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75

금요기도회 :3/24/2017 

대표기도:대표기도+선교부 

찬송가:305장/나 같은 죄인 살리신~ 


1. 요한 복음을 공부하다가 가롯유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한 때 예수의 제자였던 가롯유다도 천국에 들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과연 유다가 천국 들어가 있을까요? 가롯유다가 천국 들어가 있다면 천국 못 들어갈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가롯유다가 천국 가 있다는 주장은 영적인 궤변입니다. 궤변이라는 말은 말도 안되는 소리를 궤변이라고 그러지요. 어불성설! 가롯유다는 확실하게 지옥 들어가 있고, 그것도 지옥 아랫목 가장 뜨거운 곳에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오순절 전에 제자들과 함께 모여서 가롯유다가 자살하였기 때문에 가롯유다를 대신할 보궐 선거를 하고자 했습니다. 베드로가 그 자리에서 이런 말로 가롯유다에 대하여 언급했습니다. 가롯유다는 제 곳으로 갔다고 말입니다. 가롯 유다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딥니까? 제 곳은 지옥입니다. 가롯 유다는 누구와 함께? 본디오 빌라도와 함께 말입니다. 지옥에서 본디오 빌라도는 귀를 틀어 막고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상에 있는 교회들이 예배를 드리는 자리에서 사도 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는데, 거기에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이 등장하잖습니까?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가롯유다는 예수의 12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11제자들은 모두 북방 갈릴리 출신이지만, 가롯유다는 남방 출신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가롯유다가 배신 할 줄 처음부터 아시면서 이 사람을 제자의 한 사람으로 받았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특히 시편 41;9절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시 41:9절 말씀<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 들었나이다> 이 말씀을 우리 주님께서 인용하시면서 그래서 가롯유다를 제자로 선택했다고 말씀하셨지요. 가롯유다가 예수의 12제자 중의 하나이고 동시에 가롯유다가 변절함으로써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 당할 수 있게 되어서 하나님의 원대한 인류 구원 사업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롯유다도 천국 들어 갔다고 말들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가롯유다가 있으므로써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는 일이 용이하게 수행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팔아 넘기는 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지요. 요13:2절<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언제 입니까? 예수께서 체포되어서 십자가 지시기 전 날 밤, 목요일 밤에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께서 12제자를 데리시고 마지막 저녁을 드시는 자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자리에서 사탄 마귀가 가롯유다의 마음에 어떤 생각을 넣었다고요? 악한 생각을 넣었습니다. 스승을 팔아 넘겨야 겠다고요. 스승이 싫어서 그냥 슬며시 스승 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돈 받고 예수를 팔아 넘기겠다는 말입니다. 정말 악한 마음의 동기가 아닙니까? 이것은 가롯유다의 마음에 예수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마음의 악에 사탄이 역사하니 무슨 생각이 들어요? 예수를 돈 받고 팔아 넘겨야 겠다고요. 그러면 꿩 먹고 알 먹고 이지요. 도랑치고 가재 잡고! 가롯유다가 배신자가 안 되고자 한다면 그는 어떻게 했어야 했나? 자기의 마음의 악을 씻어 버려야 했다. 그것을 하지 않았다. 그가 예레미야 선지자의 이 말을 기억하고 실행했더라면 죽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렘4:14절<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 마음의 악이 씻어져 버리면 사탄이 악한 생각을 넣어 주지 못합니다. 마음에 악이 가득 차 있으면 악한 생각이 마음에 자리를 잡습니다. 썩은 음식이 있는 곳에 쇠파리가 달려 듭니다. 쇠파리를 없애자면 썩은 음식을 치우면 됩니다. 내 마음의 악을 예수의 보혈로 씻고 또 씻으면 사탄이 내게 달려 들지 못합니다. 악이 있는 곳에 사탄이 달려 들기 때문입니다. 악은 사탄이 쓰는 교두보입니다. 