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74

금요기도회 :3/17/2017 

대표기도:선교부 

찬송가:413장 


1. 어제 그저께 눈이 많이 왔습니다. 모두 눈 치우느라 고생이 많이 했습니다. 눈보라. Snow storm 바람까지 불어서 blizzard라고 하지요. 왜 블리짜드라고 부르는가? 눈이 짜들어 온다고 블리짜드라고 부르지요. 화요일날 오전에 눈이 그렇게 많이 왔는데, 화요일 성경공부 시간에 두 분 만이 오셔서 진도를 못 나가고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눈이 화요일 날 그렇게 많이 왔는데도 수요일 날 새벽에 새벽 기도 나와보니 프리웨이나 큰 길은 마치 눈이 오지 않은 것처럼 다 치워져 있었습니다. 수요일 날 새벽 기도를 제시간에 나오기 위하여 화요일날 밤에 차에 눈을 대강 치워 놓고 잤습니다. 새벽 아침에 나오 보니 차 앞 뒤에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날씨가 추운 관계로 이미 눈이 얼어 있어서 돌덩이처럼 단단해져 있었습니다. 겨우 차 앞문을 열고 시동을 걸고 후진하여서 눈을 넘어서 교회로 올 수 있었습니다. Four wheel 드라이버니깐 가능했던 같습니다. 


/이렇게 단단해진 눈을 보면서 비록 눈 결정체 하나는 한 입김에 모두 녹아 지지만, 이런 약한 눈 결정체가 여럿이 모이게 되면 이렇게 단단하게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하나 하나는 눈 송이처럼 이렇게 약한 존재들이나 이런 약한 존재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로 뭉치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공동체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몽골 유목민 족들이 징기즈칸을 시작으로 원대한 제국을 만들었지요. 징기즈칸이 임종할 때에 그의 아들들을 불러 모아 놓고 하나가 될 것을 화살을 가지고 교훈했다지요. 그의 아들들이 모두 용사이니 화살 하나를 꺾는 것은 손 쉽지만, 그러나 한 다발의 화살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징기즈칸은 화살을 가지고 그의 자식들이 하나 되어서 협력할 것을 교훈하고 죽었지요. 


오늘 우리들에게 눈을 가지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들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눈은 그야말로 우리 입김에도 녹을 수 있을 정도이지만, 이 눈이 뭉치게 되어서 차 바퀴에 딱 달라 붙으면 돌맹이처럼 단단하게 되어 버리지요. 그러면 망치를 가지고 뭉쳐져 있는 눈을 부수어도 잘 안 부수어지고, 또 뜨거운 물을 부어도 잘 안 녹습니다. 비록 그렇게 약한 눈일지라도 뭉쳐지면 강력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온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작게는 우리 켐연장 교회가 나누어지지 말고 하나 되어야 합니다. 엡4:3절<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령이 우리를 하나 되게 했으니 그 하나님께서 우리가 나누어 지지 않도록 무엇 하라고요? 힘써 하나됨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합, 협동, 하나 됨을 나누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들 서로 간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오해와 편견 때문에 어둠의 영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오해와 편견은 이물질입니다. 이물질이 있으면 성령이라는 접착제가 잘 역사할 수 없습니다. 이물질을 제거해야겠지요. 우리가 하나 되어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근거가 엡4:4-6절 상반 절까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그래서 켐연장 교우들은 마음으로 하나되고, 영으로 하나 될 필요가 있습니다. 


