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72

금요기도회 :3/3/2017 

대표기도:선교부 

찬송가:391장 


지난 주에 다섯 번째의 교회 기도가 무엇이라고 했나요? 정결한 심령들이 모인 교회가 되게 하소서! 정결하다는 것은 깨끗하다는 의미입니다. 왜 그리스도인이 세상 가운데서 정결하게 살아야 하는가? 요일3:2-3절<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 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장래?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이지요. 우리 주님을 재림의 날에 우리는 만나 보게 됩니다. 그 때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 주님의 깨끗하심처럼 우리도 깨끗하게 되려는 의지를 품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우리 주님의 영적인 신부들이기 때문입니다. 신부가 신랑의 눈에 들기 위하여 어떻게 하나요? 꽃 단장하지 않던가요?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가장 관심을 기울여서 보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심령과 삶이 깨끗한가 아닌가 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산상보훈에서 6번째 복이 무엇이지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 임이요. 마태 복음을 기록한 마태나, 요한 1서를 기록한 요한이나 똑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지요. 마음이 깨끗한 자가 주님을 보게 된다고 말입니다. 마음이 죄와 악으로 더럽혀져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 이것은 만고 불변의 진리입니다.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마음 즉 심령의 깨끗함을 추구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죄 많은 곳이지만, 그러나 그 많은 죄를 예수의 보혈로 씻어서 깨끗하게 한 자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2천년 전에 십자가에서 우리 주님이 흘리신 보혈이 강같이 흘러서 우리의 심령의 더러움을 씻어 주고 있습니다. 


