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70

금요기도회 :2/17/2017 

대표기도:대표기도+선교부 

찬송가:361장(기도하는 이 시간) 


1. 렘4:14절<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 마음을 씻으라! 어디에서부터? 악으로부터! 마음에 악이 가득 차 있다. 왜 그 악에 물든 마음을 씻어야 하는가? 지금 북방으로부터 시련과 역경의 바람이 불어 오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시련과 역경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악에 물들어 있는 마음을 정결하게 깨끗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우리를 돕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제임즈 패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주위에 있는 모든 악과 싸우도록 부름을 받았다. 참 의미 심장한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전쟁을 하는 사람들인데, 그 영적 전쟁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우리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둠의 영들, 에베소서에서는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이라고 표현되어 있지요, 이런 사탄 마귀에 대한 싸움을 우리는 하고 있습니다. 사탄과 어두움의 영이 공중에서 우리에게 다가 와서 싸움을 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는 악을 교두보로 사용해서 우리에게 접근하면서 싸움을 걸어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들 가운데 악이 없다면 어둠의 영이 싸움을 걸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악이라는 수영장 속에 살아 가고 있기 때문에 늘 어두움의 영이 그것을 타고서 우리에게 싸움을 걸어 옵니다. 악은 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어디 있습니까? 우리의 가정에 있고, 또 어디 있어요? 켐연장 교회 안에 있습니다. 더 가까이는 내 마음 속에 있습니다.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대화 속에도 악들이 숨어 있습니다. 좀 멀리 있는 것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회 속에 집단 악이 있지요. 문제는 내 가까이 있는 이 악들의 실체를 볼 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우리의 영안이 열려서 우리의 주위에 있는 악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악으로 인한 피해를 보지 않습니다. 악과의 싸움! 악을 제거하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악을 제거하면 어둠의 영은 준동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악과의 전쟁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다는 진술은 참됩니다. 


/한국에서는 명절이 다가오면 악들이 횡행합니다. 명절 증후군 말입니다. 구정이나 추석이나 이런 명절에 사람들의 범죄 행각이 늘어 나지요. 악 때문에 어둠이 영이 기승을 부르지요. 명절 때의 즐거움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넘치는 악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죽지요. 형제들 간의 싸움, 명절 때에 외로움 때문에 자살하는 독거 노인, 등등 미국에는 이런 명절 증후군이 없습니다. 지난 주일에 내린 눈 때문에 우리 교회에도 어둠의 영들이 크게 성도들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우리의 영안이 열려서 악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악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어둠의 영은 그 악들을 타고 역사합니다. 악에 휘둘리게 되면 교회 안에 주께서 주신 평강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악이 무엇인가? 우리 나라 말에는 배 고픈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배 아픈 것은 참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린고 하니, 먹을 것이 없어서 배 고픈 상태는 참을 수 있어도, 나의 이웃이 차를 사고 집을 사고 논을 사는 것은 참아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웃이 잘 되는 것은 눈 뜨고 볼 수 없다는 말이지요. 이것이 악입니다. 우리들 주위에 이와 유사한 악들이 가정과 교회와 가까운 이웃들 간에 준동한다는 것을 알기 바라고, 그런 악들에 대하여 우리는 승리를 선포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이것이 주의 말씀입니다. 


2. 2/19일 주일이 창립 23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1994년 2월 20일날 이곳에서 켐연장 교회는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뜻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뜻과 의지와 계획으로 켐연장 교회가 시작이 되었지요. 교회가 창립된 이래로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하여서 오늘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비전, 사명이 무엇일까요? 우리 하나님께서 23년 전에 교회를 개척하라고 하시면서 켐연장 교회는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한다면서 주신 것이 비전입니다.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의 비전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 구원하고, 그들을 훈련시켜서 성숙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고, 세상을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하여 그들을 세상으로 파송하는 데 있다. 우리는 이 비전을 이루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명을 실천한다. • 첫 번째 단계로 모든 성도들에게 전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일어나도록 하며, • 두 번째로 개개인의 삶과 직업과 학문의 영역 속에서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비전과 사명을 깨닫게 하는 일을 할 것이며, • 세 번째로 철저한 신앙 훈련을 통하여 평신도 지도자로 준비되게 하여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 회사, 연구소, 학교, 사업장 )으로 보내며 거기서 하나님 나라 확장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골1:28)---목회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선교 


/우리들의 기도 제목? 8중의 기도 제목! 왜 이 8가지 기도 제목이 중요한가? 우리 주님이 시작하신 천국 운동의 핵심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 즉 주기도입니다. 주기도가 우리 주님의 천국 운동의 요약입니다: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해 준 것처럼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고 하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정말로 짧은 기도입니다. 이 기도 속에 우리 주님의 사역의 핵심이 녹아 있지요. 우리 켐연장 교회의 사역의 핵심도 우리의 8중의 기도 제목 속에 녹아 있습니다. 


