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23

금요기도회 :1/29/2016

대표기도:대표기도+<선교부>

찬송가:<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1. 고정관념/서양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분은 소크라테스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플라톤이고요. 플라톤이 그의 저술인 국가론 제 7권에서 동굴의 비유를 이야기합니다. 동굴의 비유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동굴에는 수 많은 죄수들이 벽면을 향해 묶인 채로 앉아 있습니다. 벽면에는 불 그림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것을 실재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동굴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벽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있는데 말입니다. 벽에 비친 그림자를 실재라고 믿는 이것은 편견이고 선입견이고 고정관념이지요. 우리가 현실에서 보고 있는 모든 것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플라톤은 말했지요. 자 플라톤이 들었던 이 동굴의 비유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동굴에 갇혀서 살고 있는데, 어떤 동굴입니까? 우리들 육체 밖에 엄연히 실존하는 영적인 세계를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기에 물질세계, 육신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삽니다. 이런 생각은 편견이고 선입견이고 고정관념입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물질이 전부라는 고정관념을 빨리 깨뜨려야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한 바른 해답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물질이 전부라는 고정 관념이 깨어지지 않으면 보이는 것에 얽매여서  한 세상 살아갑니다. 물질 위에 인생이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에 속박되어 사는 그런 종의 삶을 살게 됩니다. 세상 가운데 살아가지만 물질의 노예가 아닌 영적인 자유를 누리면서 살기 위해서는 물질 저 너머의 세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됩니다고후4:18<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2. 지난 금요일에는 아사왕 시대의 부흥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본문으로 대하14-16장을 읽었습니다.  20년 동안 하나님을 향한 아사왕의 마음이 온전하였다고 대하 15:1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 그런데, 아사왕이 말년에 변하게 되지요. 초지일관하지 못했습니다. 말년에 가서는 아사왕이 교만하여서 타락하게 되지요. 아사왕은 말년에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기 보다는 사람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아사왕에게 주셨던 영적 부흥이 20년 만에 끝났습니다. 아사왕 36년에 북 이스라엘 바아사 왕이 군대를 이끌고 유대를 치러 내려 왔습니다.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국경 지역인 라마를 건축하고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왕래 하지 못하도록 거기에 군대를 파견했지요. 아사왕은 어떻게 이 문제를 처리했나요믿음의 방법을 쓴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방법을 썼습니다아사가 이스라엘 북동쪽에 있는 아람 왕, 벤하닷에게 은금을 보내면서 이스라엘 북쪽을 공격해 달라고 요청하지요. 그랬더니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대를 공격하려던 군대를 돌이켰다고 대하1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사왕이 이스라엘 왕의 군대를 저지했기는 했지만 이웃 나라 아람을 사용해서 그렇게 했습니다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외세를 의지하여서 나라를 통치하고 있는 아사의 통치 방식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확실하게 이탈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하나니 선지자가 아사왕을 심하게 책망했습니다. 아사왕에게는 이후부터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요? 대하 15:9절 후반절에서 이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라고 예언하지요. 이제는 하나님의 선물인 평화가 끝났고 앞으로는 유다 땅이 전쟁에 시달리리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은 아사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사왕은 무슨 짓을 했습니까? 예언자 하나니가 마음에 안든다고 감옥에 가두는 악을 더했습니다. 예언자를 옥에 가두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경멸하는 행동이지요. 이 일이 일어난 후 3년에 아사왕의 발병이 발생했고, 그 병이 대단히 위중했지만 그것도 아사왕이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다고  대하 16:1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누구를 의지했습니까? 의원들을 찾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발병 난지 2년 만에 죽었습니다. 아마도 이전의 아사왕이었다면 하나님을 찾았을 것이고, 하나님이 그를 고쳐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하나님보다는 인생들을 더 의지하게 되었습니다말년에 그가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따랐다는 말입니다. 유다의 임금 가운데 처음에는 올바르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겸손하게 통치하다가 말년에는 타락한 통치자들이 많았지요:다윗도 그랬고, 아사왕도 그랬고, 웃시야 왕도 그랬지요. 교회사적으로 수많은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부흥이 어느 정도 지속하다가 쇠퇴해 버립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부흥은 없었습니다. 10-20년 지속하다가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갑니다. 부흥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나님이 선물로 주신 부흥을 계속적으로 유지시키는 일은 부흥을 일으키는 일보다 더 어렵습니다. 부흥을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하여 우리는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니의 예언 선포! 대하16:9절 상반절<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말씀은 아사왕이 애굽의 백만 대군이 유대를 공격해 왔을 때에 하나님 한 분 만을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싸웠을 때에 승리했었지요. 군사적으로는 절대 약세인 유다가 어떻게 이겼는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의지했기 때문에 얻은 승리입니다. 여기서 감찰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감찰한다는 것은 살피신다는 말이지요. 하나님이 온 땅을 살피시면서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찾습니까?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무엇하시려고 말입니까? 그에게 능력을 베푸시려고 말입니다.예언자 하나니가 주전 9세기에 전해 준 이 진리의 말씀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사탄과의 영적인 전쟁에서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고 세상적인 빽줄을 의지한다면 우리도 아사왕처럼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우리 인생의 위기와 환난을 당했을 때에 누구를, 무엇을 의지할 것인가? 우리 주님 예수 밖에는 없다. 한 마음을 가지고, 온전한 마음을 가지고 예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하나님은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들고,두려움이 나를 압박할 때에 성도들이 유혹을 받아서 자신이 가진 세상 것을 하나님처럼 의지하게 되면 영적인 전쟁에서 패하게 됩니다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합시다. 이것이 영적 승리의 지름길입니다.                             4:23-24에서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요: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 에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저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이 이 땅에서 찾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힘있고, 돈 있고, 머리 회전 잘되는 사람입니까? 아니지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왜 찾을까요? 당연히 상 주시려고 찾지요. 마음에 품고 있는 소원, 영혼의 간구를 이루어 주시려고 말입니다. 예배하는 자들을 찾지요! 어떻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나요? 예루살렘이라는 거룩한 장소에서 예배하는 자를 찾나요? 아니면 사마리인들이 거룩하다는 그리심 산에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나요하나님이 찾는 예배는 장소에 귀착되어 있는 예배가 아니라, 장소에는 관계 없이 어떤 마음과 중심으로,   어떤 방법으로 예배 드리는 가가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어떻게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입니까?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이지요. 진리라는 것은 성경 말씀을 가리킵니다. 성경 말씀을 이해하고 깨달아 안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 전부를 그 깨달은 말씀에 실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요.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찾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신다는 말입니다요한 복음 4장의 이 구절이 오늘 예언자 하나니가 아사에게 했던 말과 동일 선상에 있는 말씀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향하는 자는 어떤 사람? 영으로 예배하는 자이지요영으로 하는 예배는 온 마음으로, 전심으로 에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 오늘 이 금요 예배, 기도회의 자리에서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까따라합니다. 대하 16:9<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 지금은 무엇할 때인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입니다.

