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214

일시:2/23/2018 

찬송가: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 했나요? 


 음악에는 되돌이 표가 있어서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할 수가 있지만, 인생에는 되돌이표가 없습니다. 한 번 지나간 세월은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일생이라고 부르지, 이생이나 다생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 방아를 돌릴 수 없습니다. 톱으로 나무를 켤 수는 있어도 톱밥을 켤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세월을 낭비하지 말고,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것이다. 현재는 the present라고 하지요. 그러기에 현재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현재를 바탕으로 우리는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영적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나가 버린 세월을 앞으로 당길 수는 없습니다. 


좋은 중보기도자가 되자면? 

 내 이웃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어야 하고, 내 이웃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어야 하고, 내 이웃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어야 하고, 내 이웃의 즐거움이 나의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바로 나의 이웃과 하나가 되었을 때에 진정한 중보기도가 시작된다. 믿음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출중하더라도 이웃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없으면 그가 하는 중보기도는 별 효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5:6절<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 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내 이웃과 사랑의 관계가 맺어지면, 내 이웃의 아픔과 눈물과 고통이 내게 전이 되어서 내 몸이 아파집니다. 그래서 이웃을 위한 나의 기도가 간절해 지지요. 내가 간절히 기도하면 나의 몸에 전이된 고통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내가 위하여 기도하던 나의 이웃이 치유됩니다. 이것을 오해 해서는 안됩니다. 내 이웃의 고통이 한 평생 내게 임하여 있는 것 아니라 기도하는 동안만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기도를 끝내고 현실로 돌아오면 전이된 내 이웃의 고통은 사라집니다. 다시 내 이웃을 위하여 기도하면 전이된 고통이 나타나고요. 그렇게 기도하다가 나에게 전이된 고통이 사라지면 내 이웃이 치유되는 것이지요. 이웃과 사랑의 관계가 맺어지지 않으면 고통이 전이 되지 않지요. 내 아이가 아프면 부모가 어떻던가요? 함께 아파하지요. 그 때가 가장 좋은 중보기도를 할 수 있는 때이지요. 남들의 아픔보다는 내 자식의 아픔이 더 가슴이 아리지요. 자식이 아픈 것을 보면 부모인 내가 차라리 아팠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그래서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가장 좋은 중보기도를 할 수가 있습니다: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이웃과 내가 하나로 연합하게 하시는 분이 누구일까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이 내게 충만하게 거하면 거할수록 내 이웃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성령을 통하여 나의 이웃의 고통과 아픔과 눈물이 내게 전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성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요?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선교사와 선교지를 위한 좋은 중보기도 사역자가 되자면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불쌍한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열악한 환경과 낮은 생활 수준 때문에도 불쌍하지만, 무엇보다 불쌍한 것은 예수에 대한 복음을 접해 보지 못했기에 그렇게 비참하게 살다가 죽어서는 지옥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이기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나야 합니다. 복음을 접해 보지 못한 아프리카나 아마존 정글에 살고 있는 부족민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야 하고, 또한 알라를 믿고 있는 무슬림인들, 사탄에게 속임을 당한 채로 살고 있지만 속고 있다는 것을 인지 하지 못하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바른 중보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우리들에게 그들을 불쌍히 여길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니 무엇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가? 마9:37-38절<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여기에서 추수라는 이미저리는 심판이 아니고 선교, 즉 전도를 의미합니다.선교를 나타내는 그림 언어가 추수입니다. 영적 추수할 때입니다. 보스톤 땅에서도 영적인 추수가 일어나야 합니다.온 세상 지구촌 구석 구석에 복음이 전하여져서 예수 운동, 생명 운동이고, 회개 운동이고, 말씀 운동이고 성령 운동이 일어 나야 합니다. 


