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금요기도회 3/8/2013 ||

 

8a. 누가 진정한 하나님인가?/석존일까? 예수일까?

대웅전 법당에 모셔 조각상이지만, 부처님의 얼굴을 보면, 인자하게 보입니다. 엷은 미소를 얼굴에 띄고 있고, 자비로운 눈길로 절하고 있는 중생을 바라보고 있지요. 그러면 불제자들의 마음에 위안이 찾아 드는가 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어떻던가요?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시면서 몸부림 치시면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얼마나 고통이 심했으면 이마에서 모세 혈관이 터져서 땀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피가 스며 나올 정도입니까? 이렇게 고뇌하는 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인가? ‘ 아버지여, 만일 하시거든 (고난의 , 십자가 지는 ) 내게서 지나 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죽음 앞에 벌벌 떨고 있는 예수께서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신가? 십자가 위에서는 어떻던가요? 고통 때문에 하나님께 원망의 말을 합니다: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의 절규! 육신적인 고통으로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는 모습,하늘에 계시는 성부 하나님이 예수에게서 얼굴을 돌렸습니다. 모든 인생들의 죄를 짊어 지고 있는 죄인의 모습이었기에(대표자)-하나님과의 관계가 일시적으로 끊어진 상태! 갈보리의 지옥(골고다의 지옥)-하늘, 예수의 마음 속에,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탄의 졸개들(비방,조롱)-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는 예수의 모습! 분명 법당에 모셔 두신 부처님과는 대조되는 모습! 누가 진짜 하나님이신가? 부처님이 아니고 예수님이시다. ? 우리 인간의 고통을 함께 지고 함께 울고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인간의 고통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모습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분명 나타났다. 3:16, 5:8-찢어지는 아버지의 마음/ 어떤 목사의 경험, 미국에서 학위를 마친 , 늦둥이 딸을 출산, 황달기 있다고 의사가 일주일 후에 딸을 데려 오라 해서 소아과에 가서 피를 뽑았다네요. 아시안계,한국 사람들, 몽골계통의 사람들은 의례껏 황달기가 있는데, 아이 피를 뽑았는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피를 뽑는 간호원이 신생아의 핏줄을 찾아가서 애는 응애응애 울고, 부모의 마음은 똥줄이 탔었던 모양입니다. 달랑 15cc 뽑았다지요. 차를 타고 돌아 오면서 괜히 속상해서 열불이 나고 간호원 욕을 해대고 있었는데, 주님의 말씀이 마음에 떠오르더레요. 이놈아, 너는 너의 15cc 뽑고서 그렇게 분하고 억울하냐? 이놈아 나는 아들의 심장의 모든 피를 뽑아 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너에게 억울하다는 이야기를 한적이 없다.라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하나 밖에 없는 귀한 아들의 피를 몽땅 빼서 우리를 구워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상하고 찔리고 피가 빠져 나가니 우리 주님 예수께서 찡그리고 일그러질 밖에 없지요. 예수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고통을 대신 주시고 고통하시면서 죽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목숨이 떨어질 때에 마다 하셨지요. 무엇이라고요. “ 이루어졌다헬라어로는 테텔레스타이입니다. 완성했다. 끝마쳤다는 의미입니다. 구속사역, 너와 나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사역을 완성했다는 뜻이지요. 그것을 확증하기 위하여 죽었던 몸으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일을 믿음의 손으로 받으면 됩니다. 이것을 구약 성경, 이사야에서는 어떻게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먹되 없이,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초청의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고통하시면서 이루신 일을 그냥 받아만 들이면 구원을 얻습니다.

 

 

8. 당신은 천국을 준비하면서 사는가?

*우리의 일생은 내세에서의 삶을 준비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현금의 생은 단명하지만, 단명한 삶으로 내세에서의 영원한 삶이 결정되어 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것인가? 이민을 준비하면서 살아야 한다.

