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73

금요기도회 :3/10/2017 

대표기도:대표기도+선교부 

찬송가:535장,<주 예수 대문 밖에~> 


1. 여덟 번째, 마지막 기도 제목:세상을 섬기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지난 두 주간 동안 교회의 8중의 기도 제목에 대하여 말씀 드렸지요. 지난 두 주간 7개의 기도 제목을 설명했는데, 자 한번 기억을 다시 새롭게 해 봅시다: 첫 번째가 가난한 심령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두 번째가 주님이 있으면 무슨 일이라고 할 수 있고, 주님이 없으면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세 번째가 하나님 한 분 만을 두려워하는 교회 되게 하소서! 네 번째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다섯 번째가 죄 짓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정결한 교회가 되게 하소서! 여섯 번째가 성령으로 기도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일곱 번째가 복음 전파의 열정을 가진 교회가 되게 하소서! 오늘은 8번째의 기도 제목입니다:세상을 섬기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오늘은 8번째의 기도 제목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막10:45절<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찬송가 가운데 이런 찬송이 있습니다:이 세상에 죄악된 일이 많고 참 죽을 일 쌓였구나~ 죄악 세상, 근심이 가득 차 있는 세상, 곤고한 세상---모두 부정적 이미지의 세상입니다. 속된 말로 세상은 더럽고 추하고 어둡고 또 뭡니까? 지랄 같은 세상! 이런 세상에 무슨 미련이 있나 해서 어디로 산으로 들어가 살아도 되는가? 세상에 대한 미움이 있어서 세상을 등지고 살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라고요? 세상의 어두움은 책망하지만 그런 어두움 가운데 사는 곤고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고요?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고 섬기라는 말이지요. 이 구절 말씀은 우리가 우리 직업, 우리 전문 지식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직업이 돈 벌기 위한 수단인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이지요. 그리스도인들이 좋은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어서 한 세상 떵떵 거리면서 편안하게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삶의 목적인가?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바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의식, 어떤 깨달음을 가지고 직장에 다니고, 사업을 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돈 벌기 위해서, 보다 안락한 나의 삶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내가 나의 직업을 가지고, 나의 전문 지식을 가지고 나를 필요로 하는 이웃을 섬기고, 사회를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가진 기득권세를 가지고 이웃을 착취하고 억압하기 보다는 이웃을 섬기는 자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입니다. 사회가 부정부패가 창궐하고, 어두움이 가득 차 있어도 예수만 잘 믿고 나와 내 집만 복 받고 살면 그만이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이 이런 의식을 가지고 신앙 생활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한 이런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직장의 일도 대강대강 시간 해 치우고, 가정에서 가족들을 섬기는 일도 뒷전으로 미뤄 놓고, 교회 일에 동분서주하는 것, 이것도 옳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믿음이 있고, 본받아야 할 신앙인이 아닙니다. 교회 일만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나의 세속 직업, 나의 전문 영역도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calling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내 직업을 갖도록 하셨고,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여서 영광을 받고자 하십니다. 복음을 전하고, 이웃에게 전파하는 것만이 거룩한 일이 아니고 내가 내 직업에 충실 한 것도 거룩한 일입니다. 나는 내 직업을 통하여 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하루에 8시간 이상 직장에 매여서 일하는 동안 이런 의식과 깨달음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합니다. 내가 나의 전문 지식을 가지고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살아가야 합니다. 


