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81

금요기도회 :5/5/2017 

대표기도:대표기도+선교부 

찬송가:그 이름 비길 데가 어디 있나  


1. 기도에 대하여:어떤 고등학생의 기도! 16살 반이 되면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습니다. 운전 면허를 딴 후에 차를 얼마나 운전하고 싶어 했겠습니까? 이 나이 때에는 사고가 잘 납니다. 위험에 대하여 반응하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접촉사고가 자주 일어나지요. 운전은 하고 싶은데, 차는 없고, 그래서 야가 아버지 차를 몰래 운전하게 되었습니다. 시내 나갔다가 그만 사고를 내고 말았습니다. 몰던 차가 앞 부분이 심각하게 찌그러 들었습니다. 내가 왜 아빠 차를 끌고 나왔던고 하는 후회와 함께 이 아이가 기도를 했습니다:하나님 전능하시지요. 이 사고가 안 일어난 과거로 돌려 주세요! 차 사고 나기 이전의 과거로 돌아 갈 수 있나요? 없지요. 기도는 이렇게 하면 안되지요. 이미 지나간 과거를 어떻게 되돌려서 현재로 만들 수 있나요? 이런 기도 보다는 이 학생이 어떤 기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나요? 하나님이 내가 잘 못했습니다. 아빠 몰래 자동차를 운전하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라고 기도한 후에 아빠 한데로 달려가서 용서를 구하면 이 문제는 해결이 됩니다. 


/이런 유형의 기도를 어른들도 많이 하지요. 우리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부끄러움 때문에 우리들도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 상태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 짓는 죄는 엎질러진 물입니다. 엎질러진 물은 주어 담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기도 보다는 솔직하게 하나님께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여서 용서 받는 것이 올바른 기도입니다. 지나간 과거에 대하여는 우리가 어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1:9절에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행하였던 부끄러운 일들을 안 일어난 상태로 돌이킬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우리 하나님께 자백하는 일입니다. 자백이 무엇입니까? 호모로게오입니다. 그릭 로게오는 말하다는 동사입니다. 호모는 같다는 의미이지요. 다르다는 의미는 헤테로 라는 글자를 씁니다. 호모 로게오는 같은 말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누구와 같은 말을 합니까? 하나님이 내가 지은 과거의 죄를 보시면서 하시는 말씀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을 호모로게오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시면서 네가 이런 죄를 지었구나 하시면서 말씀하실 때에 예 내가 그런 죄를 지었습니다 하면서 시인하는 것이 호로로게오입니다. 누가 내 죄를 지적하면 우리는 딴 소리를 합니다. 그 때에는 호모 로게오 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지요. 그런 일이 안 일어난 과거로 돌아 가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최선의 길은 하나님께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라고 자백하는 일입니다. 아담처럼 숨지 말고, 가인처럼 하나님 앞을 떠나서 유리하면서 방황하지 말고, 어떻게 하라고요? 다윗처럼 자백하기를 바랍니다. 내가 죄인이요 라고 말입니다. 내가 밧세바와 간음했고, 내가 우리야를 죽였습니다 라는 고백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지금도 저 하늘 위에서 우리에게서 듣고 싶어하는 소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주님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라는 소리입니다. 땅에서 나는 이 소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주님을 기쁘게 만듭니다. 죄를 지은 인생들의 최선은 하나님을 떠나 달아나서 숨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라고요? 하나님의 품 안으로 뛰어 드는 일입니다. 하나님 품 안으로 뛰어 드는 일이 무엇이라고요? 하나님께 지은 죄를 자백하는 일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서~ 호14:1-2절<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려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 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이 말씀은 너희가 삶 속에서 고난과 시련을 맞아서 찢어지고 엎어졌을 때에 이것이 자신이 지은 죄 때문이라는 깨달음이 들거든 어떻게 하라고요?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곁을 떠났기에 그런 고통이 찾아 왔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뒤에 두고 떠났던 하나님께로 돌아 오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 올 때에 무엇을 가지고 돌아 오라고요? 말씀을 가지고 말입니다. 말씀은 누구의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말씀! 하나님께로 돌아 올 때에 염치가 없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는 말입니다. 특별하게 어떤 말씀일까요? 죄사함에 대한 성구 말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에 우리의 마음에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죄사함을 약속하신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떤 말씀들이 있을까요? 미7:19절<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시103:12절<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시32:1절<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죄를 가려 주신다. 죄를 덮어 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지은 죄를 덮어 버리시기 때문에 죄가 하나님의 눈 앞에서 가리어 집니다. 신약 시대에 계시된 강력한 죄사함의 증거? 십자가! 십자가는 대속이다. 내가 지은 죄로 십자가에 달려서 그렇게 죽어야 하는데, 누가? 예수께서 대신해서 내가 지은 죄의 형벌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대신 지신 형벌인 우리 주님의 십자가로 내가 지은 죄에서 해방되었다. 십자가는 내 죄가 사해진 것에 대한 강력한 증거이다. 사 53:6절에서는 이렇게 예언되었습니다<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질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짊어 지시고 갈보리로 갔습니다. 이 사실을 세례 요한은 요1:29절<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 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지고 있던 모든 무거운 죄 짐을 우리 주님이 대신 지고서 갈보리 산 올라 가셨지요. 마가복음 10:45절<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적어도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우리 하나님께서 나를 내치지 아니하신다는 확신이 듭니까?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때에 떨지 않아도 됩니다.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히4:16절<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오늘 이 시간 금요기도회 시간에 여러분들의 심령 상태는 어떻습니까?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거절 하시면 어떻게 하나 하는 염려와 두려움이 듭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서면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떨 필요가 없습니다. 


