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성도가 기도의 달인이 되기 위하여서는 좋은 영적 스승 밑에서 기도를 배우고 훈련해야 합니다. 기도를 잘못 배워 놓으면 평생 기도에 시간을 쏟아 부어도 놓을 만한 기도 응답이 없습니다. 스포츠나 무예도 좋은 스승 밑에서 지도와 훈련을 해야만 달인이 수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근본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의 영혼의 성장입니다. 부산물로 얻어 지는 것이 우리의 필요를 채울 있다는 것입니다. 주객이 전도 되어서는 안됩니다. 기도의 목적이 무엇이라고요? 우리의 영혼의 성장,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 지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더욱 깊이 알아 가는 것이 기도의 목적입니다. 구약 예언자들 가운데, 특히 에스겔은 이런 어투를 많이 씁니다: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36-39장은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 것이고 황폐한 예루살렘이 이전처럼 회복이 되는데, 이렇게 회복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 나라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리라는 말이 7-8 정도 이런 어투로 나옵니다:여호와를 알리라! 이런 어투를 인지 양식, 인지 어투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포로 되어 있는 백성들을 해방하여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고 백성들에게 축복을 내리시는데, 너희들이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알리라 라는 말이지요. 무엇을 압니까? 구약의 백성들이 자신들이 지은 때문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들의 죄를 진실되게 자백하고 회개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에 기도가 무엇이라고요? 우리의 필요가 있어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했더니  필요가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필요가 채워지니 기쁘기 한량 없습니다.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필요가 채워짐으로 하나님을 알고, 예수를 알아 가게 되면서 하나님과 한층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는 말입니다. 에스겔 선자자의 어투를 빌리면 네가 예수를 알리라라는 어투가 되지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철저하게 죄를 인정하고 자백해야 우리 주님 예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신다는 말입니다. 

 

 

잘못된 기도의

잘못된 기도의 :

1.아버지의 차를 몰래 운전하다가 사고를 십대 아이의 기도-없던 일로 주세요. 시간을 과거로 돌려 달라는 말입니다.

2.어떤 청춘 남녀의 기도:정욕을 이길 힘을 달라고 기도/어떤 자매의 기도:신랑감에서 사위 달라는 기도/바다 낚시!- 이번 번만 구원해 주시면 다시 이런 요청은 하겠습니다.

3. 어떤 장년의 기도:사자의 입에 손을 넣어 놓고 물리게 달라고 하는 기도.

 

유비무환:미리 미리 준비하면 근심이 없어진다는 고사 성어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 영적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에 다가올지도 모르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위하여 평안한 지금에 무엇을 해냐 합니까? 하나님이 주신 평강을 누리는 좋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다가올지도 모르는 풍랑 일어나는 미래를 준비해야겠지요. 평안할 때에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은 기도입니다. 매일 매일 정한 시간에 주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를 쌓아 놓는 일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매일 매일의 기도가 쌓여 있게 되면 파도와 풍랑 속에서도 요동하지 않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그렇게 기도를 하나님 앞에 쌓아 놓기 위하여 금요기도회에 나왔습니다. 하셨습니다. 오늘 하루의 기도가 이전의 기도가 쌓여 있는 곳에 덧대어 지게 것입니다. 통장에 적금 하듯이 우리의 기도도 기도통장에 차곡차곡 쌓여 갑니다. 밤새 눈이 녹지 않으면 차곡차곡 땅에도 쌓이고 지붕에도 쌓이듯이 말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결코 없어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오늘 하루의 기도가 아주 미미하고 작아 보이지만, 그런 작은 기도가 쌓이게 되어서 하나님의 때가 되면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쌓인 기도의 위력: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자기 앞에 있는 조그만한 웅덩이를 조약돌로 매꾸고자 합니다. 매일 집을 나서면서 들어 오면서 돌을 하나씩 웅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매일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돌을 던졌습니다. 돌은 던지자 마자 속에 가라 앉았지만, 어느 던진 돌이 물속에 가라앉지 않고 물위로 솟았습니다. 지난 번까지 999개를 던져 넣었던 돌들이 돌더미를 밑에서 이루었고, 마지막 1000개째 돌이 던져 지자 돌더미 위에서 밖으로 나오게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 가지입니다. 오늘 하루도 기도를 하나님 앞에 쌓아 놓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의 기도가 없다면 그만큼 기도의 응답이 늦어 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요.

