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223 

일시:4/27/2018 

찬송가:368장(주예수여, 은혜를 내려 주사)


1.부활절이 지난 다음에 다가 오는 절기는 성령 강림절입니다. 성령 강림절은 구약 시대의 절기인 오순절과 같은 날입니다. 부활절 후 50일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 주님의 부활을 경험한 성도들은 성령강림절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신앙 생활에서 성령이 전부다라고 말할 정도로 성령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경험되어지지 않았기에 그냥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이해하고 신앙 생활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천국에야 확실하게 들어 가겠지만, 땅에 사는 동안 신앙생활의 참 맛을 못 본체로 신앙 생활하는 분들이지요.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만 합니다. 성령은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위한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입니다. 그래서 이런 모토가 생겨났지요:성령보다 앞서지 말고, 기도보다 앞서지 말라고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을 때에 우리의 마음 속에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이런 성령 역사를 무엇이라고 부르나요? 중생사역이라고 부르지요. 누구든지 회심할 때에 자신이 느끼던지 못 느끼든지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님이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생 이후부터 기도생활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면 갈수록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우리의 심령에 더욱 많이 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매일 주께 더 가까이 나아감으로써 성령의 재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보슬비(가랑비, 이슬비):어떤 분에게는 성령이 보슬비처럼 잔잔하게 심령과 삶을 촉촉하게 적셔 줍니다. 보슬비도 오랜 동안 맞으면 옷이 젖습니다. 금요일 날 기도하러 교회에 들락날락 하는 동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집니다. 소낙비:또 어떤 분에게는 성령이 소낙비처럼 심령과 삶에 부어집니다. 무더위에 지친 한 여름날에 굵은 빗 줄기를 맞으면 기분이 좋지요. 성령을 소낙비처럼 우리에게 하나님이 부어주십니다. 폭포수:또 어떤 분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폭포수처럼 쏟아 부어주십니다. 행2:33절<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 부어주셨다는 동사가 퍼부어 주었다는 의미입니다. 폭포수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이미 구약 시대의 요엘 선지자가 예언했었습니다. 요엘2:28-29절에 의할 것 같으면<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요엘 선지자는 먼 미래이긴 하지만 신약 시대가 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폭포수처럼 그의 백성들에게 부어 주실 것을 내다 보았지요. 이 예언이 우리 주님이 십자가 죽음에서 다시 사신 후에 하늘에 오르시고 난 후에 50일째 되는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그렇게 주의 제자들에게 임하였지요. 그 동안 막아 놓았던 댐의 물을 물고를 터 놓음 같이 성령께서 막힘 없이 주의 제자들에게 넘쳐 흘러 들어 왔었지요. 오순절날 예수의 사도들이 이 사실을 증언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하늘로부터 퍼부어졌었다고 말입니다. 오순절은 단 한번 있는 그런 기념비적 사건이 아닙니다. 그 오순절 사건은 계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사건입니다. 복음이 전파 되는 곳곳마다, 예수의 이름이 증거되는 곳곳마다 예수 공동체 안에 우리 하나님이 그의 약속을 따라서 성령을 폭포수처럼 쏟아 부어지시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이 자리는 그런 성령이 다시금 재 충만케 되도록 성령을 부어달라고 기도하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간 성도 여러분 어떤 방식으로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길 원하십니다. 보슬비처럼 혹은 소낙비처럼, 아니면 폭포수처럼 받으시길 원하십니까? 


 2. 교회에 대하여 

예수 공동체: 교회가 무엇인가? 

교회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하면 떠 올리는 것은 교회 건물을 떠올립니다. 십자가가 걸려 있고, 강단과 성찬대가 있고, 길다란 회중석 의자가 놓여 있는 건물을 교회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아니고, 교회라는 시설물, 즉 교회 건물일 뿐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학교나 혹은 병원과는 다르지요. 학교는 학교 학생들이 없더라도 학교 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면 학교입니다. 또한 병원도 마찬가지 입니다. 환자가 없더라도 의사와 간호사가 있고 의료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건물만 있으면 그것이 병원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릅니다. 비록 교회건물이 있더라도 거기에 성도들이 없으면 교회가 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없을 때에는 교회 건물일 뿐입니다. 교회 건물이 없더라도 성도들이 모여 있다면 바로 거기가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까?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오늘 금요일은 루터란 교회의 건물 안에 우리들이 모여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모여 있기에 이곳이 켐연장 교회가 됩니다. 이제 한 달 후면 토아니피 수양관에서 우리는 전교인 수련회를 갖습니다. 그 때의 켐연장 교회는 토아니피 수양관에 모여 있는 우리들이 됩니다. 독재자들의 매서운 눈을 피하여 동굴 속에서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 드린다면 그 곳이 교회가 됩니다. 해변가에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교제하면 그 해변가가 교회가 됩니다. 마18:20절<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예수께서 임재하시는 곳은 교회 건물이 아닙니다. 예수의 임재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하는 곳,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성도의 교제를 하는 곳,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성경 공부하는 곳에 우리 주님이 친히 함께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몸:the body of Christ 

