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04

금요기도회 :9/18/2015

대표기도: <선교부>

찬송가:304(:404)

 

1.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포기하지 아니하신다>. 이 말이 의미하는 뜻은? 내가 하나님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가지 않는한 하나님이 먼저 내 손을 뿌리치지 아니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내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손목을 잡고 있다. 15:4<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 내기까지 찾아 다니지 아니하겠느냐?> 찾아 내기까지! 영어로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낼 때까지 찾는 행동을 멈추지 않으신다는 의미이지요. 목자가 양 한 마리가 없어진 것을 인지하는 순간, 99마리는 들판의 안전한 곳에 두고 왔던 길을 되 돌아갑니다. 한 마리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못 일어나는지,아니면 구덩이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고 있는지, 아니면 울창한 수풀에서 길을 잃었던지, 목자는 그 한 마리를 찾아 헤멥니다. 찾을 때까지 결코 찾는 행동을 중단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야생 동물이 물어 가서 먹다가 남긴 뼈 조각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수거할 때까지 찾는 행동을 쉬지 않습니다. 사실 목자는 양떼를 먹이는데, 월급을 받고 그 일을 합니다. 그런데 양을 한 마리 잃으면 주인에게 보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야생 동물이 물어 갔다는 증거를 댈 수가 있으면 안물어 주어도 됩니다. 산 채로 찾으면 제일 좋고요. 그렇지 않더라도 늑대에게 물려갔다는 증거만 되면 양 값을 안물어 주어도 되지요. 그래서 열심히 찾지요. 이런 배경을 알고 있다면 우리 하나님의 이러한 행동을 쉽게 이해할 수가 있겠지요. 우리 하나님께서도 목자들처럼 잃은 양들을 찾는데 찾아 낼 때까지 찾는 행동을 중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길 잃은 나를 결코 포기 하지 않습니다나는 99마리 양 무리 속에 있는 한 마리의 양이 아니라 길 잃어 버린 바로 그 한 마리의 양입니다.

/15:8<어떤 여자가 열 드리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 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찾아 내기까지! 여기에도 영어로는 until이 쓰이고 있습니다. 동전을 하나 잃었는데 그 잃은 동전을 찾기 위하여 집안을 온통 다 뒤집어 놓았습니다. 집 안은 어둡기 때문에 등불을 켜야 했을 것이고, 양탄자가 깔려 있으니 양탄자를 걷어 내야 할 것이고, 빗자루를 가지고 바닥을 쓴 다음에 찾아 내야 겠지요. 잃은 양이야 나 여기 있소 하면서 음메 거리면서 울기나 하지 잃은 동전은 울음 소리도 못내는 더 힘든 그런 처지에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지요. 잃은 양<잃은 동전!그런데 주인이 잃어 버린 동전 그것 하나 찾느라고 온통 부산을 떠는데, 언제까지 그 찾는 일을 계속합니까? 잃어 버렸던 바로 그 동전을 손에 찾아 쥘 때까지 찾는 행동을 그만 두지 않습니다. 결코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지요. 사실 이 동전 하나, 드라크마는 별로 가치가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여인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물건입니다. 무엇 때문에 말입니까? 남편으로부터 받은 결혼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 잃어 버렸으면, 별로 값나가지 않는 동전이니 다른 동전 채워 넣으면 될까요? 아니지요. 바로 그 동전이 아니면 안됩니다. 가난한 남편이 결혼 선물로 구리 반지를 아내에게 주었는데, 그것 잃어 버렸다고 흔해 빠진 다른 구리 반지 하나 구해서 차고 다닐 수가 있습니까? 없지요. 구리 반지는 값은 안나가도 의미 있는 반지잖아요. 우리 예수 믿는 인생들이 우리 하나님께는 그런 의미 가득한 존재들입니다. 그런 존재들을 잃었을 때에 우리 하나님은 바로 잃어 버린 그것을 찾아서 손에 쥘 때까지 쉬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너와 나를 포기하지 아니하십니다. 할렐루야! 아멘!  

