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37

금요기도회 :5/6/2016

대표기도:대표기도+선교부<중국 선교에 대하여!

찬송가:그 이름 비길데가 어디 있나?

 

 

1. 기다림의 신학잘 익은 밤톨 하나를 얻기 위해서도 기다려야 합니다. 밤나무에서 밤이 익으면 방송이가 자연스럽게 벌어집니다. 그렇게 벌어진 밤송이로부터 나온 밤톨은 잘 익었습니다. 그렇게 무르익기 전에 밤을 따면 토실토실한 알밤을 얻을 수 없습니다. 자연의 모든 이치가 그러합니다. 인간사 모든 일들이 그렇지 않던가요? 큰 일도, 작은 일도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내 영혼이 자라나서 성숙한 영혼이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길이 참아 주신다. 땅에서 내 생명이 길게 이어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행한 대로 갚고, 내가 지은 죄대로 갚으면 내가 이 땅에 숨쉬면서 살아 있지 못하지요.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죄대로  갚았다면 이 지구는 사람이 살지 않는 행성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루에도 우리는 수 십번 이상 지은 죄로 벌을 받아서 죽어 마땅합니다. 우리는 초범이 아니라 재범이고 상습범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하나님이 나에 대하여 무지하게 인내하시면서 참고 기다리신다. ? 나를 온전한 영혼으로 하늘 세계로 받아 들이기 위하여! 나 잘 났기에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내하시면서 참아 주기에 내가 살아 있음을 알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해져야 겠습니다.

 

2.  어느 십대의 기도 이야기. 16살이 되어서 최연소 운전 면허를 땄습니다. 차를 운전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부모님의 차를 부모님의 허락도 없이 몰고 시내로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접촉사고가 났습니다. 그래서 갸가 기도했는데, 어떻게 기도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 전능하신 분이시지요. 이 교통 사고가 없었던 일, 일어나지 않았던 일로 만들어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과거를 없던 것으로 되돌릴 수 있나요? 이런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입니까? 이렇게 기도하기 보다는 차라리 부모님에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하고 용서를 비는 일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부모님 허락없이 운전했다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었음을 자백하고 그 다음에 부모님에게 용서를 구하면 이 문제는 그냥 해결됩니다. 그러나 의외로 이렇게 기도하는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눈을 뜨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눈? 영의 눈을 뜨고 기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되나마나 입으로 주저리 주저리 기도한다고 다 기도가 아니지요. 바른 기도, 하나님이 응답할 수 있는 기도를 하기 바랍니다. 15:5<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십대에게는 무엇이 없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십대의 마음 속에 심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에 주색잡기에 빠져서 허랑방탕하게 인생을 보내다가 늙으막에 그런 삶에서 돌이켰습니다. 이런 분이 자기의 지나온 과거를 없던 것으로 되돌릴 수 있나요? 기도할 것을 기도해야지! 과거를 돌이킬 수 없습니다. 이미 엎질러 진 물은 주어 담을 수 없습니다톱으로 나무를 썰 수는 있어도 톱밥을 켤 수는 없습니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습니다. 그가 뉘우치고 회개하는 자리에서 어떤 기도를 해야 합니까? 내 잃은 과거를 없던 것으로 돌려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보다는 앞으로의 나의 삶을 의미 있는 삶을 보내겠노라고 하나님 앞에서 결단의 기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두번 다시는 그런 허랑방탕한 삶을 살지 않고 올바른 의미 있는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하는 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잃어 버렸던 시간을 물리적으로 되찾을 수는 없습니다. 한번 똑딱 거리면 흘러간 시간은 결코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내게 다가올 시간을 값지게 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회개의 자리에서는 그런 기도를 해야 하지요.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한번 울고 뉘우치고 회개했다면 이제는 미래를 바라보면서 예전처럼 살지 않겠노라 결단하고 미래를 향하여 달려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2. 예수는 누구인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고 많이 부릅니다. 혹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도 많이 부르지요. 사도 바울이 우리 주님 예수님을 그렇게 불렀지요. 예수님을 이렇게 부르는 말 속에는 그의 신학적인 깨달음과 이해가 드러나 있습니다. 2천년 전에 팔레스타인 땅에 살았던 예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나 다시 살아 났고, 하늘에 오르셨고, 그리고 언젠가는 하늘 구름을 타시고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가 누구라고요? 나사렛 예수입니다. 즉 역사적 예수라는 말입니다. 2천년전 팔레스타인 땅에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말입니다. 가상의 인물이 아니고 유대 평민의 신분으로 33년간 땅 위에 사셨던 인물이라는 말입니다. 그 역사적 예수, 나사렛 예수가 무엇이라고요? 그리스도이고 주님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메시야라는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했고, 그것을 영어로 음차한 말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이지요. 구약의 예언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예언의 메시지를 받았지요. 무슨 메시지? 인류를 죄 가운데서 건지실 분, 즉 메시야를 하나님이 보내 주신다고 말입니다.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메시야가 왔지요. 그 메시야가 누구라고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렸던 칭호인 주님이라는 칭호를 누구에게 적용하여서 사용했나요? 예수님에게 말입니다.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님이라고 지칭하는 분은 다름 아닌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을 부를 때에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이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적은 부름이라는 말입니다따라 해 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기에 우리 주 예수 그 리스도라고 부르길 바랍니다.

