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217

일시:3/16/2018 

찬송가:542장<구주 예수 의지함이> 


 1. 염려 근심 없이 살아가는 인생은 없습니다. 모두 크든 작든 염려와 근심을 가지고 삽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들 중에는 세상적인 염려와 근심을 가지고 사는 분들도 있고, 영적인 염려와 근심을 가지고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세상 염려와 근심을 어떻게 우리는 처리 하고 있는가? 내 모든 무거운 짐 보따리를 전당포에 맡겼다가 다시 찾아 가는 그런 신앙생활을하기 때문에 염려 근심이 떠나질 않는다. 이런 분들에게는 우리 금요기도회는 전당포처럼, 그리고 예수님은 전당포 주인처럼 이해 됩니다. 예수께서 전당포 주인이라는 개념! 우리 교회 어떤 권사님과 식사 교제를 나누면서 들었던 말인데, 오늘 이렇게 그것을 써 먹을 수 있네요. 내 무거운 짐 보따리 금요기도회 이 시간에 전당포 주인인 예수님께 맡겼습니다. 금요기도회 시간 동안은 염려 근심 없어서 천국 같지만, 금요기도회를 마치고 짐 보따리를 전당포 주인에게서 돌려 받아서 나가는 분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전당포 주인으로 만든 분들은 그래도 이런 분들보다는 더 낫습니다. 어떤 분? 예를 들면 무거운 짐을 지고서 차를 탔는데, 차를 탔으면 무거운 짐 보따리는 차에 내려 놓아도 되지요. 그런데도 그 짐 보따리를 못 내려 놓은 분들이 있습니다. 차 태워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짐 보따리 내려 놓는 것은 미안하데요. 천국 열차에 올라 탔으면 무거운 염려 근심 보따리는 모두 내려 놓고 쉬어야 하는데 못 쉬지요. 금요기도회에 와서도 염려 근심을 주님께 내려 놓지 못하고 그것을 붙들고 있는 분들이 여기에 해당되지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는 예수님을 슈퍼 마켓 주인으로 여겨야 합니다. 슈퍼 마켓에서는 매매와 교환이 일어납니다. 우리들은 염려와 근심을 주님께 드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염려와 근심과는 반대가 되는 평강을 주십니다. 이것은 결코 손해 나는 교환이 아닙니다. 루터가 말했듯이 십자가에서 거룩한 교환이 일어났다고 말입니다.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의가 교환이 되었는데, 이것을 즐거운 거래라고 말했습니다. 부당 거래가 아니고 양 편 모두가 만족하는 그런 거래가 일어 났지요.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일어난 이런 거래를 바탕에 두고서 우리 금요기도회는 우리의 염려와 근심을 우리 주님의 평강과 맞교환 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결코 손해 나는 교환이 아니지요. 부당거래가 아닙니다. Win-win! 


 2. 절대 믿음을 갖자. 어떻게? 절대 믿음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가? 아니다. 삶의 자리에서 훈련을 통하여 만들어져 간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얻을 때에 가진 믿음이 바로 절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절대 믿음을 통하여 이삭을 선물로 주셨다.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손이다. 믿음이 그 만한 수준이 되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한 선물을 주셨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히11:11-12절<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이 구절은 사라의 태가 죽었지만, 사라의 믿음이 커서 잉태할 수 있는 것처럼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사라의 절대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삭을 얻은 것은 아브라함의 절대 믿음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라는 문구에서 누구의 믿음입니까?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사라의 믿음이 아닙니다. 비록 사라의 태가 폐경기를 지나서 죽어 있는 지 오래 되었고 아브라함도 고령이었지만, 아브라함은 여전히 잉태할 수 있는 힘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말입니다. 11절 본문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받은 사람은 사라가 아니라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의 절대 믿음이 이삭을 낳는 기적을 만들어 내었음을 말하고 있지요. 11절 후반부에는 ‘이는’ 이라는 인과 접속사가 기적이 일어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 자신에게 이전에 약속을 하셨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신다는 것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비록 상황으로는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약속의 아들이 태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지만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는 건가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는 약속은 맨 처음 아브라함이 나이 75세때이고 사라의 나이 65세 일 때였습니다.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에 있었을 때에 그를 불렀지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이런 절대 믿음을 가졌나요? 아니지요! 아브라함이 75세 때에 가졌던 믿음은 그야말로 베이비 같은 믿음입니다. 불신자가 예수 믿는 믿음을 가지면서 가지게 되는 그런 어린 믿음을 아브라함이 가졌습니다. 이런 믿음을 ‘아멘의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에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 후사, 즉 아들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지요. 그 약속이 창12:1-3절까지에 기록이 되어 있지요. 창 12:1-3절에는 무려 7개나 되는 축복의 조항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시려는 약속을 들어 보니 구미가 당기 거거든요. 어떤 약속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나요? 


 창12:1-3절<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는지라> 이것을 일곱 가지 축복, 즉 칠 중의 7축복, 영어로는 seven-fold blessing이라고 부르지요. 


 첫 번째로: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한다. 민족을 이루자면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자식을 주어야 하지요. 큰 민족을 이루려면 인구가 많아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많이 주겠다는 말이지요. 이 약속은 아브라함에게는 참 구미가 당기는 약속이지요. 지금 나이가 75세 인데도 후사가 없으니 말입니다. 

 둘째로:네게 복을 주리라 

셋째로:네 이름을 창대하게 만들어 주겠다.  

넷째로:너는 복이 되리라. 즉 복의 근원이 되리라 

다섯째로:너를 축복 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릴 것이다. 