 

*남태평양의 어떤 섬에 전래 되어 오는 이야기?/ 섬에 표류한 사람이 누구나 섬의 왕좌에 1년간 앉아 있도록 허락합니다. 일년 후에는 섬에 들어 때의 모습으로 나가야 합니다. 배로 들어 왔으면 배로, 스치로폼을 타고 왔으면 스치로폼을 타고, 널판지를 타고 왔으면 널판지를 타고서 바다로 돌려 보내 지게 됩니다. 번째 사람-몸에 좋은 것만 찾아 먹다가 쫓겨 났다, 번째 사람-집을 짓고 호사스럽게 살다가 쫓겨 났다, 번째 사람-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가서 동서남북을 관찰하고서 가까운 곳에 섬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을 시켜서 섬에 집을 짓게 하고, 밭을 일구게 하고, 우물을 파게 하고, 사람이 있게끔 만들었습니다. 1 후에 그곳에 가서 편안히 살았다는 이야기! 지혜로운 사람이 아닌가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부르시면준비되었는가?/4:12-13-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우리의 마지막 기도:아멘 예수여, 오시옵소서! 22:20/초대 교회의 마라나타 신앙이다. 고전16:22,마란㈜+아타(오다) 합성어다. 초대 교회에서 주님의 재림 대한 기대를 외침 속에 실었다. 아람어로 합성어는 아마도 팔레스타인,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갈래로 이해한다,. 번째는 명령어로 보는 경우는 마라나(정관사를 가진 )+(아타의 명령형꼴) 주여 오소서!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읽으면 2:20절과 같이 예수의 재림을 소망하는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번째로는 완료형으로 보는 경우는 마란㈜+아타(온다는 완료형) 주께서 오셨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초림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예언적 과거의 용법으로 본다면 미래에 재림하실 주님을 가리킨다. 우리 주님이 오실 것이다. /우리 주님은 4:5절에서 처럼 주께서 가까이 계신다. 

 

*오늘도 무사히! 아니라 오늘도 준비된 삶을 살도록! 언제라도 부르시면 이민 떠날 채비를 마쳐 놓고 살아야 한다. /우리 나라 민족을 배달 민족이라고 부른다/집에서 음식을 주문하면속도는 중국집(짜장면, 짬봉), 냉면, 튀김집 순으로 된다. 주문 받는 집은 언제나 전화에 즉각적으로 응답한다. 

 

*이민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이민 가서 나라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하고, 정보에 따라서 삶을 미리 준비해야 어려움 없을 것이다. 미국-미국의 문화, 언어, 직업 등등에 대하여 소상하게 알아야 고생을 안한다. 준비 안하고 그냥 미국에 왔다면 오는 날부터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야 한다./어떤 사람의 ? 우리나라 60-70년대 남미 이민이 유행했던 시절/돈만 내면 이민 대행 업체가 알아서 알선하고 비자 받아 주고 해서 이민 갔었다. 남미-파라구아이, 우루구아이! 우루구아이 이민 간다고 말하던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남미로 이민을 갔는데, 공하에 내렸는데, 우르구아이 공항에 내린 것이 아니라 내려보니 자신은 파라구아이 공항이란 것이 아니겠습니까?

 

