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76

금요기도회 :3/31/2017 

대표기도:선교부 

찬송가:413장 


1.시편 23편-지난 주 설교!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전반부는 목자와 양과의 관계이고 후반부는 집 주인과 손님과의 관계입니다. 후반부는 5-6절: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후반부의 구절은 우리들이 이 땅에서 삶을 마감하고 하늘에 들어가게 되면 일어날 일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 하늘 위에서 상을 차려 놓았습니다. 둘러 앉아 있는 우리들의 머리 위에 기름을 부어 주시고, 또한 내 잔을 가득 채워서 마시게 해 주십니다. 우리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말입니다. 자 이런 이미저리에는 어떤 의미가 숨어 있을까요? 손 대접! 주인이 자기 집에 손님을 초대할 때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손님으로 자기 집에 초대하여서 무슨 일을 한다고요? 우리는 하나님의 VIP손님! 고대 근동의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어떤 집에 손님이 방문할 때에는 그 집 주인은 자기 집에 들어와 있는 손님을 무슨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그를 지켜 주어야 합니다. 자기 집에 들어와서 하룻밤을 묵어 가게 되는 생면 부지의 손님에게도 말입니다. 그것은 주인의 의무입니다. 어느 정도까지 지켜야 하나요? 구약 성경을 찾아 보도록 하지요. 


/우선 창세기 19장을 보면 소돔에 살고 있는 롯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창18장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두 명의 천사를 대동하고서 아브라함을 방문했지요. 아브라함이 그 세분을 극진히 대접했지요. 그 대접을 받은 후에 세 분이 소돔에 가지요. 하나님은 하늘로 올라 가시고, 나머지 두 분이 소돔의 성문 앞 광장에 들어섰습니다. 소돔 성안 광장에 롯이 나와 있었습니다. 롯은 이 두 분을 자기의 집으로 모셨습니다. 이 두 분을 극진히 대접하였습니다. 그렇게 대접하는 동안 롯의 집 대문에는 소돔성 남자들이 몰려 와 있었습니다. 문을 두드리면서 롯에게 외지에서 온 그 두 사람을 자기들에게로 내 보내라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그들을 상관하겠다고 말입니다. 상관하겠다는 것은 동성연애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게이 노릇을 하겠다는 겁니다. 그들의 이런 요구에 대하여 롯은 어떤 행동을 취했습니까? 만약 이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으면 그들이 문을 부수고 집으로 들어와서 행패를 부릴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겠지요. 롯은 문을 열고 나가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자기에게 순결한 딸 둘이 있는데, 이 딸들을 밖으로 내 보낼 테니 너희들이 좋아 보이는 데로 그 두 딸들에게 행하고, 내 집에 들어온 이 두 남자에게는 손대지 말라고 요청하지요. 바로 이것이 고대 근동의 손 대접 방식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자기 집에 들어 와 있는 남자 손님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가 사사시에 기록되어 있지요. 사사 시대 말기에 일어난 사건인데, 이 때에는 이스라엘이 타락할 만큼 타락해 있었던 시기입니다. 그 사사 시대는 왕이 없었기 때문에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기였습니다. 지팔 지 흔들면서 살던 시대라는 말입니다. 그 사사 말기에 어떤 레위인이 자기의 첩을 데리고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날이 저물게 되었기에 베냐민 땅, 기브아에서 유숙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노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노인이 레위인과 첩을 자기의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이 노인이 자기가 초대한 소님들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그 날 밤에 기브아에 살고 있는 베냐민 지파의 불량배들이 그 노인의 집으로 몰려 왔습니다. 그 노인에게 그 레위인을 내 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우리가 그와 상관하겠노라고 말입니다. 상관한다는 말은 동성연애를 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랬더니 그 노인이 그 불량배들을 설득하면서 만류했습니다. 이 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그리고 이런 제안을 하지요.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 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 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남자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전혀 가까운 사이도 아닌 남인데도 자기의 집에 손님으로 유숙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자기의 딸까지도 희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고대 근동의 법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자기의 손님, VIP로 불렀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불렀다면 우리를 책임지고 돌보고 보호하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고 돌보기 위하여 무엇을 희생했나요? 그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를 내어 주었습니다. 그런 이미지가 시편 후반부에 히든 그림으로 들어 있습니다. 5절: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절: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2. 그리스도인의 고난 그리스도인과 고난! 참 큰 주제! 특별히 사순절 기간 동안에 우리는 고난의 문제를 많이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고난과 시련을 어떻게 핸들링 하면서 천국 길을 가야 하는가? 시편 22:1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면서 하나님께 짜증내거나 원망하면서 불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고통.시련.환난을 수많은 시간 기도하면서 제거해 달라고 간구했다 그러나 제거되지 않았다. 왜? 믿음이 부족해서인가? 아닐 경우도 있다. {사도 바울의 경우-가시는 제거되지 않았지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난 다음에는 그 가시가 제거 되지는 않았지만 그 가시가 견딜만했다. 크게 이전처럼 가시 때문에 그렇게 고통스러워 하지 않았다. 그 가시가 왜 자신에게 있어야 하는 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바울이 교만과 자만으로 인하여 넘어지지 않도록, 신앙을 잃어 버리지 않도록,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서 교제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가시를 바울에게 주었다. 가시를 바울에게 준 하나님의 의도? 바울을 낮추고 겸손하게 만드는 안전장치! 가시가 불평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구나를 아는 순간부터 가시가 그렇게 고통스럽지가 않게 되어 버렸다. 마음의 자세가 바뀌었다. 가시와 더불어 살아간다. 어떻게? 기쁘고 즐겁게! 가시의 의미를 알았기에 약간의 육신적인 고통이 있지만 오히려 가시가 있음을 감사하면서…} 


