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82 

금요기도회 :5/12/2017 

대표기도:선교부 

찬송가:461장 

전교인 수련회-통성기도; 주제:복 있는 사람! 5/26-28일 내가 받을 은혜를 위하여, 강사 목사님, 박정관 목사님을 위해서, 모두 함께 참여하도록 기도해 주기를 바랍니다. 


목요일날 퀸즈에 있는 어떤 노인 아파트를 방문 했는데, 그 아파트 안에 공적인 자그마한 예배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교파는 에피스코팔-성공회 같았습니다. 전면 강대상 위의 벽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께서 달려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이런 문귀가 눈에 띄었습니다: Christ has died. Christ is risen, Christ will come again! 죽으신 그리스도, 다시 사신 그리스도, 다시 오실 그리스도! 멋있는 슬로건이지요. 기독론의 핵심이지요. 천주교나 에피스코팔이나 개신교나 모두 이런 기독론 위에 신앙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죽으셨고, 다시 사셨고, 다시 오실 분이십니다. 지난 금요일 이번 금요일은 복습하는 시간입니다. 


1. 점진적 타락의 위험성!

/창13:5-13절 a. 아브라함과 롯의 분리


/배경-목초지가 협소하여서 두 사람의 다툼이 일어났다. 

/원만한 해결? 아브라함의 양보함으로써, 물질적인 손해를 감수하면서 우선권을 포기했다. 평화롭게 분리되었다. 오늘날도 교회가 나누어질 때에 이렇게 평화롭게 나누어지면 좋은데, 맹렬하게 싸우면서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한 건물 안에 교인들이 너무 많아서 교회를 두 개로 나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요. 우리 교회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면 교회를 나누어야 하지요. 이런 축복이 켐연장에 온다면 좋겠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 인근 지대를 선택했다. 왜? 물이 넉넉하고, 좋은 목초지지이고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다. 


/이런 선택이 과연 옳았는가? 당장은 좋았을지 몰라도 나중의 형편은 어떠했나? 비참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됨으로써 전 재산을 모두 날렸다. 설상 가상으로 롯의 처는 소금 기둥이 되어 죽어 버렸고, 두 딸과 함께 소돔을 무일푼으로 탈출하였다. 나중에는 어떤 일까지? 두 딸들과 근친 상간 성범죄를 범한다. 그래서 모압과 암몬 족속은 바로 롯과 두 딸 사이에서 태어난 자손들이다. 롯의 시작은 창12:4절에 기록되어 있지요. -아브라함과 함께 거룩한 땅에 왔으나, 마지막은 처참한 신세가 되었다. 무엇 때문에? 오늘 본문에 나타난 선택 때문이다. 


/롯은 어떤 선택을 했는가?눈에 보이는 대로 선택했다. 세상적인 가치관<돈이 전부>, 맘모니즘, 물질 제일이다 라는 관점에서 선택할 땅을 바라 보았다. 영적인 눈이 감겨 있었다. 소돔과 고모라 땅에 가득 차 있는 멸망, 죽음에 이르는 죄악을 보지 못했을까? 보았지만 그것을 크게 영적으로 깨어서 경계해야 할 부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도 이런 선택을 할 때가 많지 않았나? 직업을 선택할 때에도, 이주하여서 살 집을 찾아서 결정할 때에도, 또 배우자를 선택할 때에도, 자녀를 키우면서 학교를 어디에 보낼까를 결정할 때에도... 어떤 눈으로 보고 어떤 판단을 했던가? 롯처럼 하지 않았던가? 당장은 육신적인 이득이 있겠지만, 20년 30년 40년 후에는 쓰디쓴 열매를 거둘 수도 있다.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볼 것인가가 중요하다. 


/점진적 타락의 위험성? 12절<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장막을 옮기는 일이 계속되었다. 어디까지 옮겼나? 소돔성으로 까지 확대 되었다. 마침내는 소돔 성 안으로 들어 가게 되었다. 나중에는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천사가 와서 내일이면 하늘로서 유황불이 내려서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당한다는 심판의 말을 들었는데도 그곳을 떠날 수가 없게 될 정도였다. 자기의 삶의 전부가 소돔 성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버릴 수가 없었다. 벧후2:7-8절에 의할 것 같으면 롯은 의로운 자라는 평가를 내리면서 날마다 의로운 심령이 온 성에 가득한 죄악 때문에 상하면서도 소돔성의 미련을 떨치고 거기서 튀쳐 나올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쌓인 죄악의 위력이 엄청나지요. 거기에서 탈출하고자 하면 그 죄악의 힘이 나를 잡아 당깁니다. 그 힘을 이겨내야 비로서 그 죄악에서 탈출할 수 있지요. 


