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기도를 점검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기도는 응답되고 있는가? 안되고 있다면 내 기도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기도와 기도응답에 대하여/나의 간구의 응답은 하나님의 원하심(의지)에 달려 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느냐 안믿느냐에  우리의 기도 응답이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원함)에 달려 있다.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그 일을 원치 않으면 기도 응답이 일어나지 않는다. 기도 응답이 없는 이유?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을 내가 자꾸 달라고 기도하니 기도응답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면 나의 단 한번의 기도로도 응답이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주님의 원함이 있다면  말로 기도하지 않더라도 내가 저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어도 그 생각은 응답되어서 현실로 나타난다. 이것이 강력한 그리스도인의 기도다! 내가 원하는 것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서 원하시는 것을 내가 기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기도다. 우리들이 자주 부르는 ‘아버지의 마음’을 내게 주소서라는 복음송이 바로 이런 깨달음을 가지고 작곡 되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내게 대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아 낼 것인가가 우리의 기도의 관건이다.

///우선 하나님께서 세상 가운데서 일하시는 원칙과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도 사회 생활을 하는 동안, 직장 생활, 학교 생활하는 동안 삶의 원칙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지켜나가면서 살아나가지요. 사람마다 삶의 원칙이 다 다릅니다. 그것들은 참 다양합니다.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들을 다루시는 원칙이 있습니다.  엡1:11절<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 구절의 의미가 무엇일까? 이것부터 이해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알아 보도록 하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예정을 입어서 예수 안에서 기업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기업이 무엇인가? 회사를 가리키는가 business, company, enterprise아니면 기업은 삼성, 현대 같은 global company인 그룹을 가리키는가?  여기서 말하는 기업은 이런 세속적인 기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천국 기업을 가리킨다. 이 구절은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으로 천국 기업이 되었다는 의미인데, 그 의미는 우리가 천국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기도 한다:우리를 하나님의 기업으로 삼으소서!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천국을 소유하게 하소서!라는 의미이다. 신약이나 구약성경에 기업이라는 말이 나오면 천국이라는 말로 대체해서 읽어도 무방합니다. 이런 의미를 깨달아 알고 우리로 하나님의 기업이 되게 하소서라고 부르짖어 기도해야지, 그런 의미도 깨닫지 못하고 그냥 단어와 문장을 입으로 말로 내뱉는다고 기도가 아니다! 눈을 뜨고 기도하라고 내가 수차례 가르쳤다. 무슨 눈? 영의 눈을 뜨고 기도하라 내가 하고 있는 기도제목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 기도하라는 말이다.  눈 뜨고 기도하랬다고 눈감고 기도하다가 육신의 눈을 뜨고 기도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기도의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명백하게 깨닫고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천국 기업은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이 우리를 기업으로 삼았다는 문구는 모두 천국이 이제 우리 것이 되었다라고 바꾸어서 읽기를 바랍니다.
    / 이런 사전적인 이해를 토대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 원칙이 무엇일까요? 엡1:11절을 다시 읽어보면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일한다 역사한다는 단어는 <  (1754, 에네르게오) 역사하다, 일하고 있다.>를 쓴다
이 세상 즉  이 우주 가운데서, 그리고 이 지구상에서 더 좁게는 인간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하시는 원칙, 방법? 이 구절에 나열되어 있는 단어들에 주목해 보자. 다시 엡1:11절<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졀정, 하나님의 계획-이 단어들은 모두 하나님의 마음, 즉 의지와 원함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전능하심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뜻과 의지와 원함을 따라서 우리에게 역사하신다.  이것이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원칙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따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원하심을 따라서 우리 주님이 역사하심을 잊지 말라! 자꾸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강요하기 때문에 기도 응답이 없는 것이다.  이제는 내 편에 서서 내 의지와 내 원함을 하나님께 강요하지 말고, 하나님의 편으로 옮겨 가서 하나님이 내게서 무엇을 원하는 지를 찾아서 알고 주님이 내게서 원하시는 것을 간구하도록 하라! 이것이 장성한 자의 간구이다.  