그러므로 늘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살피면서 내 마음의 악을 제거하는 일에 힘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가롯유다가 예수를 팔아 넘기는 행위는 좋은 결과를 냈지만, 가롯유다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의 스승을 팔아 넘기려 했을까요? 그의 의도, 그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예수에 대한 미움이 들어 있었다고 보여 집니다. 결과는 긍정적인 결과를 맺었지만, 그 동기는 아주 안 좋았습니다. 스승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가득 차 있습니다. 저 하늘 저 영계의 세계는 결과를 중시하는 세계가 아니라 마음과 영이 순수하냐 아니냐가 더욱 중요한 세계입니다. 우리들이 이런 더럽고 혼탁한 세계에 살기 때문에 내면의 아름다움 보다는 외면적인 결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누군가가 내게 도움이나 큰 돈을 주는데, 분노와 미움과 같은 악을 가득 담고서 그것을 준다면 우리가 그것을 받아도 썩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마음으로 돕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지요. 이 어두움이 가득한 세계에서도 그럴진데, 영계의 세계는 더욱 더 그렇지요.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고, 행위보다는 마음이 더욱 중요합니다. 가롯유다는 예수를 팔 때에 스승인 예수에게 선한 마음으로 그리한 것이 아니라 악한 마음으로 그리하였고, 스승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에는 자신의 행동을 뉘우쳐서 자결까지 했습니다. 뉘우쳤다고 해서 그것이 그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이 악한 마음의 동기에서 출발했지만, 선한 결과를 맺었다고 그것 가지고 천국 들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는 믿음 때문에 들어 가는 것이지요. 가롯유다는 스승을 파는 것은 그의 마음의 악 때문에 일어 났음을 알아야 합니다. 가롯유다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원, 그의 근원은 마귀의 자녀입니다. 우리도 이전에는 가롯유다처럼 마귀의 자녀였지만, 우리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는 은총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가롯유다는 예수의 12제자로 선발은 되었지만 여전히 마귀의 자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가롯유다를 이렇게 평가했지요. 마26:24절<인자는 자기에게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우리 주님의 이 말씀은 가롯유다가 죽음 후에 지옥에 가 있을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으로 보면 됩니다. 불신자들도 죽음 후에 영혼이 멸절하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들의 영혼이 영원한 지옥에 있게 됩니다.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영원히 지옥에 살아야 할 운명이라면 차라리 안 태어났더라면 더 좋겠지요. 가롯유다는 참 불행한 사람, 비참한 사람입니다. 육신세계에서는 예수님에게 가장 가까이 있었던 인물이지만, 영적 세계에서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2. 인간들이 세상에서 만든 사회가 병들었습니다. Insane society! 사회가 병든 이유,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들이 병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병든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병든 개개인들이 치유가 될 때에 가능합니다. 제도나 법령을 통하여 제도적으로 사회를 개혁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사회적 병폐와 비리를 고치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심령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일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 거라사라는 동네에 갔을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 사회도 심각하게 영적으로 병들어 있는 사회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거라사인의 사회에 귀신들린 어떤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을 거라사인들이 제어할 수가 없었습니다. 쇠고랑을 채웠지만, 쇠고람을 깨뜨렸습니다. 무덤 사이에 거처했었습니다. 늘 소리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무덤가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지요. 우리 주님 예수께서 이 사람에게서 귀신들을 좇아 내었습니다. 이 청년에게 들어 있던 귀신을 군대 귀신이라고 부르지요. 왜냐하면 이 청년 한 사람에게 거의 6천이나 되는 귀신들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귀신들을 근처에 있는 2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하심으로써 그 청년에게서 귀신을 추방했습니다.