2.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책임? 사회가 부정부패로 얼룩지고 썩어 문드러지고 엎어지더라도 신앙생활 평안히 하고 내 집이 복 받고 살면 그만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있는 사회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회가 멸망하면 개인도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썩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서 부정부패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행정.사법.입법부가 모두 나서야 겠지요. 입법부가 법을 잘 만들고, 행정부가 법대로 나라를 경영하고 사법부가 정의를 바로 집행하면 사회가 평안하겠지요. 이것은 제도적으로 필요합니다. 이 제도적인 장치 만으로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사회를 치유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사람의 마음이 변화되면 됩니다. 그러면 법이라는 것이 필요 없어지요. 법이라는 것은 최소한의 것이지요. 사람의 마음을 치유함으로써 병들어 있는 이 사회를 고쳐 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회를 치유하는 근본적인 방법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우리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에 하나님 보다 우리를 더 잘 아는 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전 8세기 예언자 아모스의 예언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아모스 5:23절<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개역 성경에는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로 번역되어 있지요.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북 이스라엘 특히 성소가 있는 벧엘에서 아모스가 외친 말인데, 벧엘 거리 거리마다 무엇이 넘쳐 나야 한다고요? 정의, 어떤 정의? 하나님의 정의가 도랑물처럼 콸콸 흘러 넘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몇 일 전에 헌법 재판소에서 탄핵을 인용함으로써 사상 초유로 한국의 현직 대통령이 파면되었습니다. 이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우리는 자연인 박근혜씨, 혹은 박씨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박씨가 탄핵되어서 대통령직에서 물러 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1972년부터 시작되어서 지금까지 유신체제, 한국사회를 지배해 온 수구 세력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정치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단지 정치라는 토픽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고자 합니다. 정치에 대하여 우리 주님이 보시는 예언적인 시각을 가지고 보고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1972년부터 시작된 유신체제의 적폐가 오늘날까지 사회 구석 구석에 쌓여서 부패하지 않는 구석이 없습니다. 정치계, 문화계, 교육계,법조계, 종교계 등등 모든 부문이 다 썩었고, 무능과 부정과 부패가 만연해 있습니다. 법이 있으나 법대로 집행이 되지 않고 있다는 말이지요. 이제 이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를 척결할 수가 있는 기회가 한국 땅에 주어졌습니다. 이번 기회를 사용해서 온 나라에서 만연해 있는 무능과 부정부패가 일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관심은 누가 대통령이 되고 어떤 정당이 수권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대통령은 이런 사회적인 더러움을 닦아 내고 쓸어 내는 대통령이 나오면 좋겠다는 겁니다. 다음 대통령으로는 걸래 같은 대통령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의 역할을 걸레에 비유하다니 하면서 언짢아 하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사회에 부조리와 부패와 어두움과 더러움을 씻어 내는 일은 걸레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다음 대통령에게 우리 하나님이 맡기신 책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손정도 목사-일제치하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사역했습니다. 남북 정부 모두에게 인정을 받는 목사였습니다. 특히 북한의 주석이었던 김일성도 마치 친 아버지처럼 존경하면서 따랐던 인물입니다. 손 목사님은 복음 전파의 열정도 있었지만, 동시에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고민하던 그런 그리스도인이었다. 일제에 의하여 투옥되어서 옥고도 치렀던 인물입니다. 석방되어서 서울 정동교회에서 목회하면서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습니다. 1931년에 돌아가셨지요.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비단 옷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러나 걸레는 하루만 없어도 집안이 엉망이 되므로 없어서는 안됩니다. 나는 걸레와 같은 삶을 택해 불쌍한 우리 동포들을 도우며 살겠습니다.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인물은 어떤 인물인가? 깃발을 펄럭이면서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기세 좋게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토해 놓은 토악질 자국을 닦고 쌓이는 먼지를 씻어내는 걸레가 되고자 하는 사람, 섬기는 사람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어떤 초등학교에서 전체 회장을 뽑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회장 입후보한 후보들이 저마다 자기가 회장이 되면 무슨 일을 하겠는지에 대한 정책을 발표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어떤 초등학생 후보가 이렇게 자기 입장을 밝혔습니다. 자기는 걸레가 되겠노라고 말입니다. 그 말은 초등학생 유권자들의 폭소를 자아 냈습니다. 더럽고 냄새 나는 것을 닦아 주고 씻어 주는 그런 회장이 되겠다는 말이지요. 결국은 걸레가 되겠다는 이 초등학생 후보가 당선이 되었다지요. 초등학생 회장 선거이지만, 한국의 어른들이 하는 대통령 선거하는 현장보다 훨씬 수준 높은 의식을 가진 선거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한국의 대통령 후보들은 이 어린 초등학생 회장 선거에서 배워야 합니다. 한국의 대통령들 보면 공약을 많이 내거는데, 보면 실현 할 수가 없는 빈 껍데기 뿐인 공약이 난무하지요. 나는 걸레가 되겠습니다고 한 어린 초등학생보다도 못한 쓰레기 정치인들이 참 많습디다. 백성들을 속이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정권만 잡으면 된다는 그런 발상으로 비어있는 공약을 남발하지요. 대통령, 그는 국가의 첫째가 되는 종입니다. 국가의 제일 공복, 즉 공적 노비입니다. 그는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서 국민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고, 백성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이런 마음과 심령 자세로 백성을 섬긴다면 한국 국민들이 대통령을 얼마나 존경 하겠습니까? 역대 대통령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사리 사욕을 챙기기에 바쁘지 않았느냐 말입니다. 특히 이번 정권은 더욱 심하지 않았느냐 말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크게 두드러진 비유가 두 가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다윗이 밧세바와의 불륜을 책망하기 위하여 나단이 다윗에게 했던 비유입니다. 사무엘하 1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요담의 비유라고 불리는 비유입니다. 이 요담의 비유는 사사기 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선 요담의 비유의 내용을 모르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요담의 비유의 내용을 말씀 드립니다. 우선 이 비유의 배경 이야기를 알아야 합니다. 요담은 유명한 사사인 기드온의 막내 아들입니다. 사사 기드온은 잘 아시지요. 미디안 족속들이 쳐 들어 왔을 때에 하나님이 기드온을 사사로 세워서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드온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습니다. 기드온은 여호와께서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왕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런 기드온이 나이가 많아서 죽었습니다. 기드온의 아들과 딸 손자 손녀들이 모두 70여명이나 되었는데, 그 중에 아비멜렉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이 세겜 사람들과 작당을 하여서 기드온의 아들과 딸들 자기의 형제들 모두 70명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세겜 사람들의 추대를 받아서 왕이 되었습니다. 이런 난리 중에서 살아 남은 기드온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은 기드온의 막내 아들이었고 이름이 요담이었습니다. 이런 난리를 당한 후에 요담이 세겜 사람들에게 바로 요담의 비유라고 일컫는 그런 비유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비유의 내용은 나무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자기들에게 왕을 세워야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나무들이 감람나무에게 가서 왕이 되어 달라고 이야기했더니 감람나무가 나는 싫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기름이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데 어찌 왕이 되어서 우쭐거리겠느냐고 말입니다. 이번에는 나무들이 무화과 나무를 찾아 가서 왕이 되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무화과 나무도 싫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아름다운 열매를 버리고 나무들 위에 우쭐 거리는 왕이 되겠느냐고 하면서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무들이 포도나무를 찾아 가서 왕이 되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랬더니 포도나무도 사양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를 버리고 어찌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나무들이 마지막으로 가시나무를 찾아가서 왕이 되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가시나무가 수락을 하면서 너희가 내 그늘에 피하라 그렇지 않으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라고 말했지요. 가시 나무에 무슨 그늘이 나겠어요. 이것은 거짓말이지요. 가시 나무에 가까이 가면 어떻게 됩니까? 가시에 찔리는 일 밖에 더 있겠습니까? 가시나무는 불을 붙이면 따다닥 거리면서 잘 탑니다. 이런 예언을 세겜 사람들에게 하고 요담은 숨어 버리지요. 세월이 3년간 흐른 다음에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 사이에 틈이 벌어지고 싸우게 되지요. 그런 싸움의 와중에 아비멜렉이 여인이 윗층에서 던진 맷돌에 두개골이 부서져서 죽음으로써 아비멜렉의 난이 끝나게 됩니다. 요담의 했던 비유의 말대로 세겜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죽었지요. 가시나무에게서 불이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이 불사를 것이니라고 했던 그의 말대로 말입니다. 


