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레파토리-33
금요기도회 : 11/22/2013


1. 그리스도인의 소망:그리스도인은 사후에 어디에 있게 되는가?/눅23:42-43

*낙원에 있게 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낙원은 어디인가? 내가 이 땅에서 삶을 마치면 들어가게 되는 곳이 낙원이라는 말입니다. 낙원은 어떤 곳일까? 좋은 곳일까 아니면 나쁜 곳일까?
*낙원이라는 말은 즐거울 낙자와 동산 원자이지요. 즐거움이 있는 동산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낙원이라는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는 세 번 밖에 사용이 안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에 회개하는 우편 강도에게 하셨던 약속의 말씀이지요. 십자가의 무시무시한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이 있는 현장에서 우리 주님께서 우편 강도에게 오늘 낙원에 함께 있게 될 것이다라는 소망의 말씀을 주셨지요. 그렇다면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낙원’이라는 곳에는 고통과 아픔이 없는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곳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고후 12:2-4절<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지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사도 바울의 입신체험(일반 신비체험에서는 유체이탈이라고 부르는 현상)을 가리킨다. 기도하다가 그의 영이 육신을 빠져 나와서 셋째 하늘에 잠시 들어 갔다가 다시 육체로 들어 오는 그런 일이 일어났다. 셋째 하늘을 낙원이라고 불렀는데, 지극한 복락과 기쁨이 있는 장소임에는 틀림이 없다. 낙원에서 듣던 그 말 소리들은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그런 말소리다. 아름답고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찬 말 소리다.  현세에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낼 수가 없는 그런 목소리라는 말이지요. 바울은 기도하다가 그런 세계를 체험하여서 알게 되었다. 그런 세계가 그의 말로는 낙원이라고 규정했다
/계2:7절<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낙원은 하나님의 낙원이라고 규정해 주고 있습니다. 생명 나무는 어디에 있는 나무입니까? 창세기 2-3장에 나오는 에덴 동산에 있는 나무들이 아닙니까?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어디에 있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에 건설하셨던 에덴 동산의 한 가운데 있게 하셨지요. 에덴 동산은 어떤 동산인가? 부족함이 없는 충족된 동산이 아니던가요? 네개의 강이 에덴 동산이 발원지입니다. 물이 가득차 있고, 수목이 우거져 있고, 과일 나무와 생명과 선악과까지 있는 동산입니다. 낙원을 낙원  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요? 생명이 아닙니까? 내일 내가 죽어야 한다면 아무리 좋은 것이 많이 쌓여 있어도 그것들은 나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이런 유한한 존재들, 죽음 앞에 서 있는 존재들, 이것을 영어로는 mortal being에게 불멸의 생명이 제공된다면 그것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기쁨이 있는 곳이 낙원이 아닙니까? 우리 주님께서 아담이 잃어 버렸던 낙원, 실낙원,을 회복했습니다. 그것을 복락원이라고 부르지요. 복락원의 핵심이라고 할 만 것, 그것이 바로 생명 나무에 접근하여서 유한한 우리 인생들이 따먹음으로써 영생을 누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우리 주님께서 생명나무를 지키는 불칼을 치워버렸고, 생명나무를 지키는 케루빔 천사들을 치워 버렸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자유롭게 생명 나무에 접근하여서 생명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영생하게 끔 만들어 주셨습니다.  후기 유대교로 넘어가면 아담의 범죄 때문에 잃어 버렸던 그 에덴 동산, 이것을 하나님이 셋째 하늘에 감추어 놓았는데, 이제 죽음 후에 성도들은 그 낙원에서 생명나무의 실과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 아닙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낙원을 셋째 하늘로 이해했었습니다. 믿음 지키고 죽으면 우리의 영혼이 낙원에 들어간다는 것이 바로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는 일을 가르킨다는 말입니다. 