 

3. 역대하 7:14절에는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서 계시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요. 복습해 보면,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부흥이 일어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이라고요? 악한 길에서 떠나서 죄를 회개해야 한다, 겸손해져야 한다, 내 얼굴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기도해야 한다-이 네가지! 부흥이 일어나기 위해서 인간 편에서 갖추어야 할 조건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아사왕 시대에 부흥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살폈습니다. 아사왕 시대에 아사왕이 어떤 조건을 만들었나요? 하나님을 찾았지요.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지요.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았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받으시고 온 유대 땅에 평화를 주셨지요. 오늘은 아사왕의 아들인 여호사밧 왕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볼까 합니다. 여호사밧 왕도 몇가지의 실수를 빼고는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길을 걸었던 선한 왕이었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습니다그런데 여호사밧 왕이 국가적인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역대하 201절에 기록되어 있지요. 모압과 암몬 자손들이 연합하여서 여호사밧 왕과 한판 전쟁을 벌리고자 했습니다. 이 국가적인 위기를 여호사밧왕은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기도했지요. 하나님이 문제를 냈고, 여호사밧 왕은 답을 썼습니다. 그 답이 무엇이라고요? 기도였습니다. 여호사밧은 온 유대 백성들을 모두 예루살렘으로 모았습니다. 유대의 남자들 뿐만 아니라 유대의 여자들과 심지어 아이들까지 모두 예루살렘으로 모았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했습니까? 금식하면서 하나님 앞에 서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었고, 유대왕국이 전쟁에 이겼습니다. 그래서 유다 땅이 태평하게 되었다고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평안, 평화, 샬롬은 하나님의 선물인데, 이것은 부흥의 결과물이라고 지난 번에 말씀드렸습니다. 대하 20:30<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의 하나님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

 

