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1. 출19:5-6절


        2)두번째 우리의 위상?/제사장 나라!-이 말이 가리키는 의미? 이스라엘 나라의 백성 모두가 제사장들로 구성된다는 것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아니겠지요? 왜요? 이스라엘에서 제사장은 12지파 가운데 한 지파인 레위 지파의 사람들 중에서 아론 계열의 사람들만 제사장이 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제사장이 될 수가 없겠지요. 그러니 구약의 백성들로 이루어져 있는 이스라엘 나라가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은 다른 의미를 나타내겠지요. 정확한 의미는 이스라엘 나라가 세상 가운데 있는 이유는 모든 열방 나라들 가운데서 무슨 역할은 한다는 것입니까? 제사장의 기능과 역할을 하는 나라가 된다는 말입니다. /구약 백성들이 살던 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 사회 내에서 제사장의 역할이 무엇일까요? 제사장 고유의 역할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서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일입니다. 제사를 집전하여서 백성들의 죄를 하나님께 고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백성에게 전하는 역할, 이 역할은 그 어떤 누구도 대신 할 수가 없습니다. 왕도 할 수가 없고, 선지자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제사장 고유의 역할입니다. 구약 시대에 있어서 제사장은 명망 높은 지위에 있기에 백성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제사장의 나라로 만들어서 열방들을(이방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서 중재하는 역할을 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지요. 이스라엘 나라는 열방에 비하여 아주 작고 미약한 민족이지만 장래에는 하나님께서 열방들로부터 그런 존경과 찬사를 받게 하시겠다는 선언이지요. 사61:6절<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제 2 이사야의 예언인데 이 예언은 출애굽기 19장에서 유래되었다!  / 이런 축복을 이스라엘, 구약의 백성이 언약을 파기함으로써, 누릴 수 없게 되었고, 이 축복을 누가 계승하게 되었나요? 예수의 공동체가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서 이방 나라들에게 제사장 노릇을 하게끔 되어졌습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 1:6절<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계5:10절<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계20:10절<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 전서 2:9절에서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royal priesthood! 왕적인 제사장!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이 신앙 공동체, 예수의 공동체(이것은 하나다)를 이루어서 세상 나라들에 대하여 어떤 역할을 감당하는가? 제사장의 기능을 감당한다. 그러면서 또 어떤 역할을? 왕의 기능, 통치의 기능도 수행하게 된다. 세상 나라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서 범죄한 나라들을 중재하여서 하나님 앞으로 세우는 제사장의 기능을 그리스도인 지역 공동체는 행하여야 한다. 그 지역 사회와 백성들의 죄악을 짊어 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제사장의 기능을 해야 하고, 또한 지역 나라들의 통치자들이 통치하는 일에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관여해야 한다. 어떤 형태로 관여하는가? 기도를 통하여!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통치자들에게 역사하신다. 그러면 그런 변화는 누구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의 기도 때문에! 우리들이 통치자들의 서정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바울의 권면인 딤전2:1-2절<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읾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3)세번째의 위상:거룩한 백성(고이)는 특정한 단체, 무리 지어 놓은 것을 가리키는데, 이 말은 민족(nation)이라고 일반적으로 번역된다. 거룩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세상 것들과는 분리되어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구약의 백성들은 개별적으로든지 집단적으로든지 거룩하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했을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행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신7:6, 신14:2, 신 26:19, 사62:12 / 이 거룩함이 누구에게 이전 되었나?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은 새 이스라엘인 그리스도인들을 집단적으로 든지 아니면 개별적으로든지 거룩한 백성(민족, 백성, 국가)로 삼으셨다. 벧전 2:9<~ 거룩한 나라~,   >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거룩함을 잃어 버린다면 세상 가운데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거룩함을 교회가 잃어 버린다면 교회는 사교 클럽이 된다. 거룩함을 잃어 버린 성도는 맛을 잃은 소금처럼 된다. 거룩함을 회복하자! 거룩함은 분리라고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모방하면서 따라 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영과 예수의 정신으로 가정 생활, 사회 생활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산다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왕따 시키지만,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 친구들이 그들의 삶에 어려움을 겪으면 우리를 찾아 옵니다. 평안하면 멀리하지만 어려움을 겪으면 우리에게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돌아 옵니다. 왕따를 두려워말라! 왕따가 없다면 세속화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왜 우리 하나님께서 예수의 공동체에게 이런 높은 지위를 허락했을까요? 하나님의 목적은 벧전 2:9절 후반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복음 전파를 위해서 우리를 높이 세워 주셨다. 높혀진 지위에 앉아 있다고 만족하지 말고, 그 지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시내산 계시를 받았던 모세 시대의 구약의 백성들은 말씀에 합당한 삶을 못 살았다. 그래서 그 축복이 신약의 백성들인 새 이스라엘  공동체인 예수 공동체로 넘어 오게 되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겠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우리 주님을 증거해야 하고, 또한 우리의 거룩한 삶을 통하여 우리 하나님을 선포해야 한다. 세상 가운데서 우리의 선한 행실과 거룩한 행실은 이방 백성들에게는 성경이다. 그들은 그것을 보고 들음으로써 하나님을 지각하고 알게 된다. /빌1:27-28절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 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생활하라?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생활하라!, 어떤 상황에 빌립보 교인들은 처하여 있나? 박해 받는 상황!, 한 마음-한 영, spirit, 한 뜻-하나의 soul,로 일치 단결하여서 대적들을 저항하면서 무엇을 하라?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복음을 믿는 그 신앙을 지켜 내기 위하여 서로 협력하고, 대적을 두려워하여서 자라 모간지 모양으로 움추러 들지 말고 당당하게 천국시민 답게 생활하라! 오늘 보스톤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우리의 싸움? 게으름과 나태, 그리고 유혹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야 한다. 늘 진다!


