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56

금요기도회 :11/4/2016

대표기도:선교부

찬송가:338-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1. 부부라는 것이 무엇일까? 결혼식, 혹은 결혼 예배를 드릴 때에 부부가 혼인 서약을 하지요. 혼인 서약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신랑의 서약과 신부의 서약이 한 구절을 빼고는 똑 같지요. 신랑: 한 평생을 길이 사랑하며/, 귀중히 여기고/, 도와주고 위로하며/, 고락간에 변치 않고/, 생전에 일정한 부부의 대의를 따라/ 남편 된 본분을 다할 것을/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여러 증인들 앞에서/ 맹세합니다.” 신부: 한평생을 길이 사랑하며/,귀중히 여기며,/ 도와주고 위로하며/, 순종하고 섬기며/, 고락간에 변치 않고/, 생전에 일정한 부부의 대의를 따라/ 아내 된 본문을 다할 것을/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여러 증인들 앞에서/ 맹세합니다. 

 

/부부는 인생살이에 있어서 서로의 버팀목입니다그것도 이 세상에 오직 하나 뿐인 최후의 버팀목입니다. 한편이 넘어질 때에는 다른 한 편이 손 내밀어 주어서 일으켜 세워줍니다부부가 의견 대립으로 서로가 반목하면서 갈등하면서 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부 싸움은 뭐라고요? 칼로 <물 베기>입니다. 칼로 물을 베면 곧 다시 물이 하나로 되어 버립니다. 부부는 서로 간에 싸우기는 싸우되 서로 상처를 내지 않고 싸우기를 바랍니다. 안 싸우는 부부는 우애가 돈독한 부부가 아니라 서로에 대하여 무관심 부부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요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 이것이 결혼한 부부에 대한 우리 주님의 명령입니다. 부부는 서로에게 인생의 동반자이면서 무엇이라고요?버팀목이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요. 그 버팀목이 무너지면 나도 무너지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벧전 3:7<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아내를 무엇하라고요? 귀히 여기라! 무시하지 말고 존중하고 아껴주고 귀하게 여기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50대가 되면 반대가 됩니다. 아내가 남편을 귀하게 여겨 주어야 합니다. 50대가 되면 입장이 바뀝니다. 50대가 되면 아내가 남편을 무시하지요. 나이가 들면 남자는 아무 쓸 데가 없어지지요. 밥을 할 줄 알아요, 빨래를 할 줄 알아요, 애기들을 돌 불 줄 알아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내로부터 무시를 당하게 되고, 아내의 눈치를 살피게 되지요. 50대가 되어서 이사를 하게 되면 남편을 데리고 가지 않는다고 반 농담조로 말을 하지요. 그러니  조금 전에 읽었던 베드로 전서의 말씀을 남편이 나오는 구절은 아내로 바꾸고 아내가 나오는 구절은 남편으로 바꾸어 읽어야 하지요. <아내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남편과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2. 알케곤이라는 단어 속에 보이는 예수의 사역?

 

예수라는 분을  사도행전과 히브리서에서는 알케콘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내 주었습니다. 알케곤이라는 말은 두 개의 헬라어 단어를 합성하여서 만든 조어입니다. 처음을 의미하는 알케와 인도하다를 의미하는 아고를 합하면 알케곤이 됩니다. 맨 앞장 서서 무리를 인도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길을 여는 사람 즉 개척자알케곤은 개척자, pioneer’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또 다른 의미는 저자,author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5;30-32<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 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베드로와 사도들이 목소리 높혀서 산헤드린 공의회 사람들에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예수를 나무에 못박아 죽였지만, 하나님이 다시 살려 내셨다.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예수를 오른손으로 어디까지 높혔는가? 임금과 구주로 삼았다. 구주라는 말은 구원자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죄와 죽음과 심판에서 건져 내신 분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면 임금이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왕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그릭으로 알케곤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조금 전에 말했듯이 무엇이라고요? 저자, author, 혹은 개척자 pioneer를 가리킵니다. 새로운 신약 시대를 여신 분이라는 말이지요. 우리 주님 예수님은 구약 시대 백성이 누릴 수 없었던 놀라운 복을 우리 신약 시대 백성들이 누릴 수 있게끔  길을 열어 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개척자이신 우리 주님이 만드신 길을 따라 가면 됩니다. 우리 주님이 걸어가신 옛길, 진리의 길이 무엇인지를 찾아 보고 그 길을 따라 가면 됩니다. 우리 주님은 신약 시대의 생명, 구원, 믿음이라는 분야에서 새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세 분야에서 우리 주님은 개척자이십니다.