/지난 번에도 여러 번 이 예화를 들어서 이야기 했습니다. 덩치가 큰 철새들, 청둥 오리 같은 새들 말입다만, 이 새들이 장거리 비행을 할 때에는 대오를 지어서 날아갑니다. 20-30마리씩 말입니다. 일렬로 줄을 맞추어 날아 가는 것이 아니라 v자 대형으로 날아가지요. 맨 앞에 서서 날아가는 새가 대장인데, 가장 힘센 놈입니다. 이 놈이 힘들게 날개 짓을 하면 날개 끝에는 상승기류가 발생합니다. 뒤에 따라 오는 놈들은 약한 놈들인데 대장이 만들어 내 놓는 그 상승 기류를 타고 날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날개 짓이 힘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v자 대형을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덩치가 큰 철새들은 v자 대형으로 날아감으로써 훨씬 수월하게 전원이 목적지까지 날아 갈 수가 있습니다. 연구결과 일렬로 날아 갈 때보다 약 71% 정도 더 먼 거리를 날아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제일 힘 드는 놈은 맨 앞에서 날개 짓을 하는 대장입니다. 이 대장은 뒤에 따라 오는 약한 놈들을 섬기는 놈입니다. 오늘 이 사회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 모두는 바로 이런 섬기미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들이 속해 있는 모든 직업과 전문 영역으로 이 사회의 약한 자 그룹을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자기가 속해 있는 영역, 그룹에서 맨 선두에 서서 이웃들에게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8번째 기도 제목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는 이곳 보스톤 땅에서 자기 전문 분야에서 실력을 갖추어야 겠지요. 자기 분야에서 학위를 잘 마치고, 실력을 갖추어 놓고 있어야 겠지요. 그래서 사회가 부르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부를 때에 달려가서 그들을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우선은 높은 자, 힘 있는 자, 실력 있는 자가 되어야겠지요. 힘써서 실력을 갖추고, 평신도 전문인 사역자가 되어서 세상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켐연장 교회에서는 우리가 가진 실력과 전문 지식 위에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임하도록 신앙 훈련을 쌓는 곳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으면 우리가 갈고 닦은 실력과 전문 지식이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부단히 금요일마다 기도를 쌓아 감으로 우리의 전문 지식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충만하게 임할 것입니다. 청년들은 학교에서 전문 분야에서 실력을 갖추기를 바라고, 교회에 와서는 전문 지식에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임하기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8번째 기도 제목을 이룰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8번째 기도 제목에 숨어 있는 우리 하나님의 메시지 입니다. 때가 되면 실력과 영력을 갖추고 있는 지체들을 하나님이 적절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2. 오직 믿음으로! 구원 얻는 방법은 오직 믿음 밖에는 없다는 선언입니다. 롬6:33절<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이 진술은 일종의 영적인 법칙과 같습니다. Spiritual Law! 우리는 중력 장 속에서 살아갑니다. 지구 중심부가 우리를 당기고 있지요. 그래서 높은 곳에 있는 물체는 땅 아래로 모두 떨어집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물체는 모두 이런 힘을 받고 있습니다. 내가 인정하던 인정하지 않던 중력은 내게 미칩니다. 존 뉴튼의 만유인력의 법칙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법칙을 하나님이 이 세상 속에 심어 놓았습니다. 이 영적인 법칙을 성경을 펴 놓고 깨달아 알고서 우리의 삶에 적용한다면 우리는 훨씬 영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보십시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성을 주셔서 물리법칙을 발견하게 해 주어서 그 결과로 달까지 인공위성이 갔다 오지 않았습니까? 자연 속에 하나님께서 감추어 놓은 물리법칙, 화학법칙 등을 발견하고서 그것을 응용하여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편리해 지지 않았던가요? 그래서 인류를 Homo Sapiense!라고 하지 않던가요? 지혜로운 인류가 두뇌를 사용하셔서 현재의 과학기술 문명을 이루어 놓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는 영적인 법칙들이 많이 있는데, 그 법칙들이 성경 속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영안이 밝아지면 우리는 성경 책 속에서 그것을 발견하여서 우리의 삶에 적용한다면 우리의 삶은 현재보다 더욱 더 영적으로 풍성하게 되어질 수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죄의 대가, 즉 죄의 반대급부, 죄의 보수가 죽음입니다. 내가 죄를 위하여 일했더니, 죄가 나에게 반대급부로 무엇을 줍니까? 죽음을 가져다 줍니다. 죄를 지으면 죽는다는 것은 영적인 한 법칙입니다. 그 반대로 영생을 얻는 길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선행을 하고, 종교적인 업적을 쌓아야 비로소 얻게 됩니까? 아니지요. 영생은 그냥 하나님의 선물이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은사라고 말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선생님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값없이 주는 것이 무엇이라고요? 영생입니다. 영원히 사는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 선물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까? 금은 금광에서 발견하고, 은은 은광에서 발견하지요.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은 어디서 발견합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발견합니다. 내가 예수 밖에 살다가 예수 안에 영생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 예수 안으로 들어가면 영생은 저절로 얻어집니다. 영생 얻은 길이 참 단순하지요. 그냥 예수 안으로 들어가면 영생을 선물로 받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법칙입니다.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영적인 법칙이 아닙니다. 모든 인생들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법칙입니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도 예수 안으로 들어가야 영생을 얻습니다. 어린 아이도 예수 안으로 들어가야 영생을 얻습니다. 공부 많이 한 박사들도 예수 안으로 들어가야 영생을 얻습니다. 낫 놓고 기억 자도 모르는 무식쟁이도 예수 안으로 들어가야 영생을 얻습니다. 남자도 예수 안으로 들어가야 영생을 얻고, 여자도 예수 안으로 들어가야 영생을 얻습니다. 부자도 예수 안으로 들어가야 영생을 얻습니다. 가난뱅이도 예수 안으로 들어가야 영생을 얻습니다. 이 영적 법칙은 예외 없습니다. 


