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 - The Cambridge Korean Presbyterian Church : Boston, MA ::
 

말씀사역:요셉의 /37-50

 

1. 번째:요셉처럼 하나님의 구원사에 쓰임 받는 도구가 되자!

 

전체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의지가 역사 세계 속에 최초로 나타난 사건은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부르심으로 시작되었지요. 창세기 12장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 이어지는 가계를 통하여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보낼 의지를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가 언제인가요? 주전 2천년전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구원사가 시작이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를 땅에 보내심으로 하나님이 시작하신 구원사를 완성하시지요.

 

15장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로 약속하신 것을 재확인 하는 횃불 언약을 맺지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후에 깊은 잠에 빠져 듭니다. 속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15:12-17<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동안 자손을 괴롭히리니/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후에 자손이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자손은 사대 만에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이것이 유명한 횃불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자손을 수없이 많이 준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준다는 언약, 언약을 재확인 하면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일어날 일을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가나안 땅을 벗어나서 이방 땅에 종살이를 하다가 거기에서 해방되어 나올 것이다. 종살이 기간은 4대가 것이다. 요즈음은 세대를 30년으로 잡지만, 여기서는 세대를 100년으로 잡습니다. 그러면 400년이 되겠지요.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 내려 오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애굽에 기거하면서 400년간 종살이를 했고, 모세의 인도 하에 출애굽하여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상속하게 되었지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애굽에 들어갈 때에는 가솔, 가문, 씨족이었지만, 애굽에서 나올 때에는 백성, 민족이 되어서 나오게 되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야곱과 그의 아들과 손자 손녀들은 모두 가나안 헤브론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우리 하나님이 미리 보여 주신 대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애굽으로 이민가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일을 것인가 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사는 이렇게 예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누가 사용이 되었습니까? 바로 요셉입니다. 야곱의 11번째 아들을 하나님이 선택하여서 구원사를 이루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요셉이 아니었으면 야곱의 후손들이 애굽에 내려 수가 없었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구원사를 이루기 위하여 그의 형제들 가운데서 선택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장자인 르우벤을 세우지 않고, 이런 막내 아들, 요셉을 세웠을까요? 요셉이 다른 11 아들보다 믿음이 출중한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가진 믿음이 요셉 자신의 것인가요? 아니지요.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그에게 주신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사를 이루기 위하여 요셉이 선택된 것이지요. 요셉이 다른 형제들에 비하여 가지고 있던 출중한 믿음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았다면 가질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요셉이 잘났다고 뻐기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그런 믿음을 주셨을까요? 이유를 아십니까?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세 전에 선택하여서 예수 믿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게 하셨는가? 이유를 아는 사람 있습니까?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 중에서 나를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의지적인 선택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나은 장점이나 성품이나 업적도 없는데 나를 선택했을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는가? 그러게나 말이예요! 이것이 우리의 대답입니다.

 

우리도 21세기에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막내 아들과 딸들입니다. 하나님의 막내일지라도 우리는 믿음에 있어서 요셉처럼 장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 출중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서 다음 세대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구원사에 쓰임을 받는 도구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2. 창세기를 통하여 요셉의 삶을 들여다 보면 요셉의 삶을 부분으로 나누어 있습니다. 단계는 번째가 가나안 땅에서 요셉의 삶이고 번째가 애굽에 팔려 가서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하는 요셉의 삶이고, 번째가 애굽의 총리로서의 요셉의 삶입니다. 단계들마다 구원사를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요셉의 삶에 간섭하셨는지를 있습니다. 단계들마다 하나님은 어떤 역할을 하셨고, 그리고 요셉은 어떻게 반응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사를 이루셨는지를 있습니다.

 

a. 우선 단계의 요셉의 , 가나안 땅에서 그의 :노예로 팔리기 전까지의 그의

 

17 개의 :37

1. 곡식

2. 해와 달과 열한

 

꿈은 개꿈이 아닙니다. 꿈은 예지몽입니다. 장래에 요셉에게 일어날 일을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꿈입니다. 이것은 요셉의 비전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장래에 이루고자 하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꿈을 마음에 간직했습니다. 또한 누가 꿈을 간직했을까요? 그의 아비가 요셉을 책망하면서도 만은 자신의 마음 속에 갈무리했지요. 그의 형들은 이런 요셉과 요셉의 꿈을 무시하면서 경멸했지만 말입니다. 요셉이 아비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자, 요셉의 형제들이 시기하고 질투하였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때문에 요셉을 더욱 미워하게 되었지요.

요셉의 아비, 야곱도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있는 영성이 있었습니다. 야곱의 대표적인 꿈이 벧엘에서의 사다리 꿈이었지요. 야곱의 영성이 누구에게 전달되었나요? 그의 열두 아들 가운데 바로 막내 아들인 요셉에게 말입니다. 야곱도 꿈쟁이였고, 요셉도 꿈쟁이였습니다. 꿈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를 받을 있는 능력이 부자, 야곱과 요셉에게는 있었습니다.

