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35

금요기도회 :4/22/2016

대표기도:중보기도+선교부

찬송가:복음송<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1. 조크:엄마와 꼬맹이 사이의 대화:예수님 거기 계시지요?

2. *앗시시의 성자 성프란시스코의 성 프란시스의 평화의 기도: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해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3. 지난 금요일날 연합과 일치에 말씀드렸습니다. 좀더 부연해서 그것에 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교회 일치, 영으로 일치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0:16-<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이 우리(축사)에 들지 아니하는 다른  양들은 누구일까요예수 믿는 후대의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 믿는 이방인들도 우리 주님이 인도하는 양들입니다. 우리들을 가리키지요. 우리들이 후대의 예수 믿는 이방인들이지요우리 주님이 이 양들을 같은 우리 속에 넣어서 양육하나요? 아니지요. 비록 다른 우리(축사)에 넣어서 돌보지만, 한 무리가 된다는 말입니다. 다른 무리가 아니라 한 무리가 된다는 말입니다. 왜 다른 우리에 넣어야 하나? 영으로는 하나이지만, 무엇이 다른가? 문화와 언어와 관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용광로가 되어서 다 녹여서 하나로 만드는 곳이 아니라 교회는 모자이크입니다. 하나 하나의 개성과 특성이 살아 있으면서도 전체가 조화를 이루는 곳이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교회 안에서 언어와 문화와 직종이 같은 사람들끼리 끼리 모이게 되지요. 교회 안에서 끼리 끼리를 인정하지만 그것을 넘어가는 일치와 연합을 가져야 하지요.


/한 우리냐? 한 무리냐? 온 세상에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 개신교든, 천주교든 모든 예수 믿는 이들이 한 우리 속에 있지 않지만, 무엇이라고요? 한 무리라는 말입니다. 서로 다른 두 무리가 아니라 비록 따로 따로 모여 있지만 하나의 무리라는 말입니다. 교회들이 담벼락을 헐고 한자리에서 모여서 예배 드리고 교제하는 일이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담벼락을 그대로 놓아 두고 손을 담벼락 밖으로 뻗쳐서 손 잡고 협력하는 일이 교회의 일치이고 교회의 연합입니다.


/지상의 온 교회는 하나다. 교회는 복수를 사용하지 않는다. Churches 가 아니라 단수인 church가 맞다. 교회는 하나, oneness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다! 한 가족이 무엇인가? 한 지붕 아래서 기거할 때에 한 가족인가? 아니다. 비로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핏줄이 같다면 한 겨레요 한 가족이다. 그리스도인들도 그렇다. 예수에 대하여 바른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미국에 있든지, 아프리카에 있든지, 한 반도에 있든지 모두 한 형제와 한 자매가 됩니다. 우리가 한 형제요 자매라는 이런 지체 의식을 가지고 서로 다른 교회 벽 안에서 신앙생활하더라도 그것이 공동체 의식이고 그것이 교회 연합이다. 그리스도인은 사랑의 띠로 하나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교회 연합이다


/그렇다고 예수에 대하여 다른 신앙고백을 하는 이단들과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본질에 있어서는 일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비본질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자유로와야 합니다. 여호수아 22-요단강 동쪽의 르우벤, , 므낫세 반 쪽 지파들이 요단강 동쪽 땅에서  단을 만들어 세워 놓자, 요단강 서쪽 9지파 반이 분개하여 전쟁하고자 했고, 전쟁하기 전에 그 단이 어떤 단인지를 조사하기 위하여 조사단이 파견되어서 그 단을 조사한 결과 다른 단이 아니라 여호와를 위한 기념 단이라는 것이 판명나서 갈등이 사라지고 하나가 되었다. 여호와를 위한 제단이 아니고 다른 단이었다면 요단강 이 쪽에 있는 9지파 반과 요단강 저 쪽에 있는 2지파 반이 피를 흘리는 전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이기 때문에, 이 교회에서 저 멀리 아프리카로 파송한 선교사가 저 교회에 가서 선교 보고할 수가 있습니다. 선교 보고는 꼭 자신이 파송을 받은 교회에서만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에 있는 어떤 교회에 가서도 선교보고를 할 수 있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신앙간증도 마찬 가지입니다. 독재 정권 밑에서 박해와 핍박과 학대를 받는 성도들에 대한 불쌍히 여기게 됩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북한에서 신앙 때문에 고통당하는 지체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립니다. 왜냐하면 나의 신앙체험이 온 교회가 함께 누려야 할 신앙체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임을 잊지 맙시다