/조금 전에 우리들이 읽었던 4가지의 부흥을 위한 조건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라고요? 기도입니다. 대하 20:3-4절 보지요<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 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들으라고 하는 기도는 방향이 잘못된 기도입니다. 늦게 천천히 가도 좋으니 무엇이 올바르게 되어 있어야 합니까? 방향! 방향이 잘못 되어 있으면 아무리 빨라도 헛수고입니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는 늘 과녁을 향하여 바르게 화살이 날아 가야 합니다. 기도에 있어서 실패한 사람들이 성경에는 많이 있습니다. 누구처럼 말입니까? 바리새인들처럼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에게 찬사를 듣기 위하여 사람에게 보이기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이지요. 그네들은 왜 기도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누구를 움직입니까? 하나님을 움직입니다. 낮고 낮은 땅에 있는 인간들의 마음과 입에서 나오는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조그마한 신음 소리도 모두 들으시고 우리를 위로하십니다대하20:12-13<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유다는 영적 무력감에 빠져 있다. 영적 무력감은 무기력과는 다릅니다. 무기력은 적을 대항할 수 있는 힘과 능력과 지혜도 있지만, 그것을 사용해볼 엄두도 못내고 용기도 내지 못하고 무너져 있는 상태라고 한다면, 영적 무력감은 그렇지 않지요. 자신이 가진 힘과 능력 지식을 모두 사용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있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 이제는 안되는 구나라는 벽에 부딪혀 있다는 느낌이 들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영적 무력감이라고 부릅니다. 영적 무력감이 들면 전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너무나 큰 군대 앞에서 유대의 군사력으로는 도저히 싸워서 이길 수 없는 그런 상태에 여호사밧은 처하여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이 전쟁에서 승리할 지 전략도 전술로 세울수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야 말로 앞뒤가 꽉 막혀서 답답하고 막막한 그런 상황입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구나를 느끼는 무력감이 밀려 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무능을 알게 되었다. 또한 우리에게는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지혜도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누구를 바라 보아야 합니까?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적 무력감이라는 것은 건설적입니다. 온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의 힘으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지 않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매달리지요.                          예수께서 변화산상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있다가 하산 했습니다. 산 아래 내려 왔더니 귀신 들린 아이를 둔 아비가 예수께 이렇게 말하지요. 무엇을 하실 수 있으시다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달라고 요청했지요.. 그랬더니 우리 주님이 그 아비를 책망했지요: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 말을 듣고 그 아비는 이렇게 외칩니다: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우리 주님이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하신 말씀을 들었는데, 자신에게 그런 믿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이 아비는 무력감을 느끼겠습니까? 그 아비가 병든 자기 아들을 낫게 할 수 있는 믿음을 충만하게 가지고 있었더라면 예수의 능력이 그 믿음을 통하여 자기 아들을 낫게 했겠지요. 그러나 그런 믿음이 이 아비에게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부르짖습니까? 내가 믿음이 없는 것을 도와달라는 외침입니다. 철저한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아비의 부르짖음입니다.우리 주님이 영적 무력감 속에서 나오는 그의 부르짖음을 듣고서 그 아이에게서 귀신을 추방했고 그 아이를 건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아이의 아비가 믿음이 충만했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났나요? 아니지요! 철저한 영적인 무력감을 경험하게 되었을 때에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여호사밧왕도 마찬 가지입니다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는 믿음 밖에는 없었습니다. 유다의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아내와 그리고 어린 것들까지 모두 하나님 앞으로 나와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금요기도회에는 그렇지요. 온 교회 교인들이 어린애부터 어른들이 모두 나와서 합심하여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이렇게 온 교회 교인들이 노인에서부터 어린애들까지 모두 함께 모여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기도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여호사밧이 기도응답을 받았는데, 어떤 기도를 드렸나요하나님께서 이전에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을 꼭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무슨 약속? 7절을 한 번 읽어 볼까요?<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주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 내시고 그 땅을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지금의 유대 땅을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겠다고 조상들에게 과거에 약속하셨지요, 아브라함에게 최초로 약속했고, 그 후에 이삭에게 재천명했었고, 그리고 야곱에게도 약속을 재 확인 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그들의 조상에게 팔레스타인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시면서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까지 했지요. 그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영원히 차지하게 되리라고 말입니다.                 또 다른 약속은 무엇? 9<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이것은 언제 하신 약속입니까?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한 후에 성전 봉헌 할 때에 했던 약속이지요.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걸고 하신 약속이니 하나님이 그 약속을 어기면 체면이 말이 아니겠지요.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내 기도를 반드시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을 설득하십시요.무엇을 가지고 말입니까? 성경에 기록된 약속을 가지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 앞에 내 놓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냥 막무가내로 떼를 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을 움직이십시요.    또 옛적 광야생활 막바지에 모압, 암몬, 에돔 족속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적대감을 드러내었어도 악하게 대적하지 말라고 하셨지요. 이스라엘이 그들을 멸할 수 있는 힘이 그 때 있었지만 하나님이 모압,암몬,에돔을 멸하지 말라고 금했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그들을 멸망시켰더라면 이런 수모를 겪지 않아도 되었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하면서 이제는 그들이 강성하게 되어서 유대땅을 침입하여서 우리를 이 땅에서 쫓아 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징벌하셔야 합니다라고 기도하고 있지요.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기도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에 기반을 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응답을 받을 수 있지요. 15:7절에서 우리 주님도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하여 바로 이런 기도 응답의 원리를 말씀하셨지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성경을 많이 읽고, 깨닫고, 심령에 새겨 놓고 있으면 기도할  때에 큰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설득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기도는 하나님을 설득하는 일이다. 어떻게 설득하시겠습니까?