첫 번째가 무엇이지요? 가난한 심령들이 모인 교회가 되게 하소서! 마5:3절-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돈,재산, 물질이 없는 가난은 무엇인지 경험해 보았기에 알겠지만, 심령이 가난한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부자라는 개념을 돈은 많이 가지고 있지 않지만 마음에 행복과 기쁨을 느끼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여기서의 심령의 가난이라는 말은 영적으로 내가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영적으로 거지! 그렇게 심령에 가진 것이 없기에 하늘 보화가 필요하고, 예수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내 마음이 텅텅 비어 있고, 허전 하기 때문에 예수가 절실하게 필요하고, 예수께서 내게 있기 때문에 천국을 소유할 수가 있게 되지요. 세상 사람들은 세상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영적으로 거지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에 있던 7교회 중에서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랬었지요. 우리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너희들은 가난하고 눈멀었고 벌거벗었다고 책망했지만, 자신들은 부자이고 부요하여서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랑했었지요. 


/가난한 심령에는 영적인 갈급함이 있습니다. 영적인 목마름! 생명수 샘물을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다. 목이 마르면 물을 찾듯이 영적인 목마름을 느끼면 생명수 샘물을 가지고 있는 예수께로 나아 가게 되어 있지요. 요4:14<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두 번째가 무엇이나요? 주님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주님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심령들이 모인 교회가 되게 하소서! 이 말은 쉬운 말이나 이런 행동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큰 믿음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기도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막을 인생이 없고 주님이 원치 않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인생이 없다>는 믿음의 배경에서 나오는 기도입니다. 이런 믿음을 무슨 믿음이라고 부르던가요? 절대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절대 믿음은 초대 교회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현대 교회에도 이런 절대 믿음이 있던가? 절대 믿음의 내용 즉 핵심은 사라졌고, 절대 믿음의 껍데기만 남아 있습니다. 현대 교회는 주님이 없어도 교회 일을 잘 합니다. 오히려 주님이 있으면 교회 일 하는데 거추장스럽다고 말합니다. 주님이 자기 일에 간섭한다면서 말입니다. 돈과 man power를 가지고 못할 일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돈과 사람으로 행하는 교회 일은 화려한 결과는 만들었지만, 영혼이 구원되고 영혼이 성장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초대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절대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구약 족장인 아브라함에게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었고, 그의 아내 사라가 90세가 되었을 때에 이삭을 낳지요. 이삭을 낳을 때에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을 무슨 믿음이라고요? 절대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비록 100세가 되어서 아이를 낳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일을 가능케 하시리라는 믿음이 절대 믿음입니다. 사라의 믿음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 때문에 이삭을 얻게 되었습니다. 89세가 된 사라가 내년에 아기를 낳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을 듣고서 사라는 피식거리면서 웃었습니다. 불가능하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사라에게 정녕 내년에 사라에게 아이가 있을 것을 말씀하셨지요. 사라의 믿음 때문에 아기를 얻은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 때문에 이삭을 얻었지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을 거쳐서 약속의 땅으로 이주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이 땅과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아브라함 더러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했지요. 이 때의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였지요. 아브라함의 나이 75세, 사라의 나이 65세, 그러나 이들에게는 아직 후손이 없었습니다. 이런 지경에 하나님이 약속의 땅으로 가면 후손을 주겠다는 약속을 했지요. 아브라함이 순종하자 당장 주셨나요? 아니지요. 25년을 기다리게 만들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바라는 믿음은 깊어져만 갔습니다. 롬4:19-21절<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확신하였다는 말은 신뢰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믿음? 절대 믿음! 75세 하고, 100세 하고 둘 중에 어느 나이가 아기를 가질 확률이 높나요? 이렇게 물었더니 둘 다다 0에 가깝다고 대답합디다. 그런 물음이 아니고 한 살이라도 더 적을 때가 애기를 가질 찬스가 높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물었습니다. 75세 때 약속을 주셨다면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어주어야 하는데, 세월이 25년이나 흘렀다면 애기를 가질 확률은 그야 말로 0라고 보아야겠지요. 상황은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 하나님이 애기를 주시리라는 믿음은 사그라지지 않고 더욱 강렬하게 타오르는 것을 말할 때에 신뢰한다라는 말을 씁니다. 그냥 단순하게 믿는다는 말은 아멘이라고 부르고 이렇게 훈련되어서 가지게 되는 절대 믿음을 히브리 말로 바타흐라는 동사를 씁니다. 환경과 상황을 보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상황이 불가능하게 보여도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믿음이 절대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몇 년 걸렸나요? 25년 걸렸습니다. 당신은 이런 절대 믿음에 대하여 묵상해 보았고, 나도 그런 절대 믿음을 가지면 좋겠다는 소원을 가져 보았는가? 아멘의 신앙에서 신앙이 자라나면 절대 신앙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오늘 금요기도회 한 밤을 부르짖으면서 이 절대 믿음이 내게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다니엘의 세 친구도 그런 절대 믿음을 가졌지요. 두라 평지에 세워 둔 금신상에게 절을 하지 않은 죄 때문에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체포 되어서 느부갓네살 임금 앞으로 불려 나갔습니다. 느브갓네살은 이 세 친구를 죽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젊은이들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느브갓네살은 이 세 친구들을 살려 주고 싶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금 신상에게 절을 하면 용서해 주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 세 친구들은 금 신상에게 절하는 것은 두 번째 계명에 어긋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계명이 무엇이던가요? 우상을 만들지 말고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입니다. 그 세 친구들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단3:17-18절<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 하나님은 우리를 왕의 손에서 능히 건져 내실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일을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풀무불 가운데서 불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 아닙니까? 반드시 풀무불 가운데서 자신들의 목숨을 살린다는 보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능력이 있지만 그 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상 앞에 엎드려 절하지 않겠다는 신앙 고백이지요. 이런 믿음을 절대 믿음이라고 말하지요. 그들의 이런 믿음을 따라서 그들은 풀무불 가운데 던져 졌지만 불타 죽지 않고 살아 났습니다. 


