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away
이 문귀는 미드라시라는 유대인의 고전에 나오는 문귀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구약성서 외에 두 권의 방대한 책이 있습니다. 하나는 탈무드이고 다른 하나는 미드라쉬라는 책입니다. 이 문귀는 미드라쉬라는 책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이 문귀가 나온 배경 이야기?

어느날 다윗왕이 반지가 하나 갖고 싶었다. 그래서, 반지 세공사를 불러 그에게 말했다.
"나를 위한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어라!  그리고 반지에는 글귀가 하나 있어야 하는데 어떤 글귀인가 하면 내가 승리를 거두고 너무 기쁠때에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절망에 빠지고 시련에 처했을때엔 용기를 줄수있는 글귀를 넣어라." 
 "네, 알겠습니다. 폐하"
세공사는 그 명령을 받들고 멋진 반지를 만들었다.
반지를 만든후 어떤 글귀를 넣을지 계속 생각했지만 좀처럼 다윗이 말한 두가지 의미를 지닌 좋은 글귀가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하고 고민해도 마땅히 좋은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 다윗의 아들 지혜자 솔로몬을 찾아갔다.
 "왕자시여, 다윗왕께서 기쁠때 교만하지 않게하고 절망에 빠졌을때 용기를 줄수 있는 글귀를 반지에 새기라고 하시는데 어떤 글귀를 적으면 좋겠나이까?"
 
솔로몬이 잠시 생각한후 말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away...
 
유대인들에게는 탈무드 외에 미드라쉬란 오래된 고전 책이 있는데 미드라쉬란 다라쉬(찾아 구한다는 뜻)에서 온 말로 일종의 주석 책이다. 미드라쉬에서 율법에 관한 것을 다룬 것을 ‘할라카’라고 부르고 비율법적인 것, 예를 들면 도덕적인 내용(적용,설교)을 다룬 것을 ‘학가다’(Haggadah/이야기)라고 부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 문구는 학가다에 나오는 문귀다.  나찌 학살시에도 이 구절을 붙잡고 유태인들은 이겨낼수 있었다고 한다. 이 구절은 미국의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어려운 때마다 암송했던 구절이요 좌우명이었고, 오프라 윈프리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이 의미가 무엇일까? 우리가 당하는 시련과 고통과 아픔들 당하고 있을 때에 이 고통이 영원까지 지속될 것 같아 절망을 느끼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그 시련도 아픔도 잠시라는 것을 알라는 말입니다. 이것 또한 지나 가리라! 우리들이 흔하게 앓는 감기 몸살은 두 주간 정도 앓고 나면 곧 낫습니다. 약을 먹으면 14일간 아프고, 약을 안 먹으면 두 주간 아프다가 거뜬하게 일어납니다. 감기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닙니다. 그것 또한 지나갑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경험하는 즐거움과 세상 기쁨은 어떻고요? 그것도 또한 지나갑니다. 우리들의 젊음과 아름다움도 모두 세월과 함께 지나갑니다. 땅에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전도서 1:2-3절<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사40:6-8절<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요일2:17절<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형통함이란?
*누구나 인생살이에서 형통함을 원한다. 형통함이란 막힘이 없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를 믿으면 과연 승승장구하는가? 434장의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처럼 예수 믿으면 이렇게 형통한가? 아니다. 신앙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임하는 생사화복이 예수 믿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임한다. 질병도 사고도 우리는 피할 수 없이 봉접하게 된다. 
*시1:3-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 할지라도 극심한 가뭄일 경우에는 영향을 받을 것이다. 척박한 땅에  심기어진 나무보다는 덜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나무가 그 어려움을 넉넉하게 이겨 낸다. 왜냐하면 시냇가에 옮겨 심겨져 있기 때문이다.
*수1:8-네가 형통하리라/여호수아는 정복 전쟁을 모두 잘 완수했다. 그러나 정복전쟁에서 승승장구하지 않았다. 실패할 때도 있었다. 아이 성 정복에 실패…/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끝내는 정복했다./대하26:5-저(웃시야 임금)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
*형통이라는 것은 승승 장구가 아니라 역경을 만나서 뒤로 후퇴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 어려움의 사건들이 풀리어 나간다/창39:2, 창39:23-요셉이 형통하였더라/ 단6:28절(아람어) 에도 사자굴 시험을 겪었지만 다니엘은 다리오 왕과 고레스 왕 시대에 형통하였다.
*그러므로 우리의 간구는 형통케 해달라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앞에 놓인 비전을 향하여 걸어 갈 때에 순풍뿐만 아니라 거센 역풍이 불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은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신다/ 빌2:13절<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  /우리의 기도는? 시118:25-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나의 기도:이런 나의 시련 속에서도 형통함이 임하여서 상황이 풀리게 하옵소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아브라함은 75세 때에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로 부름을 받았다. 창12:1,13:14-15/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175세(창25:7절)에 헤브론에서 죽었다./이 때의 아브라함의 소유는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 밭과 굴이 전부였다. 후손들이 장차 가나안 땅을 소유할 것을 소망 중에 바라 보면서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다/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을 노메드로서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닐 때마다 아브라함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제터(제단)이다. 창13:3-4절/아브라함은 벧엘과 아이를 떠났지만, 그가 남긴 제단은 그곳에 남아서 여호와를 증언하고 있다.
*아벨의 믿음/히11:4-아밸은 죽었으나 그의 믿음은 여전히 후대의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 아벨의 피
*세례요한의 증언/요10:40-42/세례요한이 죽고 없으나 그가 세례 베푸는 현장에서 예수에 대하여 증언한 증언은 살아 있어서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가 있었다.
*내가 이 세상에 남기고 싶은 것은?/많은 후대의 사람들이 나의 언행을 보고 듣고 예수를 믿게 되기를~/000 다녀가다! 우리는 21세기의 인간 사슬로 연결되어 있는 고리다. 다음 세대에 이 믿음을 바르게 전승하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다. 만약 이 책임을 바로 감당하지 못하고 하늘에 올라간다면 하나님의 책망을 들을 것이다. 신앙전승! 
*그사람이 천국 간다면 나는 천국 안가?

