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36

금요기도회 :4/29/2016

대표기도:선교부

찬송가:270장(변찮은 주님의 사랑과)

 

1. 젊은 시절에는 멀리 있는 것을 귀한 것으로  여기고 가까이 있는 것을 하찮게 생각을 하지요. 멀리 있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가까이 있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요. 젊은 시절에는 많이 벌어 놓고 높은 지위가 있어서 회전 의자에 앉아서 아랬사람들을 호령하는 분들이 존귀한 분들이라고 생각했지요. 젊은 시절에는 학문적인 성취를 이룩한 분들이 우러러 보였지요. 그런 분들이 내내 존경 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학문도 돈도 권세도 부질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오히려  주위에 닿을 있는 모든 것, 가까이 있는 것이 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닿는 곳에 있는 사람들을 안아주고 사랑하고 섬기고 축복해 주고 싶어집니다. 늙어서 그런가? 형제들-앞만 바라보고 질주 하지 말고 옆도 보고 뒤도 돌아 보면서 쉬엄 쉬엄 앞으로 나가길 바랍니다. 앞만 바라보고 질주하다가는 잃어 버리게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목적 지향적인 삶을 살다가 보면 원하고 바라고 추구하는 것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러나 동시에  잃어 버리는 것도 대단히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요. 옆을 바라 보고 뒤를 바라보면서 나가면 뒤처지지는 같아서 조바심이 나기도 하지만, 오히려 속에  인생의 즐거움과 삶의 기쁨과 희열이 숨겨져 있습니다. 쉬엄 쉬엄 앞으로 나갑시다.

 

2. “발은 땅에 머리는 하늘에”(foot for the earth, head for the heaven) 라는 경구는 우리 인간의 실존을 여실하게 나타내 주는 경귀입니다. 우리 인생은 차원의 세계에 몸을 담고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인간이 만을 바라보면서 살아서는 안된다는 말이지요.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 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우러러 보십시요. 눈을 들어 나를 구원하실 우리 하나님을 바라 보십시요.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땅만을 바라보고  사시는 분들은 마시고 하늘을 처다 보는 병아리에게서 하늘을 처다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늘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 가신 곳입니다.  하늘로 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 땅에 다시 오십니다. 골로새서 3:1절에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의 것을 찾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도 6:27<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위하여 하라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영생에 들어가도록 하는 양식, 영생을 누리게 하는 양식, 생명의 양식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살수 있게끔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는 양식이지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간 동안 어떻게 사셨습니까? 세상 , 썩을 양식에 집중하면서 그것만을 추구하지 않았나요? 영원히 남아 있을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추구하면서 살아갑시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위의 이라고 불렀고, 사도요한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라고 불렀습니다. 무엇을 추구하고 사십니까? 당신의 눈은 어디에 고정되어 있습니까? 요일2;17< 세상도,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지나간다=사라져 버린다.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은 영원히 남아 있게 됩니다.

 

3. 예수는 누구인가?      딤전2:5-7<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중보자, 영어로는 mediator! 중보자라는 말은 중앙 이라는 말에 나왔지요. 예수는 하나님 편에서는 하나님을 대표하고, 인류의 편에서는 인류를 대표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앉으셔서 두 편 모두에게 만족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인생들 사이에 중보자가 되신다는 개념은 히브리서에서는 대단히 많은 구절이 출현합니다.  8:6, 9:15, 12:24……..>예수는 제사장일 뿐 아니라 희생 제물도 되시고 동시에 새언약의 중보도 되신다(옛 언약의 중보가 모세이었듯이, 새 언약(복음)의 중보자는 예수이시다. 새언약에 대한 예언은 렘31:31-34절을 참조할 것).                

