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야곱이 임종할 때에 요셉에게 빌었던 축복의 말은? 즉 야곱이 요셉을 어떻게 평가했고, 그에 대하여 어떤 예언했는가를 살펴 보도록 하지요.
창49:22-26절<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야곱은 요셉을 어떤 그림 언어로 축복하고 있습니까? 샘 곁의 무성한 가지-무성한 이라고 번역되었는데, 번성이나 결실이 풍성하다는 의미입니다. 샘 곁에 심어져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없지요. 시냇가나 우물 곁에 심겨진 나무는 가뭄이 올지라도 문제가 없습니다. 요셉이 무성한 가지라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됩니다.
*무성한 가지이기에 심지어 가지들이 담을 넘게 됩니다. 우리 교회의 담을 넘은 가지는 바로 이 구절에서 따 왔습니다. 켐연장 지체들이 보스톤에서의 모든 사역을 마치고 타지로 직장을 따라서 이주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그들을 파송합니다. 이곳, 켐연장에서의 받은 은혜를 가지고 이주해 간 곳에서 복음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역하게 됩니다. 그런데 담을 넘은 가지는 그 뿌리, 그 근거를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켐연장에 두고 있습니다. 담을 넘은 가지들이 그들이 파송 되어 간 그 곳에서 열매를 많이 맺히어서 그 곳에 살고 있는 분들이 따 먹을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요셉에게로 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축복입니까?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 위로 하늘의 복은 신령한 복을 의미하고 아래로의 복은 세상적인 복을 의미합니다. 물질의 복과 자녀의 복을 주겠다는 말입니다. 즉 다른 말로 하면 영적인 축복과 함께 물질적인 복도 넘치도록 부어 주겠다는 말입니다.
*요셉? 그 형제 중의 뛰어 난 자! 야곱의 아들들은 12형제이지요. 요셉은 11째 막내 아들이지만 믿음과 깨달음에 있어서는 가장 뛰어난 장자였음을 야곱은 말하고 있습니다.
17살 때 꾸었던 꿈이 30살이 되어서 이루어졌습니다. 요셉은 그의 삶의 최 정상에 우뚝 서서 했던 일은 무엇인가? 적어도 그는 두 가지의 일을 했습니다. 한 가지는 세속적인 일이고 다른 한 가지는 신앙적인 일, 즉 영적인 일입니다. 그는 이 두 가지의 일에 모두 충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루라고 주신 비전, 인생의 고을을 이룬 다음에 무엇을 하면서 남은 생애를 살 것인가? 하나님께서 내 일생 동안 이루라고 주신 그 일, 그 과업을 이룬 다음에 우리는 무슨 일을 하다가 천국 들어 가야 하는가?
인생의 목적, 인생의 고을, 비전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룬 다음이 중요합니다. 낮은 자리보다는 높은 자리에 앉았을 때가 더욱 타락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그런 높은 위치에 서서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하면 떨어지게 되고 떨어지게 되면 영육간에 큰 데미지가 나게 됩니다.
우리 나라의 역대 대통령들을 보십시요. 퇴임 후에 모두 감방에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대통령이 되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선거에 이겨서 대통령이 되는 것 만을 위하여 전력을 투구하지요. 그러다가 대통령 당선이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라서 자리만 꿰차고 있다가 내려오면 감방에 들어 가 있는 그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우리 하나님이 우리들 각자에게 주신 비전, 고을, 목적을 받았는데,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의 삶을 불태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룬 후가 아닐까요? 예를 들면 청년들에게 있어서 학위를 마치는 일,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입니다. 그것을 마친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삶의 계획이 서 있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런 비전을 주셔서 학위를 마치게 하셨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 서 있기 전에 낮은 자리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해야 할 일들을 영으로 보고 깨닫고 미리 준비해 놓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전적인 준비가 되어 있어야 높은 자리에 올라 갔을 때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몰라서 허둥지둥 거리다가 무너지지 않지요.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펜스 저 너머로 광활한 미래가 보이지요. 그 큰 미래를 올라가서 보고 시작하고자 하면 늦었습니다. 낮은 자리에 있을 때에 영으로 보고 미리 준비해 놓아야 눈으로 실제로 보았을 때에 실현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요셉을 통하여 이 점에 대하여 배우고자 합니다.