 

1세기 성도들:기도의 사람들

1세기의 성도들은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이면 기도했고, 흩어지면 전도에 힘쓰는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예수의 직제자들인 사도들은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중에서도 사도 바울은 기도에 특화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몸소 기도에 힘썼고, 동시에 다른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나의 20 때의 잘못된 기도 행태:이웃에게 나를 위한 기도 부탁을 하지 않았다. 기도 제목을 가지고 자신 하나님께 기도하여서 응답을 받아 내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남에게 기도부탁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교만이 많이 작용했던 그런 시기였던 같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기도부탁을 남에게 하는 일이 아주 자연스럽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기도부탁을 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백지장도 사람이 맞들면 낫다는 속담처럼, 우리의 기도도 마찬 가지입니다. 하나의 기도 제목에 성도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기도한다는 것은 홀로 기도할 때도 훨씬 효과적입니다. 이것을 알았기에 이제는 누구에게나 기도 부탁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기도 부탁

바울은 골로새 교회, 에베소 교회, 고린도 교회 , 또한 어린 교회인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기도 부탁을 했습니다.

골로새 교회/4:2-3<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에베소 교회/6:18-19<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것이니>

고린도교회/고후1:11<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 교회/살후3:1-2<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일찍이 바울에 의하여 개척된 갈라디아 교회에는 바울이 기도 부탁을 하지 않았다. ?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이 박해를 이겨서 유대주의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며, 크리스천의 믿음과 영성을 잃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가누지 못하는데 무슨 남을 위한 기도가 나올 수가 있겠는가? 없다. 내가 은혜와 믿음과 영성이 최고조에 있을 때에 남들을 위한 중보기도(남들의 유익을 위하여 대신 하는 기도) 가능하다.

 

갈라디아 교회/3:3<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끝까지 지키는 일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리의 심령은 끊임없이 High low 계속합니다. 항상 마음이 높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서 내가 있는 방법은? 성령이 심령 속에 머물러서 나를 일깨우도록, 성령이 움직이도록 내가 그를 위하여 마음의 길을 열어만 주면 된다. 그러면 영성이 내리막길을 내려 가지 않는다. 교회사에 있어서 부흥운동이 지속되다가 소멸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의지로 성령을 붙들어 놓을 있는가? 없다. 성령은 자기의 의지로 자유롭게 행동하신다. 단지 우리들이 있는 일은 성령이 활동하도록 마음을 준비해 놓기만 하면 된다. 

 

무엇을 따라 것인가?-말씀을 따라 살리로다/생명으로 인도하는 !

삼상15:22-23<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

 

하나님께서는 팔레스타인 남부에 살고 있는 아말렉 족속을 사울의 손으로 진멸할 것을 명했습니다. 진멸이라는 것은 아말렉 족속의 씨를 말린다는 말입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또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값나가는 소떼와 양떼들을 모두 죽여 없애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명령하자, 사울은 예스 하면서 군대를 몰고 가서 아말렉을 정복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전쟁을 이긴 후에 아말렉의 수장인 아말렉 아각마져도 죽이지 않고 가두어 놓았습니다. 또한 소떼와 양떼를 죽여 멸하지 않고 남겨 두었습니다. 남겨 이유는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함이라고 변명을 늘어 놓았습니다. 사실은 탐욕 때문에 남겨 두었지요. 부분적인 순종! 하나님께서는 전폭적인 순종을 요구하신다. /계기 비행-야간 비행 때에 비행사 자신의 느낌이나 감각을 의지하지 말고 계기판을 의지하면서 비행하라. 전투기는 뱅글 뱅글 때가 많은데, 돌고 나면 하늘과 땅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나 계기판은 하늘과 땅을 정확하게 가리킨다. 자신의 느낌을 의존하여서 비행하다가 보면 바다를 하늘로 착각하여서 바다에 빠진다

/우리의 삶의 나침반은 하나님의 말씀-어떤 난파한 배에서 구명정이 내려졌을 때에 사람들이 모두 탔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직 타지 못했습니다. 구명정에 모든 사람들이 사람에 대하여 분노했습니다. 사람이 마지막에 타면서 나침반을 잊었기에 그것을 가져 오느라고 늦게 타게 되었답니다. 망망대해 바다에서 나침반 없이 표류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겠지요.

