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212

일시:2/9/2018 

찬송가:복음송, 494장, 23장, 365장 


지난 주에 ‘염려를 극복하는 길’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염려를 극복하는 길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 있습니다. 그 실천 방법으로는 하나님께 ‘믿음의 기도’를 하는데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내가 염려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분명한 문장으로 표현하여서 거기에 믿음을 실어서 하나님께 드리면 우리의 염려가 하나님께로 옮겨 가게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염려를 믿음을 실어서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는 데 우리의 문제점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염려를 우리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기는 역할을 합니다. 


사무엘 1장에는 사무엘이 어떻게 태어났는지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습니다. 사무엘의 엄마인 한나가 오래 동안 불임이었습니다. 어느 날 실로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한나는 기도했습니다. 어떤 기도를 했나요? 믿음의 기도를 했습니다. 자신의 염려와 근심을 하나님께 실어 드렸습니다. 사무엘 1장 12절에는 한나가 오래 동안 여호와 앞에 기도했었다 라고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나가 기도하는 동안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않았기에 제사장인 엘리가 보고서 한나가 포도주를 많이 마셔서 취해 있는 줄로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한나에게 포도주를 끊으라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랬더니 한나가 어떻게 대답합니까? 15절에는 자신은 마음이 슬픈 여자이다.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 자신의 심정을 통했을 뿐이라고 항변했습니다. 


한나가 말하는 심정을 통한 기도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아 놓는 것을 말합니다. 애기를 못 낳는 것에 대한 염려와 근심이 마음에 가득 담겨 있었는데,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쏟아 내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이런 심정을 통하는 기도를 오늘 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담겨있는 불안과 염려와 근심과 두려움 등등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을 우리 하나님 앞에 토해 놓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바가지의 물 쏟는 것은 그리 쉽게 하면서 내 마음 바가지 안에 가득 담겨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쏟아 내질 못합니까? 그것 쏟아 내면 얼마나 시원하겠어요? 자 그랬더니 제사장 엘리가 한나를 축복하지요. 무엇으로 말입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하는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한다 라고 말입니다. 이런 제사장의 축복을 받고 나서 한나는 두 번 다시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을 18절에서 한나는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의 빛이 없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에 한나가 잉태하게 되었고, 사무엘을 낳았지요. 한나가 그 날 실로에서 기도한 후에 염려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안 했지요! 왜 믿음의 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불임에 대한 염려와 근심을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베드로 전서 5:7절에도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왜냐하면 하나님이 너희를 돌보시기 때문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요. 한나는 기도한 후에는 염려 근심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보통은 기도가 끝나고 집으로 갈 때에는 풀어 놓았던 염려 보따리를 다시 싸 가지고 돌아가지요. 이게 문제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그러지 않았지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한나가 바라는 대로 자식을 주었는데, 그것도 무엇을 주었습니까? 아들을 주었지요. 이 시간 우리도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염려를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손으로 옮겨 놓기를 바랍니다! 신앙 생활은 지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성으로 하는 것이고 그 밑바닥에는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2 죄 문제의 전가:대속의 원리/십자가는 대속이다. 내 죄를 대신 지고 예수께서 죽었다. 사53:6절<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요1:29절<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당신은 당신의 죄가 십자가에서 처리 되었다고 확신합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의식 말입니다. 믿음으로 내가 지은 죄가 우리 주님에게로 전가 되었고, 나의 전가된 죄를 우리 주님이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이것이 믿어지면 죄사함을 받았고, 이것이 믿어지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게 안 믿어 지거든 어떻게 기도하라고요? 믿어 지게 만들어 달라,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달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어느 날부터는 우리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 사실이 믿어 지게 됩니다. 