 

/예수께서 어떻게 중보자의 자리에 서 있게 되었을까? 대속물이 되심으로써 중보자의 자리에 들어가셨다. 대속물이 무엇인가?   대속물이란 속전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대가를 취루었는데, 그 대가가 무엇인가? 예수의 피,즉 생명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대가로 자기의 목숨을 내 놓았다는 말입니다. 이게 얼마나 큰 사랑인가? 이웃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 놓을 정도라면 얼마나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내 놓을 정도로 사랑했습니다. 우리에게 왜 중보자가 필요한가? 우리 힘과 능력과 지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는 없는가? 없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거리를 절대 거리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이 절대 거리는 영원히 메꾸어질 수 없습니다. 인간 자력으로는 그 절대 거리를 뛰어 넘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중보자가 그 사이에 있어야만 됩니다.  하나님은 한 분, 중보자도 한 분, 그러나 선포자, 즉 교사는 많습니다. One God, One Mediator, Many proclaimers (teachers)! 교회사 2천년 동안 수 많은 복음 전도자가 있어 왔습니다. 우리 주님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복음 전파자는 계속 세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는 오직 한 분 예수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 말고 다른 중보자가 있을 수 있나요? 석존, 공자, 마호메트는 참 중보자가 아니다. 진짜 중보자는 예수 한 분 밖에는 없다. 중보자이신 예수께서 하신 일은 무엇인가? 계시와 구속! 하나님을 우리에게 계시했고, 우리 인간을 구속했지요. 계시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스스로 우리 인생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인간이 자기의 지혜와 지식으로 하나님을 찾아 내고 알아 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 주셔야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통하여 자신을 알려 주셨나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1:1-3<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를 통하여 말입니까? 구약 시대에는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우리의 조상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그 구약 시대에는 우리들은 우리 조상들의 허리에 붙어 있었다. 우리들도 우리 들의 조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옆구리에 붙어서 조상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연합 사상이지요. 우리 하나님이 구약의 백성들에게 수 많은 예언자들을 보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했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호세아, 미가와 같은 예언자들 말입니다. 이 예언자들이 했던 말씀이 그들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주신 말씀이지요.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인이신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요? 계시라고 부르지요. 그렇다면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나타내 보여 주셨나요?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모든 날 마지막이 어느 시대입니까? 신약 시대를 가리킵니다. 세상 끝에 메시야가 오신다고 구약에는 예언이 되었는데, 그 메시야가 예수입니다. 예수께서 오신 이후부터는 세상이 말세가 됩니다. 마지막 시대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말세지말! 즉 말세 가운데서도 끝부분에 해당된다는 말이지요. 예수께서 오신 이후부터 신약시대가 시작이 되었지요. 신약 시대에는 우리 하나님이 누구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말씀 하셨나요?  오늘 본문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아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확실하게 그리고 가장 온전하게 우리 하나님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이 하나님을 나타내 주었습니다. 또 예수의 무엇이 하나님을 나타내 주었나요? 예수의 인격과 예수께서 일으키신 기적이 하나님을 나타내 주었습니다. 예수님을 본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을 보는 일입니다. 우리 주님도 요한 복음에서 요14:9절에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지요: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이 사실이 믿기워지지 않으면 예수께서 행하셨던 기적들을 보고서 예수를 믿으라고까지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지요. 오늘 히브리서 본문에는 예수가 무엇이라고요?  예수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고, 그 본체의 형상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예수는 하나님과 동등, 즉 동일 본질이십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과 동등하거나 동일 본질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는 다릅니다. 그 분은 하나님과 동등이시면서 동시에 하나님과 똑 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빛을 발산하는 발광체라는 말입니다. 예수는 빛을 묶어 놓은 <빛다발>입니다. 지폐, 돈을 묶어 놓은 지폐 뭉치를 무엇이라 부릅니까? <돈다발>이라고 부릅니다. 예수에게서 빛이 방사되어 나오는데, 예수는 빛에 둘러 쌓여 있습니다. 그것을 빛다발이라고 부를 수 있지요.  또한 예수는 하나님을 보여 주는 아이콘입니다. 그 아이콘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계시자이십니다. 예수는 하나님을 99.99%닮은 분이 아니라 예수는 하나님을 100%닮은 분이십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을 우리에게 온전하게 계시하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본질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비슷하게 닮아서는 온전하게 하나님을 계시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외계인들이 UFO를 타고 와서 지구인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기 위하여 숲속에 들어가서 보노보 침팬지를 한 마리 사로 잡아서 유전인자를 분석하고 겉모습과 습관을 관찰 했다면 그들이 지구인들을 바로 이해한 것입니까? 아니지요. 인간과 가장 비슷한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는 보노보 침팬지를 아무리 연구해도 그것으로부터 인간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린 애기든지 아니면 청년이든지 아니면 노인이든지 인간을 하나 데려가서 유전인자를 분석하고 습관과 행동과 외양을 분석하고 관찰해야 인간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는 아이콘이 하나님을 닮은 자가 되어서는 안되고 바로 하나님과 동일 본질이어야만 그가 하나님을 우리에게 온전하게 계시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주님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는 하나님이 맨처음 만든 피조물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이단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있는 하나님과 동일 본질의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주장하듯이 예수가 하나님의 최초의 피조물이라면 그들은 그 예수로부터 온전한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단이지요. 예수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고, 하나님의 본체의 아이콘입니다. 누구든지 성경에 있는 예수를 만나게 되면 하나님을 보았고 알게 됩니다.