여섯째로: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다섯째 여섯째는 안전 장치입니다. 종교와 문화가 다른 가나안 땅에 들어 갔을 때에 그곳 원주민들로부터 지켜 주시는 장치이지요. 외부인인 아브라함에게 원주민들이 위해를 가할 수가 있지요. 원주민들의 적대감을 없애 주시고 아브라함을 지키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해외 선교사들이 받아야 할 약속이지요. 

일곱째로: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그야 말로 세상에 하나님의 복을 들어 오게 하는 통로로 삼겠다는 약속이지요. 마땅히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들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복을 세상에 가져 오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이 칠 중의 약속이 아브라함의 마음에 와 닿았기에 아브라함은 ‘아멘’하면서 덥석 받았지요. 이것을 아멘의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꿀 송이 같은 약속을 받은 후에 아브라함이 무엇을 합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합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으로 아브라함은 들어 갔습니다. 창 12:4-5절에는 그 사실을 이렇게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심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든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 아멘하면서 말씀, 즉 하나님의 약속을 영접하게 되니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한 행동이 나오지요. 믿음의 행동, 순종의 행동은 무엇입니까?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기대하고 가나안 땅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가지고 이주했지요. 곧, 멀지 않아서 하나님이 약속의 자손을 줄 것을 바라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 약속 성취는 하나님의 시간표 상으로는 25년후에 되어질 일이었거든요. 25년이면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고도 남는 오랜 시간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에게는 25년간이라는 긴긴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는 시간입니까? 참 긴 시간이지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안 이루어지니깐 조바심이 나는 것은 당연하고 또한 약속 자체도 잊어 버릴 수가 있는 긴긴 시간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후사를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새겨 놓았기에 그 약속을 잊지 않고 하나님이 이루시길 기다렸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말입니까? 인내하는 믿음을 가지고 말입니다. 이 믿음이 무슨 믿음이라고요? 절대 믿음입니다. 


롬4:18-21절<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아니하고/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아브라함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 


롬4:17절 후반부<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위대한 신앙고백이지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아브라함이 믿는 하나님과 동일합니다. 창조주 하나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부활의 하나님이십니다. 주전 2천년경의 아브라함이 우리들이 믿는 그런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참 놀랍습니다. 절대 신앙은 아브라함이 25년간의 긴긴 기다림의 상황 속에 있었기에 만들어진 믿음입니다. 25년간의 기다림이 없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순종하여서 들어가자 말자 후손을 주셨다면 그런 절대 믿음을 가질 수 없었겠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절대 믿음을 선물로 주시기 위하여 25년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인고의 시간을 거치면서 탄식하는 시간을 지나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그런 믿음이 만들어집니다. 25년간 아브라함이 후사를 주겠다는 약속을 일념으로 기다리면서도 실족할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 실족은 믿음이 없어서 일어난 실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에 생겼지요. 처음에는 롯을 자기의 후계자로 세우고자 했지요. 그런데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서 소돔 성으로 들어 가 버렸지요. 그러다가 자기 집에 길러온 신실한 종, 엘리에셀을 후계자로 세우고자 했고요. 하나님이 아니라고 했지요. 아브라함의 몸에서 태어난 후손을 후계자로 세우겠다고 하시자, 사라가 자기의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의 첩으로 주어서 이스마멜을 낳게 하자요. 그래서 이스마엘을 후계자로 세우고자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몸에서, 그리고 사라의 몸에서 난 자식을 후계자로 세운다고 최종적으로 말씀하셨지요. 그리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게 되지요. 장장 25년간의 기다림 끝에 말입니다. 25년간 여러 가지의 방법으로 아브라함은 후계자를 세우고자 했지만, 그런 생각은 모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기반에 두고 했던 행동이지요. 


 오늘 보스톤 땅에 살아가는 우리들? 우리들이 켐연장 교회 안에 몸담고 신앙생활, 교회 생활하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도 이곳에서 아브라함처럼 연단을 받아서 그런 절대 믿음을 가져야 겠습니다. 우리 교회의 둘째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주님이 함께 하시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면 그것을 막을 인생이 없고, 하나님이 막으시면 그것을 이룰 인생이 없다는 신앙고백입니다. 나는 할 수 없으나, 주님이 함께 하시면 무슨 일도 할 수 있다는 믿음, 이것이 바로 절대 믿음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모두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겠습니다. 이 절대 믿음은 하늘에서 어느 날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인내의 시간을 보내면 비로소 만들어 지는 믿음입니다. 비록 눈들 들어서 환경을 보면 이루어질 것 같아 보이지 않지만, 주께서 말씀하셨기에 주님이 이루신다는 믿음이 절대 믿음입니다. 당신은 보스톤에 살면서 어떤 약속을 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하신 모든 약속은 이 성경 말씀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이제는 내 가슴 속에 새겨 놓으면서 그 약속이 내게 성취되도록 믿음으로 인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내게 절대 믿음도 이루어지고 또한 그 약속의 성취도 이루어져 있게 됩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요?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 


542장:구주 예수 의지함이~ 우리는 지금 어떤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고 있습니까? 우리 주님의 입에서 나온 약속의 말씀이 너무 좋아서 그 약속을 받기 위하여 따르고 있습니까? 이 믿음도 귀합니다. 더욱 귀한 믿음은 절대 믿음입니다. 환경을 보면 이루어질 것 같지 않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될 줄 믿고 포기 하지 않는 믿음이 절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살아 갑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막을 인생이 없고,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인생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약속을 굳게 잡고 믿었던 것처럼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켐연장

2018.03.20 06:18:34

2018년 3월 16일 주일예배 설교 음성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8/0316201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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