예>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엄마의 의지와 원함은 의미가 없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관철시킨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를 향하여 우리 하나님이 가지신 뜻과 마음과 생각과 의지를 알 수 있을까? 나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 과연 하나님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80-90년의 세월 동안 나에게서 원하고 바라시는 것이 무엇일까?  재앙일까? 아니면 축복일까?  당연히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기에 믿음 밖에 살고 있는 불신자들에게까지 선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마5:45절<~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그러니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에게는 얼마나 더 선을 베푸시길 원하시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두 본문을 읽으면서 기도에 대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번째 본문은 막1:40-42< 한 나병 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면서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원함 때문에 치유가 일어났다. 누구의 원함인가? 나병환자 자신의 치유에 대한 원함인가 우리 주님의 원함인가?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원하심, 예수님의 의지를 물었다. 나병 환자가 얼마나 자신이 치유받고 싶은 원함이 있었을까? 몸은 문들어져 가지요. 손가락 발가락 떨어져 나가지요. 또한 가족들과는 생이별을 하여서 분리되어 살아가니 얼마나 외롭겠어요. 얼마나 마을로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겠어요. 그런데 이런 나환자가 자신의 원함을 접어 두고, 누구의 원함을 물었는가? 예수의 원함! 예수께서 원치 않는다면 그냥 그대로 나병환자로서 살다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몸은 나병으로 썩어 들어가도 이 나환자의 영혼은 건강하고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는 어때요? 몸은 건강한데, 우리의 내면 세계는 나병환자의 몸처럼  썩어 들어가 고 있지 않은가? 주님이 원하지도 않는데, 내가 원하는 것 이루어 내라고 생떼 쓰지를 않는가 말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 나환자를 치유하기를 원하셨다. 그것을 어디에서 알 수 있는가? 불쌍히 여기셨다라는 구절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 . 41절에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4697 스플랑크니조마이) 동분사 과거 수동디포 주격 남성 단수, 민망히 여기사,불쌍히 여기사 
예수의 마음 속에서 일어 나는 감정이 무엇입니까? 예수 불쌍히 여겼다! 동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도움(구원)이 일어 났을 때에 바로 스플랑크니조마이라는 단어를 쓴다. 눅7:13절-우리 주님께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려 내시는 본문에도 바로 이 단어 스플랑키조마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예수께서 누구를 불쌍히 여겼는가? 죽은 청년의 어미를 불쌍히 여겼다!  불쌍히 여기시니 무슨 일이 일어났나? 죽었던 청년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오늘 우리도 우리 주님의 마음에 이런 불을 지필수가 있다면 기도응답은 따 놓은 당상이다.   우리 주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품으면 전능하신 우리 주님의 구원의 손길이 나를 향하여 펴지게 된다. 진노와 저주의 손이 아니라 사랑과 축북의 손! 우리를 창조하신 손이고,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손이다!
    /단3:17-18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배경 이야기! 느부갓네살 임금이 풀무불에 던져 넣는다할지라도 하나님은 능히 구원하실 수가 있는 전능하신 분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할지라도~ 이것은 우리 주님의 원함이다. 주님이 우리를 풀무불에서 건져내실 의향이 없어서 우리를 풀무불에서 태워 죽게 놓아 두신다할지라도 우리는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이 당신들이 섬기는 신들보다 약해서 우리를 풀무불에서 죽이게 나 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우리를 풀무불에서 건지실 의향이 없기 때문입니다.  풀무불에서 구원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하심에 달려 있다.

///  자 이 원리를 우리의 기도에 적용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여러분의 기도 제목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내 현재의 모든 기도 제목은 나의 원함이 들어 있는데, 그 기도 제목 중에 진정으로 주님이 원하는 기도 제목은 어떤 것이 있는가? 거의 대부분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는가? 그러니 기도 응답이 있을 수 없다. 오늘 이 자리에서 기도 제목을 습관적으로 쏟아 내기 보다는 이렇게 기도해 보기를 바랍니다:주님 나에게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면 나의 내면 세계를 통하여 우리 주님의 말씀이 울려 올 것입니다:아들아, 딸아 나는 이것을 원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 우리 주님께 주님의 원함이 무엇인지를 물을 때에는 우리의 세속적인 욕심을 제거해야 합니다. 세속적인 육신적인 욕심이 가득차 있으면 내면세계에서부터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가? 내 소리가 들린다. 내 소리를 주님의 음성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러면 함정과 올무에 빠지게 된다. 수렁에 빠진다는 말입니다. 오늘 기도할 때에 이전처럼 곧 바로 입으로 기도 제목을 쏟아 내지 말고, 과연 이 기도 제목을 주님이 원하시는 가를 먼저 물어 봅시다.