 

/예수라는 분을  사도행전과 히브리서에서는 알케콘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내 주었습니다. 알케곤이라는 말은 두개의 헬라어 단어를 합성하여서 만든 조어입니다. 처음을 의미하는 알케와 인도하다를 의미하는 아고를 합하면 알케곤이 됩니다. 맨 앞장 서서 무리를 인도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길을 여는 사람 즉 개척자알케곤은 개척자, pioneer’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또 다른 의미는 저자,author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5;30-32<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 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베드로와 사도들이 목소리 높혀서 산헤드린 공의회 사람들에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예수를 나무에 못박아 죽였지만, 하나님이 다시 살려 내셨다.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예수를 오른손으로 어디까지높혔는가? 임금과 구주로 삼았다. 구주라는 말은 구원자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건져 내신 분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면 임금이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왕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그릭으로 알케곤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조금 전에 말했듯이 무엇이라고요? 저자, author, 혹은 개척자를 가리킵니다. 새로운 신약 시대를 여신 분이라는 말이지요. 우리 주님 예수님은 구약 시대 백성이 누릴 수 없었던 놀라운 복을 우리 신약 시대 백성들이 누릴 수 있게끔  길을 열어 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개척자이신 우리 주님의 뒤를 따라 가면 됩니다. 우리 주님이 걸어가신 옛길, 진리의 길이 무엇인지를 찾아 보고 그 길을 따라 가면 됩니다. 우리 주님은 신약 시대의 생명, 구원, 믿음이라는 분야에서 새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세 분야에서 우리 주님은 개척자이십니다.

 

/첫번째가 예수는 생명의 개척자이십니다3:13-15<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예수님은 생명의 아르케고스이다. 아르케고스가 무엇이라고요? 생명의 author, 즉 생명의 저자, 생명의 창시자입니다.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이 그렇게도 목말라 하면서 바라고 기대했던 그 생명을 우리 주님 예수께서 이 세상에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생명은 목숨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숨은 하나님의 손으로 창조 되었습니다. 목숨은 육신적 생명입니다. 그러나 이 생명은 그런 육신적인 생명이 아니고, 이 생명은 영적인 생명이고 영원한 생명입니다이 영적 생명은 창조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이 생명을 가지고 있고(5:26절에는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성령께서도 이 생명을 가지고 있고(8: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 주님 예수께서도 이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14:6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성경은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모두 이 생명을 가지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특히 요1 1:2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 주님 예수께서 우리 모두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언제 주셨는가? 예수를 믿을 때에 주셨지요. 예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 안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요일5:11-12<~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영적으로 살았느냐 죽었느냐의 가리는 기준이 무엇이라고요예수! 예수는 생명의 주님이시다.             

