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40

금요기도회 :6/3/2016

대표기도:선교부

찬송가:그 이름 비길 데가 어디 있나?

 

1. 죄의 근원을 없애자:거미를 없앨 것인가? 아니면 거미줄을 없앨 것인가? 집안 구석 구석에 처져 있는 거미줄이 거추장 스러워서 제거한다면 깨끗하고 좋은데, 그 작업은 거의 매일 해야 될 것입니다.오늘 거미줄을 제거하면 내일이면 거미가 또 거미줄을 처 놓습니다. 거미줄이 집안에서 완전하게 없어지게 하자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거미줄을 치는 거미를 잡아서 죽이면 됩니다. 그러면 두 번 다시 집안에서 거미줄을 보게 되는 일은 안 생깁니다


/이 진리를 우리의 영적인 삶에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죄를 안 지을려고 부단히 힘쓰지만 잘 안됩니다. 매일 매일 같은 죄를 짓습니다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 와서 울면서 자백하고 용서함을 받은 후 세상에 내려가서 또 같은 죄를 짓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서 회개하지요. 이런 일을 언제까지 계속하는가? 평생동안 반복하지요.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도 로마서 7:19-20<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사도 바울이 부단히 선을 행하고자 하지만 매일 매일 선을 행하지 못하고 도리어 악을 행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다고요? 자기 속에 있는 죄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따리를 틀고 박혀 있는 죄! 이 죄의 권세 때문에 우리는 선보다는 악을 사랑하지요. 그렇지 않던가요? 죄가 우리를 주관하지요. 죄가 왕노릇 하면서 우리를 지배하지요. 우리가 조그마한 선을 행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하기 까지 마음을 여러 번 다잡아야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을 행하고자 한다면 어떻던가요? 그것은 마음을 여러 번 다 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악은 우리의 마음에서 거침없이 튀어 나옵니다. 우리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입니다예를 들면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는데 누군가가 갑자기 끼어 들었기에 브레이크를 갑자기 밟거나 하면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옵니까? 육두 문자가 튀어 나오지요. 이 육두 문자는 아주 자연스럽게 쏟아져 나옵니다. 조금 더 심하면 자동차를 세워 놓고 상대방 운전자의 멱살을 잡고 폭행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웃에게 선을 행하고자 하면 앞뒤 전후를 재어 보아야 하고, 이해 득실을 따져 본후에 비로소 이웃을 위하여 조그마한 선을 행할 수가 있지요.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이웃에게 선을 행할 때에 무조건 선을 베풀고, 선을 베푸는 일이 몸에 배여 있는 습관처럼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아직 우리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 안에 있는 죄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오는 악을 행하지 않기 위해서 늘 반성하면서 악을 끊어 나간다고 하더라도 내일에는 또 다른 악을 내가 행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날마다 악과 싸우다 보면 내가 지쳐서 나가 떨어지기 일수 입니다. 그 악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내가 행하는 악의 근원을 제거하면 됩니다. 거미줄보다는 거미를 제거하라는 말이지요.