/눅16:23절<그가=그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아브라함의 품이 낙원을 가리키는 상징어이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천국과 지옥은 무엇이고, 천국은 낙원과 같은 곳인가 아니면 다른 곳인가? 우리가 땅에서 삶이 마감되면 우리의 영혼이 천국 간다고 믿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 천국이 낙원이라는 말입니까? 헷갈리지 않습니까? 천주교와 개신교가 이점에 있어서는 다른 점이 많습니다. /천국(=하나님의 나라)은 삼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천국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임 속에 있습니다. 두 번째로 천국은 우리가 죽으면 들어가는 하늘 나라를 가리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낙원입니다. 세 번째로 천국은 우리 주님의 재림 후에 완성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킵니다. 오늘 본문의 낙원은 천국의 일부분과 동일시 되고 있지요. 그래서 낙원과 천국은 같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낙원 즉 천국에 들어간다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죽으면 천국 가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는 전혀 틀린 기도가 아닙니다.
/인류 역사의 종말에 있게 될 사건은 무엇일까요? 무어니 무어니 해도 예수의 재림입니다. 우리 주님이 구름 타고 다시 오시는 사건이 인류 역사의 마지막 역사적 사건이 됩니다. 예수의 재림이 있게 되면 죽은 자들이 살아 나게 되지요. 죽은 자들이 모두 다시 살아나게 되는 일반적인 부활 사건은 우리 주님의 재림 사역과 아주 밀접하여 있어서 동시적인 사건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인류 전체의 전반적인 부활 사건과 예수의 재림 사건이 있고 난 다음에 있을 사건은 심판 사건입니다. 이 심판 사건은 계21장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백보좌 심판이라고 부르지요. 크고 흰 보좌가 설치되고 우리 주님이 그 자리에서 앉으셔서 영생 얻을 자와 영벌 받을 자를 구분하시지요. 영생 얻을 자는 천국으로 들여 보내고, 영벌 받을 자는 어디에 들여 보내지요? 지옥이라는 곳은 불이 타는 못이지요. 그 불못에서 세세 무궁토록 고통을 받게 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하나님의 심판 선고가 있고 난 다음에 최종적으로 의인과 악인이 들어가서 영원토록 살게 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런 천국의 소망을 어떻게 표현했나요? 롬8:23절<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라> 예수 믿는 고울, 목표, 마침점이 무엇입니까? 하늘나라, 영계에 들아가 앉아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무엇이라고요? 땅에  있는 동안에 바라고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분법으로 나누어 이해해 본다면 우리의 영혼은 구원받았지만, 우리의 몸은 아직 구원 받지 못하고 땅에 있으므로 옛질서 아래 있습니다. 그러니 무엇이 나옵니까? 탄식이 나오지요. 이렇게 사는 것이 진리를 따르는 삶을 우리의 중생한 영혼은 잘 알고 있는데, 우리의 몸이 따라 가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무엇인 나옵니까? 장탄식이 나오지요. 그러므로 무엇을 사모합니까? 우리의 몸도 우리의 영혼이 구속된 것처럼 구속되기를 바라게 되지요. 구속이라고 해서 감옥에 구금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감옥에 묶여 있는 사람을 풀어 내는 것을 구속(헬라어:아폴리트로시스)이라고 부릅니다.  돈을 주고서 종으로 매여 있는 노예를 사서 자유민으로 풀어 줄때에 바로 이 구속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우리의 몸이 옛 질서인 눈물고 고통과 한 숨과 죽음 아래 있는데, 이런 고통에서 벗어 나기를 바란다는 말이지요.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몸의 구속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혼이 간절히 바라는 바라는 말이지요. 계21:4절<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렇다면 낙원이라는 곳은 어디이며 이것은 천국과 어떻게 다릅니까?  낙원과 천국의 다른 점을 비유로 말한다면, 버스가 잠깐 잠깐 서는 것을 정류장, 정거장, Bus stop이라고 부르고, 최종 목적지를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터미널이라고 부르지요. 천국과 지옥은 터미널입니다. 그러나 낙원은 bus stop같은 곳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죽게 되면 우리의 육체, 우리의 육신은 땅에 놓아 두고 우리의 몸에서 분린된 우리의 영혼이 위로 올라갑니다. 