2. 지성과 감성! 모래 알갱이는 바람이 불면 날립니다. 그래서 모래 언덕, 사구가 만들어지게 되지요. 그러나 모래가 물에 잠겨 있으면 모래는 바람에 날리지 않습니다. 물에 잠겨 있는 모래가 되라. 이 말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속에서 살아가라는 말이지요. 그러면 세상 풍조에 따라서 흔들 흔들 거리면서 살지 않습니다. 세상이 옳다고 하는 방식을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옳다고 하는 삶의 방법을 따라서 살게 됩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진리는 무엇인가? 진리의 말씀 안에서 살아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진리의 말씀을 많이 먹어야 합니다. 말씀을 먹는다! 말씀을 듣는다 하지 않고 말씀을 먹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의 양식이기 때문이지요. 말씀을 많이 먹기를 바랍니다. 많이 먹어야 그리스도 인들이 영적인 힘을 쓸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6장에서 그리스도인의 무장을 설명하면서, 허리 띠를 매는데, 무엇으로 허리를 동여 맵니까? 진리로 허리를 동입니다. 사람들의 허리는 힘의 근원입니다. 허리가 부실하면 힘을 쓸 수 없습니다. 허리 디스크를 앓고 있는 분들은 힘을 쓸 수 없지요. 허리 디스크 환자들은 신문지 한 장 들어 올리는 것도 힘들어 합니다. 허리는 힘의 근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분들인데, 그리스도인들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진리에서 나옵니다. 진리를 믿고 나아갈 때에 영력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도인들이 지성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부단히 성경 말씀을 많이 읽고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무식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지성도 있고, 또 무엇도? 영력도 있어야 합니다. 지성과 감성! 하나님의 약속, 진리의 말씀을 많이 깨달아 알아서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 갑시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우리를 얽어 맬 수가 없습니다. 참 자유를 누리고 싶은가? 성경 말씀인 진리를 깨우치기를 바랍니다. 


3. 다윗과 블레셋의 영웅인 골리앗과의 싸움! 이 싸움에서 다윗은 무엇을 사용했나? 물매돌을 사용했습니다. 삼상17:40<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불레셋 사람에게로 나아 가니라> ,47-49<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그)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준비된 하나님의 병기-물매와 물매돌 다섯 개, 사람들의 눈에는 초라하게 보였지만, 강력했다. 