/이 요담의 비유를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잡초가 무엇일까? 잡초 말입니다. 밭 이랑, 상추나 배추나 무우 밭에 돋아나는 무성한 풀말입니다. 잡초는 생명력이 왕성해서 유용한 작물보다 웃자리기 때문에 김메기를 통하여 수시로 잡초를 뽑아 주어야 합니다. 잡초는 유용한 작물과 함께 있어서는 안 되는 풀입니다. 백해 무익한 풀이 잡초입니다. 그런데 이 잡초에 대한 이해를 달리 해야 합니다. 보리밭에 밀 이삭이 몇 개 자라고 있었습니다. 또는 밀 밭에 보리 이삭이 몇 개 자라고 있습니다. 보리밭에 자고 있는 밀 이삭, 밀 밭에 자라고 있는 보리 이삭은 무엇입니까? 그게 잡초가 아니던가요? 밀 이삭이나 보리 이삭 그것 자체로는 잡초가 아닙니다. 모두 유용한 작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잡초가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게 어디 있느냐에 문제입니다. 밀 이삭이 보리 밭에 있었기 때문에 잡초가 됩니다. 바로 그 자리, 내가 있어서는 안될 자리에 있으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잡초가 됩니다. 헌제가 박근혜 씨를 탄핵해서 파면한 것은 그녀를 무엇어이라고 보얐나요? 요담의 비유라면 가시나무로 보았고, 또 무엇으로요? 잡초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박씨가 인간적인 조건은 갖추고 있었지만,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그런 자리에는 합당하지 않는 인물이었다는 점에 있어서 잡초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잡초는 뽑혀야 하지요. 뽑히지 않으면 주위에 많은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번 탄핵 사건을 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각자가 있는 직장과 사회적 지위와 위치에 나는 합당한 인물인지를 물어 보아야 합니다. 합당하지 않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국민이 뽑아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자리에서 나를 뽑아 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직책과 자리에 최선을 다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번 탄핵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무엇이 되지 말자고요? 가시나무가 되지 말고, 또 무엇이 되지 말자고요? 잡초가 되지 말자.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우리는 바로 그 자리에 서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무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4. 우보! 소의 걸음이라는 한자어이지요. 특히 밭일 하는 한우는 느릿느릿 걷습니다. 우리의 영혼의 성장도 우보처럼 느리고 천천히 일어납니다. 우리는 소에 쟁기를 매어서 밭일 하는 농부처럼, 우리의 영혼은 천천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 성장은 매일 매일 조금씩 조금씩 일어나야 합니다. 그 개념을 정진이라고 말합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나간다. 우리는 정진이라는 소에 멍에를 메우고 밭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이만하면 됐다는 자기 만족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일신 우 일신! 한 번 새롭게 하고, 또 다시 한 번 새롭게 한다는 말이지요. 죽을 때까지 영적 성장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빌3:12절<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 가노라> 앞에 세워둔 목표를 향하여 쉼 없이 달려 가는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 학교에서 나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라는 말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 말은 교만,자만에서 나온 말입니다. 성도는 항상 신입생이요, 초년병이요, beginner라는 겸비한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만이 우리의 영적인 퇴보를 막아 줄 것이다. 딤전4:15<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가만히 서 있고자 하면 뒤로 밀린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오직 성도는 정진이라는 소에 멍에를 메우고 쟁기를 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일의 성공은 부를 가져다 주고, 일의 실패는 교훈을 가져다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시도해야 합니다. 실패할 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에 위축되어서 그 일을 시도하는 일을 포기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포식자들도 먹이,피식자를 사냥할 때 그들도 많은 실패를 합니다.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 때도 얼룩말이나 들소 같은 피식자를 5번정도 공격하여서 4번 정도는 실패한다고 하지요. 그 실패를 교훈 삼아서 더 나은 사냥 기술을 그들은 발전시킵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게 해야 성공 합니다. Homo Sapiens라는 인간이 동물보다 못해서야 그 무거운 머리를 왜 달고 있는가? 


