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1. 번째 요셉의 위기는 형들의 시기와 질투, 미움과 증오 때문에 살해 당할 했다가 극적으로 살아 나서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어린 시절에서 노예로 팔려 까지 하나님의 섭리가 있어서 요셉이 죽지 않고 보호 되었습니다.

요셉의 삶을 크게 나누면 3기로 나누어 있습니다. 1기가 17 때까지인데, 때는 야곱과 함께 팔레스타인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2기는 30세까지 애굽에서 온갖 고난을 겪는 파랑만장한 시기였습니다. 3기는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애굽을 통치하다가 평안히 죽는 그런 시기입니다. 요셉의 인생의 계단마다 분명한 우리 하나님의 보호와 돌봄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라고 부를 있지요. 하나님께서 요셉이라는 인물을 시용해서 하나님 자신의 구원사를 어떻게 이루어 가셨는지를 있는데, 요셉은 어떤 일을 했는가? 결론적으로 요셉은 하나님이 역사하시겠끔 자신을 그저 열어 주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17 주셨던 비전을 이루어 가시는데 하나님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요셉은 거기에 수동적인 반응을 했을 뿐입니다. 요셉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비전을 이루겠다고 뭔가 일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구원사는 꼬일 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알았기에 요셉은 그저 자신을 열어 놓고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바라 보면서 따라 갔을 뿐입니다.

인생에 하나님의 구원사는 어떻게 이루어져 가는가? 하나님이 내게 비전을 주셨고, 비전을 하나님 자신이 이루어 가시고, 나중에는 하나님이 그것을 완성하십니다. 

 1:13/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이루게 하실 때에 먼저 우리에게 선한 소원을 우리 마음에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원이면서 비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소원을 이루시지 내가 소원을 이루는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소원을 가슴에 품고 소원 안에 머물러 있기만 하면 하나님이 그의 능력으로 역사하여서 이루어 내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 모든 일을 그의 마음의 원하는 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누구에게도 제재를 받지 아니하십니다.

에베소서1:11/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서 우리가 예정을 입어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모든 일을 하나님의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는 하나님이 인생에도 계획을 가지고 계획대로 착착 진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2. 오늘은 번째 요셉의 위기와 하나님의 개입/유혹과 시련/애굽에서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 생활을 했는데 그의 인생에 다가온 위기를 어떻게 요셉은 극복했을까요? 하나님의 섭리는 어떻게 나타났고, 요셉은 어떤 행동을 했을까요?

 

미디안 상고들이 요셉을 친위대장(호위병들의 ) 보디발의 집의 노예로 팔아 넘겼습니다. 친위대장은 바로의 측근들 중의 하나이다.

37:36/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39:1/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 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요셉의 인생 2기의 삶은 애굽에서 보디발의 노예()살이로 시작했습니다.

 

a. 보디발 집의 가정총무가 되었다. 요즈음 말로 하면 보디발 집의 집사 되었습니다. 가정의 대소사, 집과 밭과 소유물을 모두 주관해서 처리하는 집사 말입니다. 17살짜리 일개 노예로부터 애굽의 권세 있는 관리의 가정 총무가 때까지는 년의 세월이 흘렀겠지요.

어떻게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가 있었을까요?

39:2-3/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하나님께서 요셉을 형통케 하셨다. 형통이란 막힘이나 장애가 없이 하는 모든 일이 쭉쭉 뻗어 나가는 것을 의미하지요. 보디발이 요셉을 주목하여서 관찰해 보니 매사 처리를 매끄럽게 지혜롭게 하거든요. 그래서 자신의 집의 가정총무로 삼아서 자신의 모든 소유를 그의 손에 맡겼습니다. 그렇게 맡겼더니 하나님의 복이 보디발의 집에 임했습니다.

이렇게 산다면 요셉은 그냥 보디발의 집사로, 가정총무로 평생 편안하게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인의 인정을 받으면서 말입니다.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보디발의 집안에서 주인을 제외하고는 자기보다 높은 사람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요셉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17 받았던 비전이 있습니다. 비전은 보디발의 가정 총무로 만족하는 삶이 아닙니다. 이상이지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애굽의 총리가 되는 일이지요.

하나님께서 요셉을 보디발 집의 가정집의 일들을 주관하는 가정총무로 삼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보디발 집의 행정과 재무를 담당하는 일은 장차 있을 국가를 경영하는 애굽 총리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요셉은 이런 하나님의 의도를 알지 못했지만 보디발 집에서의 가정총무의 일을 성실히 수행했습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맡겨진 작은 일부터 충성스럽게 감당하다가 보면 우리 하나님이 일을 맡기시지요.