 

떄의 요셉의 나이는 17살입니다. 십대에 이런 비전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의 10 중고등부 청소년들과 20-30대의 드림.비전 청년들이 이런 비전을 각자가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내면 좋겠습니다. 성령이 임하여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고 신유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삶을 결정 지어 있는 비전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받은 비전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삶을 불태우는 그런 삶을 살아 나가는 중고등부 그리고 청년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의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이런 비전을 받아 있도록 온교회 교인들, 특히 장년부원들은 중보 기도에 힘써 주기를 바랍니다. 이런 꿈과 비전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깨어 있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은혜는 특수한 사람에게만 주시는 은혜가 아니라,누구나 예수 안에 있으면 받아 누릴 있는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 자에게 우리 하나님이 성령을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2:17절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지요. 성령이 임하면 꿈을 꾸게 된다 말입니다. 무슨 ? 요셈이 꾸었던 그런 예지몽들을 각자가 꾸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사를 이루기 위하여 일생 동안 해야 비전을 꿈을 통하여 받는다는 말입니다.

 

1994 2월달에 교회가 창립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창립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나와 사모를 깊이 기도하게 만드셨습니다. 교회를 창립하라는 명령은 이미 오래 전에 받았는데, 그렇다면 어떤 교회를 세워야 하는가에 대하여 기도했습니다. 달을 기도했었지요. 그러던 어느 새벽에 물고기 잡는 꾸게 되었지요. 꿈에 보니 내가 오솔길을 걸어 가고 있었고, 오솔길 아래 쪽에는 작은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물고기들이 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고기들을 잡아야겠다고 오솔길 아래로 내려 가다가 잠이 깨였지요. 이것이 켐연장 교회가 세워진 이유입니다. 이곳 보스톤 땅에서 사람들을 훈련시켜서 영적인 거인으로 만들어서 세상을 섬기게 하기 위하여 저들을 세상으로 파송하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꿈은 24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는 우리 켐연장 교회의 비전이 되어 있습니다.

 

3. 이런 비전을 누가 이루어 가시는가? 요셉인가? 아니다. 요셉이 받은 비전은 요셉 자신에게서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비전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 누구이신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하나님이 요셉 안에 계셔서 요셉을 사용하여서 그가 받은 비젼을 이루어 가십니다. 요셉이 하는 일은 자신을 열어 놓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요셉의 속으로 들어 가셔서 비전을 이루어 가십니다. 요셉이 자기의 힘과 능력과 지혜를 사용해서 이루어 가는 결코 아닙니다. 만약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요셉이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비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요셉의 삶의 계획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어떤 방식으로 애굽의 총리대신, 최고의 정치 지도자로 만들어 것인가? 방법은 요셉을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가게 만드십니다. 방법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나요? 다른 여러 방법이 있을 수가 있었겠지요. 만약 우리들이 드라마 작가라면 강대국인 애굽의 변두리 지역에 살고 있는 시골 소년을 총리 대신으로 만드는 드라마를 만든다고 봅시다.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요. 하나님이 생각하고 계획하신 , 요셉을 노예로 만들어서 애굽에 보내는 일이 최선의 일이었습니다. 애굽의 청년 노예가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는 그런 역전 드라마가 요셉에게 일어났던 아닙니까? 이런 역전 드라마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일어 수가 결코 없는 일이지요. 요셉이 아비의 품을 떠나서 노예로 팔리는 동안에도 그는 자신이 꾸었던 가지의 꿈을 잊지 않았습니다. 가지의 꿈이 공상으로 끝나는 것인가 아니면 실제로 자신의 삶에 이루어 것인가 문제로 그는 갈등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애굽의 노예로 나락에 떨어져 있는 , 그가 애굽의 총리 대신을 꾸는 것은 공상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공상의 날개가 아니었고, 그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꿈들은 그에게 소망을 주었고 꿈을 붙들고 일어 있게 만들어 주었지요.  

 

우리는 신약 시대의 사도 바울에게서도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와 아가야 지방을 돌아 다니면서 이방인 선교사역을 행했습니다. 1, 2, 3 전도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이런 선교 여행을 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로마로 있는 좋은 길을 기도하면서 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로마의 죄수로 보냈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시민으로 자유의 몸으로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죄수로 보냈습니다. 길이 하나님의 최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요셉을 애굽의 총리 대신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요셉을 노예로 애굽에 보내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이나 요셉이나 모두 죄수나 노예가 되어 있는 동안에는 결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높은 자리에 올리신 다음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자신을 노예가 되게 했는지를 깨달아 알게 되었다는 아닙니까?