/성도 여러분 그 악의 근원이 내 안에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라고요? 내 안에 있는 죄라는 말입니다. 내 안에 있는 나를 지배하는 죄의 세력만 정복하면 내가 더 이상 악에 시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매일 매일 범하는 악은 거미줄이고, 내안에 있는 죄의 세력은 무엇이라고요? 거미입니다. 그 거미를 제거하면 거미줄은 자연히 제거 됩니다. 나로 하여금 매일 매일 죄와 악을 범하도록 만드는 것이 내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사탄이 내 안에 있는 것을 교두보로 삼아서 우리로 하여금 악을 범하게 만드는 것이지요온갖 나쁜 중독증에는 그 배후에 무엇이 있는가심령의 상처가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들이 addict되어 있는 나쁜 중독증이 참 많이도 있지요. 알코홀릭-알코올중독자들, 니코틴 중독자들, 마약 중독자들,성 중독자들, 게임 중독자들, 일 중독자들(workaholic), 카톡질, 전화질, 입질하는 분들 모두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반복적으로 하는가? 그런 일을 할 때에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 아닙니까중독은 내 안에 있는 상처 때문에 일어납니다. 거미줄만 매일 매일 없앤다고 하여서 중독증이 없어 지지않습니다내 안의 상처가 씻어 진다면, 즉 거미를 잡으면 더 이상 중독현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 안의 상처, 어릴 적에부터 내 의식 밑바닥에 고이 고이 간직되어 있는 깊은 상처를 어찌할까요? 상담자나 혹은 정신과 닥터를 찾아 가기도 하고 약을 먹기도 합니다. 물론 어느정도 도움이 됩니다.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불편하지 않게끔 회복이 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치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심령 그 밑바닥에 있는 상처가 심리적인 요법으로는 결코 제거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상처를 근원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분이 누구라고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분이시기에 우리를 원래대로 치유하여서 회복시키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주여 나를 치유하소서 그러면 내가 나으리이다.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거미를 없애기 위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상처 덩어리는 씻기어져 나갑니다. 심령의 상처가 있는 분들은 하나님 앞에 서면 자연히 울게 됩니다. 그 부르짖음과 울음이 내 안에 있는 상처를 조금씩 조금씩 씻기어져 나가게 합니다. 위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내 상처를 아물게 만듭니다. 무엇처럼 말입니까? 양파 껍질을 까듯이 말입니다. 상처가 씻기어져 나가는 만큼 나는 그 상처에 의해서 지배받지 않고 자유하게 됩니다. 이것은 오랜 시간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하루 만에 되어지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하나님께 나가서 계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울음을 울 때에 완전한 치유가 일어나게 됩니다무엇을 제거하자고요? 거미줄이 아니라 거미를 제거하자! 내 안에 있는 거미는 무엇일까요그 거미를 사탄과 그의 졸개들인 어두움의 영들이라고 오해하면 안됩니다. 사탄.마귀는 우리 속에 있는 상처 덩어리를 이용할 줄 아는 영적 존재들일 뿐입니다. 내안에 있는 상처를 사탄.마귀로 오해해서 아무리 그 놈들이 떠나라 물러나라 꺼져라고 외쳐도 내 현재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가 없습니다내 현재의 고통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 문제의 원인을 내가 바로 진단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말씀의 약을 바로 써야 나을 수 있습니다.

 

2. 성장하자:영적으로 장성한 자! 어떤 성도가 성숙한 성도인가아이들을 낳아서 길러 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아이들이 꼬맹이 시절에는 사리를 분별 못합니다. 그래서 무슨 짓도 다 합니다. 경상도 사투리로 ‘저지레’라고 부르지요. 예를 들면 엄마가 한 눈을 팔면 크레용을 가지고 벽에 벽화를 그립니다. 또 소파에서 칼 같은 것 가지고 놀면서 찢지를 않나또 조금 큰 녀석이 가위를 가지고 동생의 머리 카락을 자르지를 않나. 방바닥에 기어 다니는 개미를 잡는다고 송곳을 가지고 찔러대니 방바닥이 온통 송곳 자국이 가득합니다. 이런 짓을 하면서도 이런 짓이 엄마에게 상처를 낸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철이 안들었기에 개구장이 짓을 많이 합니다. 그러다가 조금 더 자라나면 그런 개구장이 짓을 안합니다. 왜요? 철이 났기 때문입니다. 자의식이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하는 저지레가 어른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일이라는 자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저지레 하는 아이를 닥달하고 매질한다고 아이들이 저지레 안 하나요? 또 합니다. 개구장이들이 철이 들면 자각이 생겨서 자연히 안하게 됩니다어른들이 해야 하는 일은? 끈기 있게 기다려 주면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매일 매일 짓는 죄들이 바로 저지레입니다. 그러다가 어느날부터 영적인 철이 들어서 그런 저지레를 안 하게 되지요. 그리스도인이 죄를 안 짓게 되는 이유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안다면 두 번 다시 저지레를 하지 않게 되지요. 철이 안든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까요? 우리 주님이 십자가 지시고 피흘려 주셔서 내 죄를 사해 주었으니 참 고마운데. 오늘 또 내가 조그마한 죄를 지었는데, 우리 주님이 나를 위하여 또 십자가 져 주시겠지라고 생각합니다우리 주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 지셨다는 일이 얼마나 내게 아픈 일인지 알지 못합니다. 양 손에 못박히고, 머리에 가시 면류관 쓰고, 그리고 발목에 못 박히는 일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잘 모릅니다. 십자가 고통의 크기가 얼마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왜 우리 주님이 갈보리산 올라가서 십자가에 달렸는가? 너와 나의 죄를 사하고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런 아픔을 우리 주님이 겪었다면 무엇 때문에 바로 내 죄 때문에 그랬다면 철이 난 성도라면 내가 더 이상 죄를 지어서는 안되겠다. 내가 죄를 또 지어서 우리 주님이 다시 십자가를 지시게 할 수는 없다. 이것이 철이난 성도의 마음입니다. 철이 안난 그리스도인은 내가 죄를 지으면 우리 주님이 하해와 같은 사랑으로 나를 위하여 다시 십자가 져 주시지요하면서 나는 죄를 지어도 걱정없요라고 말하지요. 우리 주님이 내게 내가 또 너를 위하여 십자가 져야 겠구나라고 말한다면 영적 철이 난 성도는 주님 이제는 내가 십자가 지겠으니 우리 주님은 지지 마옵소서라고 말할 것입니다. 당신은 영적 철이 든 그리스도인인가철이 안든 아들과 딸을 바라보면서 우리 주님이 탄식하신다영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영적 철이 든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알게 됩니다. 주님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성경 속에 우리 주님의 마음이 나타나 있지요. 성령께서 내 눈에 덮인 덮개를 제거해 주시면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 아닙니다. 부단히 성령을 통하여 마음의 눈이 밝아 지게 되었을 때에 성경을 읽으면서 매 구절 속에 나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아 알 수가 있지요벧후3:18<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자라가라는 명령형이지요. 성도는 어제보다는 오늘에 오늘보다는 내일에 영적인 진보를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들이 영적으로 자라나는 모습을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께서 보시면서 흐믓해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아들과 딸들이 되어야 합니다.