/우리의 삶에도 이런 영적인 원리가 작용한다. 막10:29-3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세상 살이 할 동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천국 때문에, 예수 때문에, 복음 때문에 버렸다. 왜? 천국이 더 가치 있고, 중요했기 때문에! 그러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시는가? 첫 번째, 아주 중요한 것인데, 영생 즉 천국을 선물로 주신다. 둘째로 이 땅에 사는 동안 필요한 것, 자신이 주를 따르기 위하여,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버렸던 것들을 100배로 보상해서 더 주신다.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 어떤 부부가 직장생활 하면서 빠듯하게 사는데, 동남아 여행을 위하여 돈을 저축했습니다. 모퉁이돌 선교회의 북한 선교에 대한 기사를 읽고 감동되어서 동남아 여행을 포기하고 그 돈으로 선교 헌금을 드렸다. 건강이 안 좋은 어떤 집사님이 등산을 하면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등산로에서 빈 캔을 주어서 돈으로 바꾸니 꽤 되는데, 그 돈을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헌금했다. 내가 커피 점에서 별 다방에서 커피가 마시고 싶은데, 그 커피를 안 사 마시고 북한에 있는 밥 굶고 있는 아이들을 위하여 헌금했을 때에 하나님이 내게 그렇게 보상하시겠다는 말이지요. 커피? 2,3불! 작은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큰 일로 보아 주신다. 내 필요를 위하여 2,3불을 쓸 수가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복음 때문에 주님 때문에 또는 이웃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신다. 우리 교회의 이삭줍기운동-페니,니켈,다임,쿼터등등을 모읍니다. } 


지난 번에 모은 것을 페니 아케이드에서 바꾸어 보니 102불이나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신다고요? 내가 주를 위하여 포기하고 버렸던 것을 100배나 더 주신다. {옥토밭에 뿌려진 씨가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둣는다. 그런데 100배는 최고의 배율이 된다.} 마6:33절 말씀에서 확인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리고 또 하나를 축복으로 더 얹어 주신다. 그것은 뭘까? 박해<핍박>, 고난,시련을 겸하여 주신다. 왜 이것이 복인가? 고난과 시련은 위장된 하나님의 복이다. 안은 복인데, 겉은 고난이다. 사람들이 고난이 쓰기 때문에 고난을 달게 받아 먹지 않는다. {한약은 쓸수록 몸에 좋다} 성도의 삶에 있는, 죄 때문에 생겨난 고난이 아니라 내 영혼의 연단을 위하여 우리 하나님이 내 몸에 은혜로 주신 것, 그것은 약간의 고난인데 이것은 나를 하나님께 꼭 붙어 있게 만드는 안전 장치! 하나님께로 부터 우리를 신앙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게끔 만들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안전 장치! 이것이 없으면 100이면 100 거의 모두가 기득권자가 되어서 세상 것 누리며 세상 재미 보다가 신앙을 잊어 버린다. 가난하고 병들고 처참한 처지에 있을 때에는 오직 예수만 바라 보는데, 돈이 생기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획득하고 권세와 명예를 누리게 되어 삶이 편안해지면서 신앙생활을 등한히 하게 되고, 세상 재미 때문에 종래는 신앙을 잊어 버리게 된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액션은? 사랑하는 자에게 조그마한 고난, 가시를 주신다. 박해와 고난은 나를 ‘밀당’하는 조정장치! 바울의 경우에는 무엇? 육체의 가시! 우리의 삶에는 그것이 무엇일까? 고통을 일으키는 다양한 종류의 가시들! 당신의 가시?-이것 때문에 하나님께 불평할 것인가?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그 가시를 통하여 나를 붙들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오히려 그 가시 때문에 감사하게 된다. 


