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199

일시:11/3/2017 

선교기도: 

찬송가: 413장(내 평생에 가는 길) 


1. 할렐루야 나잇/할로윈 나잇에 대하여 할로윈 나이트를 상징하는 것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Jack-o’Lantern일 것입니다. 커다란 붉은 호박에 속을 오려서 내버리고 도깨비 모양의 얼굴을 칼로 새겨 놓았지요. 그리고 그 안에 촛불을 넣어 둡니다. 그것을 잭오랜턴이라고 부르지요. 그것을 집 현관 앞에 놓아 둡니다. 잭 오렌턴은 망령 즉 망자의 영, 죽은 자의 영의 갈 길을 밝혀 주는 일을 하지요. 할로윈 나잇의 주제는 무어니 무어니 해도 trick or treat!입니다. 집을 방문하는 망자의 영, 즉 귀신을 트릭을 써서 좇아 보낼 것인가 아니면 환대해서 보낼 것인가라는 말이지요. 


이 할로윈 축제는 영국의 아일랜트의 켈트족이 주전 500년경부터 시작했습니다. 1840년경 아일랜드에 큰 흉년이 들자 아이리쉬들이 이곳 메사추세츠에 대거 이민을 오게 되었고, 이곳 보스톤에서 할로윈 축제가 성하게 되어 있지요. 요즈음은 한국에서 할로윈 축제로 인하여 난리법석을 부린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 할로윈 축제가 이교적인 축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배격하기 위하여 교회적으로 지난 화요일 날 할렐루야 축제를 벌렸습니다. 할렐루야 축제가 이제는 교회적으로 잘 정착이 되었습니다. 화요일 날 저도 솜사탕을 맛 보았습니다. 어릴 때의 향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고하신 선생님들과 부모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적어도 우리가 왜 이런 할로웬 축제에 우리의 아이들을 참가시켜서는 안 되는가 하는 이유를 분명히 해 두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엄마 나는 왜 귀신 복장을 하면서 tirck or treat를 친구들 하고 해서는 안 되는가라고 묻는다면 대답을 아이들에게 명쾌하게 설명해 줄 수 있어야 겠습니다. 아이들이 귀신 복장을 하고 무리를 지어서 집집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지요. 재미로 말입니다. 부모님들은 무조건 아이들에게 안 된다고 해서는 안 되고 아이들이 납득할 수 있게끔 설명을 해 주시길 바랍니다. 


할로윈 축제에 아이들을 참석 시켜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유는 귀신에 대한 이해가 성경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귀신론은 문명화 된 사회나 고대 사회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떤 사회나 있어 왔습니다. 신화나 전설 같은 것에 귀신이나 요정이나 유령은 자주 등장하지요. 


할로윈이 주장하는 귀신론을 보면 사람이 죽으면 곧장 내세로 가지 않고 1년 동안 다른 사람의 몸이나 동물의 몸에 거하다가 내세로 떠난다고 주장합니다. 10/31일이 여름이 끝나는 날인데, 그러면 새해는 11/1일이 되겠지요, 10/31일 이 날에 죽은 자의 영혼이 자가기 1년간 머물 육체를 선택하는 날로 여겼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성경은 명백하게 이야기 합니다.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은 죽음과 동시에 곧 바로 내세로 옮겨집니다. 자신의 육체는 땅에 나두고 자신의 영혼만이 내세로 곧 바로 들어갑니다. 또한 죽은 사람의 영이 땅에 살아 있는 자의 몸 속으로 들어 갈 수 없습니다. 귀신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육체 속으로 들어가지만 죽은 자의 영은 살아 있는 사람의 몸 속에 들어 갈 수 없음을 성경은 가르칩니다. 간혹 보면 강신술을 하는 분들은 자신들의 몸 속에 죽은 자의 영이 들어와서 접신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육체 속에 들어온 영들은 죽은 자의 영들이 아니라 귀신들이 그 죽은 자의 껍대기를 덮어 쓰고서 강신술사의 몸에 들어 와 있을 뿐입니다. 