9. 천국 짓기/영원히 내가 하늘나라에서 집을 짓는다. 짓고 짓세~ 우리 짓세

*고전3:10-15/ 우리의 신앙 건축의 ?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이지, 어떤 진리체계(dogma/교리체계) 아니다.다른 터가 없다-석가, 공자, 마호메트 같은 성인들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유일하고 견고한 터다.터가 견고하지 못하는 건축물은 무너진다..바울의 고린도에서 사역은 닦는 사역이었다. 기초 공사를 잘했다./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신앙의 (기초)! 그런데 예수가 누구이냐에 따라서 견고한 터인지, 부실한 터인지 구별이 된다. 예수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2천년간의 교회사적으로 너무 많이 있어 왔다. 예수는 완전한 하나님이고 완전한 인간이시다. 100%,-하나님, 100%-인간이다.  50%인간이고 50%하나님이 아니다-이단-예수는 하나님의 번째 피조물이다-여호와의 증인들!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이들과는 말을 섞지 말라. 교제권 밖으로 밀어 버리라. 집안으로 들이지 말라!. / 종류의 구조물-금은보석으로, 나무풀짚으로~내구재 영속하는 재로, 값비싼 재료 vs 단용재 일시적인 재료 값싼 재료, 누가 집을 짓는가? 각자가 신앙의 집을 일생 동안 지어간다. 집은 상징적인데, 우리가 땅을 떠나서 우리의 영혼이 하늘 위에서 영원히 살게 집이다. 지어야 겠지요. /심판-불로써 시험한다. 재료의 의미는 무엇인가? / 번째가 신앙의 동기가 무엇인가? 신앙의 순수성, 사심이 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나님께만 영광을 드리기 위하여 했는가? 아니면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이런 사람이요 하면서 보여 주기 위하여 했는가? 바리새인들처럼(6:1-18,기도와 금식과 구제에 있어서)!/ 번째는 믿음과 깨달음 바른 교리(진리) 따라서 했는가? 구약 시대의 제사에는 소양이 최고의 제물이었고 이것은 부자들이 드리는 제사에 사용이 되었다.그러나 비둘기나 가루 웅큼도 제단에 올릴 수가 있는데 이는 가난한 자의 제물이다. 1장과 2장에는 같이 하나님이 향기로운 제사로 받았다. 제물에는 차이가 없다. 무엇이 차이가 있는 것인가 믿음과 정성이다. 12:41-42-과부의 렙돈; 금식.철야.새벽기도하고, 십일조 드리는 목적이 구원 얻기 위하여 그렇게 한다면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지은 집이 것이고 구원의 기쁨이 있기 때문에 감사의 표현으로써 그렇게 한다면 내구재로 집을 짓는 것이다. / 벽돌 장에 쌓여 가면서 하늘 나라에 내가 영원히 집이 완성되어 간다-상징이고 비유적이다. 신앙의 집은 건축이 불가능한 집이다. 한국에서는 요즈음 낡은 아파트를 재건축 하지요.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불로써 심판하는데 내가 지은 집이 모두 타도 지옥으로 가지 않고 구원만은 받는다. 불탄다면 이것은 상급이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일생 동안 힘을 다하여서 섬기고 수고했지만 마지막 날에 모두 불타 없어졌다면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어떤 권사의 ~하늘에 올라 갔더니 하나님께서 자신이 짓고 있는 신앙의 집을 보여 주시는데, 이제 겨우 뼈대만(골조만) 앙상하게 지여져 있는 꿈을 꾸었다. 돌아 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당신이 짓고 있는 하늘에 있는 신앙의 집은 황금.보석 꾸민 멋진 집인가? 얼마나 완성? 준공 허가가 거의 끝나 가고 있는가?

 