그렇다면 영적인 일은 어떤가? 영적인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위하여 교회의 여러 가지 일을 시도해 봅시다. 그 일을 함으로써 무슨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요? 영적인 성장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 교회 일을 함으로써 나의 영적인 유익이 있고, 공동체에 덕 세움에 이바지 한다면 무슨 일이든 합시다. 우리 주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말입니다.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 때문에 위축되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그것은 본인에게도 마이너스이고 교회 공동체에도 손실이 될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영혼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일이나 켐연장 교회의 덕 세우는 일이 밀접하게 연관 되어져 있음을 잊지 맙시다. 엡4:15절<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누구에게까지 자라나야 하는가? 우리의 영적 자람의 목표가 어디인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범사에! 즉 모든 면에 있어서 성도들은 예수를 닮아 가야 합니다. 흉내 내는 것이 아니고 닮아 가라는 말입니다. 배우들처럼 무대 위에서 그 사람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그 사람이 되어서 삶의 무대에서 그렇게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지혜와 성품과 능력에 있어서~ 


413장 찬송을 부르겠습니다.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는 성령으로 하나 되어 있습니다. 이 하나 됨을 굳게 지켜 나가야 합니다. 성령으로 하나 됨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편견과 오해, 그리고 우리의 죄악입니다. 이것은 모두 이물질입니다. 이 물질이 묻어 있으면 접착력이 떨어지지요. 우리 사이에 들어와 있는 편견과 오해와 이물질을 제거하므로 성도간의 연합이 더욱 공고하게 되어야 겠습니다. 


우리들 각자는 영적인 성장을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성장은 하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신체는 20살까지 자라면 그 육체적인 성장은 멈춥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성장, 영적인 성장은 죽을 때까지 지속되어야 합니다. 정진, 또 정진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늘 나라에 들어갈 때에는 영적인 거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를 50년 60년 믿으면서 교회 들락 날락 거렸지만, 하늘 나라에 들어 갈 때에 기저귀 차고, 젖병 물고 들어 가서야 되겠느냐 말입니다. 당신의 영적인 나이는 지금 얼마나 되었나요? 스데반 집사처럼, 빌립 집사처럼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천국 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김영호목사

2017.03.20 10:06:50

2017년 3월 17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7/031720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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