2. 지난 주일의 설교 본문/요13:1-11절-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사건!  


        *이 사건은 언제 일어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금요일날 못 박히시는 데, 그 전날 밤 목요일 밤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여서 마지막 저녁을 드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The Last Supper! 여기에서는 이상하게도 성만찬 제정의 말씀이 없다. 다른 복음서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일 때마다 떡과 잔을 나누어 마셔야 하지만, 오늘 말씀에는 없다. 떡과 잔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새언약을 가리킨다. 내일 십자가에서 흘리는 보혈을 가리킨다.

 

        *1절을 읽어 보면…예수께서 자기의 제자들인 12명을 사랑하시되, 어떻게 사랑했는가?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끝까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무엇을 하셨나? 대야에 물을 받아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심으로 제자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 주셨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이 의미하는 바는?  왜 사랑을 발 씻기심으로 표현했나? 다른 방법으로는 표현 할 수가 없었나? 발씻음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었기에 그 행동으로 사랑을 나타내셨다. 흔히 우리는 우리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을 무슨 사랑이라고 부릅니까? 속죄의 사랑!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시고 내가 죽어야 하는데 날 대신하여서 죽었기에 그것을 속죄의 사랑, 대속의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우리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에는 두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무엇을 의미할 까요? 발씻음은 우리 주님이 내일 십자가에서 피를 흘림으로써 제자들의 죄를 하나 하나 씻어 주는 것을 발씻음이라는 상징을 통하여 나타냈습니다. 베드로야 내가 너의 발을 씻지 않으면 너가 나와 상관이 없는 자가 된다라고 말씀하신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우리 주님의 마음에는 제자들 하나 하나의 죄를 씻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그림을 마음에 그리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무엇이라고 부른다고 했지요. 구원론적인 의미라고 말입니다. 이것 이외에도 다른 두 번째의 의미를 우리 주님은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다 씻은 다음에 겉옷을 챙겨 입으신 다음에 자리에 앉으셔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돌발적인 행동인 발씻는 행동을 윤리적인 모범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12-14절까지 한 번 읽어 볼 까요?<그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어떤 본? 윤리적인 모범, 구원론적인 의미는 배제하고서 단순히 종이 되어서 서로 서로를 섬기는 모범을, 남 섬기는 종의 도를 몸소 실천해 보이셨습니다. 우리들도 고난 주간이 되면 이런 일을 하지요. 그 의미는 무엇이라요? 구원론적인 의미가 아니고 남을 섬기는 윤리적인 의미만 들어 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 주님이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행동은 두가지의 의미가 다 들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구원론적인 의미와 윤리적인 의미! 


        *그렇다면 발씻음과 목욕의 의미? 10절<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이것은 회개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목욕회개와 발 씻는 회개! 두 타잎의 회개가 우리의 삶에는 있습니다. 목욕회개는 내가 죄인 됨을 인정하고 우리 주님 안으로 들어가면 죄사함 받고 깨끗하게 됩니다. 마치 목욕탕에 가서 때를 홀라당 밀면 온 전신이 깨끗하듯이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예수 믿음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음 받았지만, 우리의 삶에서 우리는 참 죄를 많이 짓습니다. 이것을 자범죄라고 하지요. 말로, 생각으로, 손과 발로 죄를 짓습니다. 이런 죄를 씻는 일이 무엇일까요? 발씻는 회개입니다. 우리 주님께 죄로 인하여 더러워진 발을 내 놓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이 우리의 더러운 발을 씻어서 깨끗하게 만드십니다. 죄를 감추어 놓으면 안됩니다. 죄를 감추어 놓으면 어떻게 되나요? 하나님과 나 사이의 교제가 단절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면 죽을 맛입니다. 조그마한 죄 하나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끊어 놓아 버립니다. 교제 회복을 위하여? 지은 죄를 자복하면 됩니다. 


        요일1: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지은 죄, 자범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자백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내 입으로 그 죄 지었음을 시인해야 합니다. 자백? 호모로게오! 같은 말을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내가 지은 죄에 대하여 하나님도 알고 있고, 나도 알고 있다. 그 죄에 대하여 내가 하나님과 같은 말을 해야 한다. 내가 이웃의 물건을 도둑질 했는데, 하나님께 나와서 내가 이웃에게 거짓말했다고 말한다면 자백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는 것처럼 볼 수 있어야 자백이 바르게 나오겠지요. 발은 매일 매일 씻어야 합니다. 우리의 죄도 매일 매일 하나님께 자백되어야 합니다. 자백 없이는 용서가 없다!    




송주석

2013.10.28 22:01:24

메시지 음성파일 링크 : http://www.churchboston.org/sermon/101813.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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