/9:50-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4. 중국 선교 반드시 해야 한다. /49:12<혹자는 원방에서, 혹자는 북방과 서방에서, 혹자는 시님 땅에서 오리라

중국을  영어 표기로는 China라고 하지요. 차이나라는 명칭은 어디서 왔을까?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인 진()나라에서 유래했다. 진은 주전 900년경부터 시작되었는데, 진시황이 중국천하를 주전 221년에 통일했다가 15년 뒤에 멸망했지요. 진나라의 중국어 발음인 '(Qin)'이 서양으로 건너가 라틴어인 '치닉(Cinic)'으로 발음됐고, 이후 '시닉(Sinic)'으로 음역(音譯)되는 과정을 거쳤다. 이것이 오늘날 중국의 공식 영문 명칭인 'China'로 바뀌었지요오늘 본문 속에 보이는 시님땅은 어느 땅을 가리키는가? 아주 먼 곳을 가리킨다는 것을 문맥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시님이 애굽의 나일강 상류의 "스웬임" 혹은"시에네" 일것이라고 제안이 있습니다. NIV성경이 Aswan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시님의 지정학적인 위치를 화정하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지만 어느 것도 확실하지를 않습니다. 전통적인 견해로는 중국으로 이해합니다. 아주 고대로부터 중국이 서방 세계와 무역을 했지요. 또한 친, 치닉, 시닉,차이나 같은 말이 시님과 비슷하지요. 시님을 고대의 중국 땅으로 이해해도 될 것입니다. 시님을 중국 땅으로 해석할 경우에는 구약 성경에 이미 중국에 대하여 예언했다고 받아 들일 수 있습니다중국 선교를 해야 하는  근거를 구약 성경의 이 구절에서 찾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49:6<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하나님의 종, 여호와의 종이 누구인가? 전통적인 견해로는 메시야를 가리키지요. 메시야가 누구입니까? 우리 주님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무엇으로 삼았습니까? 이방의 빛으로 삼았다. 그리고 예수를 통하여 온 땅에 하나님의 구원을 베푸시겠다는 예언입니다. 이 예언대로 우리 주님이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을 이룩하셨지요. 그리고 그의 제자들을 세워서 땅끝까지 예수의 구원을 전하게 하셨지요.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이 뻗어 나가야 할 것을 우리 주님 예수께서 말씀하셨지요이사야에 기록되어 있는 땅 끝은 어디 일까요? 시님입니다. 먼 곳입니다. 중국 대륙을 가리킨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중국 사람들도 말세가 되면 우리 주님 예수님을 인정하고 환영할 것이고, 우리 주님께로 나아올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13:29<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중국 땅에도 큰 부흥이 일어날 것입니다.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부흥은 앞으로 있게 될 큰 부흥의 전조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 부흥에 조그마한 부분을 올 여름에도 담당하고자 합니다. 힘써 기도해 주기를 바랍니다.

 