성령보다 앞서지 말고 기도보다 앞서지 말라! 어떤 일을 할지라도 내 생각과 내 계획을 앞장 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 지를 먼저 물어 보고 응답 받은 후에 행하면 낭패를 당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 일이 선한 일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막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도모하는 일이 선한 일이니 하나님께 물어 보지 않아도 하나님도 원하시겠거니 한다면 그것은 오산입니다. 아무리 선한 일일지라도 때가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을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하여는 말씀을 많이 먹어야 하고, 또한 우리의 영혼이 깨어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다윗에게서 이런 영성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다윗은 사울에게 수년간을 쫓겨 다녔습니다. 사울 왕에게 까닭 없는 미움을 받아서 도망자의 신세로 살았습니다. 쫓겨 다니던 수년간에 다윗과 같은 처지에 있는 억울한 사람들이 다윗에게 몰려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400명 가량이었는데, 점차 늘어 났습니다. 다윗의 부하가 600명이나 되었습니다. 사울의 손을 벗어 나기 위하여 블레세 가드 왕 아기스에게 정치적 망명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가 다윗에게 시글락이라는 성읍을 주었습니다. 다윗은 그곳에 그의 부하들과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다윗과 용병들이 가드왕의 부름을 받아서 시글락을 비었을 때에 주위에 있는 아말렉 족속으로부터 시글락이 습격을 받았습니다. 시글락 부락에는 부녀들과 아이들 밖에 없었습니다. 마을이 불타고 부녀들과 아이들은 모두 포로로 잡혀서 옮겨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다윗과 그의 용사들이 마을에 돌아와서 보니 마을이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이 자기들의 아내와 자식들이 모두 없어진 것을 보고서 다윗에게로 책임을 돌리면서 다윗을 돌로 들어 치려고 했습니다. 삼상30:6절<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이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취한 행동은 무엇입니까? 눈이 뒤집히셔 곧 바로 부하들을 데리고 적들을 추격 나갔습니까? 적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또한 그들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 지도 알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윗이 했던 일은 먼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삼상30:7-8절<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데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가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 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 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 잡고 도로 찾으리라> 


다윗은 기도보다 앞서지 않았고, 성령보다 앞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았고, 그 응답에 따라서 움직였습니다. 삼상30:9절<이에 다윗과 또 그와 함께 한 육백 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 뒤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게 했으되~>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여서 시글락을 침략했던 아말렉 족속이 어디 있는 지를 파악했습니다. 어떻게 알았나요? 아말렉 족속이 병들어 버리고 간 애굽 소년 하나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그에게서 아말렉 정보를 알아 낼 수 있었지요. 그 소년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말렉 족속이 어디에 있는 지를 알 수가 없었겠지요. 다윗이 애굽 소년을 만나게 되는 일은 누가 만들었나요? 하나님이 만드셨지요. 하나님께서 추격을 나서기 전에 응답하셨지요. 추격하라 그러면 따라 잡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이 응답했으니 아말렉이 어디 있는 지 다윗이 알아 낼 수 있게 만들어야지요. 그러기 위하여 그 애굽 소년을 하나님이 사용하신 것이지요. 하나님이 쓸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있지요. 다윗에게 환상이나 꿈으로 보여 주고 알게 할 수도 있고요, 아니면 적이 남긴 자취를 분석하여서 정찰대를 사방으로 보내서 적의 현재 위치를 파악할 수도 있었고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을 썼습니까? 아말렉 적들이 병들었기에 버렸던 그 애굽 소년을 우연히 만나게 해서 그 소년을 통하여 적들의 위치를 발견해서 기습 작전을 폈고, 잃었던 모든 것을 찾았지요. 기습 작전을 펼칠 때에도 적들이 곤하게 잠들어 있던 새벽에 펼쳤지요. 우리 같으면 하나님이 기적을 보여 주시려면 그냥 하늘에서 불벼락을 때려서 그냥 적들이 모두 죽어 나자빠지게 하시면 좋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방법을 썼나요? 400명의 용맹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다윗은 적들을 따라 잡았고, 잃었던 가족들을 찾았고, 또한 아말렉이 이 마을 저 마을에서 탈취한 물품들도 전리품으로 챙겼습니다. 