교회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비유로 정의해 주었습니다. 


 엡2:22-23절<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는 자의 충만이니라> 


 22절의 주어가 무엇입니까? 성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성부 하나님이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다라는 말씀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온 우주를 우리 주님 예수의 손에 놓아 주셨지요. 온 세상 만물이 예수의 권세 아래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만유의 머리이고 만유의 주이십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동시에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 교회의 주로 세우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만물의 머리이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머리도 되십니다. 지상에는 16억이나 되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6억명으로 구성된 교회의 머리, 즉 수장이 예수님이십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하늘에 먼저 들어가 있는 예수 믿는 사람들도 천상의 교회를 이루고 있는데, 천상의 교회의 머리도 예수님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믿는 자들의 머리가 됩니다. 이 정도로 우리 주님은 존귀한 분이십니다.  


자 그런데 말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만든 조직체organization가 아니고 유기체라는 말입니다. 회사나 국가는 모두 조직체입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기관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 낸 기관이 아닙니다. 바둑 동우회나 조기 축구회 같은 그런 여가 선용을 위하여 동호인들이 모인 모임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교회를 non-profit organization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교회는 인간이 만든 기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살아 있는 유기체입니다. 


우리의 몸에는 여러 조직들이 있습니다. 눈도 있고, 손도 있고, 발도 있고, 다리도 있습니다. 이런 신체 기관들은 서로 서로에 대하여 연결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머리에 의하여 통제를 받으면서 통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적인 몸은 유기체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그러합니다. 예수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머리인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고 통일 되어 있습니다. 


 머리와 지체들과의 관계:몸의 각 부분이 모두 머리의 지배를 받습니다. 머리는 지시하고 통제하고, 각 지체들은 머리의 지시를 따라서 움직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머리이신 우리 주님이 몸의 지체들인 우리들에게 명령도 하고 권면도 합니다. 그 몸의 각 지체들이 자신의 은사를 따라서 믿음의 분량을 따라서 그 직분을 감당합니다. 손이면 손의 기능을 발이면 발의 기능을 합니다. 만약 그 맡은 기능을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온 몸 전체에 악 영향을 끼치게 되지요. 만약에 우리의 몸의 엄지 발가락이 병들어서 기능을 잘 못한다면 걸을 때에 다리를 절면서 걷게 되지요. 그러면 머리를 비롯하여서 온 몸 전체가 힘들어 하게 됩니다. 또 만약 위장에 문제가 생겨서 소화가 안되면 머리를 위시하여서 병이 들어 있지 않은 모든 지체들이 또한 고통스러워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몸의 모든 지체들이 맡은 각자의 기능을 잘 발휘할 때입니다. 누구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까? 그 몸의 머리인 예수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인 우리들이 영적인 게으름 때문에, 혹은 영적인 침체가 일어나서, 또는 우리가 범한 죄악으로 인하여 우리가 맡은 기능을 잘 감당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몸에 이상이 생겨 나겠지요. 그러면 다른 지체들의 활동을 저해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정상화 되기 위하여는 그 병든 지체의 옆에 있는 다른 지체들이 병든 지체가 영적으로 회복되어 제 기능을 다할 때까지 옆에서 도와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그리스도의 몸이 회복되어 가지요. 건강한 지체들이 자기의 분량 이상으로 열심히 자기의 기능을 감당할 때에 병든 지체가 회복되어서 자기의 기능을 감당하게 되지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입니다. 우리가 병들거나, 영적인 침체를 겪지 않고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기능을 다 발휘 한다면 그리스도의 몸은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기 위하여는 자신이 맡은 은사와 기능을 최대한도로 발휘해야 합니다. 엡4:15-16절<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이면서 동시에 지역 교회인 켐연장 교회의 한 멤버인 나에게 그 몸의 머리이신 우리 주님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 주님은 나에게 종교적인 천재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따르는데, 혹은 교회 안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남들보다 더 뛰어난 사역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내게 허락된 기능을 최선을 다해서 감당하는 것과 병들어 있는 다른 지체들이 회복되어서 그 기능을 회복할 때까지 도와 주는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주의 일에는 영웅적인 한 사람의 사역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지체들이 골고루 자기의 기능에 최선을 다 하는 일이 필요할 뿐입니다. 모든 지체들이 다 자기의 기능을 잘 하도록 돕는 그런 사역을 하는 분이 교회 안에서 절실하게 필요하지요. 그렇게 할 때에 그리스도의 몸은 크게 성장할 수가 있습니다. 나는 내가 주께 받은 직분이나 기능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아야겠습니다. 


