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80

금요기도회 :4/28/2017 

대표기도:선교부 

찬송가:368장 


1. 눅10:17-20절/사역이냐 관계냐?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하면 더 받을 수 있을까?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일본 전범 미망인들이 동경 역전에 동상을 하나 세웠습니다. 그 세운 동상 아래에 ‘헤 아가페’라는 그릭 글자를 넣었다. 아가페? 신의 사랑! 세상 사람들 모두가, 신자든 불신자든, 신의 사랑에 대하여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을 더 받고 싶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데, 마치 이 세상에 나 하나 밖에 없는 것처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잃은 양 비유에 보면 양 100마리 중에 한 마리를 잃어 버렸을 때에 99마리를 들판에 두고 잃어 버린 한 마리를 찾기 위하여 목자가 떠나지요. 잃어 버린 한 마리, 무시할 수도 있지만, 목자는 바로 그 잃어 버린 한 마리를 찾을 때까지는 마음이 편안하지 않습니다. 지금 세계 인구가 70억인데 우리 하나님이 나를 제외한 70억 인구가 모두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성도들이고, 나 홀로 땅 위에 있는 불의한 죄인이라고 할 때에 우리 하나님이 나 하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실 수 있을까? 우리 주님이 이런 나 하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해와 달과 별들의 세계를 지나서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오셔서 나 하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는 고초를 겪으실 수 있을까요? 70억이라는 인간들을 위하여 홀로 십자가 지시는 것은 조금 이해가 가도, 70억 가운데 나 혼자만을 위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이 십자가 지시는 것은 이해가 도무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나 하나를 사랑하시는데 마치 이 세상에서 나 하나 밖에는 사랑할 자가 없는 것처럼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의인이고 나 홀로 죄인이었을지라도 우리 주님은 날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십니다. 이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제품이 아니고 무엇이라고요? 작품! 여자들의 명품 옷들이 엄청나게 비쌉니다. 예술가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 내는 옷은 작품이 아니고 무엇이라고요? 제품입니다. 제품은 쌉니다. 그러나 작품은 희소가치가 있지요. 우리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제품이 아니라 하나님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드신 작품이기에 희소가치가 있고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유사이래로 나와 비슷한 생김새의 인물은 있었지만 나와 똑 같은 인물은 없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사는가? 하나님은 나 하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아들로 딸로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뭐라고 그랬나요?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분으로 묘사되어 있지요. 상한 갈대라는 말은 갈대 피리를 말합니다. 목자들이 양떼를 풀밭에서 방목하는 동안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들판에 수 없이 많이 자라고 있는 갈대를 하나 꺾어서 갈대 피리를 만들어서 붑니다. 우리들이 초봄에 물 오른 수양 버들 가지를 꺾어서 버들피리를 만들지요. 이 갈대 피리를 불면서 목동들은 무료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 갈대 피리는 곧 시들어서 너덜너덜해 집니다. 너덜너덜해지면 버리고 또 갈대피리를 만들면 되겠지요. 버들피리나 갈대 피리는 만들기 아주 수월하지요. 그러나 목동들은 자신이 만들어서 부는 갈대 피리가 너덜너덜해 지더라도 그것을 버리기를 주저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손때 묻은 것이기 때문에 애착을 가집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죄와 불의에 물들어 있는 나를 그렇게 대우하신다는 것을 상한갈대를 꺾지 않는다는 비유의 말로 하셨지요.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까? 알고는 있는데 느끼고 있지는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느낄 수가 있을까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느끼길 원해서 무슨 일을 합니까? 열심히 교회 일에 몰두합니다. 찬양대의 일, 주일 교회 학교의 일, 부엌봉사의 일 등등을 몸 아끼지 않고 봉사합니다. 목사님이 부탁하는 일은 하나님이 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순종해서 행합니다. 주일 예배에도 열심히 참석하고, 또 기도회나 또는 성경공부 모임, 구역 모임에도 열심히 참석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교회일, 주일 일을 하는 목적과 의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더욱 큰 사랑을 받기 위해서 입니다. 과연 그렇게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내가 더욱 큰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가?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면 섬길수록 내 마음이 비어 있고 공허해 지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그렇게 열심히 교회일로 하나님을 섬겨도 영적인 만족이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맺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영적인 만족이 있고, 기쁨이 넘치고, 내 삶에 평강이 넘치고, 살아갈 이유와 살아갈 열정이 넘치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 깊어지는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맺어져 있을 때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없이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사역, 즉 일이 먼저가 아니라 무엇이 먼저라고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맺어지면 그 결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게 되고, 하나님께 절대 헌신하게 됩니다. 신앙의 행위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맺어졌을 때에 그 결과로 나오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목적을 가지고,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받기 위한 목적으로 헌신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체험하고 나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이 주를 위해서 순교했던 것처럼 우리도 죽기까지 우리 주님께 헌신하게 됩니다. 