/막9:36-50절/막9:42절<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그에게) (더)나으니라> 맷돌 아시지요? 콩이나 깨 같은 곡물을 가는 도구이지요. 사람 손으로 돌릴 수 있지요. 그러나 연자 맷돌은 사람 손으로 돌리는 맷돌이 아니고 나귀가 돌리는 육중한 맷돌을 가리킵니다. 그런 맷돌이 목에 매여져 바다에 던져진다는 것은 끔찍한 형벌적인 죽음이라는 말이지요. 여기서 연자 맷돌이 누구의 목에 걸리는가? 예수 믿는 소자를 실족케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실족을 당하는 소자인가? 전자일 경우는 힘 없고, 어리고 약한 자들 중에 하나,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런 소자 하나를 실족시켜서 믿음을 잃어 버리게 만들고 신앙을 떠나게 만든다면 그런 행위를 한 사람은 연자 맷돌이 목에 매여져서 깊은 바다에 던져 지는 벌보다 더 무서운 벌을 받게 된다는 의미가 되지요. 후자라면 즉 실족하게 되는 소자일 경우에는 소자가 죄를 지어서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냥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서 그냥 깊은 바다에 빠져서 육신적으로 죽는 것이 더 낫다는 말입니다. 즉 지옥의 고통은 심해에 연자 맷돌을 매어져서 바다 깊은 곳에 던져 져서 죽는 것보다는 지옥 고통이 더욱 크니 결코 지옥에는 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어떻게 읽으나 뜻이 통합니다:깊은 바다에 연자 맷돌을 목에 매여서 던져 지는 것이 죄 때문에 지옥 가는 것보다는 낫다는 말입니다. 지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처참한 곳이다. 결코 가서는 안 되는 곳이다. 그렇다면 천국은 어떤 곳인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나은 곳이다. 천국은 이 정도의 것이라고 지금 이곳에서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 이상으로 좋은 곳입니다. 지옥은 이 정도로 처참한 곳이다라고 이승에서 생각했지만, 막상 가보면 그 이상으로 처참한 곳입니다. 너무나 큰 현실적인 고통 때문에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면 편하리라고 생각하지만 죽음 저 너머는 더욱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게 되면 뒷문의 셔터가 내려지고 앞에 내려져 있는 셔터가 열리면서 지옥 불이 확 밀려 닥치게 됩니다. 이것이 죽음의 실상입니다. 죽음은 우리의 현실 고통의 도피처가 아니다. 어떻게든 살아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예수 믿지 않고 영원세계에 들어가면 지옥에 가게 되는 데, 지옥은 현실 세계에서 느끼던 고통과 비교가 되지 않는 더욱 큰 고통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지옥의 고통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48절에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고,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는 곳이다. 지옥은 불이 타는 곳이라는 말이지요. 현실 세계에서 제일 크고 무서운 고통이 몸에 불이 붙어서 타 죽는 고통입니다. 지옥은 마치 우리의 몸에 불이 옮겨 붙어서 타는 것 같은 고통이 지속되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지옥에는 누가 들어가나? 죄를 지은 사람이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죄는 어떻게 짓나? 손, 발, 눈으로 죄를 짓지요. 손이 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거든, 지옥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라고요? 손을 잘라 버리라. 손이 하나 없는 장애인으로 천국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멀쩡하게 가지고 있는 채로 지옥 불구덩이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는 말입니다. 발도 마찬 가지! 눈도 마찬가지! 물론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지요. 상징적으로 받아야 하지요. 손이 나로 하여금 짓게 하면 손이 잘리는 영적인 고통을 주어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게 만들어 달라는 말이지요. 발도,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아픔이 일어나면 두 번 다시 그런 죄를 짓지 않게 되겠지요. 온 몸 전신이 건전한 형태로 지옥에 던져 지는 것보다는 불구의 몸으로 땅에 살다가 천국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죄를 짓지 말라는 말이지요. 죄를 지으면 지옥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옥은 우리들이 현실 세계에서 이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고통스럽고 끔찍스러운 곳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죄와 싸우되 피흘려 죽기까지 죄와 싸우라고 기록되어 있지요. 죄와 그런 처절한 싸움을 해 보셨습니까? 이런 싸움을 하기 보다는 어떻게 사나요? 죄와 타협하면서 살지 않습니까? 우리는 죄와 악에 대한 선전 포고를 하고, 또한 예수의 이름으로 승리를 선포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6. 여섯 번째 기도 제목:성령으로 기도하는 심령들이 모인 교회 되게 하소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도는 무엇이고, 기도 가운데 역사하는 성령은 무엇인가? 기도할 때에 성령의 도움이 필요한가? 유1:20절<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라! 기도에 힘쓰지만, 무엇으로 기도하라는 말인가? 성령으로 기도하라! 기도의 방법이 성령으로입니다. 성경 한 구절 더 보지요. 롬8:26-27절<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육체가 약하다는 말인가? 육체가 약하다는 말이 아니지요.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해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상황 속에서 아 이것을 위해서 기도해야 겠구나라는 인식과 깨달음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것을 못한다는 말이지요. 아이들이 엄마에게 해 달라고 조르는 것을 들어 줄 때에 아이들의 눈 높이로 낮아 져서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 주지요.엄마의 눈 높이라면 안 들어 주지요. 엄마의 눈 높이만큼 아이들이 자라났나요? 엄마의 눈 높이 만큼 자라나자면 30년 이상이 걸리지요. 이런 의미에서 아이들은 연약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이 영적으로 자라나지 못했으니 어린애의 눈 높이로 기도하고 보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적인 연약함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 속에 들어와 계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하나님께 간구하십니다. 친히 간구하신다! 누가?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는 말입니다. 성령 받기 전에도 얼마든지 기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육신적은 눈으로 바라 보면서 있어야 하는 것을 간구하는 지성적인 간구일 뿐이다. 영적인 간구가 되지 못한다. 영적인 간구하라고 하여서 기도의 내용이 신령한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비록 기도의 내용이 병을 낫게 해달라, 직장을 달라, 돈을 달라, 장학금을 달라는 이란 육신적인 간구라 할지라도 성령이 임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영적인 간구로 바꾸어 버린다. 성령이 임하면 기도가 달라지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면 나를 바라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계획을 보고 알게 되기 때문에 기도가 거기에 맞추어서 기도를 하게 되지요.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개구장이 짓거리를 하는데, 철이 들면 그런 짓을 안합니다. 엄마의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친히 간구하신다. 성령이 내 마음에 영적인 감동을 주어서 기도하게 하기도 하고, 또는 방언과 같이 직접 우리의 입술을 주장하여서 기도하게도 하지요. 어떤 때에는 예언을 하게 하기도 하고요. 모두 신비 차원의 성령은사이지요. 방언은사는 우리의 기도를 돕는 성령 은사입니다.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을 지배하시면서 기도하게 만들지요. 로마서에 기록되어 있는 이 말 성령이 친히 간구하신다는 의미가 바로 성령은사인 방언으로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기도에 성령이 빠진다면 그것은 속풀이 같고, 넋두리 같이 되어 버립니다. 또 뭐라고요?메아리입니다. 독백이 되어 버립니다. 