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주인에게 가서 이 사건을 고했습니다. 그러자 거라사 인들이 몰려 나왔습니다. 와서 보니 귀신 들렸던 그 사람이 온전하게 되어 있었고, 그리고 돼지 2천마리가 모두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서 자기들의 고장에서 떠나 주기를 요청하지요. 왜 거라사인들의 사회는 예수를 용납할 수가 없었을까요? 지금 돼지 2천마리의 금전적 손해가 났는데 예수께 더 계신다면 더욱 큰 금전적 손해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예수께서 자기들의 고장을 떠나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귀신들려 있던 한 사람을 치유하기 위하여 돼지 2천마리가 희생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영혼의 가치가 돼지 2천 마리 보다도 귀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 가치가 겨우 돼지 2천 마리 보다 못합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던가요? 사람의 생명 가치는 참 고귀한 것인데, 이 고귀한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사회가 거라사인의 사회였다는 말입니다. 병들어 있는 거라사인의 사회를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런 경험을 했지요. 어디서 말입니까? 빌립보라는 도시에서 말입니다. 바울 일행이 소아시아에 있다가 배를 타고 유럽 대륙인 빌립보라는 도시에 들어가게 됩니다. 거기서 전도할 대상을 찾고 있었는데, 거기에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가 바울의 일행을 따라 다니면서 전도를 방해했습니다. 바울이 점치는 귀신을 그 여종에게서 추방해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종은 점치는 능력을 잃어 버리게 되었고, 점치는 능력을 잃어 버리니 돈 벌이가 안 되잖아요. 그래서 그 여종을 소유하고 있던 주인이 관리들에게 고발했고, 그 관리들이 바울을 일행을 소요죄로 잡아서 매질을 한 후에 깊은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한 밤중에 큰 지진이 나게 되자 옥문이 열리고 바울 일행을 묶어 놓고 있던 착고가 모두 풀리게 되었지요. 이 과정에서 간수와 그의 가족들과 점하는 귀신들렸다가 나은 여종과 루디아가 예수를 영접하여서 빌립보 교회가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사도행전 16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을 소유한 주인 이 사람에게 있어서는 귀신들렸다가 치유된 여종보다는 자신의 소득이 끊어 진 것 때문에 무척 화가 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영혼이 치유되어서 건강하게 되고 인간답게 살아 간다는 것은 억만 금보다 중요한 것 아닙니까? 빌립보라는 동네도 여종의 주인과 같은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네입니다. 정신과 닥터들이 이런 다중 인격 장애, 즉 귀신들린 사람을 고칠 수 있나요? 없지요! 우리 주님이 주신 능력으로 바울은 이런 기적을 행하였습니다. 한 사람의 영혼 가치 보다는 돈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가 빌립보 사회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살아 가고 있는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우리들의 시대에도 돈이 숭상을 받는 시대입니다. 황금만능주의 말입니다. 맘모니즘, 즉 돈이 신이 되어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뉴욕의 월가는 돈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곳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돈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돈이 전부는 아닙니다. 돈이 전부인양, 그것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 놓았기에 우리 인생에 문제들이 많이 발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 사람의 생명 가치, 이것은 그 어떤 돈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돈 몇 푼에 생명을 거래하지 않습니까?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는데도 그 생명을 귀하게 여길 줄 모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이것을 깨우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병든 사회 속에 살면서 우리의 가치관이 많이 왜곡되어져 버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시금 우리 주님이 가지신 가치관, 영성을 가지고 우리는 이 병든 사회를 고쳐 나가야 합니다. 생명 가치, 영혼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습니다. 