우리의 신앙생활의 나침반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우리 하나님께로 인도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약속) 기도와의 상관관계:

기도는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요구하는 일인데, 하나님의 말씀 없이도 예수 믿는 믿음 가지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 요청하기만 하면 되는 아닙니까? 아닙니다. 말씀을 마음에 가지고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아니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면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든다. 하나님 말씀이 없으면 우리의 기도는 앞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마치 회전 목마 타고 여행 떠나는 사람과 같습니다. 회전 목마는 상하로만 제자리에서 움직이지요. 

 

*28:9<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가증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혐오가 일어난다. 혐오는 무지무지하게 싫은 것을 의미하는 낱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가지지 않은 채로 그저 달라고만 하는 기도에 대하여 그런 평가를 내리십니다. 만약에 오늘 내가 드리는 기도에 대하여 우리 하나님이 가증하다, ‘토에바라고 평가를 내린다면 기도는 응답은 커녕 하나님으로부터 심한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말씀을 따라서 기도하는 기도입니다. 말씀은 무엇이라고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15:7<너희가 안에 거하고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기도응답은 가지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우리 주님 안에 거하여야 하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 속에 살아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주님 안에 거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예수를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불신자들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음으로써 중생하게 되면 우리는 예수 안으로 들어가 있게 됩니다. 예수 안에 들어 있으면 기도를 있는 번째 조건이 만들어졌습니다. 번째 조건 만으로는 기도 응답이 완전 조건이 못됩니다. 이것은 기도를 있는 자격 정도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조건을 맞추어 주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있어야 합니다. 말이 너희 안에 거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바로 뜻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의 말씀을 많이 주셨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새겨 보면서 약속을 기반으로 두고서 하나님께 간구해야 응답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약속의 말씀이 있는지 없는 지도 모른 채로 그냥 막무가내로 달라고 요청해서는 기도 응답을 받을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필요를 따라서 하나님께 필요를 채워 달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을 것입니다. 내가 너희들의 필요를 들어 주어야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성경 말씀에 이렇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라고 근거를 대면 우리 하나님은 꼼짝 없이 우리의 필요를 들어 주십니다.

그렇기에 기도 하기 전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과 심령에 새겨 놓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말씀에 우리의 심령을 실어서 하나님께 요청할 때에 우리 하나님이 들어 주십니다. 당신은 기도할 마다 우리 주님의 어떤 약속을 가슴에 새겨 놓았습니까?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여서 응답 받은 예들;

다윗의 경우:삼하7:27-29/<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주의 말씀들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좋은 것을 주의 종에게 말씀하셨사오니/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신탁인데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좌하는 나단이라는 예언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삼하7:11-16절까지의 내용! 신탁, 예언, 계시의 말을 다윗이 듣고 다음에 다윗의 마음에 기도할 마음이 솟아 났습니다.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다윗에게 생겨 났습니다. 기도가 어떤 기도입니다. 29절에 기록되어 있지요. 종의 집에 앞에서 영원히 있게 달라는 간구를 하게 되지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에 마음에 불이 붙으면서 기도가 시작됩니다. 우리 마음에도 이런 기도의 불이 붙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다윗의 기도를 받으시고, 다윗의 후손들로 왕좌에 앉아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다윗 왕의 후손으로 예수, 우리의 왕이 세상에 출현하게 되었지요.

우리의 마음에 같은 소원이 일어납니까? 그러면 우선 소원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물으십시요. 뜻과 의지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 약속을 이루라고 주장하십시요.

*다니엘의 70이레의 환상<금식기도>/9:1-3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주전 539)/ 통치 원년에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연수를 깨달았나니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25:11-13/<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것이며 민족들은 칠십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내가 땅을 향하여 선언한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을 향하여 예언하고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땅에 임하게 하리라> &29:10

소망의 말씀=예루살렘의 황무함이 70 만에 그치리라! 그래서 다니엘이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철저하게 민족의 죄악을 자복하면서 기도했을 때에 민족의 장래,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과 함께 종말의 날에 있을 나라와 민족의 장래인 70이래의 환상을 보여 주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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