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1. 올 한 해 동안의 우리 교회의 표어? 주여, 내 등불을 켜 주소서, 저 어둔 세상을 비추도록! /시18:28, 마5:14-16

/시18:28<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마5:14-16<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올 한해 동안 내 주변을 비추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쳤는가? 우리의 이웃들이 우리들에게서 나오는 빛을 보고서 그들이 우리 주님께 찬사를 돌리게 했는가? 아니면 우리의 이웃들이 우리들의 삶을 보고 우리 주님을 비난했지는 않았는가?  시18편 28절의 나의 등불은 무엇일까? 내 영혼 혹은 내 삶을 가리키지 않는가? 내 영혼이 등불과 같다. 그런데 내 등불이 빛을 내지 못하고 꺼져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께서 내 꺼진 등불을 다시 켜 놓으셨는데, 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 또 그 호롱불이 사위어져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등불이 꺼져 가면 우리의 삶도 빛을 내지 못하고 어두워지고 캄캄해져 가겠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엇으로 불렀습니까? 세상의 빛이 되어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빛이다로 우리의 id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이기에 어둔 세상을 우리의 빛으로 비추어야 합니다. 너희 빛이 비치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너희 빛! 우리들이 알기로는 우리에게는 빛이 없고, 빛 되신 예수님의 빛을 받아서 세상에 반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치 밤하늘의 달빛처럼 말입니다. 밤 하늘의 달은 발광체가 아니고 반사체입니다. 우리들도 예수의 빛을 받아서 세상에 빛을 반사합니다. 어떤 빛을 비추입니까? 그 빛을 우리 빛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빛을 우리가 받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모난 내면 세계를 치유한 후에 세상 밖으로 비추어지는 빛이 우리의 빛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마다 세상을 비추는 빛이 다릅니다. 네온 사인처럼, 빨간 빛, 노란 빛, 초록빛처럼 다양한 색깔의 빛을 우리의 주위에 우리는 비추입니다. 그 빛의 근원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우리 주님이 내게 비추인 빛은 내 영혼을 치유하면서 다른 빛으로 세상을 밝히고 있습니다. / 우리의 빛은 무엇으로 세상에 드러납니까? 우리의 착한 행실입니다. 우리의 이웃에게 우리는 어떤 일을 한해 동안 했습니까? 너희의 착한 행실을 누가 봅니까? 이방 불신세계의 사람들이 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성경은 무엇입니까? 성도들의 행실입니다. 그들은 성도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고서 하나님을 알지요.  예수 믿는 이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라는 말을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탁월한 삶을 살아야 하고, 영적으로도 순수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2.    지난 주에 성령은 불 같은 성령이 있는가 하면 물 같은 성령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냥 불같다, 물같다는 것은 단순히 머리 속으로 생각하고 유추하는 그런 이미저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 실제적으로 느끼게 되는 그런 이미저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실제적으로 우리의 몸의 신경 계통이 불구덩이 빠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느끼고, 시원만 생수가 배에서 솟구치는 것 같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불 같은 성령, 물 같은 성령이라고 구별해서 부르고 있지요. 예수를 믿고 따르는 성도들이 이런 성령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2천년 전의 사도들과 예수를 따르는 수 많은 1세기의 성도들이 경험했던 것을 2천년이 지난 오늘 이곳 보스톤에서도 예수 믿는 우리들이 동일하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합니다. 신약 시대, 신약 성경에는 확실하게도 문자적으로 물 같은 성령 역사에 대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러면 구약 성경에는 물같이 역사하는 성령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까? 성경에는 물이 성령을 비유하고 있음을 여러 구절에서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겔47:1-12절/에스겔이 보았던 환상이다. 에스겔은 언제적 사람인가? 포로 전기의 선지자입니다. 주전 587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이 포로로 잡혀서 바벨론으로 끌려가지요. 주전 6세기 예언자가 에스겔입니다. / 1-2절에서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성전에서부터 물이 흘러 나온다. 성전 문지방-동쪽에서 물이 나와서 성전 남쪽 방향으로 물이 스미어 나오기 시작한다. /3-5절까지는 스미어 나온 물이 불어 난다. 천사가 손에 척량줄을 잡고 천 척을 측량했다고 하는데, 척은 큐빗을 가리킨다. 1큐빗은 보통 45cm-50cm에 해당된다. 일천 척은 약 500m정도된다.물이 발목에 오는 정도가 되었다. 