7. 일곱 번째 기도 제목:복음 전파의 열정을 가진 심령들이 모인 교회가 되게 하소서! 다른 말로 하면 주님이 가라 하면 어디든지 가고 주님이 오라 하시면 어디든지 오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다 주님 거기 가라 하시는데 거기는 안돼요. 아 주님 지금 하라시는데, 지금은 안돼요 라고 말하면 안됩니다. 우리 교회를 23년전에 이곳에 나와 아내가 개척하려고 했을 때에 어떤 선배 목사님이 적극 반대 하셨습니다. 다른 데가 아니고 보스톤에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말입니다. 보스톤은 영적으로 죽은 동네이고, 교회를 개척하면 무지하게 힘든 동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와 아내가 죽을 각오로 교회를 개척했지요. 죽을 각오를 했더니 죽지 않고 살 수가 있었습니다. 살아야 할 각오로 했다면 지금쯤은 죽고 없을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이순신 장군처럼 사즉생! 죽음을 각오하면 산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순종해야지요. 즉시로 순종해야 하고, 또 죽기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도 빌2;8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려 내셨고, 또 무슨 일을 해 주었습니까? 하늘 보좌에 앉게 하셨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예수께 주었고,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 앞에 꿇게 만들었습니다. 


/사6:8<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 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유다의 강력한 왕인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게 되지요. 환상 속에서 그는 성전에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지요. 하나님을 만나자 그는 자신이 추하고 더러운 죄인임을 깨닫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제단 숯불로 그의 더러운 입술을 지지면서 그의 죄가 사해졌다고 선포했지요. 그리고 하나님이 하늘의 천사들이 모여 있는 하늘의 어전 회의에서 세상에 누구를 보낼꼬 라고 묻자, 이사야가 담대하게 자기를 보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선교에 대하여 자원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드넓은 세상으로 죄사함의 복음을 가지고 가기를 원했습니다. 복음은 우리들만이 누리는 점유물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면서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은혜 베푸심은 나를 통하여 나의 이웃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한 의도로 나를 나의 이웃보다 먼저 구원해 주셨습니다. 구원의 은혜가 흘러 가다가 내게서 멈추어 있어서는 안됩니다. 구원의 은혜는 막힘 없이 현 시대에서부터 다음 세대까지 흘러 가야 합니다. 은혜가 흘러 가지 않고 정체 된다면 그 은혜는 내 안에서 썩어서 냄새가 나게 됩니다. 특히 이사야의 환상에서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있는 교훈은 이사야가 전해야 할 복음은 무엇입니까? 죄사함의 은총이 아니던가요? 자신의 깊고 깊은 내면 세계 속에 수북이 쌓여 있는 더럽고 추한 죄악들이 제단 숯불로 태워지면서 처리 되었지요. 그 동안 자신을 억압하면서 주장하면서 힘들게 만들었던 모든 죄악의 굴레가 모두 풀리었습니다. 참된 영적인 자유를 누리게 되었지요. 죄사함의 기쁨, 영적인 자유! 이사야는 자신이 이런 체험을 해 보니 무지하게 좋거든요. 그래서 아직도 이런 영적으로 풍요로운 삶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죄악에 눌려 살고 있는 이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나를 보내 주소서라고 하나님께 자원하고 있는 것이지요. 