하나님의 호칭:하나님/아버지/아빠
*기도할 때에 당신은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는가?/이스라엘의 하나님, 높고 거룩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사랑과 자비가 풍성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제 3자의 하나님, 하나님과 나와 관계가 맺어져 있지 않다. 바다 건너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섬겼던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조금 발전하면 ‘내 하나님’-하나님과 내가 관계를 맺었다. /하나님은 보통명사이고 여호와는 고유명사이다. 신6:4-쉐마!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이신 여호와니~ 나와 우리와 관계를 맺으신 ‘내 하나님, 우리 하나님’
*두 번째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다/하나님 아버지-하나님 내 아버지, 우리 아버지,/구약에서는 이스라엘 전체 백성의 집단적인 아버지로 부름을 받았다/신약에서는 우리들의 각각의 영혼의 아버지이다. 주기도 문의 하나님 호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부를 수가 있는가? 아버지로 관계가 맺어져야 바른 기도를 드릴 수가 있다/육신의 아버지로부터 심각한 학대를 받고 어린 시절을 자랐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불러 낼 수가 있을까? 다윗처럼 말입니다:내 부모는 나를 버렸지만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을 여신다면 아버지로 넉넉하게 부를 수가 있을 것이다./어떤 분은 ‘하나님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유교적 사고 방식 때문에!
*세 번째로 하나님을 아빠로 부른다/아버지(아버님)으로 부를 때에는 어느 정도 하나님과의 거리감을 느낀다. 저 멀리 계시는 분으로 느껴진다. /압바=아빠! 예수께서 하나님을 그렇게 불렀다. 어디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막14:36<아빠 아버지여,~>, 가장 고통스로운 자리에서 하나님을 불렀는데,, 그 호칭이 ’아빠’였다. 이 아빠라는 말은 아람어이다. 아버지를 가리키는 아람어가 압바이다. 이 아람어는 집안에서 적자들이 자기 아버지를 부를 때 쓰는 말이고 아빠 아버지라는 말에서 아버지는 그릭으로 파텔로 쓰는데 이것은 격식을 차린 말이다. 그 집의 종들도 그들의 주인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빠로는 부를 수가 없다. 입양된 자들도 그 집의 주인을 격식을 차린, 법적으로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아빠로는 부를 수가 없었다. 이것은 애칭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가 있을까? 하나님과 나 사이의 마음의 벽이 없어지고 거리감이 사라진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내 아빠로 부를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압바라는 말은 우리 아들과 딸이 자기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를 때에 가지는 어감과 같다. /롬8:15<~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갈4:6-7<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이렇게 부르게끔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받아야 하는가? 성령을 받아야 한다. 예수를 믿고 아는 정도가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야 한다. 롬5:6<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입양된 아이들/우리는 하나님께 입양된 자녀들-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후 선언- 요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 
*하나님은 우리의 아빠, 아버지라면/기도응답은 따 놓은 당상/사58:9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마7:9-11절<좋은 것으로 주지 않겠느냐?> 누구에게?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이 필요함을 알고 계신다:마6:32<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빌4:19(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엡3:20(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 이런 좋은 아버지가 있다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간구하는 일이다. /간구(기도)의 의미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버지 노릇하게 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주어서 기쁘고, 우리는 받아서 기쁘다, Win-win 작전!   
*복음송:좋으신 하나님, 좋은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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