다시 일천 척을 측량했더니 그 물이 무릎까지 차게 되었고, 다시 일천 척을 측량했더니 허리까지 차 올랐고, 다시 마지막으로 일천 척을 측량했더니 물이 불어나서 온 몸이 잠기게 될 정도이고 깊은 강이 되었고, 사람이 걸어서는 결코 건널 수 없는 헤엄칠 물이었다-이 장면, 이 환상은 처음에는 성전에서 스미어 나오는 물은 적은 양의 물이지만, 그 물이 불어나서 이내 곧 큰 강이 되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 6-12절까지에는 성전에서 흘러 나온 물이 세상에 만드는 결과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결과?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이 생겨났다. 그 나무는 과실 나무인데, 매 달마다 새 열매를 맺어서 사람들이 먹을 거리가 된다. 또한 그 나무의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된다. 강 가에 무엇이 생기는가? 어부들이 강가에서 고기를 잡게 된다.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서 큰 바다의 고기처럼 심히 많을 것이다. 또한 성전에서 나온 물의 최종적인 종착지는 사해 바다입니다. 사해는 생명체가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해에 이 물이 들어감으로써 생물들이 살고, 고기가 심히 많이 살게 된다. 사해 바다가 살게 된다. 그러나 바다와 육지 사이에 있는 진펄과 갯펄은 소금땅이 되어서 되살아나지 못하는 지역이 될 것이다.-이것이 에스겔이 보았던 환상의 내용입니다. 
/물이 흘러서 물이 닿는 곳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생명이 다시 사는 회복이 일어난다. 생명운동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이런 생명운동은 무엇 때문에 일어 난다는 말인가?  12절 중반부에 기록되어 있기로는~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우리나라 개역 성경에서는 인과 접속사를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어로 되어 있는 원문과 영어 본역본에는 ‘왜냐하면’으로 되어 있는데 말입니다. 이런 생명의 회복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성전에서 스미어 나오는 물이 강물을 이루기 때문에 되는 일입니다. 이 물이 무엇을 상징하고 비유합니까? 바로 성령을 가리킵니다. 물로 비유된 성령께서 죽은 영혼을 살려 내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물이 성령을 비유하는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출17:5-6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배서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르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반석에서 물을 낸 이 장소를 므리바, 맛사라고도 부르지요. 므리바는 다툼을 의미하고, 맛사는 시험을 의미하는 단어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물 문제 때문에 하나님과 다투었고, 또한 하나님을 시험했기 때문이지요. /반석을 마른 나무 지팡이로 치면 보통은 나무 지팡이가 뿌러 지는게 정상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의 일이 일어 났습니다. 나무 지팡이가 뿌러 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위가 갈라지게 되었고 그 갈라진 곳으로부터 생수가 흘러 나와서 목마른 구약의 백성들의 갈증이 해결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의미?/이 사건에서 반석은 예수를 가리키고, 물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을 typology라고 부르지요. 구약에서 일어났던 어떤 사건이나 제도나 형상들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을 가리킨다는 말입니다. 구약은 그림자이고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는 실체라는 말입니다. 호렙산에서 모세가 지팡이로 치는 행동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런 해석을 유형론이라고 부르지요.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신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요. 성령이 성도들에게 임하게 되었지요. 고난 당하시고 부활.승천하심으로써 높임을 받으신 예수로 말미암아 비로소 성령께서 인생들에게 오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지난 금요일날 읽었던 요한 복음 7장 39절에서는 이렇게 요한이 기록했지요<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아니하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욜3:18<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 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샘물이 어디에서? 여호와의 성전에서부터? 이 샘물로 인하여 세상이 풍요로움을 누리게 된다. 이 샘물이 무엇인가? 에스겔이 보았던 그 환상과 맥을 같이한다.
/슥14:8<그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 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영어로는 생수가 living water이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성령을 상징한다.

3. 구약 성경에는 물이 성령을 상징하여서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이해를 가지고 우리 주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생각해봅시다. 요3:1-8절을 읽어 봅시다.
