다. 그냥 오르간의 후주에 맞추어서 영적인 만족을 즐기면 됩니다. 후주가 나오는데 눈물, 콧물로 기도하시는 ! 이런 분은 예배드리는 동안 온전하게 예배를 드리지 못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2. 지난 주에 하나님께서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는다고 요한 복음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성도를 찾아서 무엇하시려고 합니까? 상과 복을 주시려고 그러지요. 

바른 예배의 축복/마태복음15:21-28/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인 하나가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 버린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worshiped/프로스퀴네오)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믿음이 크도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가나안 여인은 어떤 여인? 이방인입니다. 여인의 청구에 대한 예수의 태도:처음과 나중이 정반대입니다. 처음에는 무관심을 표명하셨고 나중에는 여인의 청구를 기꺼이 수락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태도가 그렇게 바뀌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처음에는 예수를 그냥 위대한 의원 정도로 생각하고서 여인은 예수의 뒤에서 소리 높혀 외쳤습니다. 주님이 눈길을 주지 않자, 예수 앞으로 다가와서는 엎드려 절했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예수께 절했다는 것은 경배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았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나서 간구했습니다. 예수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예배드릴 야단법석을 부려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예수가 누구인지를 명백하고 알고 분에게 바른 예배를 드릴 때에 우리의 마음의 소원이 가납될 있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예수는 무엇인가? 내게 예수는 무엇이다!  경배 받아야 하나님이시다.

/31:19/”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주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주님을 경외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고자 하는 은혜를 하늘에서 이미 준비해 놓았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주님께 나가면 하나님이 예배의 자리에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3. 백부장의 믿음/8:5-13

/백부장은 누구입니까? 이름도 드러나지 않은 이방인입니다. 병사 100명을 거느리고 지휘하는 로마의 장교입니다. 이방인이 여호와 하나님도 믿고 예수도 믿었다는 아닙니까?  사도 시대에도 고넬료라는 백부장이 있었지요. 모두 믿음이 탁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칭찬한 믿음입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이스라엘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도대체 어떤 믿음이었길레, 우리 주님이 칭찬했을까요? 하인이 중풍병, stroke 맞아서 자리 깔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서 괴로워하고 있길레 우리 주님께  나아와서 하인을 치료해달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주님이 너의 집에 가서 내가 고쳐 주리라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랬더니 백부장이 주께서 집에 들어 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충분치 못하다) .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집에 들어 오는 것을 감당치 못하겠다는 말인가? 예수께서 지존이신 분이고 자신은 분에 비하면 스스로 무가치한 존재라고 느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자신을 낮추는 것은 병적 자존감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진정한 겸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있는 고백입니다. 우리 주님은 지존! 상천하지의 !  만왕의 , 만주의 <19:16> 백부장에게 있어서 로마황제는 주라고 불렀는데, 그런 로마 황제보다 더욱 위엄을 가지신 분이 예수라고 고백하는 신앙이지요.     <참고로 휘카노스라는 말이 세례요한이 3:11절에서 예수에 대한 자신의 신앙고백을 때에 썼던 단어입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겟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세례요한의 이 말은 자신은 종들이 하는 주인의 신을 들어 주기에도 못 미치는 그런 신분이라고 이야기하지요. 그만큼 예수의 지위와 위엄은 상상이 안될 정도로 높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바로 이방인 백부장이 예수에 대한 신앙 고백이 세례요한과 비슷한 그런 신앙고백입니다. 이런 지존자가 낮고 천한 자신의 집에 들어 오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말이 아닙니까? 다만 (이 자리에서) 말을 하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 주님이 한마디의 명령만 내리면 그대로 될 것입니다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어떻게 이런 빛나는 믿음의 출처는? 그는 그의 삶 속에서 경험으로 하나님을 경험했다. 군대 조직에서는 <상명하복>이 근간입니다. 군대에서 하극상은 군대 조직을 뿌리채 뒤흔드는 것이지요. 9절 한 번 보도록 하지요<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이런 조직 속에서 한 평생을 산 백부장이기에 예수께서 만왕의 왕이시니 종들에게 명하면 그대로 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당신의 믿음은 어떤 상태인가? 우리 주님이 말씀하고 명하셨는데도 그것이 이루어 질 것인가 의심하고 있지 않은가? 그게 진짜 될까하는 의심말입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경험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발견했고 경험했습니다. 당신의 삶의 현장의 경험을 통하여 예수는 누구라고 경험하였는가?

13절에 우리 주님이 선포?<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우리 교회의 8중의 기도 제목 중에 두번째의 기도 제목에 해당됩니다. 당신의 삶의 경험을 통하여 주예수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는 신앙입니다. 은행가는 예수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병자나 의사는 어떻게 예수를 이해하나? 세탁소를 경영하시는 분은 예수를 어떻게 이해하나? 장의사는 예수를 어떻게 이해하나? 하수구를 뚫어 주는 분은 예수를 어떻게 이해하나? 각자가 자기의 직업의 경험 속에서 이해한 예수는 어떤 모습인가?

/이런 신앙 고백에 대하여 우리 주님이 하신 칭찬은? 10<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뇌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당대 최고의 믿음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는 말씀과 함께 말입니다. 예수의 뒤를 따른 자들이란? 아쿨루데오라는 전문 술어가 사용된 것을 보아서는 예수의 제자들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이 백부장은 예수의 12제자들보다도 더 큰 믿음이라는 말이지요. 예수의 12제자들이 조금 챙피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의 뒤를 온전히 좇았지만 이 이방인 백부장보다 믿음이 못하다는 말이 아닙니까? 우리도 믿음에 있어서 백부장처럼 이런 칭찬을 받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켐연장

2015.10.26 11:19:37

10/23/15 금요 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5/10231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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