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1.  

사42:1-9절/여호와의 종의 노래라고 불리는 문단입니다. 1-4절에서는 삼인칭으로 ‘그’가 나오고, 5-9절에는 이인칭으로 ‘너’가 나옵니다.  모두 누구를 가리킬까요? 신약의 관점에서 본다면 먼 미래에 오시게 될 메시야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이스라엘의 혈통으로 메시야가 와서 하게 될 사역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 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가 이 땅에 와서 하게 될 사역이 무엇인가가 기록된 본문이지요.
1절-부연하여 설명하면,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는 순종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다. 십자가에 매 달리기까지 순종했다. 빌2: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아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첫 째로 내 품은 뜻이 주님의 뜻과 일치 해야 한다. 우리 주님은 이런 방향으로 가고자 하시는데, 나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동행이 될 수 없다. 암3:3<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두 번째로 영적인 성장이 있어야 한다. 자라나지 않았다면 우리 주님은 나를 안고 가시고, 조금 자랐다면 내 손목 잡고 내 걸음 걸이인 아장 아장 내 곁을 걸어 가실 것이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고 싶은가?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 하나님의 구원사를 의논하면서 같이 걸어 가고 싶은가? 자라나라! 벧후3:18<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자!


2.
오늘 본문 6절<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장차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야는어떤 분이고 어떤 사역을 행할 것인가? 백성의 언약이 되는 분이고 또 이방의 빛이 되는 분이다. 따라 합니다.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백성의 언약을 세운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백성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고, 이방은 언약 밖의 백성을 가리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메시야 예수를 역사의 종말에 세우신 목적이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것을 옛언약이라고 부르지요. 이 언약이 잘 지켜 졌나요? 아니지요. 이 옛 언약의 핵심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말씀을 잘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 주시겠다는 것이 옛 언약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 빠지면서 하나님이 붙들고 있는 손을 놓아 버리자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을 받았지요. 옛 언약이 깨어져 버렸습니다. 깨어진 이 옛 언약을 갱신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 사명이 누구에게? 예수께 지워졌습니다. 이것을 새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이 새언약에 대하여 예언자들이 예언했습니다. 렘31:31절<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예레미야는 어떤 예언자? 주전 6세기 초 유다의 예언자입니다. 유다의 멸망을 선포했고, 그의 예언대로 유다는 바벨론에 망했습니다. 망국을 지켜본 예언자다. 그 예언자가 새 언약을 선포했습니다. 이 새 언약은 역사의 종말에 이루어질 일인데, 우리 주님 예수께서 역사의 종말에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언약 갱신, 새 언약을 우리 주님 예수께서 우리들의 대표로서 하나님과 맺었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말입니까? 자신의 흘린 피로 말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피가 새 언약을 비준하는 피입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날 밤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면서 우리 주님이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돌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새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그렇게 하셨지요. 새 이스라엘 백성은 누구입니까? 혈통적인 유대 족속입니까? 아닙니다. 예수 믿는 자들이 새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유대인 가운데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자들과 이방인들 가운데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자들을 모아 놓은 공동체가 새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새 이스라엘 백성들을 품에 안고 그들을 대표하여서 십자가에서 언약의 피를 흘렸습니다. 옛 언약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맺었지요. 무엇을 가지고 말입니까? 동물의 피를 가지고 말입니다. 새 언약은 무엇을 가지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영원한 언약입니다. 영원한 날까지 깨어지지 않을 언약입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죄를 짓더라도 이 언약을 우리 하나님이 결코 철회하지 않습니다.  히9: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이방의 빛은 무엇일까? 이방의 빛=세상의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방인은 예수를 믿지 않는 백성들을 통틀어서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이방의 빛이라는 것은 예수께서 이루신 구원이 땅끝까지 이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방 땅에 생명이 전하여 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세상에 보내 주심은 이방인도 주께서 이루신 구원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유대인들만이 누릴 생명의 축복이 아니라 온 땅의 모든 족속이 누릴 복입니다. 다만 순서의 차이 밖에는 없다. 유대인이 먼저 그후에 이방인이 예수의 구원을 누린다./세계 선교에 대한 비전을 갖자. 그래서 예수께서 선택한 제자가 누구인가? 사도 바울이다. 이방인의 사도! 갈2: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예수께서 이루신 구원을 땅끝까지 퍼져 나가게 해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도 말했지만, 본문을 자세히 읽어 보면 메시야가 와서 하는 일은 두가지로 요약됩니다. 예수의 지상 사역은 성령 사역인데, 두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첫번째가 ‘정의’를 세우는 일을 한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1절-‘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3절에는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절에는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정의가 무엇입니까? 세상,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삐딱한 길로 간다면 그것을 바로 잡아야 하는 일이 정의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을 때에 의가 됩니다. 세상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 마져도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나서 불의를 행하고 있다. 이런 세상과 교회를 정의 위에 세우는 일을 메시야가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6절의 의는 무엇인가? 6절은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부르실 때에 무엇을 기반에 두고 불렀는가? 의로! 여기에서의 의와 1-4절에 나오는 정의와는 차이가 있는가? 있다. 우리 말로 번역된 정의라는 낱말은 히브리어로 미스파트라는 글자를 쓰고, 의라는 낱말은 히브리어로 체데크, 체데카라는 글자를 사용합니다. 의는 기초 정의를 가리키고, 정의는 교정 정의를 가리킵니다. 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리키고, 그런 바른 관계 속에서 나오는 올바른 행위와 삶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부를 때에 이런 관계 속에서 불렀습니다. 이런 기초 정의라고 불리우는 의가 충만하다면 교정 정의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삶도, 가정의 삶도, 교회의 삶도,직장과 학교와 같은 사회에도 이런 기초 정의가 가득하다면 세상이 하나님 나라와 같은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요. 세상이 이런 기초 정의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던가요?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 필요합니까? 교정 정의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 돌리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해야 하는데, 이것이 정의라는 교정 정의입니다.  예를 들면 이 사회에 왜 교도소가 있습니까? 죄 지은 사람을 벌주기 위하여? 예 그렇지만, 교도소의 존재 이유는 반 사회적인 사람들 교정하여 사회 속에서 잘 적응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교도소가 있지요. 사람들이 사회의 법을 잘 지키고 산다면, 이것을 기초 정의라고 볼 수 있고, 그렇다면 교도소가 필요 없습니다. 교도소는 정의, 즉 교정 정의를 실현 하는 곳입니다.