/구속이란 무엇인가?  구속이라는 말은 보통 구금 되었다라는 말로 이해하지요. 죄를 지어서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구속되었다라고 보통이해하지요. 그런데 성경에서 구속되다라는 말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라는 말로 쓰이지요. 오히려 구속은 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죄에 묶여 있었는데, 죄에서 해방 되어서 자유롭게 되었다할 때에 구속되었다라고 말하지요. 우리는 예수의 피로 구속된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는 그가 흘리신 피로 우리의 더러움을 씻어 주셨다. 1:3절에는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깨끗하게 하는 일을 하셨다. 우리 주님도 세탁소를 경영하신다. 옷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우리의 심령을 깨끗하게 하시는 일을 하셨다. 영혼의 때를 벗기는 일을 하나님이 하신다. 예수의 세탁행위는 <단번에 영원히>! 십자가 사역은 단 한번의 사건인데, 그 효력은 영원까지 지속되는 속죄행위이다. 10:11-12<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반복되어져아 하는 사건이 아니라 역사의 마지막날에 있었던 단 한번의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없애기 위하여 제사를 반복적으로 드리지만, 예수는 구약의 제사장들과는 달리 단 한번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어디에서 말입니까? 십자가 제단에서 무엇을 제물로 드렸습니까? 자기 자신을 드렸습니다. 소와양의 피를 가지고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피를 가지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번의 영원한 제사를 드렸다.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우리의 죄를 없애기 위하여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다른 무엇을 더 보탠다면 그것은사족의 첨가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모욕하는 일이다. 통일교에서는 무엇을 주장? 피가름! 웃기는 소리! 예수의 속죄 사역은 2천년전에 완결되었기에 그 어떤 것도 덧대어져서는 안됩니다. 그 효력은 우리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지속된다. 죄인된 우리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우리 주님이 피흘렸다. 예수의  피가 이토록 소중하고 귀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3절에는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어디에 앉으셨는가?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앉았다. 하늘 보좌에 앉으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일을 마치셨다는 말이 아닙니까?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 주부들이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부엌을 정리합니다. 설겆지를 중간쯤 하다가 내일하지 하고 소파에 앉아서 쉬면서 중단하는 분 있습니까? 없지요. 설거지를 모두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무엇을 합니까?  일을 마친 후에 소파에 앉아서 비로소 쉽니다.  예수께서도 지상에서의 모든 사역, 즉 십자가 사역을 마친 후에 무엇을 했습니까? 보좌에 앉았다고 합니다. 모든 사역을 마쳤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늘 서서 제단에서 일했습니다.앉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반복적으로 계속되어야 하는 제사 사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십자가 사역을 마친 후에 어디에 앉았습니까? 하나님의 우편에 앉았다. 속죄 사역이 완결되었다는 말이 아닙니까? 단 한번의 제사이나 그 효력은 영원까지 지속되는 속죄제사를 우리 주님은 행하였습니다.  구원받은 인생들이 주예수를 영원토록 찬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4.  현대 교회 가운데는 예수가 없는 교회가 많다. 요한 계시록에는 소아시아에 있는 7개의 교회 중에는 맨 마지막에 언급되어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는데, 이 교회가 현대교회와 아주 흡사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교회라는 무늬는 가지고 있지만 아이로니칼 하게도 예수는 그 가운데 없는 그런 교회입니다. 3: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라오디게아 교회는 어떤 교회? 문닫힌 교회다. 예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의 닫힌 문 앞에 서서 <문 좀 열어달라>고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이 교회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운 교회입니다. 3:17절에 보면 자신들은 부자이기에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라고 자긍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런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너희는 가장 궁핍하고 가난한 교회라고 평가하시면서 회개하지 않으면 입에서 토하여 내 버리겠다는 준엄한 책망을 했습니다. 돈과 명성과 인맥은 풍성하지만 풍성한 우리  하나님의 영적인 은사들을 모두 잃어 버린 나약한 교회의 모습이 바로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이고 현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 주님이 교회 가운데 없다면 그것은 사교 모임입니다. 교회라는 무늬만 있는 교회이지요. 이런 강단 조크가 있습니다.  어떤 흑인이 백인들만이 모여 있는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그랬더니 백인 안내인이 그 흑인이 예배당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제지했습니다. 지하의 친교실로 보냈습니다. 그런 푸대접 때문에 마음이 서글퍼서 눈물 흘리면서 기도했더니 주님이 그 흑인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위로했습니다:애야 너도 이 교회 예배에 못들어 갔구나.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 나도 이 교회의 예배에 들어가지 못했단다!


