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65

금요기도회 :1/13/2017 

대표기도:선교부 

찬송가: 324장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 소생케 하시고,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 돌이키게 하소서! 켐연장 교회 공동체 전체가 영성 회복이 되고, 우리 교회 뿐만 아니라 보스톤 땅에 있는 모든 교회들의 영성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이곳 보스톤은 청교도 정신이 뿌리를 내렸던 고장입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이곳도 청교도 정신과 청교도들의 영성은 사라지고 없어졌습니다. 점점 더 꺼져 가고 있는 성령의 불길을 당겨서 그 성령 불이 다시금 활활 타오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 믿음의 조상들의 깨끗하고 순수할 뿐 아니라 열정적인 신앙을 우리에게 다시 살아 나게 할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체험하는 일,하나님을 느끼는 바로 그 일이 일어나면 영성을 회복하라고 소리 높이 외치지 않아도 곧 바로 영성 회복이 켐연장 공동체 안에 나타납니다. 당신은 예배 드리는 이 현장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이 경험만 일어난다면 우리의 미지근한 믿음은 열정적인 믿음으로 바뀝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성령 체험으로 하나님을 만나십시요. 한번의 성령 충만이 영원까지 지속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은 반복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가 주의 일을 하는 동안 소멸되어 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시금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집회에 반복적으로 모이는 동안 언제나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기도 제목은 ‘성령의 충만하게 하옵소서!’입니다. 


/2017년 올 한 해는 지금 내 앞에 전인 미답의 밀림지대가 펼쳐져 있습니다. 이 밀림 지대에 어떻게 내가 길을 만들어서 앞으로 나아갈까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내 지식과 내 경험과 내 힘을 의지하여서 밀림 지대에 길을 열면서 앞으로 나가야 하는가? 이렇게 간다면 대단히 힘이 많이 들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우리 주님이 내 앞길을 열어 주시면 나는 그 길을 따라 가면 쉽지 않겠습니까? 내 앞에서 내 인생길을 위하여 밀림 지대에 길을 열고 계시는 주님이 내게는 어떤 존재일까요? 한 마디로 말한다면 예수는 나의 인생길을 개척해 주시는 <개척자>이십니다. 내가 하는 일의 전부는 우리 주님이 나를 위하여 열어 주신 길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척 쉽고 안전하겠지요. 


/성경에는 우리 주님 예수께서 <개척자>라는 사실을 사도행전과 히브리서에서 몇 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개척자>라는 그릭말은 <알케콘>입니다. 이 단어는 합성된 조어인데, 성경외 문헌에는 나오지 않는 단어입니다. 알케와 아고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알케는 처음을 의미하고 아고는 인도한다는 말입니다. 무리들 앞에 서서 맨 처음에 서서 무리를 인도하는 사람을 뭐라고 말하나요? <개척자> 혹은 <저자> 등등의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도 행전 5:30-31절<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임금이라는 말이 알케곤이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이 예수님을 개척자로 삼았다는 말입니다. 어떤 개척자입니까? 구약 시대를 닫고, 새 시대인 신약 시대를 여신 분이십니다. 그는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우리의 구원의 개척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누리고 있는 구원은 지금 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구원입니다. 또 그는 현재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개척자이십니다. 놀라운 기적도 일어나는 믿음을 우리 주님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또 그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영원한 생명의 개척자이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유한한 인생들에게 영원히 사는 생명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생명의 개척자이시고, 예수는 우리의 믿음의 개척자이시고, 에수는 우리의 구원의 개척자이십니다. 