 

/예수는 또 무엇이라고요? 예수는 구원의 개척자이십니다. 2:10<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여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우리가 현재에 누리고 있는 구원, 신약 시대의 구원! 어떤 구원일까요? 죄와 죽음과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생물학적인 죽음이 왔고, 죽음 후에는 지옥에 들어가서 세세 무궁토록 지옥고통을 당하여야 하는데, 우리 주님이 우리를 건져 주었습니다. 예수께서 신약시대의 구원을 만드신 분입니다. 4:12<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예수를 제외는 다른 어떤 사람도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구원을 우리에게 줄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구원은 지금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구원의 기쁨을 천국에 들어 가서 비로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예수 믿는 그 순간부터 계속적으로 누려야 합니다. 천국 들어가서 누리게 해 줄 테니 지금은 고생 좀 하거라하는 그런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의 기쁨을 잃어 버렸는가? 오늘 이 시간 구원의 기쁨을 회복합시다.                  

 

/예수는 또 무엇입니까? 예수는 믿음의 개척자이십니다. 12:2<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히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신약 시대의 우리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이 믿음을 누가 만들었고, 그것을 우리에게 누가 주었나 말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만들어서 주었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믿음의 저자, 우리의 믿음의 개척자이십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이 주신 이 믿음 때문에 온갖 종류의 영적, 육적인 축복, 즉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땅에서 누리게 되는 축복은 우리의 믿음의 크기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작으면 작은 축복 밖에 못 누리고 우리의 믿음이 크면 큰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생물처럼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성장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 처음 믿을 때처럼 죽을 때까지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자라 나서 온전하게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은 확확 자라날 수도 있고 병들어서 침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를 바랍니다믿음이 주는 혜택? 믿음 때문에 영원한 천국을 상속 받았지요. 천국은 우리 주님 예수에게 상속 되었는데, 우리들도 예수와 함께 그것을 공동으로 상속하게 되었습니다. 8:17<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또 무슨 혜택이 있습니까순복음 교단에서 주장하는 소위 삼박자 구원이라는 축복을 믿음을 통하여 누릴 수 있습니다. 요삼  1:2<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예수 믿고 나서 영혼이 잘 됩니다.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넘쳐 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손대는 일들마다 잘 풀립니다. 또한 육신도 건강합니다. 더 바랄 게 무엇이 있습니까베드로와 요한이 40세 된 불구자, 걷지 못하는 사람을 성전 미문에서 걷게 만드는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무엇을 증거했습니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했더니 곧 그 사람이 발과 발목에 힘이 생겨서 일어나서 걷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자 사도 베드로가 백성들에게 이렇게 외치지요. 이 사람이 예수를 믿으므로 말미암아 그 믿음이 이 사람을 성하게 만들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우리들도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겨자씨 한 알 같은 크기의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겨자씨 한 알 같은 크기의 믿음에서 자라날 필요가 있지요. 17:6<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우리말 번역은 가정법으로 번역했습니다만, 가정법은 무엇입니까? 너희에게 그렇게 작게 보이는 겨자씨 한 알 같은 믿음도 없는데, 만약에 있다면 뽕나무가 바다에 명령만 내리면 옮겨 심겨지는 그런 일도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이 없는 데 있다면 이라는 가정으로 우리말은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가정법을 이끄는 그릭 에이는 현재 상태을 말합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 같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너희가 그 믿음을 따라서 명령을 내리면 그 명령 대로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작은 믿음을 내 삶에 순종하고 활용한다면 엉청난 기적을 이루어 갈 것이고 그 기적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일취월장 자라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에서 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는 작은 믿음에서 큰 믿음으로 자라난다는 말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합니다. 죽은 믿음은 성장하지 않습니다. 조금전 누구 복음에서 어떤 믿음? 겨자씨 한 알 같은 믿음이라고 했지, 모래 한 알 갱이 같은 믿음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모래는 자라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겨자씨는 살아 있기에 자라납니다. 겨자씨가 땅에 심겨 지면 큰 나무가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의 믿음의 나무는 지금 어떻습니까?          

 


켐연장

2016.05.09 18:14:04

2016년 5월 2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은 기술적인 문제로 올리지 못함을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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