다윗은 그 때의 상황을 이와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40:2절<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정말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지지 않았던가요? 한번 생각 해 보세요. 어느 날 출장을 갔다 왔더니 내 가정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얼마나 큰 충격이겠습니까? 마치 깊은 수렁에 빠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지 않겠습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영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다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내가 핸들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큰 파도가 내게 덮칠 때, 그런 위기에 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성령으로 기도하는 일입니다. 사28:16절<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예수 믿는 믿음으로 일어나리라! 하나님께서는 계속적인 기도를 요구하신다. 


사62:6-7절<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워 놓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래 파수꾼은 무엇 하는 사람입니까? 적이 오나 오지 않나를 감시하는 사람입니다. 6절에는 파수꾼이 밤낮으로 쉬지 않고 계속해서 잠잠하지 않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파수꾼이 성벽 위에서 떠들면 안되지요. 그러면 적의 눈에 파수꾼이 드러나게 되지요. 자 그렇다면 이 파수꾼은 실제적인 파수꾼이 아니고 상징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지요. 여기의 파수꾼은 예언자를 가리킵니다. 예언자들은 기도의 용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쉬지 않고 하나님께 간구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간구하라는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세상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기를 기도하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이라는 원수의 손에 파괴되고 망가진 예루살렘을 회복시켜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옛날처럼 회복될 때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됩니다. 그 회복이 일어나게 해 달라는 간구를 쉬지 말고 계속하라는 말입니다. 언제까지 말입니까? 그 일이 성취될 때까지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파괴된 예루살렘 성을 회복하시는 그 일을 중단 하지 못하게끔 성도들은 계속해서 기도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도들이 기도하다가 쉬면 하나님도 하시고자 하는 일을 쉬신다는 영적인 원리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간구가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의 기도를 이루시는 일을 중단하지 아니하신다는 말입니다. 어미 새가 숲 속에 둥지를 만들어서 알을 낳고 새끼를 깠습니다. 어미 새가 새끼 새에게 먹이를 쉬지 않고 물어다 주었습니다. 그래서 실험자가 새끼를 둥지에서 치워 버렸더니 어미 새가 먹이를 몇 번 물어 오더니 종래에는 먹이를 물어 오는 것을 중단해 버렸습니다. 새끼 새가 둥지에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새끼 새를 둥지에서 치우고 난 후에 새끼 새의 울음 소리를 들려 주었더니 어미 새가 계속적으로 먹이를 물어 왔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 세상 가운데서 날마다 계속되는 부르짖는 기도는 우리 하나님을 쉬지 않게 만듭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성취해 주는 일을 쉬지 않고 진행하십니다. 우리의 기도 응답이 우리의 손에 쥐어 질 때까지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렘33:3<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겔36:37-38절<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제사 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무슨 약속을 주었을까요? 유대 족속이 바벨론 포로 생활하고 있었을 때에 주신 말씀이지요. 예루살렘이 정복을 당하여서 성벽은 무너졌고, 성전은 불타 없어졌고, 예루살렘 주민들은 사로 잡혀서 바벨론 포로 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황페함을 이제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처럼 만들겠다는 약속을 바벨론 포로 공동체에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공동체의 사람들에게는 아직은 실제적으로 이루지지 않았습니다. 언제 이루어 집니까? 70년간의 포로 생활이 마쳐져야 합니다. 그 때까지 이 백성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때 까지 쉬지 말고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했다고 그냥 놀고 먹어서는 안됩니다. 계속해서 그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 일이 이루어 지고 난 다음에는 또한 감사의 기도를 쉬지 말고 해야 합니다. 이루기 전에는 이루어 달라고 끈질기게 기도해야 하고, 이루고 난 다음에는 감사의 기도를 계속해서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복음송: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나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성령보다 앞서지 말고 기도보다 앞서지 말라 이룰 때까지 쉬지 말고 기도하자. 성령의 기름부음이 넘치게 만들어 달라.


켐연장

2018.02.27 06:03:44

2018년 2월 23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8/0223201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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