/2017년도 우리는 전인 미답의 17년도를 열었습니다.우리 앞에 광활한 밀림지대가 펼쳐져 있습니다. 17년도 한 해 동안 우리들은 밀림을 뚫고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우리 주님이 밀림을 헤치고 날 위해 길을 열고 있습니다. 믿습니까? 앞서 가시고 있는 우리 주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 보십시요. 우리 주님을 의지하고 우리 주님을 신뢰하고 우리 주님이 만드신 길을 따라 갑시다. 주님을 따라 가는 것이 예수의 제자가 되는 길입니다. 한번 우리 주님께 17년도의 당신의 인생을 맡겨 보고 싶지 않습니까? 시37:4-6절<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잠 16:3절<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지난 주 금요일에는 2017년도 교회 표어와 관련하여서 우리 공동체의 <신앙의 정절과 절개>를 지켜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정절은 변치 않는 것이지요. 온 세상에 눈에 내려서 새 하얗지만, 소나무는 늘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다스리던 시절에 온 이스라엘 사회가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바알과 아세라 섬기기를 거부한 여호와의 선지자 7천명을 하나님이 남기셨다고 하셨지요. 그 칠천명이 신앙의 정절을 지킨 무리들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런 믿음의 정절을 지켜야 합니다. 신앙의 절개가 무엇이라고요?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신앙을 가리킵니다. 대나무는 이런 절개의 상징으로 쓰이지요. 대나무는 칼을 세로로 대면 쫙쫙 쪼개 지지만, 가로로 자르려고 하면 잘 잘라 지지 않습니다. 절개 있는 신앙은 세상이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다가 올 때에 절개 있는 믿음으로 대항합니다. 세상 유혹에 절개 있는 믿음을 가진 이들은 신앙이 유혹에 안 꺾입니다. 소나무의 정절과 대나무의 절개를 갖춘 신앙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2017년도 교회 표어와 관련하여서 공동체의 신앙의 열정 회복 못지 않게 우리들 가정의 회복도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세상이 멸망 당하지 않고 보존하게 하기 위하여 세상에 두신 두 개의 기관이 있습니다. 하나가 교회이고 다른 하나가 가정입니다. 교회를 축소하면 가정이 되고, 가정을 넓히면 교회가 됩니다. 이 두 기관이 세상을 바치고 있는 기둥입니다. 어떤 기둥이라도 하나가 무너지면 그 사회는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자 그러면 가정이 왜 회복되어야 하는가? 말라기 시대의 가정은 어떤 상태였을까요? 말라기 2장에는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신을 섬기는 딸을 아내로 며느리로 맞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정실 부인에게 거짓을 행하고 부인을 학대하기도 했습니다. 말2:11절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신의 딸과 결혼을 했다>고 책망했고, 또 14-16절까지에는 자기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고, 아내를 학대했습니다. 자기의 아내 외에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주면서 아내를 버리기 까지 했다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가정이 무너지니, 그 가정의 자녀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 가정의 아이들에게 무엇이 쌓이겠습니까? 상처가 쌓이지 않겠습니까? 부모에 대한 미음도 들 것이고, 이런 미움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낳는 것 아니겠습니까? 육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기는 한데, 아버지의 역할과 어머니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정이라면 그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불행한 아이입니다. 육신의 아버지를 통하여, 육신의 어머니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것을 깨닫고 믿어 지게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건강한 가정이 자존감이 높은 건강한 자녀를 만든다는 점을 잊지 맙시다. 자녀를 가르치기 전에 부부가 먼저 건강한 부부가 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상처가 되물림 되지 않지요.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의 가정이 온전하게 보존하기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2:15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경건한 자손들을 얻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울타리와 같습니다. 아이들은 그 울타리 안에 있을 때에 안전합니다. 그 울타리가 걷히어져 버리면 아이들은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어떤 인도의 선교사가 어떤 인도 청년을 붙들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인도 청년이 내가 그 아버지를 죽여 버리겠다는 분노의 말을 쏟아 내더라는 말입니다.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상처를 받은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현대에는 아버지는 있으나 아버지 없는 가정이 많습니다. 구약에는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을 고아라고 불렀습니다. 어머니가 없는 아이가 고아가 아니라 아버지가 없는 아이를 고아라고 구약은 정의합니다.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 특히 아버지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어떤 처녀가 부모의 반대를 무릎 쓰고 결혼했습니다. 그 결혼은 반항심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친정어머니가 그 결혼을 반대했던 것입니다. 그 처녀가 결혼을 하고 딸들을 낳았습니다. 친정 어머니에게서 물려 받은 상처 때문에 그녀의 딸들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간섭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에 안드는 결혼을 하는 딸들을 축복하지 못하고 너는 불행해 질 것이다라는 저주를 퍼부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렇게 상처가 대물림 되지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그들은 자기의 아이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징검다리 돌이고 아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창문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만약 그들이 징검다리 돌 역할을 못하면 아이들이 하나님께로 나갈 수가 없고, 만약 그들이 창문의 역할을 못하면 아이들이 하나님을 볼 수가 없게 되지요.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인 아버지인데 육신의 부모가 자기의 자녀들에게 하늘 아버지를 말과 행실로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에 이삭을 드렸습니다. 이삭을 묶어서 제단에 눞혔습니다. 칼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삭은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죽이려는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죽기까지 순종했습니다. 그 영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절대 순종했기 때문에 그 아들 이삭이 그 아버지에게 절대 순종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가정에서만 일어나는 특수한 일이 아니라 오늘 모든 예수 믿는 믿음의 가정에도 일어 날 수 있는 일입니다. 부모인 우리들이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의 아들과 딸들이 그것을 보고 자라났기에 부모의 말에 순종하게 됩니다. 만약에 우리의 아이들이 삐딱한 길로 간다면 아이들을 닭달할 일이 아니라 부모인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순종하는 삶을 못 살았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부모의 영성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왜 이처럼 건강한 가정이 중요한가? 건강한 가정이 자존감이 높은 건강한 자녀를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부모의 삶의 스타일이 그대로 자녀에게 반복되어진다. 그 아이들을 보면 그의 부모가 보이게 됩니다.올해의 표어가 무엇이라고요?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 소생시키시고,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 돌이키게 하소서! 