보디발의 가정 총무의 자리보다 훨씬 높은 자리로 올라 가기 위하여 하나님이 무엇을 계획하고 준비했나요? 보디발 부인을 발판으로 사용했습니다. 보디발 부인의 무엇을 사용했는가? 그녀의 장점과 미덕을 사용했는가? 아니다. 보디발 부인의 사용했다. 요셉을 애굽에 보내기 위하여 형제들의 요셉에 대한 미움과 악을 사용했듯이 말입니다. 보디발 부인의 유혹!

 

39:7/요셉에게 동침하자고 눈짓을 했다.

39:10 /요셉에게 번이 아니라 날마다 졸랐다.

 

요셉의 액션은?

39:8-9/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손에 위탁하였으니, 집에는 나보다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이 거절했다! 거절했다는 동사는 강조형입니다. 칼에 무우를 자르듯이 잘라 버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수락할 수도 있다는 여운을 남기는 거절이 아닙니다. 다시 그런 제안을 못하게끔 칼에 거절해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점이 요셉의 위대한 점입니다. 가장 혈기 왕성한 약관의 나이에 정욕을 이겨냈습니다. 20 약관의 나이에는 정욕을 사탄이 시험하고, 30-40대에는 돈을 가지고 사탄이 시험하고, 50-60대에는 명예,권세 같은 것으로 시험하지요.

 

거절 것을 거절하고, 수락할 것을 수락한다. 성도는 세상 사는 동안 순간 순간에 있어서 분명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요구하는 인격은 둥근 인격이 아니라 네모난 인격입니다. 둥글둥글한 인격은 거절이 없습니다. 둥글둥글한 인격, 보름달 같은 사람, 원만한 사람이 우리 문화관의 이상적인 인격이지요. 그러나 성경은 네모난 인격을 요구합니다.  네모난 인격에는 거절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은 모두 거절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부인의 유혹을 사탄의 시험으로 인식했습니다. 달리 생각할 수는 없었을까요? 인생의 반전을 꾀할 기회로 말입니다. 노예라는 신분을 벗어 있는 길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보디발 부인을 사용해서 말입니다. 제비족이 되어서 지긋지긋한 노예라는 신분의 굴레를 벗어나서 애굽의 자유인으로 살아 있는 기회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바로 지금의 보디발 부인이 치근덕 거리는 이것은 사탄의 유혹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말입니다. 만약 요셉이 이것을 기회로 잡았다면 요셉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을 것입니다. 사통관계는 꼬리가 것이고 보디발의 앞에 드러나게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보디발에 의하여 요셉은 노예이기에 죽임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거절한 이유는 하나님이 그것을 죄악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내가 어찌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비록 노예의 신분으로 나락에 떨어져 있지만 어떻게 살았다고요?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이것을 라틴어로 무엇이라고 부른다고요? 코람 데오! 하나님 앞에서!

 

보디발 부인의 모함:요셉의 거절 때문에 보디발 부인은 무시를 당하였다고 자기의 자존심이 상처를 받게 되지요. 그래서 자기의 남편에게 요셉을 무고하게 고발하지요.

과정에서 보디발 부인의 모함을 받아서 감옥에 갇히게 되지요. 감옥은 고관대작들이 갇히는 던전, 정치범 수용수입니다. 요셉은 인생이 꼬이기만 합니다. 노예로 팔려 오지를 않았나,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가 되어서 그런대로 행복하게 안정되게 살아 가는데, 보디발 부인의 유혹과 모함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정도 되면 인생을 자포자기 수도 있었겠지요. 인생, 팔자는 꼬이기만 한다고 신세 한탄을 하면서 자포자기하여서 인생을 망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하지를 않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말입니까? 코람 데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다는 때문에, 그리고 무엇? 17 받았던 비전이 가슴에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옥살이 하는 요셉&감옥에서 일어 일들/39:19-40:23

 

감옥에서 무엇이 됩니까? 감옥살이에서도 옥중의 모든 사무를 총괄해서 보는 사무장이 되지요. 모범적인 죄수 생활을 했다는 말입니다.  간수장이 요셉을 좋게 보았지요. 간수장이 요셉을 밉게 보아서 괴롭혔다면 옥살이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간수장으로부터 은혜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인정과 사랑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요셉이 죄수들의 반장이 되어서 옥사의 제반 사무를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유가 무엇일까요?