/중생이란 무엇인가? 요3: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난다! 거듭난다는 거듭이라는 한자어가 중이고 태어난다는 말이 생이기에 중생이라고 부릅니다. Born again! 예수 진실히 잘 믿는 성도를 중생한 신자라고들 부르지요.  날라리 신자를 영어로는 church goer! 중생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아노텐이라는 글자를 쓰는데, 이 글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오늘 본문에서 번역한 대로 거듭이라는 말이고, 다른 한 가지는 ‘위에서’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 주님이 이 말, 아노텐이라는 말을 했을 때에 니고데모는 거듭이라는 말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거듭나기 위해서는 다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서 나야 하는가하는 silly한 말을 하게 되었지요. 우리 주님이 아노텐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위에서’라는 의미를 가지고 사용했습니다.  니고데모와 우리 주님과의 대화가 뒷 부분으로 진행되어 나가면 우리 주님이 하늘의 일, 땅의 일을 나누어서 말하고 있고, 하늘에 올라간 자와 하늘에서 내려온 자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을 보아서 우리 주님은 아노텐이라는 단어를 ‘위에서’라는 의미로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한번 더 라는 의미인 거듭이라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중생이라고 번역을 했지만 중생은 땅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즉 하늘에서부터  나야 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거듭 나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늘 위에서 나기 위한 방법? 요3:5절에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위에서 나기 위한 방법!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질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미국 들어 오면서 해야 되는 일은 미 대사관에 가서 비자,사증을 받는 일입니다. 합법적으로 미국에 들어오기 위하여는 미국 영사에게서 비자 스탬프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 못받으면 미국에 들어 오지 못합니다. 마찬 가지로 천국의 비자가 무엇입니까? 중생입니다. 중생은 어떤 방법으로 일어납니까? 물과 성령으로 나야만 가능합니다. /    물은 무엇을 가리키고, 성령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우선 물부터 생각해 봅시다. 물을 물세례로 해석하는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와 대화를 할 때에는 예수께서 주시는 물세례가 정립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주는 세례는 후대의 교회가 만든 예전입니다. 물을 물세례로 해석한다면 시대 착오적인 해석이 되겠지요. 또한 물로 주는 세례를 미처 받지 못하였을 지라도 예수를 영접하면 천국 들어 가지요.  천국 들어가기 위하여 반드시 물세례를 받아야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또다른 해석은 물이 진리를 비유적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곧 말씀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성령이 중생사역을 못하시는가? 성령은 말씀에 묶여 있는가? 아니지요. 성령은 자유롭게 사역하십니다. 말씀이 있건 없건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로 사람을 변화시켜서 천국으로 인도하지요. 말씀은 성도의 삶에 참으로 중요하지만, 말씀(지상)주의의 오류에서는 벗어 나야 한다./     또 다른 해석? 물은 자연적 출생을 가리킨다고 해석합니다. 우리들이 엄마 태중에서 물 가운데 있다가 태어 납니다. 태아가 엄마의 자궁 속에서 물에 둘려 쌓여 있습니다. 그 물을 양수라고 부르지요. 아기는 물 속에서 자라나서 세상 밖으로 나오지요. 물로 인하여 자연적 출생, 육신적인 생명을 갖게 되지요. 성령으로 인한 중생이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연적 출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말은 맞는데, 그 말 하려고 우리 주님이 물을 성령 앞에 놓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좋은 물에 대한 해석은 물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중생은 물과 성령으로 일어나는 일인데, 물과 성령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물 즉 성령으로 읽을 수가 있습니다. 앞에 있는 물은 성령을 상징하는 말이고, 뒤의 성령은 중생을 일으키는 실재를 가리킵니다. 중생은 성령이 행하는 사역입니다. 사람의 죄와 허물로 죽어 있는 영혼을 살려 낼 뿐만 아니라, 죄의 더러움과 오물을 씻어 내어 버리는 역할을 합니다. 성령은 씻는 역할뿐만 아니라 살리는 역할을 한다는 말입니다. 왜 우리 주님이 니고데모에게 이런 투로 말했을까?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공의회원인 율법학자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물은성령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투로 말씀하셨습니다.  6절에 보면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무엇이 빠져 있습니까? 물이 빠져 있지요. 단순하게 영으로 난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또한 8절에도<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에서 보면 성령으로 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지요. 