 

첫 번째가 예수는 생명의 개척자이십니다

 

3:13-15<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예수님은 생명의 아르케고스이다. 아르케고스가 무엇이라고요? 생명의 author, 즉 생명의 저자, 생명의 창시자입니다.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이 그렇게도 목말라 하면서 바라고 기대했던 그 생명을 우리 주님 예수께서 이 세상에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생명은 목숨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숨은 하나님의 손으로 창조 되었습니다. 목숨은 육신적 생명입니다. 그러나 이 생명은 그런 육신적인 생명이 아니고, 이 생명은 영적인 생명이고 영원한 생명입니다이 영적 생명은 창조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이 생명을 가지고 있고(5:26절에는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성령께서도 이 생명을 가지고 있고(8: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 주님 예수께서도 이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14:6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성경은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모두 이 생명을 가지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특히 요1 1:2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 주님 예수께서 우리 모두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언제 주셨는가? 예수를 믿을 때에 주셨지요. 예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 생명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 안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요일5:11-12<~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영적으로 살았느냐 죽었느냐의 가리는 기준이 무엇이라고요예수! 예수는 생명의 주님이시다.                        

 

두 번째가 예수는 구원의 개척자이십니다.

2:10<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여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우리가 현재에 누리고 있는 구원, 신약 시대의 구원! 어떤 구원일까요? 죄와 죽음과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생물학적인 죽음이 왔고, 죽음 후에는 지옥에 들어가서 세세 무궁토록 지옥고통을 당하여야 하는데, 우리 주님이 우리를 건져 주었습니다. 예수께서 신약시대의 구원을 만드신 분입니다.          

4:12<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예수를 제외는 다른 어떤 사람도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구원을 우리에게 줄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구원은 지금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구원의 기쁨을 천국에 들어 가서 비로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예수 믿는 그 순간부터 계속적으로 누려야 합니다. 천국 들어가서 누리게 해 줄 테니 지금은 고생 좀 하거라하는 그런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의 기쁨을 잃어 버렸는가? 오늘 이 시간 구원의 기쁨을 회복합시다죄와 죽음과 심판으로부터 구원 뿐만 아니라 또 우리의 삶이 처하여 있는 딜레마와 궁지로부터 우리를 실제적으로 건져 내는 그런 구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의 길은 사후에 천국 들어가는 구원뿐만 아니라 이 땅 위의 삶에서도 삶의 어려운 환경에서부터 구원해 주시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구원을 누리고 있습니까?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이 구원은 지금보다 더 좋을 수 없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세 번째가 예수는 믿음의 개척자이십니다.

12:2<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신약 시대의 우리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이 믿음을 누가 만들었고, 그것을 우리에게 누가 주었나 말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만들어서 주었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믿음의 저자, 우리의 믿음의 개척자이십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이 주신 이 믿음 때문에 온갖 종류의 영적, 육적 축복, 즉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땅에서 누리게 되는 축복은 우리의 믿음의 크기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작으면 작은 축복 밖에 못 누리고 우리의 믿음이 크면 큰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마치 생물처럼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성장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 처음 믿을 때처럼 죽을 때까지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자라 나서 온전하게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은 확확 자라날 수도 있고 병들어서 침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주는 혜택? 믿음 때문에 영원한 천국을 상속 받았지요. 천국은 우리 주님 예수에게 상속 되었는데, 우리들도 예수와 함께 그것을 공동으로 상속하게 되었습니다.

8:17<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또 무슨 혜택이 있습니까순복음 교단에서 주장하는 소위 삼박자 구원이라는 축복을 믿음을 통하여 누릴 수 있습니다그 삼박자 구원이란 것이 무엇인가요?

요삼  1:2<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예수 믿고 나서 영혼이 잘 됩니다.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넘쳐 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손대는 일들마다 잘 풀립니다. 또한 육신도 건강합니다. 더 바랄 게 무엇이 있습니까베드로와 요한이 40세 된 불구자, 걷지 못하는 사람을 성전 미문에서 걷게 만드는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무엇을 증거했습니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했더니 곧 그 사람이 발과 발목에 힘이 생겨서 일어나서 걷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자 사도 베드로가 백성들에게 이렇게 외치지요. 이 사람이 예수를 믿으므로 말미암아 그 믿음이 이 사람을 성하게 만들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우리들도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겨자씨 한 알 같은 크기의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겨자씨 한 알 같은 크기의 믿음에서 자라날 필요가 있지요. 왜 모래 한 알갱이 같은 믿음이라고 성경이 말하지 않았을까요? 모래에는 내재된 생명이 없는 무생물입니다. 그러나 겨자씨 한 알은 그 속에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땅에 심겨져서 물을 만나면 발아해서 큰 나무가 되지요. 좁쌀 크기의  겨자씨가 4-5m 크기로 자라나게 됩니다.