/그래도 현대 교회 가운데는 이런 라오디기에 교회 보다는 조금 나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예수가 그들 중에 계시는 하는데 영 예수께서 힘을 못쓰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예수님을 교회에 모셔 들였기는 한데, 예수님에게 가장 좋은 자리, 높은 자리에 모셔 놓은 게 아니라 골방에 쳐 박아 두고 그것도 모자라서 밖에서 자물쇠까지 걸어 두었습니다. 예수님이 골방에서 나와서 자신들을 좌지우지할까 두려워서 자물통까지 채워 놓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왕으로 있다면 자신들이 왕노릇 하기 힘드니 말입니다. 그러니 이런 교회가 제 구실하겠습니까? 예수께서 교회에 오셔서 왕노릇 한다면 교회안에 성령 불이 훨활 타오르겠지요. 그런 성령불이 꺼져 가고 있는 교회가 수없이 많습니다성령불! 교회가 이 불을 꺼뜨려서는 안된다. 교회가 이 불을 잃어 버리면 무슨 일이 일어나나교회가 성령 불을 잃어 버리면 수 많은 영혼들이 지옥불에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지옥 불에 들어가는 영혼들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이방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있다3:18<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성령 불이 활활 타오르게끔 하기 위하여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 모여서 힘써 기도해야 한다. 다른 대안이 없다. 모세가 가시떨기 나무에 불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엘리야의 제단에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 왔다.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불이 임하였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내가 땅에 불을 던지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주님은 지금도 저 하늘 위에서 무엇을 하시는 분인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교회는 붙타고 있어야 한다. 생명을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기록된 성경 말씀,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에 성령이 부어질 때에 생명이 만들어진다. 미디안 광야에서 가시 떨기 나무에 불이 모세를 끌어 당겼다. 모세가 그 불을 보고 그 불 가까이 나아갔다. 오늘날 교회에 성령의 불이 타오르면 그 불이 세상 사람들을 교회로 이끈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기 위하여 교회는 성령불이 타올라야 한다. 이것 외에는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매력을 줄 수 없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코리따분하다. 재미 없는 곳이어서 세상 사람들이 기피하지만, 그러나 성령불이 붙어 있으면 세상 사람들이 저것이 무엇인가하면서 교회로 나아옵니다. 켐연장 교회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불내려 주소서! 켐연장 교회가 성령으로 불붙게 하소서!>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켐연장 교회에서 나오는 성령불을 보고서 우리가 어찌할꼬라는 응답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방인들도 생명 얻는 회개를 하게 될 것입니다. 11:18<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생명으로 들어가는 회개누구에게? 이방인에게도!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개 돼지라고 무시하던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영생에 들어가는 회개가 일어나도록 했다. 교회가 성령으로 불타 오르고 있을 때에 영생에 대하여 목마름을 느끼는 이방인들이 교회로 나오게 됩니다. 우리 켐연장 교회를 성령의 불이 타오르도록 우리는 주께 부르짖어야 겠습니다.


켐연장

2016.05.02 08:10:07

2016년 4월 29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6/04292016.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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