할로윈이 주장하는 trick or treat도 얼토당토 않는 소리입니다. 귀신이 자기의 집을 방문했을 때에 그 귀신을 퇴치하기 위한 수단이 trick, 즉 계략, 즉 귀신을 속여서 좇아 보낸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귀신을 환대해서 좇아 보낸다는 말입니다. 환대해야 하기 때문에 귀신 복장을 하고 문 앞에 와 있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는 일을 하지요. Trick or treat는 말도 안 되는 인간의 무지의 산물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아무리 탁월하다고 할지라도 귀신들의 지혜와 힘과 능력에 결코 미치지를 못합니다. 땅 위에 살아 있는 자들이 귀신을 속이거나 능가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귀신들도 막강한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트릭을 써서 귀신을 속일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마귀는 요8:44절에 의할 것 같으면,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 세상의 모든 거짓의 출처가 어디라고요? 마귀라는 말입니다. 인간이 귀신들을 속일 수가 없습니다. 어둠의 영은 인간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다! 인간이 귀신을 속인다는 일은 귀신 입자에서 보면 가소로운 일입니다. 


또한 귀신들 을 환대해서 물러나게 한다는 것도 지극히 인간적인 발상이고 생각입니다. 귀신들은 우리에게서 좋은 것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존재들입니다. 귀신들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접근했는데 어찌 환대한다고 우리를 떠날 수 있겠는가? 우리의 것을 다 빼앗고 파멸시킨 다음에야 떠나지요. 


죽은 자의 영, 죽은 자의 혼, 망자의 영이라고 부르지요. 죽은 자의 영이 우리 살아 있는 자의 육체 안으로 들어 올 수 없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할로윈 사상은 거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명백하게 그 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귀신들, 즉 악영들이지요, 어둠의 영들, 사탄마귀의 하부 구조들이지요, 이 놈들은 우리의 육체 속으로 자유롭게 들어 올 수 있습니다. 우리 몸 안으로 들어 와서 우리의 육체에 질병을 일으키기도 하고, 우리의 정신 세계를 황폐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많은 분들이 이런 귀신의 역사를 죽은 자의 영이 씌여서 그렇다고 말들하지요. 그러나 죽은 자의 영이 아니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이용하고서 그 사람 속에 들어온 악령들입니다. 이런 귀신들이 수 없이 많이 인간들이 살고 있는 세계 속에 들어 와 있습니다.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조건만 맞으면 들어와서 우리의 몸과 우리의 정신세계를 황폐하게 만들어 버리지요. 어떤 때는 우리의 지성을 이용해서, 어떤 때에는 우리의 감정을 이용해서 우리를 속이고 우리 몸 속으로 들어 오지요. 


어떻게 하면 이런 어둠의 영을 물리치는가? 트릭을 써서, 아니지요. 환대를 함으로써, 아니지요. 그렇다면 무엇으로 어둠의 영을 추방할 수가 있는가? 보다 힘센 어둠의 영이 보다 약한 어둠의 영을 몰아 낼 수 있는가? 없다고 우리 주님은 말씀했습니다. 마12:26절에는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 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사탄마귀와 하부 세력인 어둠의 영들을 좇아 보내는 데는 예수의 이름 밖에는 없습니다. 어둠의 영들, 귀신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굴복됩니다. 눅10:17절<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어둠의 영, 귀신들이 탁월한 인생들보다도 훨씬 탁월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 예수님은 어떤 어둠의 영들보다 더 강하십니다. 예수께서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분이십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항복하더이다. 항복하는 이유? 우리들 뒤에 떡 버티고 계시는 주 예수를 보기 때문입니다. 


(예화)다섯 살 짜리가 국민하교 5학년 형/골목대장에게 언제나 위협을 당하고 얻어 맞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와 같이 골목길을 손잡고 가게 되었다. 마침 그 골목길에 골목대장이 나와 있었다. 다섯 살 먹은 꼬맹이가 골목대장에게 쪼르르 뛰어가서 정강이를 한데 걷어 찼습니다. 골목대장이 눈을 휘 번득 거리면서 째려 보았지만 꼬맹이를 어찌하지 못했습니다. 왜냐고요? 뒤에 있는 그의 아빠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화)나의 경험! 우리들도 귀신을 대면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려워 말고 무서워 말고 대적하여 이겨야 하지 않겠느냐?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 뒤에 떡 버티고 계심을 잊지 말자. 