17:6<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우리말 번역은 가정법으로 번역했습니다만, 가정법은 무엇입니까? 너희에게 그렇게 작게 보이는 겨자씨 한 알 같은 믿음도 없는데, 만약에 있다면 뽕나무가 바다에 명령만 내리면 옮겨 심겨지는 그런 일도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이 없는 데 있다면 이라는 가정으로 우리말은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가정법을 이끄는 그릭 에이는 현재 상태를 말합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 같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너희가 그 믿음을 따라서 명령을 내리면 그 명령대로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작은 믿음을 내 삶에 순종하고 활용한다면 엄청 난 기적을 이루어 갈 것이고 그 기적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일취월장 자라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에서 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는 작은 믿음에서 큰 믿음으로 자라난다는 말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합니다. 죽은 믿음은 성장하지 않습니다. 조금 전 누가 복음에서는 어떤 믿음? 겨자씨 한 알 같은 믿음이라고 했지, 모래 한 알 갱이 같은 믿음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모래는 자라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겨자씨는 살아 있기에 자라납니다. 겨자씨가 땅에 심겨 지면 큰 나무가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의 믿음의 나무는 지금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믿음을 만들어 주셨고 또한 그 믿음을 온전하게 만들어 가시는 분이 누구라고요?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닮아 가야 할 완전한 믿음은 예수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요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의 개척자, 우리의 구원의 개척자, 우리의 믿음의 개척자이십니다.

 

4.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 13:20-21<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우선 이 문장을 바르게 이해하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만연체 문장으로 두루뭉실하게 번역이 되어서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기가 약간 어렵습니다.

 

/우선 하나님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분으로 묘사 되어 있습니다. 이 문장의 골격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살려 내신 분으로 묘사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었습니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렸습니다. 그 피는 영원한 언약의 피라는 점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양떼들인데, 우리 주님 예수님은 모든 양들의 큰 목자이시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우리를 대표하여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언약을 비준하기 위하여서는 피를 가지고 해야 합니다. 송아지의 피가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사용이 되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어떤 피가 사용이 되었다고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사용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내신 우리 하나님이 무슨 일을 우리 가운데 이루길 원하신다고요? 두 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두 가지가 우리가 해야 할 기도이지요.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하여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가 무엇이라고요?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소서이 의미는 하나님이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라는 의미로 생각됩니다. 온전하게 한다라고 번역되어 있는 그릭 동사 카탈티조는 준비시켜서 충분히 자질을 갖추다는 의미입니다. 이 의미는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온갖 선한 것으로 충분히 자질을 갖추어 주시기를 원하며 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가지신 온갖 선한 것들을 나에게 허락해 주셔서 내가 충분히 자질을 갖추게끔 해서 무엇을 하도록 말입니까? 나의 야망이나 나의 기쁨과 욕망을 채우도록 말입니까? 아니지요.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기 위하여서 이지요. 내가 깨달아 안 하나님의 뜻, 그것은 하나님이 내게 이루라고 주신 비전이고 삶의 목표가 아닙니까? 그것은 내가 스스로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서는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자신이 가지신 모든 선한 것들을 나에게 무장 시켜 주셔야 비로소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두 번째가 무엇입니까또 그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앞에 즐거운 일을 우리 가운데서 행하여 주시옵소서 입니다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즐거워 하시는 일을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 달라는 기도이지요. 하나님이 내게서 바라는 그 일, 그것은 내게 주신 비전이고 내 삶의 목적인데, 이것을 누가 이루십니까?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들어와 계시는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여서 이루십니다.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심히도 큽니다. 나는 연약하지만, 내 안에 들어와 계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크십니까?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 내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속에 들어와 계신다는 말입니다. 2:13<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당신은 갖추어져 있는가? 무엇을 하려는 데 있어서? 이웃을 섬기고 세상을 섬기는 데 있어서 모든 자질이 갖추어져 있는가? 영적인 은사로도 무장이 되어 있어야 하고, 또한 세상 지식과 학문과 기술로도 무장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이 되지요. 우리 교회의 8번째 기도 제목이 무엇인가? 세상을 섬기는 교회 되게 하소서!

 

/ 13:20-21절을 가지고 중보 기도를 어떻게 할까자기의 아들과 딸의 이름을 넣어서 중보기도합니다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000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000가운데서 이루소서!> 나를 위하여서는 어떻게? 자기 이름을 넣어서 한번 기도해 보겠습니다.  