 

/여호사밧왕이 하나님을 꼼짝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구원 액션은?  14절에 의할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레위사람 야하시엘에게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야하시엘은 레위인이었는데 제사장이겠지요. 국가적인 위기 상황을 해결하는 구원의 말씀이 다름 아닌 누구에게? 레위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였습니다. 성령이 임하므로 그가 예언을 하게 됩니다. 예언자는 안테나와 같은 존재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메시지를 못받았는데, 안테나인 야하시엘은 받았지요. 어떤 예언입니까? 이 전쟁은 유다 백성이 싸워야 하는 전쟁이 아니고 하나님이 싸우시는 전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유다 백성은 싸울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유다백성은 그냥 대열을 이루고 서 있기만 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고 놀라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적들과 싸워서 물리치겠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 인생들을 건지실 때에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107:19-20<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서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제사장이면서 야하시엘이 받은 메시지는 다윗 왕이 일생 동안 주변국들과 싸웠던 전쟁 개념과 같지요. 다윗은 어떤 싸움을 싸웠나요? 여호와의 전쟁! 자신이 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싸워주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정복 전쟁에서 패하지 않았습니다.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아 보였던 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다윗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여호와의 전쟁을 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전쟁에 임했을 때에 우리 하나님이 그 전쟁에 개입해 주었지요. 그래서 그가 가는 곳마다 승리했지요. 여호사밧이 맞이하고 있는 전쟁도 어떤 전쟁? 여호와의 전쟁이니 염려 할 것 없다는 말입니다. 그냥 여호사밧과 예루살렘 사람들은 가만히 있으면 되었습니다.                              출애굽 사건에서도 그랬지요. 앞에는 홍해의 파도가 넘실 거리고 있고 뒤에는 애굽의 기마병이 와 있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출14:14<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46:10절에서도 그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요<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가만히 있으라! 어떤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미증유의 사건이 일어났지요. 땅과 산이 흔들려서 바다에 빠지고, 바닷물이 솟구치고 넘치고 그래서 산이 흔들리는 그런 재앙이 일어났을 때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건지신다는 말씀입니다. 가만히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믿음 속에서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 보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서 우리가 처한 상황을 보면 두려움이 일어나지만, 우리들의 상황 속에 들어와 계시는 우리 하나님을 보면 두려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의 영안이 이시간 열리기를 바랍니다.성령께서 우리의 감겨 있는 영안을 열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시련과 고난 속에 우리를 돕기 위하여 들어와 계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호사밧 왕이 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야사시엘의 예언의 말씀을 믿음으로 영접했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게 경배했습니다. 그리고는 이튿날 아침에 찬양대를 조직하여서 군대 앞에 내세워서 적진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일종의 군악대와 같았습니다. 여호사밧은 백성들에게 권면의 말씀을 했습니다. 2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신뢰하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아멘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또 누구를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까? 선지자들을 말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아멘하십시요. 그러면 무너지지 않고 견고하게 서게 될 것입니다. 예언자와 예언자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하십시요. 그러면 형통하게 되어질 것입니다26:3<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28:16<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시험한 돌?예수 그리스도!

 

/기도는 땅에서 하는 일이지요. 우리가 하늘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것 아닙니다. 땅에 서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하늘에서 오는데, 그 결과는 땅에서 일어납니다. 만일 우리가 이 땅에서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무엇하십니까? 우리의 기도들 하늘에서 들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땅을 고치십니다.

 


켐연장

2016.02.01 06:56:09

2016년 1월 29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6/01292016.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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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 금요기도회(04/29/2016) [1] 김영호목사 2016-05-02 317
455 금요기도회(04/22/2016) [1] 김영호목사 2016-04-25 314
454 금요기도회(04/15/2016) [1] 김영호목사 2016-04-18 412
453 금요기도회(04/08/2016) [1] 김영호목사 2016-04-11 375
452 금요기도회(04/01/2016) [1] 김영호목사 2016-04-04 330
451 금요기도회(03/25/2016) [1] 김영호목사 2016-03-28 317
450 금요기도회(03/18/2016) [1] 김영호목사 2016-03-21 336
449 금요기도회(03/11/2016) [1] 김영호목사 2016-03-14 413
448 금요기도회(03042016) [1] 김영호목사 2016-03-07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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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 금요기도회(02/05/2016) [1] 김영호목사 2016-02-08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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