우리의 영혼이 어디로 갑니까? 낙원에 들어갑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은 어디라고요?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있고난 다음에 우리 하나님이 새하늘과 새 땅을 만드시는데, 천국은 바로 그곳을 가리킵니다. 천국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르지요. 완성된 하나님 나라, 즉 새 하늘 새 땅을 천국이라고 부르지요. 보통 우리들이 죽으면 천국 들어간다고 말을 하는데, 정확하게 이야기 한다면 낙원에 들어간다는 것이지요. 낙원은 우리의 영혼이 잠시 동안 머물러 있는 곳입니다. 낙원은 중간 상태를 가리킵니다. 인간이 육신이 없는 영혼이 최종적인 정착지인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동안 머물러 있는 곳입니다. 그곳이 어디라고요? 낙원입니다. 낙원, 이곳에 우리 주님 예수님도 부활한 몸을 가지고 계시는 곳입니다. 죽은 성도의 영혼들과 우리 주님 예수님과의 친교가 일어나는 자리가 바로 낙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지 않고 죽은 영혼들, 즉 불신자들의 영혼은 어떤 상태에 있게 되나요? 그들도 낙원에 있게 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런 불신자들의 영혼은 ‘음부’에 있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불신자들도 음부라는 곳에 모여 있으면서 마지막 심판을 기다리지요. 마지막 심판을 받은 후에 최종적으로 어디에 들어가냐고요? 지옥이라는 곳에 들어가서 세세 무궁토록 고통을 받게 됩니다.  사람의 영혼은 땅에서의 삶을 마치게 되면 중간 상태의 장소인 <낙원과 음부>라는 장소에 둘 중에 하나에 반드시 들어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최후의 심판이 공식적으로 있게 됨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기다리게 됩니다. 낙원에 들어가 있는 의인들, 예수 믿고 죽은 성도들은 천국을 기다립니다. 마음이 어떨까요? 기쁨이 가득하겠지요. 또한 땅에서 행하였던 주를 위하여 행하였던 일에 대한 상급을 기다리면서 얼마나 최후의 심판 날이 다가 오도록 기다리겠습니까? 그러나 불신자들은 어떻습니까? 음부라는 곳에 모여 있으면서 곧 있을 최후의 심판을 무거운 마음으로 두려운 마음으로 불안에 떨면서 최후의 심판을 기다립니다. 곧 무시 무시한 형벌인 지옥 형벌이 내려 질 것이라는 것을 알지요.
/낙원과 음부라는 중간기적인 장소에 들어가 있어도 의식은 깨어 있습니다. 의식이 잠들어 있지 않습니다. 의식이 코마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낙원과 음부라는 곳에서 영혼이 잠들어 있지 않습니다. 몸은 없지만, 땅에 나두고 왔기 때문에 말입니다만,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살아 있어서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몇몇 개신교 학자들은 성도들의 영혼는 낙원에 가서 살아 있지만, 불신자들은 죽음과 함께 불신자들의 영혼은 음부라는 곳에 가지 않고, 아주 창조 되지 않은 것처럼 멸절되어 버린다고 주장합니다.  어떻게 그런 결론에 그분들이 도달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서적인 견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들의 결론이 옳다면 한 세상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원없이 산 후에는 그냥 내가 창조되지 않았던 것처럼 내 영혼이 멸절되어 버린다면 그렇게 한 세상 풍미하다가 죽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생각으로 한 세상 살았는데, 마지막날 내가 없어 지지 않고 지옥이라는 곳에서 영원히 시달리면서 고통스럽게 산다면 참으로 후회 막급한 삶이 되겠지요.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낸 사람들이 신자들이건 불신자들이건 한번 태어난 사람의 영혼은 결코 멸절되지 않습니다. 역사의 마지막 날에 천국이 아니면 지옥에 들어가 있게 마련입니다. 중간 지대는 없습니다. 천주교에서 주장하는 연옥이라는 곳은 성서에는 없습니다. 천주교가 중세기를 거치면서 중간기에 대하여 사색하다가 내어 놓은 하나의 주제일뿐입니다. 성서적이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믿음을 끝까지 지켜 내야 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손에 붙들고 있는 천국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송주석

2013.11.30 21:51:18

메시지 음성파일 링크 http://www.churchboston.org/sermon/112213.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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