3. 시각 장애자들,맹인들은 빛을 분별하는 기관이 죽은 사람들입니다. 사고로 시신경이 죽었던지 아니면 날 때부터 그랬던지, 빛에 대하여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마치 바다 가장 깊은 밑바닥에 살고 있는 심해어처럼 말입니다. 심해어는 빛을 감광하는 기관이 퇴화 되어 버렸습니다. 장차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 맹인들이 시력이 회복되어서 사물을 밝히 볼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겠지요. 현재의 과학 기술로는 할 수 없지만, 발전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요1:4절<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이 말씀은 빛이신 우리 주님 예수께서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의 영안이 퇴화되어 있어서 빛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조차도 빛이신 예수를 인식하지 못해서 메시야를 나무에 달아 죽이는 우를 범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영적으로 심해어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퇴화 되어 버린 영적인 눈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온 지구상에는 여러 족속들이 따로 따로 모여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역들마다 역사하는 사탄, 악령들의 역사가 다릅니다. 각 지역마다 지배하는 악영들이 다릅니다. 각 지역마다 인간을 지배하는 영들이 다른데 그 악영들을 ‘어둠의 영’이라고 부를 수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런 어둠의 영에게 영향을 전혀 안받는다고 자랑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진정으로 높은 영적인 능력과 권세가 있거나 아니면 빛에 대하여 감광하지 못하는 캄캄 절벽 같은 분이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영적인 센서가 열리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지역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어둠의 영으로부터 견제를 받기에 영적인 싸움이 일어나지요. 영적으로 캄캄 절벽 같은 분들에게는 이런 영적 싸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탄은 늘 우리의 영안을 가리게 만들고 우리를 속이기까지 합니다. 고후11:14절<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사탄의 계책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고후2:11절<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사탄은 부단히 어두움 속에서 성도를 넘어뜨리기 위하여 음모를 꾸미고 있는데, 그 어두운 음모가 빛 앞에 드러나면 그냥 사탄은 우리를 떠나게 됩니다. 어두운 밤길에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비치면 그냥 어둠은 물러가 버리듯이 말입니다. 캄캄한 어두운 방안에 성냥 불 하나면 그 방의 어두움이 그냥 걷힙니다. 교회 안에 진리의 빛이 비추이면 어둠은 맥을 못추고 물러납니다. 교회는 수 없이 많이 있으나 교인들로 하여금 영적으로 풍요로운 신앙 생활을 하게 하는 교회는 그리 많지 않다. 이것이 문제로다. 시18:28절<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캄캄한 내 영혼이 무엇으로 밝아 지나? 진리의 말씀을 수용함으로써 어두운 내 영혼이 밝아진다. 진리의 말씀을 많이 먹어야 한다. 이 길 만이 내 영혼의 어둠이 사라지고 내가 영안이 밝은 자로 한 세상을 살되 영적인 풍요를 누리면서 살 수 있다. 말씀을 많이 먹기를 바랍니다.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다. 그 생명 양식이 내 안에 풍성하면 내가 자유로움을 누리면서 살게 된다. 요8:31-32절<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내 속에 갈무리 되어 있는 고정관념, 편견, 해결 되지 않은 죄, 어릴 때 받았던 상처들, 숨어 있는 분노, 얼굴을 가끔씩 뜨겁게 만들어 주는 감추어진 수치심, 열등감과 우월감, 처리 되지 않은 좌절과 실패들 이런 모든 것들을 어둠의 영이 교두보로 사용한다. 어둠의 영은 나를 죽음과 파멸로 몰고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내 안을 살피고 내 안에 있는 온갖 쓰레기들을 빨리 빨리 처리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이웃과의 인간 관계가 원만하게 되어집니다. 부단히 성도는 자기의 심령을 살피고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한 순간의 실수로 좋던 인간관계를 깨뜨리지 말고요. 한 번 망가진 인간 관계를 회복하는 데는 시간과 정렬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305장을 부릅니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립시다. 가롯유다처럼 되지 맙시다. 우리는 확실히 가롯유다와는 다릅니다. 우리도 이전에는 마귀의 자녀였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오리진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그 악을 우리의 마음에서 씻어 내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 악은 오직 예수의 보혈로 씻기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도 그 보혈로 우리의 마음을 씻어야 겠습니다. 우리의 영안을 밝혀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영혼이 너무 어두어져 있는데,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둔 영혼을 밝혀 주시길 기도합시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회가 병들어 있습니다. 한국 사회도 그렇게 미국 사회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를 치유해야 하는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병든 사회를 치유하기 위한 길은 개개인들이 심령이 치유되고 회복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심령이 먼저 치유되어야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사회를 치유해 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기도하면서 우리의 심령에 상처 나 있는 부분을 우리 주님께 내어 놓음으로써 치유 받는 일이 먼저 일어 나도록 기도합시다.


켐연장

2017.03.27 21:44:34

2017년 3월 24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7/032420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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