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203 

일시:12/1/2017 

대표기도: 

찬송가:324장-예수 나를 오라 하네 


'아빠는 왜?'라는 제목으로 수년 전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한 어린이의 시: "엄마가 있어서 좋다. 나를 예뻐해 줘서. 냉장고가 있어서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줘서. 강아지가 있어서 좋다. 나랑 놀아줘서. 그런데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냉장고나 강아지보다 못한 아빠의 존재감. 여기에 대하여 엄마들은 마음 아파하는데, 아빠들이 슬퍼하는가? 아이의 이 말에 대하여 공감한다면 그래도 나은 아빠다. 이런 슬픔도 못 느끼는 아빠가 많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런 아빠들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돈을 벌어서 너의 먹을 것을 사다 주고, 너의 입을 것 사다 주고 너의 장난감도 사다 주고 했지 않았느냐? 아이는 돈 버는 기계, 그런 기능을 잘 하는 아빠 말고, 아이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아빠를 원하지요. 당신은 아이들의 눈에는 어떤 아빠인가? 100점인 아빠는 밖에서 돈도 잘 벌어 오고 아이와 관계를 잘 갖는 아빠일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에 사역, 즉 일도 중요하지만, 또한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관계일 것입니다. 누구와의 관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이지요. 하나님은 아버지 우리는 아들과 딸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아들과 딸로 삼으시는 것은 우리들을 노예처럼 일 부려 먹으려고 부른 것 아닙니다. 부단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속에서 사역이 나와야 건강한 사역입니다.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가지게 되면 사역의 열매는 저절로 맺혀 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 문제를 좀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신앙 생활하시길 바랍니다. 


송영(Doxology):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대개는 어떤 의미인가? 왜냐하면(그릭:호티)이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6가지 청원을 하는가? 왜냐하면…때문입니다.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고, 권세? 번역상 권능(디나미스)으로 번역함이 좋겠고, 영광이 당신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왜 괄호로 둘러쳐져 있는가? 후대 사본의 첨가이기 때문이다. 권위가 있는 고대 사본인 시내산(알렙) 사본, 바티칸(B)사본, 베자(D) 사본에는 송영이 없다, 후대의 소문자 사본이 송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주기도문의 결론은 주기도문이 예배에서 의전적으로 발전된 것이라고 본다. 송영 부분은 초대교회 예배에서 집례자에 의하여 암송이 되었고 회중은 아멘으로 화답하였다고 합니다. 


주기도문의 이것저것: 

주기도문의 의의:주기도문는 예수 운동(하나님의 나라 운동)의 요약이며 제자들의 삶의 중심이다. 주기도문은 오늘의 교회들이나 선교단체들이 가지고 있는 vision statement(사명 선언문)과 동일하다. 우리 교회의 사명 선언문이 무엇인가? ‘켐연장 교회는 잃어 버린 영혼들을 찾아 구원하고 그들을 훈련시켜서 성숙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고 세상을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하여 그들을 세상으로 파송하는 것이다’ 주기도문은 예수 운동(예수의 공동체)이 지향하는 목표를 나타내 준다. 세례 요한이 자기의 추종자들에게 기도문을 가르쳤습니다. 그 기도문은 자신들의 정체성(요한의 movement의 핵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에세네파(쿰란 공동체)에 소속되었다. 예수의 초기 제자들(사도)중 몇몇이 요한의 제자들이었다. 따라서 예수의 제자들이 요한과는 다른 예수 운동의 정체성 확립이 필요했기 때문에 기도를 예수께 요청했었다(눅11:1). 

눅11:1절<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당시 유대인의 기도문: 

카디쉬 기도와 18번 축복기도(테필라 쉬모네 에스레) 유대교도들은 카디쉬 기도문과 18번 축복기도문을 가지고 있었다. 카디쉬는 짧막한 기도인데 유대인들이 유대회당에서 설교 끝에 함께 낭송한 기도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주기도문과 18번의 축복기도가 함께 드려지다가 교회가 유대교와 완전 분리되던(70년 유대 전쟁) 때를 기점으로 교회에서는 주기도문만 사용하게 된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유대 공동체에 소속 되어 있어서 안식일도 지키고, 안식 후 첫날 즉 주일도 지켰습니다. 그러다가 70년 경에 로마에 의하여 유다가 완전히 정복 당하자 교회가 완전하게 유대교로부터 독립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안식일, 토요일날 모이지 않고, 주일날만 모여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지요. 