 

5. 요즈음 대한 민국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빙빙 도는 배와 같습니다. 배는 목표를 향하여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 민국이라는 배는 지금  목표를 잃어 버렸고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로 그 자리에서 뱅뱅 돌고 있습니다. 목표와 방향 감각을 상실한 대한 민국 이라는 배는 현 지도자, 배의 키를 잡고 있는 사람이 비전과 목표를 상실한 사람이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입니다. 배의 키를 잡고 있는 선장이 키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그 배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뱅뱅 돌 수 밖에 없습니다.대한 민국의 현실이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지요신앙적인 업적이 아니라 일반 사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지도자들은  모두 자신의 주요 목표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결정한 뒤, 자신의 능력을 집중시킴으로써  놀라운 리더십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범인들, 보통 사람들은 그런 목표도 없이, 마치 키 없는  선박처럼 빙빙 돌면서 한평생 산다인생에 힘든 일을 만나거나 큰 저항에 부딪히면 자신이 이루어야 할 목표가 있더라도 그것을 포기해 버립니다배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빙빙 도는 것은 목표와 방향 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높은 지위에 있는 분, 배의 키를 잡고 있는 분이 비전과 목표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 배에 탄 사람들은 덩달아 빙빙 돌게 되지요. 요즈음 대한 민국의 현실이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대한 민국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대통령 한 사람이 어떤 정치 철학을 가지고 있고,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 가가 대한 민국 전체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대한 민국 현실을 나타내 주는 세 개의 단어를 고르라면, 무능과 부정과 부패를 들 수 있습니다.

 

/10대의 다윗---삼상16:13<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목동시절 다윗이 국부와 같은 존재인 사무엘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 기름 부음이 있고 난 그 날 이후부터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여호와의 영 즉 성령께서 다윗에게 쏟아져 내렸습니다.  10대 후반이던 다윗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왕이 된다는 비전을 가슴에 품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비전을 이루어 가는데 삶을 전부 투자해야 한다. 많은 분들이 비전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기는 받았는데, 삶의 전부를 거기에 투자하면서 그것을 이루어 가는데 쓰지 않기 때문에 비전이 그냥 한 평생 성취 되지 않은 그런 아름다운 꿈으로만 남아 있게 됩니다. 반면에 다윗은 사울의 뒤를 이을 왕이 된다는 비전을 받은 후에 어떤 삶을 살았나요? 이전처럼 무료한 세월을 보내게 되는 목동으로 한 평생 살았나요? 아니지요. 왕이 되려면 왕의 자질을 갖추어야 하지요. 그는 자기의 전 생애를 다 바쳐서 왕이 되기 위한 수업을 받지요. 이 수업도 물론 하나님이 계획을 했지요. 다윗이 성령을 받은 후에 곧 바로 사울의 왕실에 천거 되지요. 왕의 수업을 받게 하기 위하여서 말입니다. 그 후에 골리앗을 죽이면서 나라의 영웅으로 부상하지요. 그리고 나서 사울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수년간 도망자 신세를 면치 못합니다. 그가 왕이 되려는 비전을 포기했다면 결코 그렇게 도망자 신세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은 알지 못했지만, 그가 수년간 도망자 신세가 된 것이 그를 왕으로 세우기 위한 수업이었습니다. 하나님 한 분 만을 의지하게 하려는 훈련 기간이었습니다.

 

/당신은 무슨 비전을 받았나? 시간과 열정을 그 비전을 이루어 가는데 지금 투자하고 있는가? 밥 먹고 숨쉬고 그리고 모든 생각과 의지를 그 비전을 생각하고 이루어가는데 투자하고 있는가?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을 사용해서 당신에게 주어진 비전을 이루어 가십니다. 비전이 그냥 내 삶에 아름다운 꿈으로만 남아 있어서는 안됩니다. 추구하십시요. 온 힘과 열정과 시간을 다 바쳐서 그 비전을 이루어 가기를 바랍니다. 여기 보스톤 땅에 거하는 동안에 그 비전을 힘차게 이루어 가기를 바랍니다. 10, 20대에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받으면 삶의 방향이 정해지게 됩니다. 그 위에 하나님의 성령,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다윗과 같이 각자가 받은 비전을 이루게 됩니다. 한 평생 동안 우리 하나님이 내게 이루라고 주신 비전을 이루어 가야 하지 않겠는가?  

 


켐연장

2016.11.10 05:50:01

11월 4일 금요기도회 설교 파일은 기술적인 문제로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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