   

3. 뿌리 깊은 영성을 갖추자! 당신의 영성은 뿌리가 깊은가? 뿌리가 깊지 않으면 비바람이 몰아치면 뿌리가 뽑혀서 죽습니다. 우리 주님이 씨뿌리는 비유 가운데 나오는 데, 돌짝 밭에 떨어진 씨는 곧 싹이 나오지만 겉흙이 깊지 않으니 뿌리가 땅 속 깊이 박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햇빛이 내리 쪼이고 폭풍우가 몰려 오면 곧 뿌리가 말라 버리지요

호 14:5-7절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 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우리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용비어천가: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 뮐쎄 꽃 둏고 여름하나니무슨 소리인지 아시나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후에 한글로 새롭게 시작한 조선 왕조를 찬양하는 노래를 지어서 백성들에게 퍼뜨렸지요썩고 부패한 고려 왕조를 무너 뜨리고 새롭게 창업된 조선이라는 나라가 뿌리 깊은 나무와 같다. 나무 뿌리가 땅 속에 깊이 뿌리 박혔으니 꽃이 좋고, 여름 즉 열매가 많이 맺힌다는 조선 왕조 찬가이지요.  


오늘 본문 말씀도 뿌리가 땅 속 깊이 박힌 레바논 백향목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깊은 영성! 레바논의 백향목은 하늘로 높이 자라는 나무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지을 때에 솔로몬이 레바논의 왕인 히람에게서 받아서 쓴 나무이지요. 그 나무가 하늘로 높이 자라고 가지가 퍼지는 것은 뿌리를 땅속에 깊이 박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향목은 40m정도로 자란다. 나무의 지름이 3m정도 되는 것도 있다. 이 나무에는 소나무처럼 진이 많아서 짙은 향기를 풍긴다. 이 나무진 때문에 병충해가 없을 뿐더러 방부력이나 내구력이 크다. 사자가 백수의 왕이라면 백향목도 백수의 왕입니다. 백향목 나무는 어릴 때에는 피라미드 형이지만, 나무가 성장하면 가지들이 수평으로 널리 퍼지면서 우산을 편듯한 모양을 갖추게 된다.우리나라의 소나무인 금강송과 비슷하지요. 이 나무가 이런 멋진 풍채를 지니게 된 이유는 뿌리를 땅속에 깊이 박았기 때문이다그러기에 성도의 신앙이 오늘 본문 말씀처럼 백향목처럼 뿌리 깊은 영성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깊은 신앙의 뿌리를 내려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것이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한 해답입니다. 2:6-7<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예수 안에 신앙의 뿌리를 깊이 박은 자는 비바람 폭풍우라는 시련이 와도 뽑히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 안에 우리의 신앙의 뿌리가 깊이 박힐 수 있는가? 신앙훈련을 해야 영성이 깊어 집니다. 오늘처럼 금요기도회에 참석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서 기도훈련을 할 때에 깊은 영성을 가진 성도가 됩니다. 큰 나무 즉 영적 거목이 되면 삶에 지친 영혼들이 내 그늘 아래로 몰려 듭니다. 무엇하기 위하여 모여 듭니까? 쉼을 얻기 위하여 말입니다백향목의 가지가 동서남북 사방으로 뻗어 나가기에 그늘이 만들어지고 그 그늘 아래에 지친 영혼들이 모여 와서 쉬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켐연장 교회의 금요기도회에서 기도 훈련을 통하여 영적 거목이 되면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본문 말씀 보면 ‘같이’라는 말이 몇 번 나오지요. 대략 8번 정도 나오지요. 3절에 직유법에 쓰이는 같이라는 단어가 8번 사용되었습니다. 죄가운데 있다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어떤 모습으로 회복이 되는가가 오늘 본문의 의미입니다:백합화, 백향목, 감람나무,풍성한 곡식, 포도나무 등등이 이미저리로 사용되었지요이것들은 모두 축복을 나타내 주는 이미저리입니다. 저주를 나타내 주는 이미저리는 가시나무나 엉겅키나 찔레 같은 것들이 사용됩니다. 본문에는  백합화 같고, 백합화가 눈으로 보기에도 매우 화사한 꽃이 지요. 그 뿐만 아니라 향기도 죽입니다. 또한 레바논의 배향목 같이 뿌리가 땅에 깊이 박힌다. 또한 가지와 잎사귀는 감람나무같이 퍼집니다. 또한 백향목으로 된 숲은 그 나무들이 내는 나무진으로 향기가 진동합니다또한 회복된 자들은 풍성한 곡식과 같고, 그들이 내는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달콤하다는 말입니다. 회복된 성도의 모습을 레바논의 백향목이라는 이미저리를 사용해서 나타내 주 고 있지요하늘로 쭉쭉 뻗은 멋있는 자태, 그리고 가지를 벌리기에 짙은 녹음과 그늘을 만들고, 나무에서 나는 향기 등등이 회복된 성도의 모습을 나타내는 이미저리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성도들에게 이런 회복이 가능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성도가 잘 나서인가? 