/나의 절친한 친구가 나를 버릴 수 있다, 나의 보모도 나를 버릴 수가 있다. 다윗이 그런 말을 했지요. 나의 부모는 나를 버렸지만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말이지됴. 목사가 나를 버릴 수가 있습니다. 목사가 능력이 부족하여서 감당이 안 되는 양들을 끝까지 불들어 줄 수 없습니다. 다른 양들도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목사가 포기한 사람을 목포사람이라고 하지요. 하나님은 절대로 포기 하지 않지만, 인간 목자는 부족함이 많아서 하나님이 맡겨 주신 양떼를 감당할 능력이 안되기에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언제까지? 내 목숨이 끝날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효기간이 없는 생명 쿠폰을 우리에게 주셨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마켓에서 주는 쿠폰들은 거의 대부분이 유효기간이 적혀 있지요. 그 기간 내에 사용해야 유효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내게 주신 생명쿠폰의 유효기간은 내가 땅 위에 살아 있는 기간입니다. 내가 비록 아무리 깊은 나락에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아니하신다. 이것은 구약 시대에도 그랬고 신약시대에도 통하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목포사람이 없다. /성도가 시련은 당했으나 하나님께 버림은 당하지 않는다. 성도가 고난은 당했지만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지는 않는다. 성도가 세상으로부터 박해는 받지만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지 않는다. 지난 주 설교시간의 주제입니다. 믿습니까? 고후 4:8-11<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 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다윗의 생애-우리는 지난 주에 다윗에게 몰려 온 검은 구름에 대하여 들었습니다. 다윗이 죄를 지어서 실수 했기 때문에 생긴 시련이고 고난이던가요? 전혀 아니지요. 사울 왕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붙든 손을 놓치 않았기에 하나님이 다윗의 손목을 끝까지 붙들어서 구원해 주었습니다. 다윗이 그런 도망자 신세를 5년 정도 겪었는데, 그 와중에서 그가 보았던 것은 그 검은 구름 속에 임재해 계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고난의 현장 속에 들어와 계십니다. 그 분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불안해 하지요. 23: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욥의 생애에도 검은 구름이 휘몰아 쳤었지요. 재산 모두 날리고, 자식들 모두 죽고, 자신의 몸에는 병이 들었고, 아내도 자신을 떠나 버렸고, 친한 친구들마져도 자기의 마음을 몰라 주는 그런 외롭고 답답한 신세가 되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끈을 놓치 않았지요.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지 않았지요.  413<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 늘 편하다>-스패포드가 1873년 유럽 여행을 보낸 네명의 딸이 모두 해상 사고로 죽었을 때에 그 슬픔을 이겨낸 후에 작사했지요하나님의 위로가 넘치는 찬송이지요. 선교사 바울의 생애는 또 어떻던가요복음을 전하면서 얼마나 많은 환난과 박해를 받았던가요? 고후1:8<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 그런데도 바울은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했다고 고백했지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큰 사망에서 자신들을 건져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시련은 당했지만 버림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보스톤에서의 삶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만을 의지합시다.

 

 

2.    높이 올라가게 되면 땅 아래의 것을 아래에 있을 때 보다는 훨씬 잘 볼 수가 있습니다. 제공권 확보. 높이 올라간 자는 땅위에 있는 사람이 못 보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리처드바크가 쓴 <갈매기의 꿈:주인공 갈매기의 이름은 조나단 리빙스턴>이라는 책: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눈에 보이는 없어질 것 들에 연연해 하면서 그것을 얻는 데 전부를 투자하는 그런 삶을 살지 말고, 보다 높은 꿈과 원대한 이상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어 가는 삶을 살라는 말이지요. 그런 경지로 올라가는 동안 아픔이 있고, 눈물이 있고, 배고품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그것을 뒤로하고 힘쓰면 높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장 높이 올라간다는 것은 세상적인 지위와 위치를 얻고 세상적인 성공을 의미하지 않지요. 그러나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눈 감고 있다면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비록 땅 아래 곳에 처하여 있다고 할 지라도 눈을 뜨고 보면 아래 땅 뿐만 아니라 하늘 위의 것도 훤히 볼 수 있다. 눈 밝은 자가 되자. 눈을 뜨고 세상 일을 보고 영계의 일(하늘 일)도 바라보자. 영안을 뜨고서 살아야 겠지요. 주께서 우리의 마음눈을 밝히실 때에 우리의 영안이 밝아 지지요. 1:17-18<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지혜와 계시의 영은 성령입니다. 성령은 지혜의 영이고 성령은 계시의 영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지성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그것을 알려 주시는 영! 하나님의 깊은 속 마음에 있는 것도 통달해서 알고 있는 영이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의 영이 지혜롭게 되어야 겠습니다. 영적으로 아둔한 우리들을 우리 주님의 성령이 깨우치십니다. 요일2:27<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 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 우리가 자라나는 만큼 하나님이 관한 것을 성령이 우리에게 가르치신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꽤뚫고)하고 있는 영이시다. 고전2: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그 성령을 우리 주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셨는데 그 분이 얼마큼 충만하게 거하시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을 얼마큼 경험하느냐가 달려 있다.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다. 실제적이다.

/우리 주님의 책망의 소리: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3:10우리 주님께서 누구에게 하신 물음인가? 니고데모에게 했던 말씀이 아닌가? 중생이 뭐라는 것도 몰랐던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에게 했던 질문입니다. 중생은 뭡니까? 예수 처음 믿을 때에 하는 경험이 아닌가? 말씀을 가르치고, 율법을 가르치는 이스라엘의 존귀한 산헤드린 공회 회원인 니고데모가 가장 기초적인 중생체험 마져도 없다는 이야기이지요. 우리 주님의 다른 책망의 소리:12:54-56<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 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인생의 길을 다 간 후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부자나 빈자나 세상에 남기는 것은 땅 한 평이다. 16:17-18절의 만나 사건, 많이 거둔 자나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이 먹을 만큼 거두었더라! 어떻게 살 것인가? 아둥바둥 거리면서 돈을 모아 보았자 나중에 죽을 때에는 땅 한 평 차지할 뿐이다그러므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소금쟁이 벌레 처럼 살지 말라! 소금쟁이는 물 표면만 있으면 된다. , 명예, 세상 권세, 세상 것들이 인생의 전부인양 그것에 탐닉하여서 한 평생을 살다가 노년에 이르러서 아 인생을 헛 살았구나 한탄하면서 세상을 떠나는 분들이 많습니다. 내 아래에 있는 깊은 심연(영원히 변함이 없이 거기 있는진리의 세계)을 탐구하면서 살아가라! 사람들이 해변가 얕은 물에서 놀기를 좋아합니다. 깊은 물로 나가기를 두려워합니다


전의진목사

2015.09.21 08:46:09

09/18/15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5/091815.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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