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요즈음 한국 사회에는 이런 말들이 돕니다:인구회자 되는 !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는다.

배고픔은 참아도 아픈 것은 참는다.

 

22:23-31/중보기도자

*본문 해설:이스라엘의 총체적인 타락.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하기 직전의 이스라엘 사회의 타락한 모습이 기술되고 있습니다. 타락 계층이 없다. 망국 직전의 유다는 나락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선지자들,제사장들, 방백들이 모두 타락해 있었습니다. 선지자, 제사장, 방백들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 기득권자들입니다. 모든 사회 계층들이 죄악에 물들어 있었다.  이런 이스라엘 사회의 상태를 30절에는 무너진 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무너졌다는 것은 상징어입니다.

 

25/거짓 선지자들의 죄악:거짓 예언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망가뜨렸고, 사람들의 재물을 거짓 예언으로 속여서 탈취했다. 28절에도 거짓 선지자들의 죄악이 지적되고 있습니다;이들은 권력을 지니고 있는 고관 대작들의 곁에서 아첨을 삼았고, 허탄한 환상을 보고(허탄한 이라는 말은 속이 비어 있는, 내용이 없는 이라는 의미입니다) 거짓 복술을 행하면서 백성을 속였다.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해서 거짓 예언을 일삼았다는 말입니다. 원래 선지자는 일반 백성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먼저 보고서 백성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지요.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환상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에서 솟아나는 거짓 이상을 보고서 가짜 예언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26-제사장들의 죄악:성물을 더럽혔다. 제사장의 직분이 백성을 율법으로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제사장들은 율법에 기록되어 있는 정한 , 깨끗한 것과 더러운 ,, 부정한 것을 백성들에게 가르쳐서 백성들로 하여금 정한 것을 취하고 부정한 것을 멀리하도록 교육시켜야 했는데, 제사장들은 본업을 멀리했다. 그리고 백성들로 하여금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게끔 가르쳐야 했는데, 그런 일을 태만히 함으로써 백성들이 하나님의 안식일을 범하도록 만들었다. 하나님의 안식일은 백성들이 노동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백성들이 안식 규정을 어기고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노동을 했다. 이것은 안식일을 어기는 일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더럽히는 일이었다. 

27/고관 대작들의 죄악:권력을 이용해서 백성들의 피를 빨아 마셨다. 탐욕에 물들어 있는 이리와 같았다.현대에도 정치 권력자들도 그렇지요. 

29/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백성들의 :포악하고 남의 것을 힘으로 빼앗는 일을 했고, 자기보다 가난하고 없는 고아와 과부들을 압제했다.

 

총체적으로 예루살렘은 타락했다. 예루살렘은 신의 도성으로 거룩함과 의로움이 있어야 하는데, 더럽고 추하며 멸망 받을 정도로 타락했다. 죄악이 하나님 앞에 있는 주머니에 차곡차곡 쌓여 가는데, 이제는 담을 없을 정도로 빵빵하게 찼다. 조금만 담으면 주머니가 터질 지경까지 되었다는 말입니다.

 

30/이런 예루살렘의 영적인 상태를 어떻게 묘사했습니까? 성벽이 일부 무너져 내렸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을 이렇게 성벽의 일부가 무너져 내린 것으로 상징화 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군대를 거느리시고 무너진 성벽으로 들어가셔서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분노와 하나님의 진노를 신의 백성들에게 쏟아 붇겠다는 말씀입니다.

성벽의 무너진 곳을 막아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하나님이 한탄하셨다고 30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너진 데를 막아 서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다름 아닌 중보 기도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군대를 이끌고 무너진 데로 들어 오시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의인들이 필요합니다. 성의 멸망을 막아서는 중보 기도자 말입니다. 사람 의인의 간구가 성을 지키는 있어서 성안의 전체 군대보다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의인들은 사회의 죄와 악들 때문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내는 방패들입니다.

 

소돔성은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 당하였다. 예루살렘 성은 의인 명이 없어서 멸망 당하였다. 5:1<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성읍을 용서하리라> 예레미야 예언자가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 당하기전에 받았던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이 하나 같이 모두 타락하여서 멸망 당할 만큼 되었다는 말입니다.

성도, 거룩한 도시인 예루살렘이 예언자 예레미야의 시대에는 의인이 명도 없는 그런 사회가 되었습니다. 멸망을 앞에 사회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지경이 되었는가? 고기가 썩으면 채소가 썩는 것보다 냄새가 더욱 고약한 것을 압니까? 성도가 죄를 지으면 악인이 죄를 짓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더욱 냄새 나고 더럽습니다.

 

/오늘 이곳 보스톤의 하늘 아래 지금 나를 머물러 두심은 내가 속한 사회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망하는 것을 막는 최후의 보루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개인적인 영성도 중요하다. 사회적인 연대, connection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고난을 막을 있다. 분야에서 학계, 재계, 정계, 연예계, 모든 분야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분야들이 합동하여서 세상 풍조와 가치관을 깨뜨려 나가야 한다. 보스톤도 소돔 성처럼 되어 간다. 청교도의 영성이 살아 있었던 보스톤이 영적으로 소돔과 고모라처럼 되었단 말입니까?

 

물론 보스톤이 점잖고 도덕적으로 다른 도시에 비하여 깨끗한 도시이나, 영적인 관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무너져 있는 도시입니다.

탄식하면서 울면서 엘리야의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하면서  하나님을 찾지 말고, 하나님의 엘리야를 찾아 내어서 영적인 방어벽을 만들라! 엘리야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엘리야! 너와 나는 하나님의 엘리야!  아합과 이세벨이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이스라앨 전역에 퍼뜨리고 있을 때에 돌연히 바람과 같이 나타나서 우상 숭배를 타파했던 예언자-오늘 우리 시대에도 우리 하나님이 하늘에서 찾고 있는 예언자가 바로 하나님의 엘리야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엘리야가 되어서 맘모니즘에 물들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시대 정신과 거슬러 싸워야 한다. 당신은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하나님의 엘리야인가?

 

*지옥 권세들도 벌벌 떨게 만드는 우리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19:14-15<유대의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사도 바울이 그런 인물이다. 지옥에도 알려져 있는 사도 바울!  악한 귀신들도 말하기를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지만 너희는 누구냐? 예수의 권세가 교회 안에서만 드높아서야 되겠나? {피라미드가 발굴되어서 미이라가 되어 있는 파라오를 박물관에 놓아 두었다.

옛날 초강대국이었던 파라오가 고대 근동을 울렸지만 지금은 박물관에서나 사람의 눈길을 끌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는 세계 방방 곡곡에서 왕으로 높임을 받아야 한다. 교회 안에서만 높임을 받는 예수가 아니라, 교회 불신 세계에서도 예수의 이름이 높임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방세계도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비전이다. 나아가서 지옥의 세계에서도 우리 주님이 우리를 통하여 높임을 받으시게 되어야 한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우리 주님 예수의 이름! 

 

<2:10-11-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우리가 예수 만을 높이는 온전한 종의 길을 간다면 지옥권세가 벌벌 것이다.

오늘 이곳에 모인 금요 기도회원 여러분, 멋진 중보기도자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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