10. 하나님의 심판/하나님의 다림줄과 하나님의 저울

*7:7-9/다림줄/목수나 미장이의 필수품-줄과 끝에 납을 달아서 벽돌을 쌓을 때에 벽돌이 똑바로 쌓도록 하는 건축용 기구다. 수직을 측정하는 도구/<다림줄의 >=다림줄을 드리고 쌓은 벽이라는 의미이다. / 곁에= 맞은 편에! 이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심판의 위치에 서셨다는 의미이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쌓아 가고 있는 (성벽)-이것은 상징적인 의미인데,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따라서 살고 있느냐 없느냐는 의미입니다. 다림줄은 무엇일까? 언약의 다림줄(말씀의 잣대) 평가한다. 담이 기울어져 있었다. 개인적인 신앙의 삶도 엉망진창이고, 이스라엘 사회적 정의도 땅바닥에 떨어져 있다. 이것을 기울어진 (성벽)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기울어진 성벽은 무너질 것이다. 성벽의 붕괴의 의미는? 국가나 도시의 멸망을 의미한다./하나님께서 다시는 용서하지 않겠다- 이상 지나쳐 넘어가지  않는다(원어의의미),옆으로 지나가지 않겠다-용서를 위하여!/하나님의 단호한 결심 때문에 아모스가 중보기도를 못한다. 첫번째 메뚜기 재앙 때에는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하면서(2) 죄를 사하여 달라고  중보기도했다. 두번째 불로 바다와 땅을 징벌하는 환상을 보고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하면서 불을 그쳐 달라고 중보기도했다. 번째, 번째 재앙에서는 하나님이 들으셨다. 그러나 번째에는 아모스가 중보기도를 없었다. ? 하나님의 결심이 너무나 확고 부동했기 때문이다. 8절에 다시는' 확고한 의지를 읽을 수가 있다. 그래서 중보기도를 감히 못했다./용서의 기회를 이스라엘, 구약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은 상실했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은 멸망 밖에는 없다. 하나님이 회개의 기회를 주실 때에 기회를 잡고서 삶을 돌이키면 죽지 않고 멸망당하지 않는다.

 

*5:27/하나님의 저울대/5:25-28/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자음 글자로만 되어 있는 아람어! 벨사살왕 (나보니두스의 아들, 갈대아의 마지막 )-상황? 메대와 파사 연합군이 성을 에워싸고 있는 상황인데, 사기 진작을 위하여 귀족들을 모으고 왕실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갖가지 기명을 가지고 술을 마시면서 우상을 찬양하고 있었던 밤에 왕궁 맞은 벽에 하나님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기록한 글자였다. 글자가 바로 메네 메내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귀다. 의미가 무엇일까? 벨사살과 나라 박사들은 몰랐을까? 아람어 였기 때문에 읽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해석을 정확하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니엘이 불려갔다/다니엘을 어떻게 알았을까? 우선 아람어로 읽어 보면, 단순하다. 메네, 데겔,우바르신은 모두 당시 통용되는 화폐 단위다. 메네는 1므나,, 데겔은 1세겔, 우바르신은 우는 접속사 그리고라는 의미이고 바르신은 베레스의 복수형이다. 단수형은 베레스인데, 베레스는 , half라는 의미인데, 므나의 1/2이나 혹은 데겔의   1/2 가리킨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읽어 보면 므나, 므나, 세겔, 세겔들( 므나들)이라는 문귀로 읽혀 지는데, 읽은 것은 문제가 없으나, 문귀에 담겨진 신적인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모르겠다는 말이다. 다니엘은 어떻게 알았을까? 다니엘은 문귀에 모음을 달리 붙임으로써 다르게 읽었다. 므나를 세다, count 읽었다. 하나님이 왕의 나라를 세어서 그것을 끝내 버렸다로 해석, 므나를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신적 의지가 확정되었다는 것을 말하지요. 요셉도 꿈을 꾸었고, 바로도 꿈을 겹처서 꾸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확고부동하게 결정했다는 것을 나타낼 때에 그렇게 하지요. 갈데아 벨사살의 치세가 끝났다는 것을 므나라는 글자는 알려 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데겔은 히브리어로는 세겔이라는 말로 표시하지요. 세겔이지만 모음을 달리 붙이면 저울에 단다는말입니다. 하나님의 저울에 벨사살 왕의 행위를 달아 보았더니 부족하게 되었다는 말이지요. 27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바르신은 우는 접속사이고 바르신은 복수형인데 단수는 베레스인데, 모음을 조종하여서 동사로 읽으면 나눗는다는의미입니다.   메데와 파사 왕국으로 나누어진다는 말이지요. /데겔-하나님의 저울대! 하나님이 삶을 저울에 달아 보신다면겁나는 말이지요. 하나님이 세우신 기준점을 넘어선 다면 살아 남겠지만, 모자라면 죽음이다. 하나님의 저울에 달릴 준비가 되었는가?

 


천재소년

2013.03.18 18:19:43

설교 음성 파일 링크 : http://www.churchboston.org/sermon/030813.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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