5. 교회는 선교 공동체이다. 왜 선교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어서 에덴 동산에서 추방을 당한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출생한 땅에 살고 있는 인생들을 불쌍히 여겨서 구원해야 겠다는 의지를 제일 먼저 드러낸 사건이 무엇일까요? 노아의 홍수? 노아의 홍수는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심판이지 구원의지는 아니지요.모든 인생들을 홍수로 쓸어 버렸지만, 노아의 8식구만은 살려 내셨지요. 진노 중에도 긍휼을 베푸셨지요. 만약 하나님께서 노아의 8식구도 모두 물로 쓸어 버렸다면 지구에는 인류가 없는 그런 지구가 되어 버렸을 것입니다. 노아의 8식구를 구원한 것은 인류 구원의지를 세상에 드러낸 사건이 아닙니다. 그저 의롭게 산 노아라는 인물 하나를 구원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인류역사 세계 속에 분명하게 보이는 온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나타난 사건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사건 속에서 명백하게 보여집니다. 창세기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지요. 1-11장까지는 원역사라고 부르고, 12-50장까지는 족장사라고 불리워지지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 이야기를 족장사라고 부르지요. 1-11장까지의 역사를 원역사라고 부르는데, 원역사는 신화적인 사건이 아니라, 우리 인류 역사에서 그 때의 일을 재구성할 수가 없는 역사를 그렇게 부르지요. 족장사에서는 그들의 역사를 재구성할 수가 있습니다. 장소와 시간을 확정지을 수가 있다는 말이지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이 불렀습니다. 무엇하려고 말입니까? 그를 가나안 땅, 약속의 땅으로 들여 보내기 위해서 말입니다. 유목민, 양떼와 소떼를 거느리고 풀을 따라서 이동하는 노메드인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불러서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으로 들여 보냈습니다. 당시 유목민들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애굽까지 반달 모양으로 나 있는 곳을 이동했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런 노메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우리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으로 갈 것을 명하셨습니다. 무엇과 함께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7가지의 약속을 하면서 말입니다. 7가지의 약속을 7중의 약속이라고 부르지요. 12:2-3<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으리라>7가지의 약속이 아브라함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으로 들어갔지요. 사실 그 땅은 어떤 땅입니까? <중동의 화약고>라고 불리워지는 땅이 아니던가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도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땅입니다. 이스라엘 땅은 세 대륙의 교차지점입니다.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이 맞닿아 있는 땅입니다. 세 대륙을 잇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땅입니다. 그러니 전쟁이 끊일 날 없지요. 아시아 세력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힘이 세지면 애굽을 먹기 위하여 이스라엘 땅을 지나가야 하고, 애굽이 강성해 지면 북방을 먹기 위하여 그 땅을 지나가야 하고, 유럽이 강성하게 되면 애굽을 먹기 위하여 그 땅을 지나 가야 합니다. 전쟁이 쉬질 않는 땅입니다. 그런 땅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보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고달픈 삶을 그 땅에서 살지 않으면 안되었지요. 전쟁이 일어나면 사방으로 도망을 가거나, 아니면 전쟁 포로가 되어서 온 사방으로 붙잡혀 갔지요. 이렇게 온 사방으로 흘어져 간 사람들을 무엇이라고 부르지요. 디아스포라! 그들이 온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은 여호와를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그 땅에 보내시려는 계획? 그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려는 복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우리 주님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째 되는 날 살아 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이지요. 이 복음을 빠른 시간 안에 전 세계에 전파하기 위한 땅이 팔레스타인 땅입니다. 세 대륙의 교차 지역이기 때문에,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 로마라는 초 강대국이 지중해 연안을 석권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복음은 급속하게 온 세상으로 전파되어 갈 수 있었습니다. 오순절날 각국으로부터 온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이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전수 받아서 온 세상으로 흩어져 갈 수 있었습니다. 만약 팔레스타인 땅이 지구의 한 쪽 귀퉁이에 있는 아무도 주목해 보지 않는 그런 땅이었다면 예수의 복음이 그런 땅에서 시작되었다면 효과적으로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그 전쟁의 땅으로 보내면서 먼 훗날 우리 주님 예수의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려는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2:3<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으로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이 예언을 바탕으로 우리 주님께서 다시 살아 나신 후에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하시지요2:46-48<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에 증인이라  > 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16:15<너희는 온 천사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언제까지?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가 해야 하는 사역은? 복음 전파의 사역이다. 세계 선교의 비전을 갖자!