/ 요한 복음 2장의 성전 청결 사건-  성전은 왜 존재하는가? 하나님께 예배(제사)드리기 위하여 존재한다. 그러나 사제 그룹들과 사람들은 그 성전을 이용하여서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을 만들어 버렸다. 그러니 성전의 목적이 변질 되었으니 우리 주님이 무엇을 하셨는가? 성전 청결 사건!  교정 정의라는 정의를 행하였다. 장사하는 모든 사람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성전의 원래의 목적에 맞게 돈을 바꾸고 소와 비들기를 사고 팔았다면 우리 주님께서 그러하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의 기초 정의를 성전안에서 바로 행하고 있었다면 우리 주님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지요.    

/오늘 우리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교회와 내가 살고 있는 사회 속에서 불의를 본다면 불의에 대하여 분노하면서 그 불의를 고치는 교정정의를 행하여야 한다. 불의와 타협해서는 안되고 불의와 영적 전쟁을 벌리고 싸워 이겨야 한다. 정의가 실현 되어야 하는 곳은 어디에서 부터? 교회 안에서 부터! 교회 안에서 교정 정의로 교회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 정의를 가지고 사회 안에서도 정의를 실현 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우리 주님을 대신하여서 그 일을 사회 안에서 행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사회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무엇이라 했는가? 성도는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이라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다. 주전 8세기 북 이스라엘에서 예언했던 예언자 아모스를 통한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는 들어야 한다. 암 5:24절<오직 정의를 물 같이, 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그러나 이런 사명을 한국 교회가 감당하고 있는가? 교회도 사회 만큼 기초 정의가 무너져 있다. 이것을 누가 바로 잡아야 하는가? 하늘에 계시는 우리 주님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을 통하여 부패해 있는 한국 교회와 사회를, 즉 이 시대를 고쳐 나가신다. 우리가 사용되기를 바란다.