그것은 신앙의 목적이 아니라 신앙의 결과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에 의할 것 같으면 기대 이상의 사역의 결과가 있어서 선교보고를 파송되었던 제자들이 돌아와서 우리 주님께 했지요. 귀신들도 항복하더라고 말입니다. 축귀사역, 퇴마사역까지도 했습니다. 본래는 복음을 전파하면서 병을 치료하는 것만 해도 되었는데 기대 이상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제자들은 영적인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런 사역의 기쁨보다는 무엇이라고요?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과의 관계를 언급하는 말이지요.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 책에 기록되었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다는 말이지요. 무엇 때문에 기뻐해야 하는가? 사역의 기쁨보다는 무슨 기쁨?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라는 사실과 내가 하나님의 딸이라는 사실 때문에 기뻐하는 기쁨이 더욱 커야 한다는 말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과 딸임을 확신합니까? 어떻게? 요1:12절<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예수님을 과거에 영접하고 예수님을 지금도 믿고 있으면 됩니다. 현재의 우리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 들였고 여전히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들과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맺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아버지로 느껴 집니까? 혹시 하나님이 저 멀리 계시는 타인으로 느껴 지지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산 너머 바다 건너 계시는 분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나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 3인칭으로 부릅니다. 나와 관계가 없는 절대 타자로 이해하면서 기도합니다. 이런 분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모두 하나님을 아버지와의 관계로 맺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때에 우리들이 육신의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를 때처럼 그런 느낌과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육신의 아버지도 자식인 우리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자 하지요. 하늘 아버지는 어떻습니까? 우리들에게 최상의 것을 주시지요.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The best를 주시지, second best를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관계를 맺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로 하여금 우리들에게 아버지 노릇 잘 하게끔 만들어야 겠지요. 아버지가 우리에게 늘 좋은 것을 넘치도록 주시도록 그런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로 하여금 아버지 노릇하게 하라! 우리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 아버지와 관계를 더욱 깊이 맺어 가도록 만들어 가야 하겠지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관계 보다 한층 더 심화된 관계는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름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아빠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도 하나님을 아빠라고 불렀습니다. 언제 말입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한 밤을 철야하면서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을 아빠라고 불렀습니다. 막14:36절을 찾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3년 동안 늘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가장 고통하고 고뇌하시면서 기도하시던 밤에 하나님을 아빠라고 불렀습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의 가장 큰 아들인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빠라고 불렀습니다. 이 아빠라는 말은 아람어인데 우리 나라 말로 3살 먹은 아이가 자기의 아버지에 대하여 가지는 감정과 신뢰를 모두 담고 있는 말입니다. 3살 먹은 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를 때에는 아빠와의 마음의 거리라는 것이 없습니다. 3살 먹은 아이에게 있어서 아빠는 절대 신뢰의 대상이지요. 우리 주님도 그런 고뇌의 시간에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면서 아빠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 늘 좁혀 지지 않는 거리감이 있잖아요? 하나님이 저 만치 멀리 서 계시는 느낌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바로 우리 곁에 우리의 숨결보다 더 가까운 곳에 계시는 것처럼 느끼면서 신앙생활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빠라고 불러 보셨습니까? 우리들도 우리 주님처럼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예 있습니다.. 언제 그렇습니까? 롬8:15절을 찾아 봅니다. 갈4:6절도 찾아 봅시다. 하나님을 절대 신뢰할 때에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게 되는데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 오시던 그날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부어지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더욱 충만하게 거하면 거할수록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여서 하나님이 아버지로 느껴 지시는 분들은 이제 성령 충만을 구하여서 하나님을 아빠로 느끼면서 신앙생활 하는 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롬5:5절<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느끼게 해 주는 분이 누구라고요?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심령과 우리의 모임, 켐연장 모임 속에 임하여 계십니다. 성령께서 얼마만큼 많이 내 심령과 삶에 임재해 있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느끼는 것이 달라지게 됩니다. 오늘 이 밤에도 우리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내게 덧대어 주셔서 더욱 충만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기를 바랍니다. 