/28:30-31<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 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 없이 가르치더라> 성경책은 신약 구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신약 성경의 맨 마지막 책은 요한 계시록입니다. 요한 계시록 마지막 구절은 우리 주님께서 내가 속히 너희에게로 가리라라는 말씀에 대하여, 아멘 주에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말로 완결됩니다. 요한 계시록 이후에 저작된 모든 예수에 대한 기록은 성경이 될 수 없습니다. 요한 계시록으로 완결 되었기 때문입니다. 몰몬교의 몰몬경이나, 통일교의 원리 강론이나 이단들이 내 놓은 모든 교리책은 사이비입니다. 모두 가짜 진리의 글입니다. 성경은 요한 계시록으로 완결 되었습니다. 성경에 덧 댄다면 그것은 사족첨가입니다. 그런데 뒷 장이 열려져 있는 책이 하나 있습니다. 그 책이 무엇이라고요? 사도행전입니다. 성령께서 사도들과 성도들을 사용해서 기록했던 성경이 사도행전입니다. 사도행전은 일종의 성령행전과 같습니다. 사도들이 성령을 사용해서 이룬 선교사역이 아니라 성령이 사도들을 사용해서 이룬 선교사역입니다. 사도 행전 28장은 사도 바울의 사역으로 완결 된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선교 사역은 사도 바울로 끝난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 이후에도 계속되어져야 하는 사역입니다. 성령이 우리들을 사용하여서 사도행전 후기를 기록해야 합니다. 28:30-31절의 그릭원문을 보면 이 문장은 분사형으로 끝나 있습니다직역을 해 보면, 바울은 만 2년간을 자기 셋집에 머물렀고,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을 모두 다 영접했다. 무엇을 하면서 말입니까? 전파하면서, 가르치면서 말입니다. 무엇을 전파합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면서, 또 무엇을 가르칩니까?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들을 가르치면서 말입니다전파하면서 가르치면서는 모두 현재 분사형입니다. 현재 분사는 계속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을 의미합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 가는 우리들도 사도행전 후기를 써 내려 가야 합니다. 물론 그것이 성경과 동등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지라도 성령이 우리들을 사용해서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일을 하고 해야 하겠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진리를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게 끔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순교함으로써 이방인의 선교 사역이 끝나 버린 것이 아니라 그것은 우리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그날 까지 중단 없이, 그리고 거침 없이 계속되어져 나가야 할 사역입니다사도행전 28장 이후의 뒷장이 열려져 있는 그 책에 우리들도 사도들처럼 사용되기를 원합니다


/선교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누구입니까? 성령님이십니다요한 복음 20:21-22<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선교사역에서 성령 없는 선교 사역은 선교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토록이나 부활하신 후에도 우리 주님은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간헐적으로 부활하신 실제의 몸으로 나타나시면서 제자들에게 성령불을 받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선교 사역의 총 사령관은 성령님이십니다.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성령님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십니다모세가 미디안 광야에 있었을 때에 우리 하나님이 가시 떨기 나무에 불로 임하였지요. 가시 떨기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않는 광경을 모세가 목도하지요. 그 불 가운데서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하게 되지요. 하나님이 모세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사명을 부여하지요어떠 사명?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하는 큰  사명을 받지요가시떨기 불꽃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 무엇을 상징합니까? ’성령 불을 가리킵니다.  1300년후에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님-불 같은 성령! 사도들과 120명의 제자들이 모두 성령불을 받은 후에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게 되었지요. 불 같은 성령! 교회가 성령 불을 잃어 가고 있기에 사람들이 지옥 불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다시금 성령불이 온 교회마다 불타 오르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교회, 켐연장 교회도 이번 여름에 각 심령마다 불 같은 성령님이 타오르기를 바랍니다.


켐연장

2016.04.25 09:21:48

2016년 4월 22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6/04222016.mp3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62 금요기도회(07/29/2016) [1] 김영호목사 2016-08-01 230
461 금요기도회(07/22/2016) [1] 김영호목사 2016-07-25 235
460 금요기도회(07/15/2016) [1] 김영호목사 2016-07-19 242
459 금요기도회(06/03/2016) [1] 김영호목사 2016-06-06 300
458 금요기도회(05/20/2016) [1] 김영호목사 2016-05-23 231
457 금요기도회(05/06/2016) [1] 김영호목사 2016-05-09 285
456 금요기도회(04/29/2016) [1] 김영호목사 2016-05-02 317
» 금요기도회(04/22/2016) [1] 김영호목사 2016-04-25 314
454 금요기도회(04/15/2016) [1] 김영호목사 2016-04-18 412
453 금요기도회(04/08/2016) [1] 김영호목사 2016-04-11 375
452 금요기도회(04/01/2016) [1] 김영호목사 2016-04-04 330
451 금요기도회(03/25/2016) [1] 김영호목사 2016-03-28 317
450 금요기도회(03/18/2016) [1] 김영호목사 2016-03-21 336
449 금요기도회(03/11/2016) [1] 김영호목사 2016-03-14 413
448 금요기도회(03042016) [1] 김영호목사 2016-03-07 352
447 금요기도회(02/26/2016) [1] 김영호목사 2016-02-28 363
446 금요기도회(02/19/2016) [1] 김영호목사 2016-02-23 412
445 금요기도회(02/12/2016) [1] 김영호목사 2016-02-14 454
444 금요기도회(02/05/2016) [1] 김영호목사 2016-02-08 421
443 금요기도회(01/29/2016) [1] 김영호목사 2016-02-01 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