우리에게는 잘 난 점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현재의 자신이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현재의 나의 모습은 모두 나의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나의 현재의 모습도 없었다. 어떤 은혜인가? 본문 5절 초반부: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이슬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성도들이 회복됩니다. 이슬은 이스라엘 땅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됩니다. 이슬이 없으면 이스라엘 땅에는 풀과 나무가 모두 말라 죽게 됩니다. 이스라엘 땅은 강우량이 많지 않은 척박한 땅입니다. 그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목축도 하면서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슬이 있기  때문입니다. 밤을 지나고 새벽이 되면 풀 잎새에 이슬이 맺히지요. 그 이슬이 부족한 강수량을 초목에 제공하지요. 그래서 풀잎과 곡식이 자라서 여물게 되지요. 어떻게 보면 이슬은 팔레스타인 땅의 생명의 근원과 같지요. 이슬은 팔레스타인 땅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이 지요. 하나님이 구약의 백성에게는 이슬과 같은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슬은 언제 맺히는가? 해가 쨍쨍 내려 쪼이는 낮에는 맺히지 않습니다. 영롱한 이슬은 밤동안에 맺힙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도가 밤과 같은 캄캄한 어두움에 처하여 있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는 이슬처럼 그에게 맺힙니다. 무엇하려고 말입니까? 성도를 살리기 위하여 말입니다. 밤을 만난 성도에게 하나님은 이슬과 같은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이슬은 매일 매일 잎새에 맺힙니다. 1년치의 이슬이 단 하루 밤 사이에 맺히지 않습니다. 잎새에 맺히는 이슬은 매일 매일 맺힙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밤을 만난 성도는 오늘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루를 살고, 내일은 내일 내려 주시는 은혜로 산다는 말입니다. 오늘 하루 동안에 1년치 부어 주실 은혜를 다 받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내려 주실 리도 없지만, 그렇게 내려 주신다고 해도 하루 분량의 은혜만 필요하지 나머지 은혜는 저장이 안되고 모두 땅에 쏟아 버리게 되지요밤을 만난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을 어떻게 버티는가? 오늘 부어 주시는 은혜로 버팁니다. 오늘 금요기도회 하루 참석하여서 오늘 하루 받은 은혜는 내일 하루를 견딜 분량일 뿐입니다. 오늘 하루 은혜 충만하게 받았다고 하여서 1년 내내 금요 기도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신앙생활을 잘 유지 할 수 있을까?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장할 수 있는 장치가 없습니다. 에너지 저장 장치가 없다! 오늘 금요 기도회 때 받은 은혜는 내일 하루나 일 주일 정도를 카바할 정도의 은혜 밖에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슬과 같다고 말하는 본문의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밤을 만났지만, 이슬과 같이 임하는 우리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내 영혼이 회복되어 가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구약 시대,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할 때에는 하나님이 만나를 내려 주셨지요. 광야 생활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만나를 먹음으로써 배곯음을 면했습니다. 만나를 하루 중 언제 내려 주셨나요? 저녁에 아니지요! 언제? 아침에 내려 주셨습니다매일 매일 먹을 수 있는 하루분의 식량으로 내려 주셨지요. 1년치의 식량을 단 하루에 쏟아 부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날의 양식을 그 날 아침에 만나를 내려 주심으로 광야생활하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도왔지요우리의 영혼의 양식인 생명의 말씀도 매일 매일 주시는 것이지, 하루에 1년치를 주지 않습니다내 인생에 지금 가장 어두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여기는 분 있습니까? 오늘 필요한 은혜를 간구하십시요. 밤 같은 이 시기를 이겨낼 힘은 오늘 부어 주시는 이슬 같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모 하십시요.