39:21/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39:23/~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형통이란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보디발의 집에서의 종살이와 감옥에서의 옥살이었지만 요셉은 형통하였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막힘이 없이 앞의 일들이 풀리어 나가는 것을 형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요셉이 비록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하는 나락에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곳에서도 막힘이 없이 자기의 일들이 풀려 나갔다는 의미에서 형통입니다. 형통을 잘못 해석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만사 형통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인생 살이에서 실패 하지 않고 성공 일변도로 달리는 것이 형통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 살이는 궂은 , 실패와 좌절, 질병과 사고, 걱정 거리 근심 거리가 있게 마련입니다. 예수 믿고 나면 그런 궂은 일이 전혀 내게 미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크나큰 오해입니다. 불신자에게 미치는 궂은 일들이 예수 믿는 내게도 미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궂은 일이 내게 미칠지라도 힘들고 어려운 삶의 현장에도 우리 주님이 함께 주셔서 일들이 술술 풀립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형통입니다. 고난과 시련의 현장에 우리 주님이 함께 계셔서 상황을 풀어서 정상 상태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형통입니다.

1:3/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로다. 가뭄이라는 시련을 모든 나무가 겪고 있지만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가뭄에 고통스럽습니다. 가뭄이 없어지는 것이 형통이 아니라 그런 가뭄 가운데서도 넉넉하게 버티고 생존해 내는 것이 형통입니다.

 

당신은 이런 형통함을 경험하고 있나요? 요셉에게는 이런 형통함이 있었습니다. 요셉이 종살이가 풀려서 자유인이 되는 것이 형통함이 아니고, 요셉이 감옥살이가 풀려서 자유인이 되는 것이 형통함이 아니라 종으로 묶여 있지만 형통함이 있어서 가정 총무가 되었고, 감옥살이로 묶여 있지만 속에서 형통함이 있었지요. 

 

관원장의 투옥과 그들의 &해석/하나님이 바로와의 연결을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 일입니다.

고위 관료인 맡은 관원장과 굽는 관원장이 투옥되었다. 요셉이 이들을 감옥에서 섬겼다. 어느 이들이 꿈을 꾸었습니다. 모두 징조가 있는 예지몽을 꾸었습니다.

맡은 관원장: 가지의 포도 나무가 있었는데,.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달렸다. 포도를 따서 포도즙을 짜서 바로의 잔에 올려 드렸다.

굽는 관원장: 광주리 개가 자신의 머리에 있었고, 윗광주리에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음식을 먹고 있었다.

요셉의 해석:바로가 관원장을 사흘 안에 출옥시키는데, 굽는 관원장은 나무에 달려 죽을 것이고, 맡은 관원장은 사흘 안에 출옥하여서 전직을 회복하게 되리라고 해석하게 되지요.

사흘 후에 바로의 생일날 요셉의 해석대로 굽는 관원장과 맡은 관원장에 출옥하게 되었고, 굽는 관원장은 나무에 달려 사형이 집행되었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이 회복되었습니다.

요셉이 고위 관료들의 꿈을 해석하면서 맡은 관원장에게 부탁을 합니다. 당신이 꿈의 해석대로 출옥하여서 전직을 회복하거든 바로에게 사정을 이야기해서 나를 집에서 건져 달라고 부탁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옥에 갇힐 그런 악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맡은 관원장은 감옥에 있는 요셉을 잊어 버렸습니다.

2년의 세월 후에;바로의 개의 !

일곱 암소와 일곱 이삭의 : 속에서 바로는 나일 강에 살진 일곱 암소를 보았고, 이어서 파리한 암소 일곱을 보았는데, 파리한 암소 7마리가 살진 일곱 마리 암소를 삼키는 꿈이었습니다. 바로가 잠을 깼다가 다시 잠들었습니다. 이번에는 꿈에 튼실한 7이삭이 줄기에 나왔고 뒤이어 가늘고 동풍에 마른 7이삭이 나왔는데, 가늘고 동풍에 마른 7이삭이 튼실한 7이삭을 삼켜 버리는 꿈이었습니다.

바로는 징조가 있는 꿈이라고 느꼈기에 애굽의 현자들을 불러서 꿈을 해석하게 하려 했는데, 꿈을 해석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바로의 근심이 깊어 지던 차에 맡은 관원장이 자신이 던전에서 만난 있는 요셉을 천거하게 됩니다.

요셉이 바로 앞에 서게 되고 바로의 개의 꿈을 해석하게 됩니다. 비록 바로가 개의 꿈을 꾸었지만 서로 다른 개의 꿈이 아니라 하나의 꿈이라고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라고 요셉이 말합니다. 꿈은 고대 근동 지방에 풍년이 있고 다음에 곱해 흉년이 있을 것에 대한 꿈이라는 말입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할 뿐만 아니라 걸음 나아가서 흉년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에 대하여 바로에게 조언을 했습니다. 지혜롭고 명철한 사람을 선택하여서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감독관을 세워서 풍년이 있는 7 동안 1/5 조세를 거두어서 성에 비축해 두어서 다가올 흉년을 대비하면 애굽이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을 하게 되지요.

