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2012. 10. 26
11:1-9 바벨.
1-11장을 원역사/태고사라고 부르고(역사이긴 하지만 현재 역사적으로 재구성할수 없는 역사), 창12-50장을 족장사라고 부른다.
바벨탑 사건의 교훈은? 인간의 교만에 대한 심판.
인간 사회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blasphemy적인 증후군이 과거에도, 지금도 많음. 하나님이 즉각 심판하셨다면 인류는 오래전에 멸종.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참고 계시기에 우리가 살아 있다.
3의 선악과 사건 – 신과 같이 되려는 무한한 욕망, 인류 누구에게나 있는 욕망의 시발점.
바벨 사건도 같은 맥락. 눅15의 탕자 비유도. 하나님을 떠나 ‘독립’하겠다는 경향. 바벨 사건은 집단적 탕자 사건인 셈.
1절: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 지금을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편리한 세계. 유학생으로서 미국에서 영어 때문에 겪는 어려움들을 생각하면… 이게 다 바벨탑 때문이다.
2절: …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 이것은 역사적 장소. 현재의 이라크 평야. ‘거류’ – 정착했다는 의미.
3절: 벽돌을 굽다 –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
4절: 성읍과 탑을 건설 – 도시 문명 재개. 원조는 가인의 에녹 성. 현재 남아있지 않으나, 고대 바벨론 유적을 통해 건축양식 추정 가능. 계단식 지구라트. 바벨론 국가의 지구라트는 마르둑 숭배 목적.
그러나 바벨의 탑은 인본주의적 동기로 건축. 사람들이 이름을 내고,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 노아 홍수의 기억 때문에, 높이 올라가는 탑을 쌓고 모여 살고자 하였다?
작명권자의 권리는? 소유권과 지배권. 아담이 동물들 이름을 지어주고 권세를 얻었듯이. 바벨의 사람들도 자기들이 이름을 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제거하고 자기들의 이름을 세우겠다, 즉 하나님의 지배 없이 자기들의 독립적인 삶을 살겠다는 선언. – 이것이 교만의 정의.
세상 정의로서의 교만은 비교를 통한 우월감. 거만함. 실제보다 자신을 부풀리고 허영으로 차 있는 상태.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교만은 다르다.
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 21가지 죄악이 열거됨.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것/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것 – 이렇게 되면 무슨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아모스의 질타: 북 이스라엘의 마음에 하나님은 실종되고, 경제적 번영과 군사적 힘이 그 자리를 메움. 이스라엘의 자랑이 하나님이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밀려나고 번영과 군사력이 자리잡아 30년 후에는 멸망.
동시대에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의지한(이스라엘과 아람의 공격을 막기 위해 앗수르를 섬긴) 아하스와 유다를 질타한 이사야.
교만의 결과: 멸망 – 고질병. 육신의 죽음과 그 뒤에 있는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게 함.
벨사살(단5) – 메네 메네 테켈 우바르신. 다니엘의 책망 – 느부갓네살의 경험을 보고도,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아직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느부갓네살(단4) – 거목 환상과 들짐승 7년. 단5:20-21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완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의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의 영광을 빼앗기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사람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자리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에 이르렀나이다.
헤롯(행12:22-23) –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개인도, 국가도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으면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것은 멸망.
오바댜 – 에돔의 멸망 선포. 옵1:3-4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거룩한 백성인 이스라엘과 유다도 안 봐주고 멸망시키는데, 다른 나라/백성들이야…
세상에는 영적인 관점에서 두 종류의 길. 누구와 함께 인생을 걷는가에 따라 교만과 겸손으로 나뉜다.
9:23-2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나 지금이나 기술문명이 달라졌을뿐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똑같다: 지혜/힘/부를 지금도 추구하는 하바드생들.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아니냐?
그리스도인은 겸손해야. 주님과 동행해야.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예수님의 주권 앞에 무릎을 꿇어야/순종해야. 국가 지도자, 교회 지도자의 권위 앞에 무릎을 꿇어라.
바벨에서 자기 이름을 내자고 했던 이들의 이름은 이제 없다.
그러나 주를 위해 살았던 이름없는 자들은 지금도 이름이 남아 있다(히11).
교만한 자는 낮추시고 겸손한 자는 높이시는 하나님.
땅에 충만하라(창1:26-28)는 하나님의 명령/문화명령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흩어짐을 면하자’라고 했던,재난을 피하기 위해 올라갔던 바벨.
11:5 하나님이 강림하심. 기껏 하늘에 닿자고 했으나, 하나님이 내려오셔야 할 정도의 가소로운 높이.
11: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우리’가 누군가? 구약 안에서만 보면 삼위라고 보는건 무리. 창1, 2장에서도. 구약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회의에서 등장하는 장엄복수. 그러나 완성된 계시인 신약의 렌즈로 보면, 이 ‘우리’는 성삼위라고 볼 수 있다.
말이 혼잡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원래 계획인 지면에 흩어짐/땅에 충만함이 이루어지게 됨.
2의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바벨 저주의 부분적 회복이 이루어짐.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완전한 성취를 볼 때까지의 deposit(나- 성령께서 완성된 구원/영광의 deposit되심같이)
나에게는 하나님이 없는 부분이 없는가? 내 전공에서 하나님을 밀어내지 말라. 내 이름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주의 이름을 위하여 하면, 주께서 낮은 나를 높이신다. 내 이름을 위해서 하면 하는 일이 소용이 없어진다. 하나님 없이 내가 내 힘과 능력과 기술을 의지해서 짓는 탑은 미완의 탑이 된다. 흩어져 버리게 된다.
내 모든 삶 속에서 주님을 모셔야. 그것이 겸손.
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벧전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천재소년

2012.10.29 19:54:40

설교 음성파일 링크 : http://www.churchboston.org/sermon/102612.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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