다음 주 수요일은 재의 수요일이라고 부르지요. 영어로는 Ash Wednesday입니다.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절 직전 토요일까지 사순절 이라고 부르지요. 그 중에서 매 주일날은 카운트하지 않습니다. 그리기에 사순절은 말 그대로 꼭 40일간의 기간을 말합니다. 이 기간 동안 6번의 주일이 있는데, 이 6번을 넣으면 46일 정도가 되지요. 그 중에서 주일은 사순절기에서는 카운트를 하지 않습니다. 왜 빼는가 하면 사순절은 우리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는 절기인데, 매 주일날은 작기는 하지만 부활절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다음 주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들도 우리 주님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당하신 고난을 생각하면서 그 고난에 동참하는 그런 삶을 경건하게 보내야겠습니다. 한 주간이 아니고 7주간의 고난 기간이지만 이 기간 동안 과도한 세상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자제하고 성경 읽는 것과 기도하는 일에 힘을 더 써 주시길 당부합니다. 좋기는 이번 사순절 기간 동안 안 해 오던 신앙 훈련을 하면 좋겠지요. 예컨데 40일 동안 새벽 기도에 빠지지 않겠다는 결단을 한다든가, 이번 기간 동안 성경을 일독하겠다는 결단을 하던가, 아니면 결심하고 금식기도도 한번 시도해 보는 것도 좋겠고, 사순절 기간 동안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 혹은 담배를 끊어 보겠다 하는 그런 결단도 좋지요. 평소와는 다른 좀 색다른 그런 신앙훈련을 한번 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자신이 자주 짓게 되는 그런 죄악의 목록을 적어 넣고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 한 번 힘써 보는 것도 좋겠지요. 


오늘 우리들 하루 종일 죄를 많이 지었지요. 죄를 지으면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증세, 즉 symptom은 무엇이고 결과는 무엇일까요? 죄와 우리들은 뗄래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죄인입니다. 죄를 지었기에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태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 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성적으로 죄인입니다. 아담으로부터 우리는 죄성이라는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죄 된 성향을 가지고 태어 났기에 말과 행동으로 죄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나이에 정비례하여서 우리의 죄악은 늘어만 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고질적인 상습범죄자들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나타나는 증세는 죄는 우리의 영혼과 삶을 더럽힌다는 점입니다. 죄를 짓게 되면 우리의 영혼과 삶이 더럽혀진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우리가 이웃에게 해로운 말을 하거나 이웃에게 악행을 하고 나면 우리의 마음이 대단히 찜찜해 집니다. 양심이 극도로 무디어져 있는 그런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으로 이웃에게 해악을 끼치게 되면 


3 자책이 일어나고 마음이 또한 찝찝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마음의 상태는 마음이 죄로 인하여 더럽혀 지기 때문에 느껴지는 일입니다. 무엇이 우리의 심령을 더럽힌다고요? 우리가 매일 매일 짓는 크고 작은 죄악이 우리의 심령을 더럽힙니다. 구약 시대에는 사람이 더럽혀 지는 일은 죽은 사람의 시체에 접촉되거나, 아니면 율법이 부정하다고 말하는 그런 짐승이나 물고기나 새를 만지거나 먹거나 하면 더럽혀지게 됩니다. 또한 땅에 오물오물 거리면서 기어 다니는 곤충이나 벌레와 접촉하게 되면 부정하게 되어집니다. 그것 뿐이 아닙니다. 식사 하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은 다음에 음식을 먹어야 부정하지 않게 됩니다. 손 안 씻고 음식을 먹으면 더럽혀 진다고 여겼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의 관념을 우리 주님은 정면으로 배격했습니다.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것은 손 안 씻고 음식을 먹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이 짓는 죄악이 우리를 더럽게 한다고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마15:17-20절<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우리가 매일 매일 짓는 죄악이 우리의 심령과 삶을 더럽게 만듭니다. 이렇게 더러움을 입은 심령이 어떻게 하면 깨끗하게 됩니까?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요. 무엇을 가지고 씻어야 우리의 심령의 더러움이 씻기어 집니까? 예수의 피 밖에는 없습니다. 


요일1:9절<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예수의 보혈은 샘물과 같습니다. 샘 솟듯이 솟아 나는 그 샘물에 우리의 심령을 담그면 우리 심령에 묻어 있는 오염들이 씻기에 나갑니다. 