2. 존재가치와 효용가치 

/당신은 무슨 약속을 받았나? 없는데요 하시는 분들, 성경 말씀이 모두 약속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금광과 같습니다. 이 금광 속에서 금맥을 발견하고 금을 캐십시요. 영의 눈을 뜨고서 금맥을 발견하고서 금을 캐내십시요. 황금덩어리의 약속들이 성경 곳곳에는 묻혀 있습니다. 마6:33절<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육신 생활에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적인 외면적인 복을 받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모든 삶에서 선택하는 일을 할 때에 priority를 어디에 두라고요? 하나님께 두라는 말입니다. 이런 신앙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이 물질적인 부요함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 섬기면서 살 때에 당신은 어떻게 섬기는가? 항상 하나님은 세 번째가 아니던가? 3등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내 인생에서 프라이오러티 3번입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에 있어서 항상 1등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나 1등은 내가 원하는 것, 2등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3등은 뭐예요. 시간이 있으면 하고 아니면 안 하는 것! 우리들은 하나님 섬길 때에 자투리를 가지고 섬기지 않았는가? 시간이 나면 하나님께 드리고, 번 돈도 나를 위해서 쓰다가 남으면 드리고 모자라면 안 드리고, 입신양명을 위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주님 위해서 정작 시간을 쓸려니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아서 차차 섬기지요 하면서 미루어 버리지요. 자식들을 위하여 시간과 물질과 정렬을 쏟아 부으면서 주님 위해서는 인색하기 그지 없지요. 이러니 하나님이 물질의 복을 더해 줄 수 있겠는가?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더하시는 하나님! 덤으로 주셨다. 그러나 나는 그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못 만들었습니다. 불행하게도 말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축복을 안 해 주는 것에 대하여 원망하기만 했지요. 하나님 어떻게 내게 그럴 수 있냐고 말입니다. 물질적인 부를 누리고 살고 싶은가? 하나님을 프라이오러티 넘버 one에 두고 삶을 살아 보라! 그러면 풍성한 물질의 복을 누리리라!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렇게 살아 가는데도 하나님이 축복을 안 해 주시거던 하나님께 마6:33절 말씀 가지고 따져보기를 바랍니다. 덤이라는 것은 조건이 없이 주는 것이지요. 구약에 솔로몬 임금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1천 번제를 드릴 때에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너는 내게 구하라는 말씀을 들었지요. 1천 번제? 그래서 솔로몬이 무엇을 구했나요?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간구가 우리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무후무한 지혜로운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 하나님이 덤으로 무엇을 주었나요? 부귀영화도 주었습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대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솔로몬 시대처럼 부강했던 시절이 없었습니다. 솔로몬 왕이 통치하던 시절은 이스라엘의 황금기라고 부르지요. 가장 부귀영화가 컸던 시절입니다. 솔로몬 왕이 부귀영화를 받기 위하여 했던 일이 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마음이 기뻐서 덤으로 주었을 뿐입니다. 솔로몬은 지혜와 함께 부귀영화를 덤으로 받았습니다. 우리도 부귀영화를 덤으로 받지만 하나의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무슨 조건? 프라이오러티 넘버 원을 하나님 나라와 의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에게는 이런 조건도 없습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대로 솔로몬이 말년은 신앙의 길을 이탈하여서 우상을 섬기는 일을 했지만 하나님이 이전에 주셨던 부귀 영화를 빼앗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다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던 길에서 이탈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주셨던 물질적인 축복과 육신적인 복들을 철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육신적인 복들을 잃지 않도록 잘 지켜 내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믿음을 굳게 지켜 내야 하고, 우리들의 삶에서 프라이오러터 넘버 원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 가진 모든 것을 무로 돌릴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존재 가치와 효용가치:100년 소나무 1그루의 가치vs. 1년된 소나무의 100개의 현재 가치! 어느 것이 더 귀한가? 하나님께서 영혼 영혼의 가치는 큰 자나 작은 자나 똑 같지만=존재가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람을 쓸 때에는 가치가 달라진다. 이것을 쓰임 가치, 효용가치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일을 이루기 위하여 잘 훈련된 자, 무장된 자, 준비된 자를 원하신다. 비바람 찬 서리를 견디어 낸 거목을 하나님이 더욱 존귀하게 여긴다. 요셉이 11번째 막내 아들이나 그러나 그를 구원사에 사용했다. 다른 아들들을 제 처 두고서 왜? 믿음과 깨달음에 있어서는 다른 아들들을 뛰어 넘는 영적으로는 장자였기 때문이다. 야곱은 요셉에게 요셉의 두 아들, 이 두 아들은 야곱의 손자이지만,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아들로 입양한다. 이것은 땅 분배할 때에 요셉에게는 다른 아들들에 비하여 두 몫을 주겠다는 의미이다. 장남은 차남들에 비하여 언제나 유산 상속 시에 두 배를 가진다. 야곱이 자기의 장자인 르우벤 대신에 요셉을 그의 장자로 여겼음을 알 수가 있다. 우리들은 21세기에 이 땅에서 태어난 하나님의 막내 아들과 딸이다. 그러나 믿음과 깨달음에 있어서는 장자가 되어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100% 헌신 하는 한 사람이 99% 헌신 하는 100명보다 구속사에 있어서 더 큰 일을 행한다. 더욱 큰 업적을 남긴다. 이 사실을 누구에서 보는가? 스데반 집사에게서 본다. 스데반이 100% 헌신 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이 사도 바울을 만드는 시작점이 되었다.사도 바울을 변화시키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 구원사에 있어서 사도 바울의 역할은 탁월했습니다. 현재의 기독교가 예수의 종교인지 바울의 종교인지 모를 정도로 바울의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사울을 바울 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사용했던 인물이 스데반 집사입니다. 스데반, 그가 위축되어서 뒤로 물러 났다면 사도 바울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스데반이 뒤로 한 걸음 물러 났더라면 그도 그 나름대로 업적을 세웠겠지만, 오히려 그의 죽음보다는 그리 큰 업적을 못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의 죽음은 구원사에 큰 획을 긋는 일을 만들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결코 Not a waste!(낭비). 낭비가 아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헌신을 하고 싶은가? 99%? 아니지요. 100% 헌신하기를 바랍니다.


켐연장

2017.05.01 08:31:45

2017년 4월 28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7/042820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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