 

번째 요셉의 위기와 하나님의 개입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가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사가 망쳐질 수도 있는 위기가 닥쳤습니다. 어떤 위기입니까? 형들이 요셉을 죽여 없애고자 했습니다. 바로 이런 찰나에 하나님이 개입했지요. 요셉이 죽었다면 요셉을 통하여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사는 끝장이 나버렸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좌절을 맛보아야 하겠지요.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십니다.

 

발단은 이렇습니다:요셉이 아비의 심부름을 형들에게 하게 되지요. 아비 야곱이 요셉을 시켜서 형들이 양들을 치는데 하고 있는 지를 살피고 오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형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형들에게 갔더니 형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서 요셉을 죽일 계획을 세웠습니다. 형제들은 요셉을 죽인 다음에 겉옷, 채색옷을 벗기고 죽인 후에 그의 옷에 염소 피를 묻히고 아버지에게 요셉이 악한 짐승에게 잡아 먹혔다고 보고하고자 의논했습니다.

때에 하나님이 쓰신 방법은 아들, 르우벤을 사용했습니다. 르우벤이 형제들에게 요셉을 죽이지 말고 그냥 혼자서는 올라 없는 구덩이에 던져 넣게 합니다. 나중에 르우벤이 요셉을 건져서 아버지에게로 돌려 보내려고 말입니다. 이런 조치를 르우벤이 취한 다음에 보러 사이에 형제들이 밥을 먹고 앉아 있었습니다.

바로 때에 곁을 미디안 상인들이 낙타를 끌고서 애굽으로 물건 팔러 가는 대상들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때에는 하나님이 유다를 사용하지요. 유다가 형제들에게 우리들이 요셉을 죽인들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죽이지 말고 미디안 상고들에게 요셉을 노예로 팔아 버리자! 그러면 꿩먹고 알먹고가 아닌가? 돈도 벌고 미운 박힌 요셉도 제거하고 말입니다. 이십을 받고 요셉을 미디안 상고,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 버렸습니다. 바로 사건이 요셉이 애굽으로 보내려는 하나님이 만드신 plot 플롯입니다.

 

이런 구성, 플롯을 하나님이 언제 만드셨나요? 임기응변으로 만드셨나요? 아닙니다. 적어도 미디안 상인들은 길르앗으로부터 오고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길르앗 넘어이면 메소포타미아이겠지요, 대상들이 요셉이 구덩이에 빠져 있는 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적어도 전에 이들은 애굽으로 물품을 팔고 사기 위하여 내려 가는 길입니다. 적어도 전에 길을 떠났습니다. 무엇 하러요? 애굽에 물건을 무역하기 위하여 말입니다. 그들이 요셉을 사기 위하여 길을 떠난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하여 움직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들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우연히도 요셉을 형들에게서 노예로 샀습니다. 그들은 일반사를 이루어 가고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그들의 손에 팔리게 하는 구원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미쳐 알지 못하는 가운데, 세계의 정치와 경제와 같은 일반사는 사람들에 의하여 결정되어서 움직입니다. 그러나 일반사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사가 맞물려서 돌아 가고 있습니다. 세계의 정치 지도자나 재계의 지도자들이 일반사를 주도하여 움직이지만,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사가 톱니처럼 맞물려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누구를 통하여 말입니까? 세상에 흩어져 있는 예수 믿는 이들을 통하여 말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구원사를 이루어 가는 도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귀한 존재들로 사용하고 싶어 하십니다. 일반사는 영웅과 힘과 권세가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지만, 구원사는 너와 같은 보통 사람들, 주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깊은 관심을 가지시는 것은 바로 구원사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런 일들을 미리 미리 준비하여서 구원사를 이루십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리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우리 하나님께서 미디안 상고들을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요셉을 애굽에 노예로 팔기 위하여 말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리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사를 이루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 가는 동안에 요셉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참담했을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구원사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을 까요? 아닙니다. 형들이 야속했고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을 것입니다. 자신을 노예로 팔아 먹었기 때문에 말입니다. 팔릴 당시에는 처참한 심경이었지만 자신이 총리 대신이 되고 다음에 형들이 자신에게 엎드려 절하고 있었을 때에는 자신이 17 때에 애굽에 종으로 팔리는 일이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455,7절에 기록되어 있지요: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살리기 위하여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애굽에 보냈다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노예라는 신분으로 고약하게 팔려 왔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말입니다. 높은 곳에 올라 서서 지나온 과거를 굽어 보니 하나님의 섭리가 보이는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 알았으니 자신을 노예로 팔아 넘긴 형들을 용서할 있는 아닙니까? 죽음 너머의 세계를 보고 경험한 성도는 원수도 용서할 수가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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