요셉이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했던 일은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총리로서 해야 할 일을 하면서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어떤 일입니까? 7년간의 풍년과 곧 이어 다가 오는 7년간의 흉년을 극복해서 온 땅에 백성들이 굶어 죽지 않게 하는 일을 했습니다. 만민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요셉이 아니었다면 아무나 이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7년간의 풍년에 곡물을 거두어서 각 성에 비축해 놓았습니다. 곡물이 바다의 모래처럼 많이 쌓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7년간의 풍년이 끝나고 7년간의 흉년이 시작되자 애굽의 백성들이 요셉에게로 가서 돈을 내고, 가축을 내고, 토지를 내고, 몸을 바로에게 종으로 팔면서 양식을 사갔습니다.모든 애굽 사람들이 바로의 종이 되어 버립니다. 애굽의 모든 토지가 바로의 소유가 되어 버립니다. 요셉이 애굽의 백성들에게 곡물을 빌려 주고 추수할 때에는 1/5을 바로에게 상납하도록 하는 토지법을 세우지요.
애굽의 토지법은 오랜 후에 창세기가 기록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시행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누구의 업적이라고요? 바로 요셉의 업적이었습니다. 이런 업적을 요셉이 총리로 있는 동안에 이루었으니 바로가 얼마나 총애했겠습니까? 요셉은 총리로서 자리나 꿰 차고 앉아서 국가의 세금이나 축내는 총리가 아니라 애굽 이라는 나라와 백성들에게 큰 업적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사실 요셉이 아니었더라면 애굽도 기근 때문에 크나큰 타격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의 꿈을 요셉이 해석하고, 그의 탁월한 행정 능력과 지혜를 사용하여서 애굽을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행정력과 관리는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로 있을 때에 익힌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사용하기 위하여 미리 보디발의 집에서 훈련의 과정을 거치게 만들었습니다.
이 정도의 세속적인 업적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세상 사람들도 척척 잘 해 냅니다. 자기의 전문직을 통하여 사회를 위하여 국가를 위하여 잘 해 내지요.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높은 위치에 서서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세속적인 왕국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왕국을 위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두 왕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속 왕국의 시민권 뿐만 아니라 영적 왕국의 시민권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왕국의 시민으로서 요셉은 무슨 일을 했습니까?
영적 왕국에도 충성: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했던 일은 형제들을 용서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화해사역이라고 부를 수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지신 십자가 사역의 중심 사상 중에 하나이지요. 요셉은 자기를 어릴 적에 미워해서 죽이려고 했던 형들을 조건 없이 용서하는 일을 했습니다. 요셉은 종살이나 감옥살이와 같은 나락에 떨어져 있었을 때에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았습니다. 또한 지금은 비교가 되지 않는 높은 위치인 총리의 자리에 있지만 여전히 그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높은 위치에서 자기에게 죄를 지었던 형제들을 용서함으로써 그의 믿음을 드러냈습니다. 청소년 시절에 형들로부터 받았던 상처와 원한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형들을 용서한다는 것은 큰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요셉이 17살 때 꾸었던 꿈은 요셉이 총리가 되면서 부분적으로는 이루어졌습니다. 총리가 되었지만 아직 그 꿈이 완전하게는 성취가 안되었습니다. 완전하게 성취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합니까? 형들이 자기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큰 절을 올려야 하지요. 요셉이 꾸었던 꿈에는 형들이 묶은 곡식단이 요셉이 묶은 곡식단에 빙둘러 서서 절하던 꿈입니다. 그리고 해와 달과 11별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도 꾸었지요. 요셉이 총리라는 높은 직위는 가졌지만, 아직 형들이 요셉 앞에 불려 와서 절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꿈을 성취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요셉을 높은 위치에 올렸습니다. 전적으로 이 일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이제 형들을 불러 와서 자기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게 하는 것은 요셉이 할 몫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입니다.
이 일, 그 부분적으로 성취된 이 일을 완전하게 이루기 위하여 요셉은 계획을 세웁니다. 그 계획이 창42장부터 45장 사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42-45장은 7년 풍년이 끝나고 7년 흉년이 시작될 때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42-45장을 자세히 읽어 보면, 요셉이 주도면밀周到綿密하게 계획을 세워서 형들이 스스로 무릎을 꿇게 만들지요. 몇 번 무릎을 꿇렸을까요? 그들은 세 번이나 무릎을 요셉에게 꿇고 엎드리지요.
창42:6절/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처음 곡물을 사러 왔을 때에!
창44:14절/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그 곳에 있는지라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두 번째 곡물을 사러 왔을 때에
창50:18절/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세 번째로 아비 야곱의 장례를 치른 후에
창45:4-8절과 창50:19-20절/신약 성경의 핵심인 화해의 선포가 실제적으로 나타난 구약 성서의 실례! 이런 요셉의 모습은 십자가 상에서 우리 주님이 죄인들에게 용서를 청구하는 모습과 유사합니다.