사도 베드로 행3:6절<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나이 40세 가량인 이 앉은뱅이를 치유했습니다. 무엇으로 말입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을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간증합니다: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완전히 낫게 하였다=정상인들처럼 앉은뱅이가 그 자리에서 치유되어서 걸었다는 말입니다. 눈 속임이나 불완전한 걸음걸이가 아니었다. 사도 바울 행16:18<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빌립보라는 곳에서 바울 일행에게서 일어 났던 일이지요. 귀신들린 어떤 여종이 바울의 일행을 따라 다니면서 바울 일행을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 여종에게 포제스 되어 있는 악령을 추방해 버렸습니다. 어떻게 추방했나요? 주술을 썼나요? 아니지요. 선포했습니다. 누구의 이름으로 선포했나요? 예수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그랬더니 그 악령이 여종에게서 즉시로 떠났습니다. 이렇게 예수의 이름은 권세 있는 이름입니다. 인간 세계에서는 이 예수의 이름을 하찮게 여기는 인간들이 많이 있지만, 영계에서는 어떤 누구도 예수의 이름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예수의 권세? 마28:18<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적용:선포기도! 주 예수의 이름으로 내가 너, ~어둠의 영에게 명하노니, 나를 떠나라! 또는 주 예수께서 내게 위임하신 권세로 내가 너, ~어둠의 영에게 명하노니, 나를 떠나라! 따라서 할로윈 축제 때에는 잭오렌턴 안 만들기, trick or treat안하기 켐페인을 벌려야 한다. 왜?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따라 해서는 안 된다. 살전5:22절<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라> 모양을 자꾸 따라 하다가 보면 악이 깃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2.세 번째 청원: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축자적으로 번역해 보면;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하늘에서처럼 그리고 땅 위에서도! 뜻은 누구의 뜻인가? 기도하는 사람의 뜻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인가?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의미한다. ‘이루어지이다’는 문어체 수동이면서 명령형 즉 청원형입니다. 이루어지게 하소서! 


주기도문에 보이는 이 당신의 뜻,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주기도문을 할 때에 그 뜻을 이루어 달라고 해야 하지요. 이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을까요?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뜻을 자연 세계 속에 드러내 놓았지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자연 세계를 바라 보면서 어렴풋하게나 하나님의 모습을 그려 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자연 계시라고 부르지요. 이 자연 계시로는 하나님이라는 분이 어렴풋하게나 존재해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정도입니다. 이 자연계시보다 더욱 분명하게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특별 계시인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신 구약 성경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을 주의 깊게 읽다가 보면 그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 즉 이것은 성경의 주제입니다. 그 주제가 무엇일까요? 


신 구약 성경의 주제는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께서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한 인물을 준비하여서 세상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했고, 신약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인물이 인간을 죄에서 어떻게 구원했는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인물이 누구입니까?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기 위하여 유대 민족을 구약 시대에 선택했고, 그 유대 민족의 후손으로 우리 주님 예수를 보냈지요. 그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피흘리심으로 온 인류를 죄.죽음.심판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똑딱 똑딱 거리면서 흘러 지나가는 일반 역사가 있고, 그 일반 역사 속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구원사가 들어 있습니다. 인류를 죄와 죽음과 심판에서 건지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지와 뜻이 들어 있는 구원사가 일반사 속에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반사는 영웅과 호걸과 천재들에게 맡겼지만, 하나님의 구원사를 이루기 위하여 무엇을 사용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믿고 따르는 예수의 제자들을 사용하여서 하나님의 구원사를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귀중하게 보시는 것은 일반사가 아니라 구원사입니다. 인류를 죄에서 건지고 구원해 내는 그 일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구원사를 통하여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어디에 나타나 있습니까? 우리 주님이 2천년전에 지셨던 십자가에서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죄 가운데 빠진 인류를 그 지은 죄로부터 건져 내기 위하여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렸습니다. 이것이 인류를 향한 우리 하나님의 뜻이며 계획이며 의지입니다. 그 원대한 우리 하나님의 구원 의지 가운데는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우리들도 포함 되어 있습니다. 