주기도문이 마태복음 6:9-13과 누가복음 11:2-4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가 누가보다 깁니다. 주기도문은 모두 간구로만 이루어져 있다. 기도의 백미는 무엇일까? 간구가 빠진 기도도 기도인가? 간구가 빠진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간구(기도)와 관련되어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 시65:2<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2. 행26:29절<…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누가 했던 말입니까? 아그립바 유대왕과 유대 총독 베스도 앞에서 바울이 했던 말입니다. 바울의 상태는 미결수이긴 하지만 옥에 갇힌 죄수의 모습입니다. 한낮 죄수가 왕이나 총독 앞에서 당당하게 너희도 나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불신자의 입장에서 보면 웃기는 소리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바울이 예수 믿는 믿음이 얼마나 당당했으면 이런 말씀을 왕과 총독 앞에서 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바울처럼 복음을 전하다가 투옥되는 경험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럴지라도 세상을 향하여 우리가 외쳐야 하는 메시지는 ‘너희도 내가 예수 믿듯이 예수 믿으라’가 되어야 합니다. 왜 예수 믿어야 하는 지에 대하여 불신자들에게 예수 믿어 보니 이런 점이 좋더라는 공감을 일으켜야 한다. 예수 믿기 이전에는 내 삶이 공허했었는데 예수 믿고 나니 유익한 점이 무엇인가를 증언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되겠습니까 라는 욕망과 도전을 주어야 한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간수는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라는 질문을 했다. 이런 질문을 이끌어 내는 계기가 있었다. 그 계기를 하나님이 만드셨다. 행1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 예수와 니고데모:유대교도 이지만 심령에 공허함과 갈증을 견디지 못해서 우리 주님 예수께 밤에 찾아 나왔지요. 찾아 나온 이유, 동기는 다름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행하는 기적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 분이라면 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지요. 영생을 찾아 헤매는 구도자라면 성령으로 말미암은 기적들에 대하여 열린 마음을 가지고 다가 오겠지요. 그런데 우리의 삶에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기에 문제이지요. 


주 예수와 부자청년:영생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서 우리 주님에게 찾아 나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 지를 말입니다. 목이 말라서 물가로 나왔지만, 그 물 마시기를 거부하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물을 마실 것인가, 안 마실 것인가는 바로 그 사람의 의지와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의 삶에 매력을 느끼면서 나에게 그 비결을 물어 올 때에 ‘너희도 예수를 믿으라!’라고 권면할 수 있어야 한다. 영접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그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의 삶은 삶의 만족과 기쁨과 열정과 평강 등이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지금 예수 믿고 있는 이들의 삶이 어떤가? 심령이 비어 있어서 영적 만족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세상을 향하여 예수를 믿으라는 외침이 나올까? 물이 컵에 가득 차 있을 때에 자연히 넘치게 됩니다. 불신 세계를 향하여 너희도 예수를 믿으라고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외쳐야 한다. 그리기 위해서는 먼저 남은 자들이 충만하게 가득 채워지는 일이 선행 되어야 한다. 


벧전3:15절<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세상 사람들, 특히 자신의 주위에 있는 친구와 친지와 이웃이 구원의 길에 대하여 물어 올 때에 대답할 말이 있는가? 내가 영생의 체험이 있고, 죄사함의 체험이 있고, 구원의 기쁨이 있다면 그것을 말로 풀어서 이야기 해 주면 됩니다. 우리는 변증가가 아니라 증인들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어 보니 이런 점이 좋더라 라는 것은 변증이 아니라 증거입니다. 변증을 하기 위해서는 신학 공부를 따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증인은 신학공부가 없어도 할 수가 있는 일이지요. 


골4:3절<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전도할 문이 열려야 전도할 수 있습니다. 보스톤 땅, 이 곳 자유로운 땅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의 문이 꽁꽁 닫혀 있어서 복음이 마음에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되어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복음을 우리가 담대히 전할 수 있게끔 만들어 달라고 기도하고 일어나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곳곳마다 상한 영혼들의 탄식 소리를 우리는 들을 귀가 있어야 겠습니다. 길 잃은 양들의 울음 소리를 듣고 상한 목자의 심령이 되어서 그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야 겠습니다. 또한 잃은 동전도 우리들 주위에 많습니다. 잃은 동전은 잃은 양처럼 음메 소리도 안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눈에는 그런 잃은 동전 같은 영혼들을 알아 보고 그들에게 접근하여서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겠습니다.


켐연장

2017.12.07 15:38:30

2017년 12월 1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7/120120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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