/메시야의 첫번째 사역이 무엇이라고요? 세상에 정의를 세우시는 일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구원사역입니다. 구원사역이란 무엇입니까? 건져 내는 일입니다. 구덩이에 빠져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그 구덩이에서 건져 올리는 일-이것이 구원입니다. 또한 상하고 깨어져 버린 심령과 몸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일이 구원입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42:7절<네가 눈 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눈 먼자의 눈을 뜨게 하는 일은 치유사역이고 구원사역이지요. 감옥에 갇힌 자와 흑암에 앉아 있는 자를 밝은 세계로 이끌어 내는 일이 구원사역이지요. 정의를 행하는 사역은 심판사역인 반면에 고치고 회복하고 건져 내는 사역은 구원사역이지요. 사랑에 바탕을 둔 사역이지요,/우리 주님 예수께서 하셨던 3년간의 공생애 사역은? 온갖 종류의 병인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치유하셨고, 마귀 들린자, 즉 악령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에게서 악령들을 추방하면서 깨끗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엇으로 말입니까? 성령으로 말입니다. 이를 성령 사역이라고 부르지요. 본문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메시야에게 무엇을 부어 주셨습니까?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성령! 거룩한 영! 예수의 모든 사역, 특히 구원사역은 성령으로 행한 사역이었습니다. 요단 강에서 세례요한에게 물 세례를 받을 때에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셨지요. 그 성령님이 예수를 떠나지 않고 함께 하시면서 예수의 구원사역을 도왔지요. 하나님께서 예수께서 받으신 그 성령님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부어 주셨습니다. 오순절날 최초로 인생에게 임하였고, 그 이후에 계속해서 우리 하나님께서 예수를 주님으로 믿고 영접하는 사람들에게 부어 주시고 있습니다. /왜 내게도 그런 성령님을 부어 주셨을까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사명-구원사역을 이루기 위하여! 한 영혼 영혼들의 상처를 보듬어서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일을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셨다.

/한 영혼의 가치는?  우주보다 귀하다. 눅15:3-7절을 읽어 봅시다.
비유:양 한 마리의 가치>99마리의 가치  왜? 양 99마리를 들판에 두고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러 목자가 되 돌아 서서 갔다. 길 잃은 양 한 마리는 emergency상황일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구덩이에 빠져 있을 수도 있고, 길을 잃었을 수도 있고, 또는 넘어져서 일어 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야생 동물의 밥이 된다. /100:1! 만약 7 billion의 사람들이 모두 의인들이고 나 혼자만 죄인이고 길을 잃었다면~ 우리 주님이 그런 나 하나를 위하여 저 별들의 세계를 지나서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오셨을까? 분명하게도 우리 주님은 나 하나를 건지시기 위하여 오셨을 것이다. 확신이 드는가? 우리 주님은 나를 사랑하시는데, 마치 이 세상에서는 나 하나 밖에 없는 것처럼 여기시면서 사랑하신다.
한 사람의 영혼 가치는 얼마나 될까? 우주 보다 귀하다. 무생물인 우주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지만,영혼이 있는 인간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7절: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에 의할 것 같으면, (땅에 있는)회개한 죄인 하나 vs. (땅에 있는)회개할 것 없는 의인 99 중에서 (하늘에 있는) 우리 하나님이 어떤 것을 더 기뻐할 것인가? 하늘에 있는 온전하게 된 의인 99명이 아니라 땅에 있는 불완전한 의인 99명이다. 내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던 그 날 하늘에서는 큰 기쁨이 있었다. /겔18:23절<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랴?>/ 암9:9<보라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서~ 체질하기를~ 체로 체질함 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가는 채를 가리킨다. 알곡은 모두 채 위에 남고 작은 모래 알갱이는 채를 통과하여서 땅에 떨어진다>
하나님의 액션?/ 4절<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 내기까지~ 찾아 다니지 아니하겠느냐?>-찾아 내기 까지~쉬지 않으시는 하나님!/바로 이 사랑 때문에 우리의 영혼이 살았다. 갈보리의 구속의 사랑!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골고다 언덕에 나타난 우리 하나님의 사랑, 나를 향한 주님의 이 사랑 때문에 많이도 눈물 흘리면서 울었노라! 이 사랑을 체험했기에 우리 주님이 잃어 버린 다른 양을 찾고 있노라!  나로 하여금 주님없이 죽어가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옵소서!  잃은 영혼에 대한 우리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 잃은 영혼을 반드시 찾겠다는 집념! -사27:12<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그 날에 여호와께서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애굽 시내까지 과실을 떠는 것 같이 너희를 하나 하나 모으시리라!/ 사42:3절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정의의 속살은 무엇인가? 사랑이다.  사랑으로 정의를 시행한다. 날선 시퍼런 칼을 휘두르는 것이 정의가 아니다. 사랑을 속살로 둔 정의가 시행되어야 한다.불의를 행하자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정의를 행하여야 세상에 정의가 바로 선다. 그 정의 가운데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난다. 십자가에는 사랑과 정의가 나타나 있다. 
*행8:26-40/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사도 시대에 한 영혼을 귀히 여겨서 행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 한 영혼을 위하여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권세 있는 내시가 에디오피아에서 마차 타고 올라와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서성이다가 돌아가는 길이다. 얼마나 큰 믿음인가? 거의 2-3주간의  마차 여행을 해야 당도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성전 예배에 참여할 수 없다. 왜? 내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서 누구를 보냈는가? 빌립을 보냈다. 성전 예배에 참여하는 것보다 더한 보배를 주었다. 예수를 주님으로 받는 믿음을 주었다. 지금의 에디오피아에 크리스찬 인구를 만드는데 핵이 된 인물이 바로 이 인물이다.