/부활 하신 우리 주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입시다. 요20:21절<~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어디로 보냅니까?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자리로 말입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복음을 전하여서 영혼들을 구원해 내어야 합니다. 영적인 부화장이 교회는 무엇과 같습니까? 교회는 영적인 부화장이 되어야 합니다. 닭걀을 21일 동안 따뜻하게 품어주면 병아리가 나오지요. 교회는 그래야 합니다. 또한 무엇을 해야 합니까? 구원 받은 영혼을 성장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영적인 훈련소가 교회는 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가야 했던 곳은 어디입니까? 로마입니다. 불순종했던 요나가 가야 했던 곳은 어디입니까? 적국인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였습니다. 오늘 내가 가야 할 로마는 어디이고, 내가 가야 할 니느웨는 어디입니까? 정말 기도하고 고민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평신도 전문인 사역자로 삼아서 보내시고 싶어 하는 곳이 어디인가를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이곳 보스톤 땅에 파송 되어 있는 전문인 사역자들입니다. 보스톤에서의 사역이 끝나면 또 다른 곳으로 우리를 하나님이 보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이곳에 정착하여서 보스톤 땅의 파송 받은 자로 살아 갈 수도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 예수의 부활 사건이 선포되는 말씀에는 꼭 선교명령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처럼 명시적으로 들어 있는 데도 있고, 암시적, 함축적으로 들어 있는 곳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죽었다가 살았음이 예수 믿는 공동체인 켐연장에 선포될 때마다 우리는 복음을 들고 세상 끝까지 가야 합니다. 그저 예수 믿고서 형제들과 자매들과 그냥 모여서 친교 나누니 좋다고 모여 있어서는 안됩니다. 예배와 기도와 친교를 통하여 힘을 얻었다면 세상으로 내려 가야 합니다. 이것이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예배와 친교를 위하여 모이는 교회도 중요하지만, 세상으로 흩어지는 교회는 더욱 중요합니다.


/시127:3-5절<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 하리도다>화살통에 가득한 화살은 상징이지요. 하나님께서 각 가정에 주신 자녀들은 전사들이 가지고 있는 화살통에 들어 있는 화살로 비견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가정을 배경으로 두고 있지만, 동시에 이것은 교회에도 적용할 수가 있는 말씀입니다. 화살통, 이것을 전통이라고 부르지요. 전통에 가득 차 있는 화살은 교회에 가득 차 있는 성도들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켐연장 교회에 가득 차 있는 성도들이 화살통에 가득한 화살입니다. 전통에 가득 차 있는 화살은 궁수가 쏘아 보내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화살은 목표물을 향하여 쏘아 보내 져야 화살의 기능을 하는 것이지 그냥 화살통에 담아 놓아 장식품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켐연장 교회는 대형 교회를 만들어서 세상에 자랑하고 과시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에 가득 차 있는 화살을 세상으로 쏘아 보내는 데 있습니다. 화살은 활시위에 얹혀서 목표물을 향하여 발사 되어야 합니다. 발사된 화살 하나 하나의 화살이 우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입니다. 켐연장 교회는 교회에 모인 성도들을 보스톤 거리와 직장과 학교로 보낼 것이고, 더 멀리로는 담을 넘은 가지로서 미국 전역으로 그리고 세계로 보낼 것입니다. 이것이 켐연장 교회가 이곳 보스톤 땅에 세워져 있는 하나님의 의도와 목표입니다. 만약 켐연장 교회가 세상으로 성도를 보내는 일을 그만둔다면 켐연장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온전하게 이루지 못한 것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하여 첫 단계가 무엇입니까? 화살이 발사되기 전에 화살촉을 날카롭게 갈아야 할 필요가 있겠지요. 화살촉이 뭉툭하면 화살이 목표물에 꽂히지 않습니다. 교회는 교회를 찾아 나오는 사람들을 훈련시켜서 예수의 사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수의 제자는 태어 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하여 만들어집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은 바람 같은 성령 사역으로 출생하는 것이지만, 예수의 제자는 부단히 피나는 훈련을 통하여 만들어져 갑니다. 말씀과 기도 훈련을 통하여 화살촉을 뾰족하게 날카롭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무엇 하기 위하여 말입니까? 목표물을 향하여 쏘아 보내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런 작업을 하자면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나와야 합니다. 교회에 찾아 나오는 사람들을 교회는 훈련 시켜서 과녁을 향하여 발사 할 것입니다. 과녁을 향하여 발사된 화살이 바로 평신도 전문인 사역자들을 가리킵니다.


켐연장

2017.03.07 06:42:25

2017년 3월 3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7/030320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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