 물위에 떠 있는 배: 

교회는 바다에 떠 다니는 배입니다. 그런 배가 물위에 떠 있자면…배에 구멍이 없어야 한다. 아무리 얕은 물에 배가 떠 있더라도 배에 구멍이 생긴다면 배는 물밑으로 가라 앉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깊은 바다에(필리핀의 마리아나 화구 같은 곳) 배가 떠 있더라도 구멍이 없다면 배는 물에 가라 앉을 위험이 없이 안전하다.  


교회는 무엇이라고요? 세상이라는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배입니다. 우리들이 타고 있는 배는 켐연장이라는 배입니다. 우리들이 타고 있는 배는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습니까? 이 배를 타고 우리는 천국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타이타닉 같이 큰 배일지라도 빙산과 한번 부딪치니 배 밑이 찢어져서 거기로 물이 들어와서 배가 바다 밑에 가라 앉아 버렸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노도 없고, 돛도 없었습니다. 그냥 그 배는 물위에 떠 있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배 안팎을 역청으로 칠했습니다. 배 안으로 물이 들어 오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자 켐연장이라는 배, 우리 교회는 안전한가? 교회에 구멍이 나 있으면 그 구멍으로 무엇이 들어 옵니까? 세상 풍조와 세상 가치관이 유입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의 가르침, 예수의 가치관, 오직 예수로 가득 차 있어야 하는데, 다른 세상 것들이 들어 온다면 교회는 세속화 되면서 무너지게 됩니다.  


세상 가치관 중에 대표되는 것이 무엇이라고요? 각종 우상숭배이지요. 그 우상들 중에서 최고인 것이 만모니즘이지요. 돈을 중시하지요. 그 돈은 우리들의 살아 가는 동안 필요합니다. 그 돈 없이는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들이 살아 갈 수 없습니다. 돈이 우리의 삶을 위하여 필요한데, 현대 사회에서는 그 돈을 하나님의 반열에 올려 놓고 돈을 하나님처럼 섬깁니다. 돈이 우리의 삶의 전부를 다스리고 지배합니다. 돈을 따라 다니지요. 내가 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나를 지배하고 다스립니다. 이런 가치관이 교회 안으로 들어 옵니다. 그러면 가치관의 혼란이 발생하게 되지요. 교회의 구석 구석에 우리 주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돈의 권세와 힘이 작용하게 되지요. 세상은 우리 주님에게는 가치를 부여 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우리 주님께 가장 가치를 높게 두고 있고요. 그러니 세상 것이 교회 들어오면 우리 주님은 밀려 나게 되겠지요. 교회 안에 이런 배금주의 사상이 들어와서 자리를 잡고 있다는 말이지요. 마치 상급 신이 돈이고 하급 신이 우리 주님처럼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요. 


 교회는 순결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에 대한 순결입니다. 영적인 순결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영적인 순결이 무엇입니까? 예수님 이외에 다른 그 무엇을 섬기지 않는 것이 영적인 순결입니다. 영적인 순결이면 다인가? 아닙니다. 또 다른 순결이 있습니다. 도덕적인 순결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의 모든 사회 생활에서도 도덕적으로 순결해야 합니다. 켐연장 교회 안에는 어떤 세상 풍조가 있는가? 


찬송가:368장


켐연장

2018.04.30 07:27:26

2018년 4월 27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8/0427201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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