/당신은 백만 달러의 헌금을 희생해서 한 영혼을 구하는데 사용할 수 있겠는가? 없다고 말하는데, 그 잃어 버린 영혼이 내가 된다면 대답은 달라진다.  잃어 버린 영혼에 대한 주의 마음을 체험하자! 이곳 보스톤 땅에 방황하고 헤메는 사람들을 하나 하나 우리 주님께로 인도하자!


송주석

2014.01.26 15:24:16

메시지 음성파일 링크 http://www.churchboston.org/sermon/2014/011714.mp3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82 금요기도회(10/17/2014) [2] 김영호목사 2014-10-20 2104
381 금요기도회(10/10/2014) [1] 김영호목사 2014-10-13 2381
380 금요기도회(10/3/2014) [1] 김영호목사 2014-10-06 2173
379 금요기도회(9/26/2014) [1] 김영호목사 2014-09-29 2133
378 금요기도회(9/19/2014) [1] 김영호목사 2014-09-22 2258
377 금요기도회(9/12/2014) [1] 김영호목사 2014-09-15 2355
376 금요기도회(9/5/2014) [1] 김영호목사 2014-09-10 2579
375 금요기도회(8/29/2014) 김영호목사 2014-09-02 2490
374 금요기도회(4/25/2014) 김영호 목사 2014-04-26 3658
373 금요기도회(4/11/2014) 김영호 목사 2014-04-13 3388
372 금요기도회(4/4/2014) 김영호 목사 2014-04-05 3470
371 금요기도회(3/21/2014) 김영호 목사 2014-03-22 3388
370 금요기도회(3/14/2014) 김영호 목사 2014-03-16 3499
369 금요기도회(3/7/2014) 김영호 목사 2014-03-08 3373
368 금요기도회(2/28/2014) 김영호 목사 2014-03-02 3166
367 금요기도회(2/21/2014) 김영호 목사 2014-02-23 3346
366 금요기도회(2/14/2014) 김영호 목사 2014-02-17 3428
365 금요기도회(2/7/2014) 김영호 목사 2014-02-08 3291
364 금요기도회(1/31/2014) [1] 김영호 목사 2014-02-07 3347
» 금요기도회(1/17/2014) [1] 김영호 목사 2014-01-18 3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