창45:4-8절: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창45:4절에는 요셉이 그 10명의 형들을 자기 가까이로 오라고 초청한 다음에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자신은 요셉이라고 말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통역을 세워서 이야기 했는데, 여기서부터는 히브리 방언으로 형들이 알아 들을 수가 있는 말로 이야기를 요셉이 했을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요셉이라고 정체를 밝히면서 그 뒤에 무슨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까?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이 말은 10명의 형들의 가슴을 철렁거리면서 내려 앉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근심하거나 한탄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어떻게 형들에게 요셉이 이런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17살 때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그 때에 아버지와 생이별을 하고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버림을 당하였는데요. 어떻게 아무런 조건 없이 그런 통 큰 용서를 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 온 것은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형제들보다 먼저 자신을 (애굽에)보냈다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그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었기에 요셉에게는 참 가슴 아픈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방법을 써서 요셉을 애굽으로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7절 한번 읽어 볼까요? 하나님이 당신들과 당신들의 후손에게 큰 구원을 베푸시려고 당신들보다 나를 먼저 (애굽에)보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요셉은 8절과 같은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창45:8절 한번 같이 읽어 봅니다: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의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비록 당신들이 나에 대하여 시기 질투하면서 미워했기 때문에 내가 노예로 팔려서 애굽까지 왔지만, 하나님이 당신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22년이 지난 후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고 난 후에는 그 사건 속에 있는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큰 손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큰 구원의 계획을 아픔과 괴로움의 긴긴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볼 수 있게 되었지요. 이런 역사 이해가 나오니 무슨 행동이 나옵니까? 용서가 나옵니다. 자신에게 해를 가했던 형들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괘씸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악이 있었기에 하나님이 그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자기의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바라 보았다는 점이 참 위대하지요. 그러기에 이런 통 큰 용서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영적인 거인입니다!
창50:19-20절: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롬8:28절<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이 현재에 당하고 있는 악들 속에서도 선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높은 곳에 서서 지나온 과거를 바라보니 구비구비 하나님이 선한 손길로 인도하셨음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감사 찬송하면서 원수도 용서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박국 예언자가 노래했듯이 말입니다: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화해 사역:우리는 가정과 교회 안에서 화해를 이루어야 합니다. 앞에 있는 비전을 이루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웃과의 관계가 파괴 되면서까지 해야 할 주의 일은 없습니다. 지금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은 이웃과의 관계를 새롭게 해야 할 때입니다. 이웃에게 받았다고 생각되는 상처를 끌어 안고 평생 사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훌훌 털어 버리고 관계를 새롭게 가질 때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용서하고 용서 받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내게 상처 준 사람들을 우리는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비전을 이루면서 나로 높은 곳에 서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눈으로 과거를 돌아 보면 용서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 상처가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본 자는 이웃에게 용서의 손을 내밀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id는 하나님이 세상에 파송하신 ‘화해의 대사’입니다. 주께서 나를 용서하고 받으심 같이 우리도 가정 안에서 교회 안에서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고 받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은 곳에 세워 주실 때에 해야 할 영적인 사역이 어찌 화해 사역 뿐이겠습니까?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은 곳에 올려 세워 주시면서 하게 하실 영적인 사역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비전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준비하면서 기도해 놓아야 합니다. 내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행하게 될 영적 사역을 기도하면서 준비하기를 바랍니다. 선교 사역도 있고, 구제 사역도 있고, 중보기도 사역도 있고, 찬양 사역도 있고, 예언 사역도 있고요…얼마나 많이 있지 않습니까? 당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그 일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셉은 과거를 바라 보면서 형들의 죄를 용서를 했고, 또한 눈을 들어서 미래를 바라 보고 있습니다. 정말로 요셉은 영적으로 어마 어마 하게 큰 거인입니다. 어떤 미래입니까?
요셉의 최후:소망을 품고 땅에 묻히다. 향년 110세! 미이라가 되다. 어떤 소망을 품었는가? 가나안 복지를 바라 보았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허락하신 가나안 복지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 보았습니다. 비록 지금은 애굽의 이민자로 나그네로 살아 가지만 말입니다. 야곱의 후손들이 정녕 출애굽 하여서 가나안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바라보면서 후손들에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창50:24-25절;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우리도 이곳 보스톤 땅에 살고 있지만, 이 삶이 전부가 아니라 우리의 눈은 저 하늘 세계를 소망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들어가서 살게 될 영원한 천국이 우리의 삶의 종착지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우리는 이곳 보스톤 땅에서 살다가 이곳을 떠나서 우리의 본향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비전을 이루어서 기뻐하면서 또한 그 높은 자리에서 눈을 들어 죽음 저 너머의 세계를 소망하면서 살아 가게 될 것입니다.
http://churchboston.org/sermon/2018/12072018.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