 

이제 매일 매일 내게 임하는 하나님의 이슬과 같은 은혜 때문에 내가 깊은 영성을 소유하게 되고 이 깊은 영성에서부터 무엇이 나옵니까? 향기가 나옵니다. 무슨 향기? 예수의 향기말입니다. 썩고 추하고 역겨운 나의 냄새가 아니라 누구의 냄새? 예수의 향기가 나옵니다. 그 향기를 맡으려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내게 몰려 옵니다. 또한 삶의 지친 영혼들이 내가 백향목처럼, 감람나무처럼 되어서 만든 나무 그늘 아래에 몰려 들어서 쉼을 얻게 될 것입니다. 켐연장 금요 기도회는 깊은 영성을 얻기 위하여 기도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이슬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막힘 없이 흘러 가는 곳 말입니다.

 

4. 하나님의 질투! 하나님도 질투하시는가? 예 질투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말은 귀가 따갑게 들어 보았지만, 하나님의 질투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라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무궁히 사랑합니다. 이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세상은 변할지라도 우리를 향한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마치 이 세상에 나 하나 밖에 없는 것처럼 나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아멘! 그런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질투심을 드러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발생하지요. 내가 무엇 할 때에 하나님이 질투하시는가? 내가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을 따라 갈 때에 질투심을 나타냅니다. 20:4-6<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 질투하는 하나님! 하나님이 질투하시기에 우리의 영혼이 살 수 있지요. 하나님이 질투하기에 우리가 우리가 연애하는 자들, 즉 다른 신이나 우상을 따라 갈 때에 우리의 가는 길에 장애물을 놓지요. 질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연애하는 자들을 따라 가도 간섭하지 않겠지요. 2:6-7<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 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 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 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으리라 하리라> 하나님의 큰 손이 내 앞 길을 막았다. 그 길은 죽음의 길이고 영원한 멸망인 지옥으로 들어가는 길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질투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내 영혼의 신랑구약의 백성이 하나님을 버려두고 연애하는 자를 따라 나섰을 때에 그 가는 길을 막았다. 내게도 이런 하나님의 질투와 간섭이 나타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세상으로 내려가도 아무런 하나님의 징계가 없다면 버리운 자들이다.


/4:5<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성령이 시기.질투하기까지 사모한다. 목적어가 문장에 없기 때문에 다양한 번역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내 속에 성령님을 보내 주셨는데,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은 내가 온전히 우리 주님 예수님만 사랑하고 헌신하기를 원하는데, 내가 자꾸 다른 신에게 눈을 돌려서 추파를 던지니,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시기하면서 질투를 한다는 말입니다요나서를 읽어 보면 요나가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을 받지요. 그러나 요나는 적국인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것이 싫었지요. 그래서 무엇을 했나요? 니느웨와는 정반대 방향에 있는 다시스라는 곳으로 도망을 치게 되지요. 배타고 그 당시의 땅끝이라는 곳으로 도망을 가는데,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바다에 풍랑이 일어나게 하고, 요나를 선원들이 바다에 던져 넣게 하지요. 요나를 위하여 큰 물고기를 하나님이 준비해서 삼키게 하지요. 큰 물고기 뱃속에 갇힌 요나가 3일 밤낮을 거기에 있으면서 회개하지요. 그러자 하나님이 큰 물고기에 명하여서 요나를 육지에 토해 놓게 만들지요. 그리고 나서 다시 이전처럼 하나님이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선교하라고 명하시지요. 그래서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더니 니느웨 성안의 모든 사람이 회개하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집요하게 요나를 추적했지요. 요나를 잡기 위하여 어디까지 추적했나요? 바다까지  추적했습니다프란시스 톰슨(1859-1907)이 말한 천국의 사냥개(The Hound of Heaven)을 연상! 하나님을 버리고 어두운 비탈길로 도망치는 이스라엘을 끝까지 추격하여서 기어코 잡아 내고야 마는 하나님! 집요하신 하나님!


켐연장

2016.06.06 08:52:17

2016년 6월 3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6/06032016.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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