/다윗은 몇 개의 돌을 골랐는가? 다섯 개의 매끈매끈한 조약 돌을 시냇가(와디/히:나할)에서 골랐다. 왜 다섯인가? 하나만 하면 되었지 않은가? 하나님이 도울 것이 아닌가? 아니다.적어도 다섯 가운데 하나는 골리앗의 이마에 맞출 수 있다는 자신감과 무예 실력이 있었다. 야구선수 투수처럼 말입니다. 골리앗의 방비가 허술하게 되었다. 다윗이 골리앗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막대기를 하나 가지고 있었다. 막대기를 보고 골리앗은 완전히 방심을 하게 되었다. 골리앗은 갑옷과 투구는 썼다. 어떤 투구? 중세의 유럽의 기사와는 다른 청동 투구이다. 앞에 방패 든 자? 옆으로 비켜 놓았다. 방심! 하나님의 은혜? 첫 번 시도에 물매(sling)로 골리앗의 이마를 맞추었다. 만약 첫 번 시도에 빗나갔다면, 골리앗은 위협을 느껴서 방패를 챙기고 대전했을 것이다. 다윗이 위험하거나 죽었을 지도 모른다. 무엇이 은혜인가? 첫 번 시도에 무방비의 골리앗을 땅에 무너뜨렸다는 것이 은혜다! 적어도 20%의 확률을 계산했기 때문에 5개의 조약돌을 시내 가에서 골랐다. 


/다윗이 자신이 양떼와 염소 떼를 방목하면서 물매 돌 날리는 기술을 습득했는데, 그가 이것이 나중에 골리앗을 물리치는 데 사용되리라고 생각하고 연마했는가? 아니다. 그런 의도를 가지고 연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닦은 실력을 하나님이 사용했다. 내가 세상에서 배운 학문, 기술, 경험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용된다. 한 때 세상으로 나가서 방황하면서 습득한 여러 가지 세상 경험들도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면 거룩하게 사용된다. 베들레헴 촌놈이 일약 스타가 되었다. 골리앗을 죽이는 일은 다윗을 이스라엘 공동체(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디딤돌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눈이 다윗에게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지금 연마하고 있는 모든 세상 학문과 기술과 세상 경험은 하나님이 언젠가는 사용하실 날이 있을 것이다.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연마하라. 다윗이 물매 돌로 싸워서 이기리라는 믿음은 어디에서? 성령이 부어짐으로 되어 진 일이다. 언제 부어졌나? 사무엘이 베들레헴에서 기름을 부었다. 언제 인가? 다윗의 소년 시절이었다. 삼상16:13<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다윗이 물매 기술이 없었다면 하나님이 쓰실 수 없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다윗이 가진 물매 기술에 부어지니 골리앗을 물리치는 일에 그 물매돌 기술이 사용이 되었다. 당신이 현재 갈고 닦고 있는 기술과 학문에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임하면 이런 엄청난 기적을 만들 것이다.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다윗의 무기는 골리앗이 가지고 있는 무장에 비하면 그야 말로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Nothing! 그러나 다윗에게는 강력한 영적인 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무기가 무엇일까요? 그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삼상16:47절<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하였다’다는 신앙고백이 있었기에 그렇게 초라하게 보이는 무기를 들고서도 떨리지 않고 용맹하게 싸울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싸운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이지 성전(거룩한 전쟁)혹은 영적 전쟁이 아닙니다. 성전, 즉 거룩한 전쟁은 사사들이 싸웠던 전쟁입니다. 영적 전쟁은 현재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싸우는 전쟁이고요. 다윗이 전쟁터에서 자기 주위에 포진하고 있는 대적들과 전쟁을 벌릴 때에 이 전쟁은 자신이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무슨 전쟁?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서 대적과 싸우는 여호와의 전쟁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싸웠지요. 그러니 다윗이 승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이 자기의 힘을 믿고 싸웠더라면 골리앗에게 졌을 텐데, 하나님이 주도가 되어서 다윗을 도구로 써서 싸웠기에 다윗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40년간의 정복 전쟁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남아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요? 그가 여호와의 전쟁을 싸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그 여호와의 전쟁에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다윗이 하는 일은 하나님이 싸우시도록 자신을 내어 드렸을 뿐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예수 믿는 우리들은 영적인 전쟁을 합니다. 당신은 세상 속에서 어두움의 영들과 영적인 전쟁을 벌릴 때에 어떤 신앙고백을 하면서 싸웁니까? 성령께서 친히 날 대신하여서 싸우시리라 라는 신앙고백을 하면 백전 백승입니다. 지피지기 백전 불태:위태롭지 않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싸움에서는 백전불태가 아니고 백전백승입니다. 나는 성령이 나를 위협하는 어둠의 영들을 제압하도록 나 자신을 내어 드리는 일만 잘 하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이 싸우려고 하는데 내가 성령을 방해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니 영적인 싸움에서 질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성령을 방해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신을 내어 드리면 성령은 막힘 없이 내 앞에 나가서 내 대적들인 어두움의 영들을 물리치십니다. 우리의 현재의 싸움은 영적인 전쟁! 육신적인 전쟁이 아닙니다. 