눅19:10<인자가 온 것은 잃어 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 무엇이라고요? 찾고 구원해 내려는 데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말입니까? 잃어 버린 자들을 말입니다. 잃어 버린 자들이 누구입니까? 너와 나, 우리들이 아닙니까? 모든 인류들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가 잃어 버린 바 되었습니다. 이것을 잃은 자 사상이라고 부르지요.그러나 다행하게도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어서 하나님의 손으로 찾아서 발견된 자들입니다. 딤전2:4<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라> 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라고요? 온 인류가 모두 예수를 통하여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런 소원이 내 마음에 와 닿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보스톤 땅에 있습니다. 특히 이곳 보스톤 땅에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요6:38-40<내가 하늘에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이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시점이 아직 십자가를 지시기 전입니다. 예수의 12제자들에게는 명백하게도 하나님의 뜻은 예수께서 십자가 지시고 다시 살아 나심으로 온 인류를 죄에서 건져 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아직 예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이라는 시점이라면 제자들이 열심히 이 기도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께서 십자가 지신 후이고, 예수께서 다시 살아 나신 후이기에 우리들이 이 기도를 할 필요가 있습니까? 예수께서 십자가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라면 이미 그 뜻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우리는 자꾸 이런 기도를 하는가? 


두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가 이 세상은 사탄이 활동하는 곳입니다. 사탄의 방해 공작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런 기도를 해야 합니다. 사탄은 끊임 없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이 땅에서 실현 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같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둘째는 또한 우리들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불순종의 영 때문에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에서 실현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조금도 방해가 없이 온전히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 가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은 우리들을 하늘 세계로 인도하여서 궁극적인 구원을 얻는 것 이외에 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보낼 때에 우리에게 목적과 계획을 주셨습니다. 내 인생을 위한 하나님의 설계, 계획, 목적이 무엇일까요? 이것을 비전이나 사명으로 불러도 되겠지요. 예수께서도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았을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비전,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 지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 각자는 어떤 사명을 받았습니까? 각자가 다른 사명과 비전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가 일생 동안 걸으면서 해야 되는 그 일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비전이고 사명이고 내 인생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고 내가 존재해야 하는 목적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발견했습니까? 이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생을 낭비하는 일입니다. 이것을 젊은 나이에 발견하지 못했다면 늙어서 후회하게 됩니다. 생을 낭비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공자는 16살에 입지, 즉 뜻을 세웠다고 하지요. 내가 이 땅에 숨쉬면서 살아 있어야 하는 그 이유를 발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에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10대, 20대 때에 너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하고 이런 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삶의 목적을 받았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면서 말입니까? 이 주님 가르치신 기도를 하면서 말입니다: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 지게 하소서 라고 부르짖으면서 말입니다. 


창28:15절<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인 죄로 집을 떠나 외삼촌이 있는 하란으로 피난을 가다가 벧엘이라는 들판에서 유숙하다가 한 꿈을 꾸었고 그 꿈 속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야곱에게 약속을 이렇게 해 주셨지요. 지금은 정처 없는 나그네 길을 떠나지만, 하나님이 그 나그네 길에 함께 해 주실 것이고, 나중에는 다시 이 땅으로 돌아 오게 할 것이다. 그리고 야곱에게 허락한 것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결코 하나님이 야곱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야곱이 받은 하나님의 약속은 하늘에서는 이미 허락이 된 것이고 그 허락된 것이 땅에서도 성취 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하겠다는 소리 아닙니까? 


당신은 무슨 약속을 받았습니까?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루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간직하고 있습니까? 내 종이 되어 달라고 부름을 받은 분들도 있고, 의사나 변호사가 되어 달라고 부름을 받은 분도 있고, 학교에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부름을 받은 분들도 있고, 작은 사업을 하도록 부름을 받은 분들도 있고, 집에서 가정 주부로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사를 돌보도록 부름을 받은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세속 직업들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콜링, 즉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그 직업을 따라서 한 평생 이웃을 섬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의 신분은? 우리는 종들이다.


켐연장

2017.11.07 05:33:26

2017년 11월 3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 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7/11032017.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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