/막9:23절<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 변화산 체험 후에 산 아래에는 벙어리 귀신 들린 아이의 아비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그 아이에게 들려 있던 귀신을 쫓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산에서 내려 오신 후에 주님이 그 아이를 고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그 아이에게 들려 있는 귀신을 좇아 내심으로써 그 아이를 치유하셨지요.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신앙 고백! 우리 주님도 이런 절대 믿음 속에서 공생애 3년간의 세월을 사셨다. 우리 모두도 이런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참 기쁘게 행복한 성도의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절대 믿음이 있다면 매일 매일 이렇게 헐떡거리면서 아둥바둥 거리면서 살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구름에 달 가듯이 한 세상 그렇게 살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게 살았지요. 빌4: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비천에 처하여 살아 갈 수도 있고, 풍부에 처하여 살아 갈 수도 있다. 배고픔과 궁핍과 풍부에서도 믿음 흔들리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다. 어떤 극한 상황 속에서도 넉넉하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다면 말입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쏟아 부어 주십니다. 그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능력을 얻습니다. 그 능력 아래에서 우리는 넉넉히 승리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들이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분이십니다(엡3:20절). 그 넉넉함은 우리 안에 성령의 능력이 얼마큼 역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도들은 이런 절대 믿음을 가지고 사도행전을 썼습니다. 사도 행전은28장으로 끝납니다. 사도행전은 뒷 장이 열려져 있는 책입니다. 29장을 오늘 우리들이 써 나가야 하는 책입니다. 우리들에게 임하신 성령님이 우리들을 도구로 종으로 사용해서 써 나가야 하는 책이 바로 사도행전입니다. 열려져 있는 백지 위에 행전 29장을 써 내려 가야 합니다. 사도행전 28장 마지막 절들, 30-31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요.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 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 없이 가르치더라> 이 두 구절을 직역을 하면 이렇습니다:바울이 만 2년을 자기 셋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을 모두 영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 없이 가르치면서~. 전하면서, 가르치면서는 분사형으로 되어 있는데, 모두 꼴이 현재형입니다. 현재 분사는 계속적으로 행동이 반복되고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행전 맨 마지막 장, 맨 마지막 구절이 이와 같이 현재 분사형으로 되어 있어서 그 행동이 지금도 계속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후대의 성도들이 사도들의 사역을 계승해서 말씀 전파와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9장을 써 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도 행전은 성령의 행전이라는 말입니다. 주 예수께서 종말의 때에 하늘에서 보내 주시는 종말의 영인 성령을 통하여, 우리들은 사도행전 29장을 써 내려 가야 합니다. 성령이 없이는 사도 행전 29장을 쓸 수 없습니다. 다시금 켐연장 교회 위에 성령의 능력이 폭포수처럼 성령이 부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절대 믿음이 만들어 지고 그 절대 믿음을 통하여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들의 입에서부터 나오는 예수의 주되심을 증언하기 위하여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대에도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켐연장

2017.02.21 00:12:58

2월 17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7/021720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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