/오늘날 현대 교회에는 영적 고아가 많다. 왜 영적 고아가 많은가? 스승은 많은데 영적인 아비와 영적인 어미의 역할을 하는 분들이 적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는 육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기 자식들에게 영적인 아비와 영적인 어미가 반드시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아이들은 영적인 고아가 됩니다. 교회 교육은 1주일에 한 시간 밖에 안됩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가정에서 신앙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은 육신의 부모의 책무입니다. 부지런히 아이들에게 가정에서 신앙 교육을 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가정에서 아이들을 토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유대의 정신이 2천년이 지난 지금도 꺾이지 않고 맥맥히 흐르고 있는 것 아닙니까? 신6:6-7절<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유대인들은 자녀들에게 신앙 교육을 부지런히 부모들이 시켰습니다. 물론 회당 교육도 있었지만, 그것은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유대의 정신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가정에서 신앙 교육을 시킨 부모들의 공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우리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들은 영적인 아비와 영적인 어미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영적인 지도자들이 누구인가? 교역자들과 장로들이 아닌가? 고전 4:15절<그리스도 안에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현대 교회 안에 영적인 고아가 많은 이유가 무엇이라고요? 복음을 가르치는 스승은 많지만 영적인 아버지와 영적인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 그리스도의 정신이 세대에서 세대로 끊이지 않고 이어져 내려 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 안에 영적인 돌봄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누가 이런 영적인 돌봄을 이행해야 하는가? 장로들과 권사들이 해야 하지 않겠는가? 영적인 리더들이 영적인 아비의 심정을 가지고 진리로 다음 세대를 양육해야 합니다. 지식 전달은 스승이 하지만, 양육은 부모가 합니다. 갈 4:19절<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 하는 수고를 하노니> 우리 모두 영적인 아비와 영적인 어미의 심장을 가지고 다음 세대를 키워내기를 바랍니다. 올해의 우리 교회의 표어가 신실하게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 지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 소생시키시고,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 돌이키게 하소서!


켐연장

2017.01.17 00:37:17

2017년 1월 13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7/011320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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