    / 내경험! 이번에 약 석달간 긴장불안 신경증을 앓았는데, 이 질고 때문에 기도하다가 나의 내면 세계로부터 분명한 주의 음성을 뚜렷하게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드디어 캄캄한 긴긴 터널을 지난 주일 에 빠져 나왔습니다.  그 긴 석달간의 터널 속에서 주님, 내 짐이 너무 무겁고 힘들다고 주님께 부르짖었더니 내 내면 세계에 우리 주님이 ‘아들아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셨습니다. 긴장과 불안은 궁극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생기는 것이지요.  긴장과 불안을 없애 달라고 힘써 기도하는데 어느날 내 내면 세계에 부활의 권능이 네게 있느니라는 주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 말에 믿음이 실리고 힘이 실려서 입에서 나오는 것 아닙니까? 두려워 떨고 있는 나에게 내 내면 세계에 내 사랑 안에 거하라는 주의 음성이 들리기도 했습니다. 어미의 사랑보다 더 높고 깊고 진한 하나님의 사랑! 내가 주를 사랑하기 전에 주께서 나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나를 복중에 짓기 전에 주께서 먼저 사랑하셨고, 나를 위하여 친히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하여서 피를 흘리기 까지 하셨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피보다 진한 것은 예수의 보혈이다. 핏줄의 사랑보다 예수의 사랑은 더 진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3개월 동안 집 밖에서 무력하게 배회하면서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그 때에도 내 내면에서 들렸던 주의 음성은 아들아 네가 이겼느니라!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방언으로 찬송을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지난 주부터 그 괴로움과 어두움의 터널을 완전하게 빠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내 내면 세계에 우리 주님은 자신의 원함을 말씀하셨고 그것을 신실하게 성취해 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치유하고 회복시키겠노라는 주의 말씀대로 주께서는 내게 그 일을 행하셨습니다. 
/기도의 원칙:하나님이 그일을 원하시는가? 지금 내가 바라고 원하는 이 기도 제목을 하나님이 원하시는가?  나의 내면 세계에 우리 주님이 원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룰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 간구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이루어지는가? 아니다 그것을 내 손에 거머쥘 때까지 힘써 기도하라!  겔36:37-38절<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떼 같이 많아 지게 하되 제사 드릴 양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내 기도 제목을 이루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가? 하나님의 전능성! 하나님은 내 기도 제목을 이룰 수 있는 정도로 전능하신가? 하나님은 능히 내기도 제목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다니엘의 세친구-하나님은 능히 풀무불에서 건져 내실 수가 있다.  하나님은 어떤 분? 온 우주를 말씀으로 없던 가운데서 창조해 내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 내셨다. 엘3:20-21절<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우리가  구하는(154 아이테오) 동직설 현재 중간 1인 복수, 우리의-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간구, 간청하는 것, 즉 우리의 기도제목을 의미한다. 생각하는 것은 이것이 있었으면 좋겠구나라고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가리킨다. 아직 정식으로 기도 제목이 되어서 내 입으로 발설하지는 않은 단계의 생각을 가리키지요. 우리의 모든 기도 제목들을 그 이상으로 더 넘치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께는 있다. 이런 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우리는 이런 전능하신 아버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어떤 믿음의 자세를 취해왔던가? 할 수 있거든 내 기도제목을 이루어 주십시요.  이 말이 누구의 말이던가? 막9장에 나오는 귀신 들려서 간질 발작을 일으키는 아들을 둔 아비의 말이 아니었던가? 하실 수 있거든 아이를 고쳐 주십시요. 우리 주님에게서 질타를 당하지 않았던가요? 막9:23절<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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