바로가 요셉의 말을 듣고서 요셉을 전격적으로 애굽의 총리로 임명하게 되지요. 죄수 신분에서 갑자가 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바로 다음 가는 권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바로가 인장 반지를 빼어서 요셉에게 주고,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어주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 번째 수레에 태웠습니다. 모든 신민이 요셉 앞에 엎드렸습니다. 요셉의 나이가 30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바로의 신하인 관원장이 복직 후에 바로 출옥 시키시지 않았을까요? 2년간을 기다리게 하셨을까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성경은 침묵을 지킵니다. 그러나 추론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경험을 통하여 말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셔서 요셉의 상황을 돌보시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요. 하나님의 침묵 말입니다. 그러나 맡은 관원장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의 밧줄로 생각해서 그를 의지했습니다. 그에게 자신의 구원이 있을 것으로 소망을 가졌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던 것에서 이제는 사람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모를 없지요. 요셉의 그런 사람을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을 처리하는 기간이 2년이 걸렸습니다. 오랜 동안의 고난과 시련 속에 있었기에 연약한 인간이 그럴 밖에 없지요. 맡은 관원장의 복직과 함께 자신이 그에게 부탁한 구원을 기다렸지만 구원의 소식은 감감 무소식입니다. 요셉은 인간적으로 많은 실망을 했겠지요. 그리고 믿을 것은 오직 하나님 밖에는 없다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단계로 나가는 기간이 2년이 걸렸다는 말입니다. 그의 신앙 가운데 하나님 분만 의지 하지 못하고 사람을 의존하는 그것을 없애는 기간이 2년이나 걸렸다는 말입니다.

2년의 기간이 흐르자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꿈을 보게 하시고 요셉이 그것을 해석하게 만들어서 애굽의 총리로 만드셨지요.

 

이것이 2 인생을 살아가는 요셉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입니다. 2기의 파란 만장한 인생의 소용돌이 현장에 누가 계셨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 요셉은 그런 고난의 파도가 넘치는 현장에서 파도를 보고 움추러든 것이 아니고, 성난 파도 안에 들어 계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믿음 가지고 그런 성난 파도를 잠잠케 만들었습니다. 인생이 성난 파도 속에 있다고 생각됩니까? 속에 들어 계시는 우리 하나님을 있게끔 우리의 영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파도 속에 들어 계시는 하나님이 성난 파도를 컨트롤 하고 계십니다.

 


섬김이1

2018.12.10 15:12:48

http://churchboston.org/sermon/2018/11302018.mp3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62 금요기도회(12/14/2018) [1] 김영호목사 2018-12-17 1901
561 금요기도회(12/7/2018) [1] 김영호목사 2018-12-10 1532
» 금요기도회(11/30/2018) [1] 김영호목사 2018-12-10 813
559 금요기도회(11/23/2018) [1] 김영호목사 2018-11-26 426
558 금요기도회(11/16/2018) [1] 김영호목사 2018-11-19 1121
557 금요기도회(11/9/2018) [1] 김영호목사 2018-11-12 417
556 금요기도회(10/26/2018) [1] 김영호목사 2018-10-28 414
555 금요기도회(10/12/2018) [1] 김영호목사 2018-10-14 428
554 금요기도회(10/5/2018) [1] 김영호목사 2018-10-07 435
553 금요기도회(9/28/2018) [1] 김영호목사 2018-10-01 536
552 금요기도회(9/21/2018) [1] 김영호목사 2018-09-23 541
551 금요기도회(9/14/2018) [1] 김영호목사 2018-09-17 429
550 금요기도회(9/7/2018) [1] 김영호목사 2018-09-09 443
549 금요기도회(8/31/2018) [1] 김영호목사 2018-09-03 442
548 금요기도회(8/24/2018) [1] 김영호목사 2018-08-27 432
547 금요기도회(8/17/2018) [1] 김영호목사 2018-08-20 509
546 금요기도회(8/10/2018) [1] 김영호목사 2018-08-13 427
545 금요기도회(8/3/2018) [1] 김영호목사 2018-08-06 470
544 금요기도회(06/01/2018) [1] 김영호목사 2018-06-13 578
543 금요기도회(05/18/2018) [1] 김영호목사 2018-05-22 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