무엇이 빠져 있습니까? 물이 빠져 있습니다. 물은 성령을 상징하는 단어이기에 빼었지요. 중생은 성령이 행하는 사역입니다. 딛3:5절<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이다>/        중생은 누구에게 있어야 하는 일인가? 7절<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누가 거듭나야 한다는 말입니까? 니고데모라는 일 개인에게 해당 하는 말인가? 아니다! 산헤드린 공의회원 모두에게 하신 말씀이다. 산헤드린 공의회원들은 70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유대인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재들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로 구성되어 있는 율법문제와 제사 문제에 정통해 있는 분들입니다. 그 당시의 모든 유대인들보다 믿음이나 학식이나 모든 면에 있어서 뛰어난 인재들이 산헤드린 공의회원들입니다. 그들을 향하여 너희들도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요?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니고데모에게 우리 주님이 ‘너희들이 거듭나야만 한다’라고 원문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말 개역 성경은 거듭나야  하는 명령을 니고데모라는 한 인물에게만 하셨는지 아니면 산헤드린 공의회원 모두에게 하셨는지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릭으로 된 원문을 보면 명확합시다. 2인칭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우리 주님은 유대의 최고의 지도자들에게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듭나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요한 복음 4장으로 넘어가면 사마리아의 이름 없는 한 여인, 인생의 문제로 늘 갈증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그 여인에게 생수인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지요. 이 땅에 살고 있는 최고의 학식과 최고의 지성, 최고의 신분을 지니고 있어도 우리 주님 주시는 성령을 받아야 하고,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무식하고 천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성령을 받아야 영적으로 만족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예수와 성령은 최첨단의 문명화된 사회 뿐만 아니라 아마존의 정글 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        성령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일은 우리의 일부를 개조시키는 작업이 아니다. 우리의 근본, 우리의 본질, 즉 우리의 영혼 전체를 바꾸어 놓는 작업입니다. 나의 나 됨이 깊은 곳에서 변화되었다는 것을 6절이 말하고 있지요<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육신 상태로 있는 인생들이 아무리 좋은 교육과 훈련을 받아도 여전히 육신일 뿐입니다. 육으로는 천국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천국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한 번 나면 두 번 죽고,두 번 나면 한 번 죽는다!/    지금도 성령께서는 불신자들 가운데서 중생의 역사를 행하고 계십니다. 영혼을 살리는 역사를 성령이 행하십니다. 신자들 가운데서는 성령께서 죄를 씻어서 영혼을 새롭게 만드는 역사를 행하고 있습니다. 모두 물 같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해야 합니다. 어디에 우리의 삶에 말입니다. 이 물이 흘러 가는 곳곳마다 죽은 영혼들을 살려 내게 됩니다.


송주석

2014.01.05 15:21:49

메시지 음성파일 링크 http://www.churchboston.org/sermon/122713.mp3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금요기도회(12/27/2013) [1] 김영호 목사 2014-01-01 3350
361 금요기도회(12/20/2013) [1] 김영호 목사 2013-12-25 3336
360 금요기도회(12/13/2013) [1] 김영호 목사 2013-12-18 3331
359 금요기도회(12/6/2013) [1] 김영호 목사 2013-12-10 3328
358 금요기도회(11/29/2013) [1] 김영호 목사 2013-12-05 3323
357 금요기도회(11/22/2013) [1] 김영호 목사 2013-11-27 3109
356 금요기도회(11/15/2013) [1] 김영호 목사 2013-11-21 3113
355 금요기도회(11/1/2013) [1] 김영호 목사 2013-11-04 3349
354 금요기도회(10/25/2013) [1] 김영호 목사 2013-10-29 2808
353 금요기도회(10/18/2013) [1] 김영호 목사 2013-10-22 2768
352 금요기도회(10/11/2013) [1] 김영호 목사 2013-10-18 3319
351 금요기도회(10/4/2013) [1] 김영호 목사 2013-10-07 2794
350 금요기도회(9/25/2013) [1] 김영호 목사 2013-10-02 2766
349 금요 철야 기도회 (차해경 목사님) 송주석 2013-09-22 2888
348 금요기도회(9/13/2013) [1] 김영호 목사 2013-09-15 2747
347 금요기도회(9/6/2013) [1] 김영호 목사 2013-09-07 2860
346 금요기도회(8/30/2013) [1] 김영호 목사 2013-09-01 2757
345 금요기도회(8/23/2013) 김영호 목사 2013-09-01 2740
344 금요기도회(7/5/2013) 김영호 목사 2013-07-09 3017
343 금요기도회(6/28/2013) [1] 김영호 목사 2013-07-09 2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