3.예수 만나고 중생한 후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삭개오 타입과 마태 타입이 있다. 맛이 간 사람! 

/마태의 경우- 마9:9절<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마태는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주를 따르기 위하여! 주를 따른다는 것은 주의 제자가 되어서 주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겠다는 말이지요. 마태는 다른 어떤 제자들보다 주를 따르기 위하여 가장 많은 것을 버린 사람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자, 자기들의 직업인 고기 잡이로 돌아 갔지만, 마태는 세관으로 돌아 갈 수가 없었지요. 그런 의미에서 마태는 가장 많은 것을 포기한 제자입니다. 특별히 노른 자위와 같은 직장인 가버나움의 세관원을 떠난다는 것은 거기에 다시는 돌아 갈 수가 없겠지요. 


삭개오의 경우! 눅19:1-10절/삭개오, 그는 무엇을 하면서 살았을까? 그는 여전히 여리고의 세리장(세관원장)으로 한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법이 정하는 세금을 거두어 들이면서 멋있는 세관장으로 살았을 것이다. 세관장이라는 직업이 나쁜 것이 아니라 세관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도둑질을 하기 때문에 나쁜 것이지요. 주님을 만나서 full-time으로 삶의 전부를 드려서 목사나 선교사로 사는 것도 귀하다(다드림 선교회원). 아니면 평신도 전문인 사역자가 되어서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선교하는 것도 귀하다(Half-time part-time 선교회원). 우리 교회 모든 평신도들은 예수 만난 삭개오처럼 살기를 바랍니다. 은혜 받았다고 직업 때려 치우고 힘들고 어려운 종의 길을 가지 말고, 세상 모든 것들도 가지고 누리면서 주의 길을 가는 평신도 전문인 사역자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눅 19:8절 볼까요?<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이전의 삭개오가 아니다. 그는 변화된 삶을 살았다. 여리고에서 맛이 간 사람으로 살았다. 세례요한의 외침을 따라서 살았다-눅3:12-13절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로되 부관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그리고 아마도 그의 동료 세리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누구처럼? 마태처럼(가버나움의 세리) 마9:10절-동료들에게 예수를 소개하기 위하여! 잔치를 벌렸지요. 마태/주님의 부름을 받고, 세관원을 사직하고 전심전력으로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다드림 선교회원이다. 삭개오처럼 삽시다!


켐연장

2017.04.03 18:27:47

2017년 3월 31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7/03312017.mp3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02 금요기도회(07/28/2017) [1] 김영호목사 2017-08-01 209
501 <금요기도회 설교> 홈페이지 업로드 안내 켐연장 2017-06-13 232
500 금요기도회(06/02/2017) [1] 김영호목사 2017-06-06 237
499 금요기도회(05/19/2017) [1] 김영호목사 2017-05-23 215
498 금요기도회(05/14/2017) [1] 김영호목사 2017-05-15 224
497 금요기도회(05/05/2017) [1] 김영호목사 2017-05-08 200
496 금요기도회(04/28/2017) [1] 김영호목사 2017-05-01 218
495 금요기도회(04/21/2017) [1] 김영호목사 2017-04-24 211
494 금요기도회(04/07/2017) [1] 김영호목사 2017-04-10 232
» 금요기도회(03/31/2017) [1] 김영호목사 2017-04-03 236
492 금요기도회(03/26/2017) [1] 김영호목사 2017-03-27 225
491 금요기도회(03/17/2017) [1] 김영호목사 2017-03-20 228
490 금요기도회(03/10/2017) [1] 김영호목사 2017-03-13 228
489 금요기도회(03/03/2017) [1] 김영호목사 2017-03-06 229
488 금요기도회(02/24/2017) [1] 김영호목사 2017-02-27 226
487 금요기도회(02/17/2017) [1] 김영호목사 2017-02-21 233
486 금요기도회(02/10/2017) [1] 김영호목사 2017-02-13 245
485 금요기도회(02/03/2019) [1] 김영호목사 2017-02-06 237
484 금요기도회(01/27/2017) [1] 김영호목사 2017-01-30 737
483 금요기도회(01/13/2017) [1] 김영호목사 2017-01-16 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