엡6:12절<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싸움의 대상이 무엇이라고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입니다. 이 악의 영들, 어둠의 영들은 우리의 삶 속에 있는 모든 악들 배후에 자리를 잡고서 우리를 공격합니다. 개인적인 악이든, 집단적인 악이든 그 배후는 언제나 사탄, 즉 어둠의 영들이 포진 되어 있습니다. 그 악들은 우리의 눈에 보이고 우리가 보고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악들의 배후에 그런 악을 조장하고 주장하고 일으키는 악의 세력인 어두움의 영들은 우리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악을 일으키는 악의 영들과 싸움을 해야 하는 영적 전사들이지요. 그런 어둠의 영들과 싸움에서 우리들이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이기지 못한다고 하여서 지옥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기지 못하고 지면 우리는 큰 데미지를 받게 됩니다. 어떻게 이깁니까? 주님으로 하여금 싸우게 만들면 우리는 이깁니다. 우리 주님이 2천년 전에 십자가와 부활로 사탄과 그의 졸개들인 악령들을 모두 이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이기기 위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겨 놓은 싸움을 지키는 일만 하면 됩니다. 우리 주님, 나사렛 예수께서 사탄을 이겼습니다. 우리들의 삶에 매일 매일 매 순간마다 일어나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있는 비결은 성령님을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나를 대신하여서 싸울 수 있도록 나는 내어 드리기만 하면 됩니다. 성령과 악령과의 싸움이지, 나와 악령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나는 그저 내 편이신 성령님이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만 두면 됩니다. 열어 두는 일이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일이지요. 성령님을 부르고 성령님이 내 안에서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도록 요청하는 일입니다. 내가 날마다 싸우는 이 영적 전쟁은 나와 악령과의 싸움이 아니라 어둠의 영들과 성령과의 싸움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도 이 땅에 3년 동안 공생애를 보내실 때에 이런 의식, 이런 깨달음을 가지고 사역을 했지요. 요14:10절<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는 것이라> 예수께서 제자 빌립에게 하셨던 말입니다. 예수께서 3년 동안 엄청난 기적들을 일으키셨고, 또한 제자들을 지혜의 말씀으로 가르치셨지요.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켰고, 풍랑 이는 갈릴리 바다를 걸으셨고, 병든 자들을 고치셨고, 죽은 자들을 다시 살려 내셨고, 사람 사람들의 마음에 진한 감동을 일으키는 말씀들로 가르치셨습니다. 이런 놀라운 구원사역을 누가 했다고요? 예수께서는 자신이 했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거하시는 아버지께서 행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아버지의 일을 하셨다고 선언하셨지요. 다윗도 그렇게 고백했지요.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에 누구의 싸움을 한다고요? 여호와의 전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싸움에서 하나님이 친히 다윗 속에서 골리앗과 싸운다는 것이지요. 우리 주님도 바로 그런 깨달음을 가지고 3년간의 공생애를 성공적으로 마치셨지요. 


오늘 우리들은 예수의 제자들로서 이런 깨달음을 가지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구원사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구원사는 내가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께서 나를 도구로 사용해서 이루어 가십니다. 이런 의식, 이런 깨달음으로 우리는 무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요15:5절<나는 포도 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주의 일을 할 때에 어떤 의식, 어떤 깨달음을 가지고 임해야 하는가? 주의 일을 내가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되고 우리 주님이 내 삶 속에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임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하늘에 오르시면서 우리에게 부어 주신 성령께서 내 삶 속에서 나를 도구로 사용하여서 거룩한 주의 일을 행하고 있다는 의식 말입니다. 이런 의식을 가지고 행한다면 못 이룰 일이 없습니다. 이런 의식을 가지고 나아가면 사탄 마귀 한 길로 나를 치러 들어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제쳐 놓고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요. 주님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노라 고백하는 성도가 장성한 성도입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8중의 기도 제목 가운데 두 번째 기도 제목입니다:주님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주님이 함께 하시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 이것이 켐연장 교회의 두 번째 기도 제목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보내 주신 성령께서 행하실 수 있게끔 자신을 내어 드리길 바랍니다.


켐연장

2017.05.08 07:37:07

2017년 5월 5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7/050520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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