계6:14절<~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옷은 우리의 행실을 가리키지요. 우리의 더러워진 행실이 어린 양의 피로 씻으면 깨끗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찬송가 494장을 한번 부르겠습니다: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 갑니다. 창에 허리 상하여 물과 피를 흘린 것 내게 효험되어서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오늘 우리 주님의 보혈로 씻어 내야 하는 죄는 무엇입니까? 나 자신을 살펴 본 후에 그것을 우리 주님께 자백함으로써 깨끗함을 받아야겠습니다.그러면 더럽혀짐 때문에 나타나는 심령의 찝찝함이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나타나는 증세는 죄가 우리를 지배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죄의 권세라고 하지요. 우리가 그 죄를 안 지을 때에는 그 죄가 우리 밖에 있어서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유혹에 이끌려서 그 죄를 지음으로써 그 죄를 우리 안으로 끌어 들이면 그 죄는 우리를 억압하면서 지배하게 되지요. 


구약 시대의 다윗은 시편 19편에서 이렇게 노래 했습니다: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 나겠나이다. 참 담대한 기도입니다. 고의로 죄를 짓는 것을 하나님이 막아 달라는 간구입니다. 고의로 죄를 짓는 게 뭡니까? 영어로 말하면 wilful입니다. 죄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짓는 죄를 말합니다. 죄라는 것을 안다면 짓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는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연약함 때문에 유혹에 져서 죄를 짓지요. 그런 죄를 지으면 죄가 우리 밖에 있을 때는 우리를 지배하지 않는데, 그 죄를 우리 안으로 받아 들이면 문제가 발생하지요. 


4 우리가 죄의 지배를 받는 것이 너무 아프고 싫어서 죄의 지배를 벗어 나려고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왜냐고요? 그 죄의 권세가 너무나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개별적으로 죄를 짓는 것 하나 하나마다 우리는 그 죄의 종이 되어서 살게 됩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그 죄의 지배와 속박을 결코 벗어 날 수가 없습니다. 그 죄의 속박, 얽어 맴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우리의 의지가 죄의 세력에 포로로 잡혀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우리를 풀어서 자유롭게 만들어 주어야 해방을 맛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 만이 우리를 그 죄의 권세에서 탈출하게 만들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해방자이시고 죄의 세력을 꺾는 은혜의 원천이다. 


찬송가 23장 4절은 내 죄의 권세 깨뜨려 그 결박 푸시고 이 추한 맘을 피로써 곧 정케 하셨네. 이 찬송시는 찰스 웨슬리가 썼지요. 우리 한번 1-4절까지 모두 불러 보겠습니다. 우리가 짓는 죄의 궁극적인 결과는 무엇입니까? 


마6:33절<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를 지으면 죽는다는 것은 육신적인 사망을 초래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그 죄를 하나님의 은혜로 제거하지 않으면 지옥이라는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죄를 짓게 되면 죄가 우리에게 주는 대가가 지옥이라는 말입니다. 


얼마나 참혹합니까? 지옥이라는 데는 사람들이 결코 가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지옥이라는 데는 잠깐 머무는 곳이 아니라 영원히 죄인들이 살게 되는 곳입니다. 죄를 짓는 사람들은 사후 세계에서 영원한 지옥에 가 있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영적인 법칙입니다. 내가 사후 세계를 인정하든지 아니 하든지 사후 세계는 존재해 있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다면 그 죄로 인하여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없는 줄 알고 한 세상 살았는데, 죽음 후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자신이 천국이 아니라 지옥에 들어가 있다면 얼마나 참담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우리 하나님이 주신 선물은 죽음이 아니라 영생입니다. 사후에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 믿는 궁극적인 목적이 천국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 이 땅을 떠날 때에는 천국에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찬송가:365장을 부르겠습니다.


켐연장

2018.02.13 06:40:30

2018년 2월 9일 금요기도회 설교 음성파일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8/0209201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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