/롬4:4-5절<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품삯, 보수)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 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여러 집사님들 지금 직장에서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교회로 돌아 오셨지요. 하루에 8시간씩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런 노동자들이 받는 월급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회사의 owner가 내게 은혜 베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노동한 대가로 받는 정당한 권리입니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면 일한 만큼 셀러리를 더 받습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 논리가 통하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법칙이 적용되는 곳입니다. 죄인들인 우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는 선언을 받기 위하여 해야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열심히 종교적인 업적과 선행을 쌓아야 의롭다는 선언을 하나님으로부터 듣습니까? 경건하지 않는 우리들이 의롭다고 여김을 받을 수 있는 길은 믿음 밖에는 없습니다. 행위를 통하여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의롭게 된다는 말입니다. 의롭게 되는 길은 오직 믿음으로만 되어집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공로중독주의에 물들어 있어서 이 진리가 잘 믿어 지지 않습니다. 창15:6절<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우리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어떻게 의롭게 되었나요? 행위로 되었나요? 아니면 믿음으로 되었나요? 믿음으로 되었지요. 합2:4절<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죄로 인하여 죽은 나를 살려 주는 것은 믿음뿐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종교 개혁가들의 4대 슬로건 가운데 하나이지요.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경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칼빈과 루터가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이 4 개의 기치를 내 걸고 종교 개혁을 이루어서 개신교를 만들었지요. 루터교와 장로교 말입니다. 이 4개의 기치 가운데 하나가 오직 믿음으로 만 구원을 얻는다 이지요. 


3. 십자가의 의미? 성도 여려분, 여러분은 십자가 볼 때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의 죄를 씻기 위하여 우리 주님이 십자가 지셨다는 것이 떠오릅니다. 예수는 내게 속죄자로 다가오셨다는 말입니다. 과연 십자가가 나의 죄 문제 해결만을 위한 길인가? 그 십자가 안에 다른 것은 들어 있지 않는가 말입니다. 내가 지은 죄 문제 해결 외에는 다른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십자가에는 또한 우리의 몸의 질병, 그리고 정신적인 질고를 낫게 하는 길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걸려 있는 불치의 질병을 낫게 하는 비법이 십자가 안에 있다면 그것을 탐구하는 것도 참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병을 병원과 의사와 약이 치유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의사와 약이 손을 쓸 수가 없는 그런 불치의 질병에 대하여 치유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십자가라는 말입니다. 십자가는 죄를 씻는 길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리의 병을 낫게 하는 길입니다. 병은 우리 몸의 적신호입니다. 병은 내 몸이 '나 좀 살려달라'는 비명을 지르는 것입니다. 그 다급한 비명에 응답해 주는 약도 절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계가 있고, 때론 부작용도 감수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적신호가 오기 전에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건강할 때 더 건강한 몸을 만들어야 병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요즈음 또 시즌얼 알러지가 시작되었지요.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병 때문에 고생하는 지체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병을 이길까? 또 한 걸음 더 나가서 병을 일으키는 전 단계인 우리의 약한 부분을 어떻게 강화시킬까? 몸을 강화시키자면 보약을 먹으면 됩니다. 영혼을 강화하자면 어떻게? 성경 말씀 많이 먹으십시요. 성경 말씀은 우리 영혼의 보약입니다. 성경 말씀 많이 먹고 영혼이 강건하게 되면 면역력도 높아져서 우리의 육신도 강건하게 되어 질 수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런 십자가의 은혜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혼구원과 육신의 구원도 십자가를 통하여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언자 이사야의 예언을 찾아 보지요. 사53:4-6절<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여기서 ‘질고’가 무엇인가? 병을 가리킵니다. 슬픔은 고통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 고통은 육신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 모두를 가리킵니다. 여호와의 종인 후대에 오실 메시야가 이 징벌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병과 우리의 고통을 대신했다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종이 찔리고 상하였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종이 찔리고 상했는(=crushed, 부서졌다)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다. 여호와의 종이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샬롬을 누리게 되었다.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가 매질을 당하므로, 그가 받은 상처로 우리의 질병이 치유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평안과 병나음의 축복은 바로 메시야의 고난 때문에 우리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마8:14-17절<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이사야가 말했던 조금 전의 그 예언이 누구에게서 성취되었다고요? 종말의 때에 예수에게 성취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가 메시야임을 마태는 이사야의 예언을 가지고 증명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지상 사역 중에서 축귀 사역과 치병 사역은 대단히 중요한 사역입니다. 사람들에 포제스되어 있는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병들을 고치신 일은 회복사역입니다. 무너져있고, 깨어져 있고, 병들어 있는 것을 원래대로 회복하는 사역이 구원사역입니다. 예수께서는 죄 때문에 고장 난 이 우주를 고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이 일은 구약 시대에 예언자들을 통하여 예언하신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는 이 말은 이사야가 예언했던 말씀인데 마태가 인용하고 있습니다. 연약한 것, 병이 무엇일까요? '연약'는 병이 생기기 전의 허약함을 의미하지요. 그 허약함이 진행되면 병이 된다. 우리 주님이 병뿐 아니라 또한 우리의 연약함 까지도 치유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벧전 2:24절<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께서 매질을 당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질병에서 치유될 수가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질병을 고치는 것을 신유라고 부릅니다. God-healing! 신유는 기적입니다. 이런 기적은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일어나는가? 우리 주님이 지신 십자가 때문입니다. 신유의 비밀이 십자가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 가운데 불치의 질병으로 고생하시는 분들 한번 십자가 붙들고 기도해 보지 않으렵니까?


켐연장

2017.03.13 11:01:25

2017년 3월 10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7/031020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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