/점진적인 타락, 점진적인 세속화의 과정! 죄와 타락에 처음 짜릿한 쾌락을 맛보는 생활을 할 때에는 들락 날락 거리지만 어느 정도를 넘어서게 되면 복원력(처음으로 돌아가는 힘)을 잃어 버리게 된다. 술 담배의 중독도 마찬가지, 처음에는 뻐끔 담배를 피운다. 피우다 안 피우다를 반복한다. 술도 한 잔 두 잔 마시게 되지요. 그러다가 담배 없이는 못 살아, 술 없이는 못 살아로 바뀐다. 중독이 일어나지요. 한국의 현대 교회& 지상의 모든 교회들-점진적으로 타락의 과정을 겪고 있다. 어느덧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죽어 가고 있다. 세속화 되면서, 명백하게 죄라고 보이는 것을 수용하면서 무너져 간다. 죄를 죄로 규정하지 않는다. 인간성의 약점, 허물이니 하면서 죄악을 약화시키면서 그것을 교회가 수용하게 된다. 교회가 세상을 거슬러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따라서 살아간다. {독약이 든 병이 있으면 명백하게 독약이라고 써 놓고 경고의 글을 달아 놓아야 한다. 먹으면 즉는다. 먹으면 즉사! 해골 바가지와 cross bones를 그려놓고 그 밑에다 붉은 글씨로 경고의 글을 달아 놓아야 한다. 


/비어커 안의 개구리! 1분에 0.5도씩 증가시켜 나갔다. 푹 삶겨서 죽었다. 


2. 모세의 지팡이 출4:17절<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모세의 말라 비틀어진 나무 지팡이가 바로의 권세 있는 금홀을 이겼습니다.모세의 나무 지팡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하고, 바로의 금 홀은 애굽의 권세, 세상 권세를 상징한다. 하나님의 권세,능력은 모세의 지팡이를 통하여 나타났다. 모세의 권세와 바로의 권세, 두 권세가 애굽에서 충돌하면서 정면 대결을 벌렸습니다. 누가 이겼나요? 모세의 나무 막대기가 바로의 권세 있는 금홀을 이겼습니다. 


/모세의 나무 지팡이는 미디안 광야에서부터 들기 시작했다. 양떼를 돌볼 때에 쓰고, 야생 동물들과 싸우고, 피곤할 때에 의지하는 그런 평범한 나무 지팡이다. 이 지팡이를 모세가 가지고 바로 왕을 만나러 갔다. 무엇 하기 위하여? 애굽에 노예살이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해방하기 위하여! 첫 번째 나일강을 피로 물들일 때에 그 지팡이로 나일 강을 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나무 지팡이로 10번째 재앙인 애굽의 장자를 죽였다. 홍해 바다 앞에서’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홍해 바다를 갈라지게 했습니다. 르비딤 광야에서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나무 지팡이를 힘껏 반석에 내리치면 나무 지팡이가 부러져야 하는데, 부러지지 않고 오히려 반석이 쪼개지는 기적이 일어 났고, 더욱 놀라운 기적은 그 쪼개진 반석에서 부터 물이 흘러 나왔다. ’ 르비딤 광야에서 아말렉과 싸움을 할 때에 모세가 그 지팡이를 붙잡고 산 꼭대기에 서서 중보기도 했다. 여호와 닛시! 모세가 그 손 때 묻은 지팡이를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되었을 때에 버렸을까? 아니다. 그랬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떠났을 것이다. 


/우리들이 세상 사람들에 비하여 부족하고 열등하게 보이는 지식과 학식과 기술과 외모와 빈약한 세상 것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의 손에 붙들라고 명하신다. 그것으로 이적을 행하라고 말입니다. 우리들이 가진 것은 초라하지만, 그것을 믿음으로 굳게 붙든다면 우리는 넉넉하게 이길 것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손에 들고 있는가? 30년 40년간 연마한 지식과 기술인가? 우리 하나님께서 그것을 쓰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께 드리십시요. 


3. 오병이어의 기적

/요6:8-9절 요6장에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아이가 드렸던 다섯 덩어리의 보리떡과 물고기 두 마리가 재료가 되어서 굶주리는 대중, 남자들 5천명의 배를 채웠다. 아주 작은 미미한 한 아이의 헌신으로 인하여 일어난 일이다. 한 아이기 자기의 배를 채울 정도의 작은 양이지만 우리 주님께 드렸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5천명의 장정, 그러면 가족까지 합하면 2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먹고도 남았습니다. 한 아이의 헌신을 통하여 되어 진 기적입니다. 


/아이가 가진 것이 밀로 된 빵이나 혹은 소 갈비나 양 갈비 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을 주께 드려보라 그리면 하나님이 그것을 사용하여서 큰 기적을 만들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것은 무엇이 있는가? 이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면서 폄하하기 쉽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주께 드려 보라! 우리 주님이 그것을 사용하시면 넘치는 축복이 흘러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가진 것이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그것이 하잖은 것이 존귀한 것으로 바꾸어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하나님께 드린 우리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겠지요. 하나님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가진 것을 주께 드릴 때에 그것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종료주일날 우리 주님이 나귀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했다. 제자 둘을 파송해서 나귀를 끌어 오게 했다. 나귀 주인에게 주가 쓰시겠다 하면 즉시 내어 줄 것이다. 평소에는 내가 가지고 쓰고 있지만,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면 아낌 없이 내 놓는다.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사는 이루어져 왔고, 지금도 이루어져 가고 있다. 당신에게는 무엇이 있는가? 


/나의 한 작은 실천, 나의 한 작은 헌신이 큰 구원 역사를 만든다. 작은 성냥 불 하나가 온 산림에 불을 일으키듯이… 마더 테레사의 말’난 결코 대중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 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 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 만큼 줄었을 것이다. –조정래의 인간연습이라는 책에 나오는 마더 테레사 이야기입니다.


켐연장

2017.05.15 08:30:50

2017년 5월 12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7/051220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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